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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사람들 (증보판) -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지음, 이진모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2월
평점 :

독일인들의 증언에서 잘못된 점은 그들이 가졌던 여러 겹으로 왜곡된 시선이다. 경찰들은 유대인들을 도운 폴란드인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독일인에 의해 처형된 폴란드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다. 그리고 일부 폴란드인들이 “배반”과 밀고를 하도록 선동한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다는 사실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p.243)
학살자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했던 가장 전형적인 명분은 자신들은 단지 명령을 집행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정권에 대한 어떠한 공개적인 반대도 허용하지 않았던 나치 독재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는 군대식 복종이 절대 불가피한 상황을 만들었다. (p.262)
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나치들이 행한 악행, 특히 '유대인학살'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조건 없는 추앙,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시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사회 행동 등을 핑계로 앞세운 101 예비경찰대대의 잔혹한 학살을 담아내 엄청난 논쟁을 불러왔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세간의 논쟁을 정리하고 후속 연구결과를 정리한 책이 긴 세월을 지나 세상에 돌아왔다. 나치에 대해 꽤 많은 책을 읽으며 그 잔혹함에 대해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여러 감정에 휩싸여야 했다.
슬픔과 분노, 실망감과 경악스러움. 한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으로 인해 책을 읽고도 한참이나 책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책의 제목조차 역설적이라고 해야 할지, 진실이라고 해야 할지 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분명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것들이, 생각해볼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 그들의 학살은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들의 학살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역겹다는 단어가 정확하다. 노약자를 사살했나, 하지 않았나 따위의 논쟁을 떠나 학살이 점점 '작업화'되고 무감각해지는 과정 자체가 무척이나 경악스럽다. 하지만 불복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타인의 안전을 위해 나의 안전을 담보 잡힐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반드시 그러하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더욱이 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얻은 타인의 안전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 유지될 수 없음을 아는 상황에서 '아니오'를 외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들을 악마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당한가 고민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들의 학살을 정당화할 수 없음도 분명하기에 더욱 복잡한 마음이다.
2. 홀로코스트는 우리와 무관할까.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던 학살이었으나 그들은 점차 무감각한 학살의 집행자가 되어간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행위가 주는 감정의 변화가 너무 커서 '중독성'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그들만의 일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한때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게 더욱 힘들었다. 한때는 이웃이었던 이들이 악마로 변해가는 모습, 인간 본연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를 '악'함이 두렵고 무서웠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어쩌면 여전히 홀로코스트는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우리는 모두 '집단'의 뒤에 숨어 눈빛으로, 말로 대학살을 진행 중이지는 않나, 깊은 고민이 들었다.
3. 방관자는 공범일까, 그렇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다 읽고도 바로 리뷰를 쓰지 못했던 것은 이 부분에 대한 생각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그런데도 공범이다.”라는 결론을 냈다. 물론 이 책은 잔혹한 학살에 역겹고 몸서리가 쳐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책은 아니다. 그것이 전부였다면, '유대인학살'을 다룬 다른 책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이 책은 학살자나 협력자를 넘어 '방관자'들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했으나 가해자가 된 이들인지, 한때는 평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을 도운 이들인지, 아주 평범하지만 방관한 모든 이들인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항상 평범한 사람이었다. '보통처럼' 살고자 항상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그 '보통처럼'을 위해 나도 모르게 가해자 혹은 협력자, 방관자가 되어왔던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유대인학살에 대한 잔혹성을 전하는 것을 넘어 인간 본연의 집단성, 깊은 이면의 잔혹성과 이기심, 또 두려움까지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총, 칼 대신 눈빛으로, 펜으로, 키보드로, 입으로, 그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누군가에게 가해자나 협력자, 방관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