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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한국사 - 우리 지갑 속 인문학 이야기
은동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2월
평점 :

이순신은 화려한 승전보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책임감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4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웅이 된 것은 아닐까요? (p.87)
신사임당,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학, 이순신, 벼, 다보탑, 그리고 거북선과 무궁화. 이 열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금방 화폐의 주인공들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벼가 화폐 도안인지, 왜 학이 그려져 있는지, 이 위인이 왜 00권의 주인공이 된 건지, 다른 화폐가 등장한다면 그때 주인공은 누구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내가 어릴 때 제일 궁금했던 것은 왜 하필 '벼'일까였다. 어른이 되어서야 쌀은 '음식'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돈'속의 인물이나 건물은 늘 나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호기심을 단번에 풀어낼 책을 하나 만났으니 바로 <화폐 한국사>.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나처럼 궁금해한 사람이 있었어!”하는 반가움에서였다. 화폐에 얽힌 그 모든 이야기, 선정과정부터 검증, 인물들의 이야기와 정치, 문화, 역사 이야기까지 고루 만나볼 수 있는 '완벽한 구성'의 책이었다.
책은 1원과 5원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록 나는 사용해본 적도 없지만, 아빠가 오래도록 모은 1원과 5원 저금통을 도둑맞은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1원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화폐디자인 여론조사 1위가 무궁화였다는 것도, 고종 시절 조선은행에서 발행된 백 원권에도 그려져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역사가 짧은 국화라는 생각으로 무궁화 대신 '오얏꽃'반지를 끼고 다니던 나는 무궁화에 대해 처음으로 많은 상식을 얻을 수 있었고, 일본이 무궁화에 가한 핍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5원권의 '거북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해왔으나 이것이 '환'의 도안에서부터 6종의 주화, 7종의 지폐 도안으로 사용되었음을 처음 알았다. 거북선을 활용한 정주영 회장의 마케팅도 인상적이었고, 본 적 없는 과거의 지폐도 만나볼 수 있어 무척 좋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십 원, 백 원, 오백 원에 대해서도, 또 천원, 오천 원, 만원, 오만 원에 대해서도 아는 이야기와 모르는 이야기가 무척 다양하게 담겨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벼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었고, 십원권은 단순히 다보탑의 이야기뿐 아니라 경주에서 만날 수 있는 신라문화권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잃어버린 3마리의 돌사자를 찾기 위한 노력 등의 이야기까지 알뜰히 챙겨주셔서 감동적이었다. (먹고 살기 어려워서, 침략으로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에 대해 모든 국민이 문화재 환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백 원권에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기에 앞의 거북선 이야기와 다소 중복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장군의 대첩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주셨고, 오백 원권에서는 신선의 벗 '학'에 대해 진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주셔서 놀라울 정도였다. '돈'으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중간도 채 읽지 않았을 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지폐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학문적인 부분과 도산서원, 오죽헌, 십만양병설 등 국사 시간에 빨간 줄 죽죽 긋던 이야기들을 가득 만날 수 있어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권이나 오만원권을 통해서는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의 업적뿐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 삶에 남긴 많은 것들을 깊이 생각해보게 하였는데,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서가 아닌, 깨어있는 예술가로 표현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꽤 글씨가 많은 책임에도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읽을 만큼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했던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우리와 연결된 거의 모든 것들이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역사 공부가 꼭 각을 잡고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닌, 삶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라는 것도.
2023년 2월, 방송에서도 '화폐 속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화폐 한국사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하여 기대가 크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역사가 공기처럼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