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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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까. 싫다고 하고 그날 말고 다음 날 출발하자고 할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놀라운 일들은 탄광 갱도 같았고 나는 그곳에 막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싸늘한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p.189)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제목을 여러 번에 걸쳐 읽었으나 쉬이 감이 오지 않았다.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고 한 이유는 뭘지, 또 여기라면 왜 '없다'가 아니라 '없었다'인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정이 없는 두 여자, 그리고 '우린 오늘 밤 시체를 묻고 여길 떠날 거야'라는 띠지에서부터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 책은 이미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마리끌레르 올해의 책, 넷플릭스 영상화 확정까지 이미 '핫'한 상태. 긴긴 겨울밤, 심심함에 집어 든 이 책은 단숨에 지루함을 꿀꺽 삼키고 나의 잠까지 싹 빼앗아 달아났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지 않기 위해 바빴다. 이야기가 종횡무진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왜 이렇게 흘러가지?”라는 생각이 든 장면을 몇 번이나 만나야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야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야 했는지 알게 되었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숨 막히도록 짜인 이야기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 여자의 상황 해결방법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라면 저렇게 하는 게 맞아?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나의 회로도 기능을 상실했는지 '윤리적 범위'의 사고가 아닌, 그들에게 풍덩 빠져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심취하고 나니 처음에는 크리스틴의 가스라이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심리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고, 그것을 얼마나 나쁜 방향으로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을 만난 후에는 과연 에밀리와 크리스틴 중 누가 진짜 나빴고, 누가 진짜 친구를 친구로 바라보지 않은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때야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했는지, 심리적 흐름이나 변화에 대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이 이야기를 만들었는지에 놀라기도 했다. 

 

늦은 밤, 이 책을 손에 든 채 엄청난 고민과 생각과 놀라움 등 복잡한 마음에 휩싸였다. 이 이야기를 한 줄로 정의하자면 '무서운 여자들의 속고, 속이고, 숨기고, 파헤치는 엄청난 심리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겠고,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소~오~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공포'와 '섬뜩함'이 어떻게 다른 단어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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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
신디웨 마고나 지음, 패디 바우마 그림, 이해인 옮김 / 샘터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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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식탁이 가장 '완벽한' 식사라고 생각하나요? 좋은 식자재와 완벽한 상차림, 고급스러운 식기? 그렇다면 가장 '행복한' 식사는요? 물론 완벽한 식사가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한 식사가 완벽할 수도 있겠지만 두 식탁이 완전히 '같은' 식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완벽한 것과 행복한 것 중 무엇이 '최고의 식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최고의 식사'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의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인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점점 벅찬 마음이 되어갔습니다. 그림만 바라보면 한 가정의 평범한 식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엄마·아빠가 없이, 아이들이 직접 차리는 것이 조금 다를 뿐,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식사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안의 이야기, 아이들의 마음을 읽다 보면 코가 시큰해집니다. 빈 냄비를 휘젓는 동안 누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빈 냄비를 기다리는 동안 잠이 든 아이들은 누나의 마음과 같았을까요? 이웃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식자재로 차려진 식사와 동생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누나의 마음으로 차린 식사 중 어느 것이 더 '최고'의 식사이며 '완벽한' 식사일까요?

 

이야기 자체도 그랬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눈물이 흘렀습니다. 따뜻한 그림과 달리 너무 서글픈 문장들을 읽으며 내가 생각해본 것들을 수녀님이 하나하나 짚어주고 계심을 느끼며, 이미 희망보다 정말을 먼저 떠올리는 어른이 돼버린 내 모습이 슬프기도 했고, 이렇게 빈 냄비를 끓이는 아이들은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음에 속이 상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7살인 우리 꼬마는 빈 냄비에 양념하는 누나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했을지, 동생들을 향한 배려의 마음을 얼마나 받아들였을지 알지 못하지만, 누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행동에서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동화책이지만, 이 책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짙은 감동을 전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이일 때보다 자라며 더욱, 물질이 주는 만족감이 심리적 만족감보다 크지 않음을 깨달아가는 어른들이 더 많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이야기의 책이지만, 결코 이 책이 주는 감동까지 단순하지 않음을 어떻게 강조해야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모든 아이의 최고의 식사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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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 일본 원자력 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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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아 놓쳐서는 안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알았다. 요동치는 환율의 변덕이 없다면, 그리고 공장과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수백만 톤의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는 막대한 비용도 없다면, 일본은 빠르게 회복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년에 “아이젠하워가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일본은 뒤처질 수 없다. 원자력이 다음 시대를 정의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p.59) 

 

근 1년 사이, 후쿠시마에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은 것 같다. 같은 내용을 여러 권 읽으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같은 주제로 모두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하여(역사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다. 같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만나며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달까) 오히려 다채롭다는 느낌이었다. 후쿠시마 폭발 자체를 상세히 기록한 책, 후쿠시마를 둘러싼 세계적 정황에 관해 기록한 책을 읽은 후 만난 이번 '후쿠시마'는 일본 내부의 성장과 상황들을 매우 자세히 기록한다. 원자폭탄 피폭국에서 원자력발전을 통한 에너지자립을 꿈꾸는 일본의 역사와 현재를 매우 체계적으로 기록한 '후쿠시마'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나 역시 저자가 기록한 '체르노빌'에 대해 읽었기에 이 책이 더욱 궁금했다. 체르노빌을 참혹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낸 이의 눈에서 바라본 후쿠시마를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인간의 탐욕을 발견하고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감정이 배제되었으나, 오히려 덤덤해서 더 격앙되게 만드는 그의 문체를 통해 지진과 쓰나미라는 그늘에 가려진 후쿠시마, 사건은 있었으나 책임은 없던 후쿠시마의 민낯은, 어쩌면 전 세계인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거리임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하여 도쿄전력, 노벨상을 받은 니시나 요시오 등 일본의 전력에 대한 욕구와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계적 변화를 주시하던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원자력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후쿠시마에 들어선 도쿄전력 자력 1호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발전하는 과정이 빠른 호흡으로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기록된 방사선 피폭 환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고생은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에도 일본의 대다수 여론은 '원자력 포기'가 아닌 '원자력의 안전한 발전'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로 인해 일본의 원자력이 안전과 발전을 유지하며, 일본의 자긍심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점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인과관계를 이루었던 듯하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향하며 표면적으로는 쓰나미와 지진,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일본과 후쿠시마를 뒤덮는다. 증거조작을 위해 피폭 노동자들에게 한 장기 적출이나 빗자루로 만들어진 '가짜 뼈' 등은 그들의 '잔혹성'은 우리 민족을 핍박한 '야만인'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고, 그들이 가지는 특유의 '민족 자긍심'은 대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 지난 분노는 아무런 역할을 갖지 못하는 법. 책의 후반부터 기록되는 재난의 복합성, 안전에 대한 인식, 피난민들의 모습과 현실, 정치와 법적 결과 등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자세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고, 다른 희생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견해가 더욱 궁금했으나, 400페이지에 달하는 촘촘히 사건 전개에 간단한 작가의 생각 정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이 배제된 덕분에 사건이 더 객관적으로 진행되고, 독자는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방법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후쿠시마 사건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전사고가 '인재'에서 비롯됨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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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잉? 보랏빛소 그림동화 26
최진우 지음, 안예나 그림 / 보랏빛소어린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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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대한민국은 승률이 9%라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2:1의 역전승을 이루어냈다. 선수들의 긴 노력과 약간의 운, 국민의 응원 등이 고루 섞여 이뤄낸 쾌거였다. 선수들의 인터뷰나 국민의 댓글을 부지런히 읽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을 울린 말은 “흥민이 형이 '네가 하나 만들 거다. 널 믿는다'라고 했다. 그래서 흥민이형이 드리블을 할 때 나에게 공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라는 황희찬 선수의 인터뷰였다. 나를 믿어줬기에,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말이 마음을 둥둥 울리며,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그런 믿음을 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오늘 낮, 아이와 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어떤 책을 읽어볼까 생각하다 보랏빛소어린이의 '오이잉'을 꺼내 들었다. 이 책에는 '믿음의 육아'가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보 농사꾼 아주머니는 우리 같고, 쑥쑥 자라는 모종들은 아이 같아서 더욱 마음이 간다. 자신이 참외인 줄 알고 부지런히 자라던 '모종'은 어느 날 자신이 오이임을 알고 실망하고 병들어간다. 그러나 예쁜 오이로 자라주기를 응원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응원에 무척이나 반짝이는 오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예쁜 표지, 익살스러운 제목이기에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너무 좋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시작부터 '엄근진'으로 앉아있는 책들은 살짝 기피할 때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일러스트나 제목, 심지어 본문에도 잔잔한 이야기만 이어지기에 부담 없이 읽고, 아이가 직접 참외든 오이든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아이들은 저마다 달라서 우리 아이가 오이로 자랄지 참외로 자랄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오이도 참외도 모두가 귀한 존재 아닌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예쁘고도 단단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러스트 역시 너무 예쁘다. 일단 색감이 너무 고와서 바라보는 내내 기분이 좋은데 식물들의 표정이나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심정을 유추해보는 재미도 있어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많다.

 

월드컵 경기를 놓고 '승패'만을 놓고 단순히 '결과'를 이야기 나눌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노력, 이 경기가 아름다운 이유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을 것 같다. 또 무엇을 하든 작은 모종이었던 시간, 비바람이나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는 과정, 열매를 맺기 위한 희생의 순간들을 아이와 이야기 나누며, 선수들의 '과정'을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 오늘 이 책의 주인공처럼,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빛나는 오이를 영글어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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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2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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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녀의 안전이었다. 아나가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불쾌한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레이, 그만, 그만해 병적인 생각들을 통제해야 했다. 집중해 그레이, 있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춰. 아나와 함께 (p.27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33주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52개국에서 1억 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그야말로 '대박 도서'. 영화화되면서 더욱 흥행한 '가장 유명한 로맨스'라는 평을 받는 책이지만, 영화는 판매된 티켓수만큼 혹평가도 많았던 것 같다. 혹평의 이유는 대개 성적인 (그것도 대중적이지 않은) 부분에 너무 과하게 치중한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이 책에서 다뤄진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빠른 화면전환 등의 한계으로 인해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E.L 제임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방'은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제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주체적이고 감정적인 여주인공이 아닌, 냉철하고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남주인공 그레이의 시점에서 쓰인 책이라, 로맨스로서도 부족함이 없으나 심리적 묘사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 서로를 잃어보기도 하고, 여러 위기를 겪기도 한 크리스천 그레이와 아나스타샤 스틸은 서로를 향해 더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그레이의 심리변화를 보며 내면 아이를 치료해가는 과정이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마구 뒤섞이는 마음이 되기도 했고, 살짝 부끄러워지는 농도 짙은 애정행각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남은 페이지가 없다. 아무리 책을 흔들어보아도 더는 남은 페이지가 없다. (아이고 아쉬워, 2권 어디 있니.) 

 

사실 소설 리뷰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스포일러도 없어야 하고, 중요한 사건들은 다른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으려 애써야 해서인데, 이 책은 감히 스포일러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의 그레이와 아나는 결국에는 행복해진다. 이것을 스포일러 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의 내용은 '행복'이라는 결말이 아닌 '행복해지는 과정',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기업체를 운영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식탁 밑에서 나오지 못했던 그레이는 더이상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성장, 사랑의 숭고함 등 매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토리도, 번역도 '역시!'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덧) 종종 영화화된 도서의 리뷰를 올리면, 영화와 책 중 어느 것이 더 좋았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케바케', '사바사'지만 개인적으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그 중 특히 'freed' 편의 경우는 책이 월등히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의 심리변화와 여주인공을 대하는 진심 등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고, 그런 문장들에서 전작들이 받았던 혹평을 다소 덮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이 없는 성행위, 가혹적인 성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댓글을 많이 봤는데, 그레이가 얼마나 진심으로 아나를 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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