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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2 ㅣ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아나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녀의 안전이었다. 아나가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불쾌한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레이, 그만, 그만해 병적인 생각들을 통제해야 했다. 집중해 그레이, 있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춰. 아나와 함께 (p.27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33주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52개국에서 1억 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그야말로 '대박 도서'. 영화화되면서 더욱 흥행한 '가장 유명한 로맨스'라는 평을 받는 책이지만, 영화는 판매된 티켓수만큼 혹평가도 많았던 것 같다. 혹평의 이유는 대개 성적인 (그것도 대중적이지 않은) 부분에 너무 과하게 치중한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이 책에서 다뤄진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빠른 화면전환 등의 한계으로 인해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E.L 제임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방'은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제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주체적이고 감정적인 여주인공이 아닌, 냉철하고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남주인공 그레이의 시점에서 쓰인 책이라, 로맨스로서도 부족함이 없으나 심리적 묘사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 서로를 잃어보기도 하고, 여러 위기를 겪기도 한 크리스천 그레이와 아나스타샤 스틸은 서로를 향해 더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그레이의 심리변화를 보며 내면 아이를 치료해가는 과정이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마구 뒤섞이는 마음이 되기도 했고, 살짝 부끄러워지는 농도 짙은 애정행각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남은 페이지가 없다. 아무리 책을 흔들어보아도 더는 남은 페이지가 없다. (아이고 아쉬워, 2권 어디 있니.)
사실 소설 리뷰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스포일러도 없어야 하고, 중요한 사건들은 다른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으려 애써야 해서인데, 이 책은 감히 스포일러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의 그레이와 아나는 결국에는 행복해진다. 이것을 스포일러 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의 내용은 '행복'이라는 결말이 아닌 '행복해지는 과정',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기업체를 운영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식탁 밑에서 나오지 못했던 그레이는 더이상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성장, 사랑의 숭고함 등 매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토리도, 번역도 '역시!'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덧) 종종 영화화된 도서의 리뷰를 올리면, 영화와 책 중 어느 것이 더 좋았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케바케', '사바사'지만 개인적으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그 중 특히 'freed' 편의 경우는 책이 월등히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의 심리변화와 여주인공을 대하는 진심 등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고, 그런 문장들에서 전작들이 받았던 혹평을 다소 덮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이 없는 성행위, 가혹적인 성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댓글을 많이 봤는데, 그레이가 얼마나 진심으로 아나를 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