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 - 하버드대 출신 한국학 박사에게 듣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마크 피터슨.신채용 지음, 홍석윤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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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전쟁 기간보다 평화로운 기간이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또한, 우리가 20세기 초 중반에 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희생 관념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날 것을 제안합니다. 평화로운 문민 사회의 오랜 역사를 보면 한국 역사에서 희생의 시기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보다 훨씬 짧습니다. (p.53)

 

 

역사서를 읽고 느낀 점을 기록하다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점점 감정이 묻지 않은 문장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세이는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역사서는 감정이 배제된 문장일 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제목부터 매력적이라 느꼈다. '우물 밖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라니.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우물 안 올챙이에게 이 책이 어떤 깨우침을 주게 될지 몹시나 궁금해졌다. 

 

작가의 문장에는 감정이 묻다 못해 철철 넘치는데, 그럼에도 나는 '우물 밖의 개구리의 한국사를 보는 시각'을 기록한 부분에서부터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더이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 역사의 주체적 입장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공부하고 싶은 내 생각에 매우 일치하는 방향을 제시해주셨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는 감정이 섞여서 하기 힘든,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시각의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20세기의 암울했던 시간이 2천 년 전체를 어둡게 만들 수 없다는 시각에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삼국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우리는 왕권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의 시간으로 바라봐온 것을 '왕권의 이양'이나 '승계'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실 낯설었다. 그러나 왕조가 몰락하여도 그 가문들이 그대로 흡수되어온 사실들을 매우 치밀하게 나열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폄훼하려고 시도한 덧씌우기에 속아 '혁명이 적었던 한국의 역사'를 진보하지 못한 것으로 믿어왔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김, 이, 박 등 많지 않은 한국의 성씨 자체가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던 한반도의 역사를 반증하는 증거라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탄탄하여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는 내내 온돌문화에서도, 도굴되지 않던 왕릉에서도 한국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기질을 찾아낸 작가에게 고마움까지 들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나오지 못했을 문장들이 이 책은 차고 넘쳤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한글과 시조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두세 번 반복하여 읽으며 곱씹었고, 우리의 선비문화, 족보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에서는 우리가 한국의 역사를 얼마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우물 안에서 바라보느라, 객관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눈을 빌려'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문답식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으며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만나기도 했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의문을 만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막연히 생각하던 우리 역사의 단단함을 다소 구체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분명히 얻은 것을 말하자면, 우리 역사를 조금 더 사랑하는 시각을 갖자는 마음이다. 우물 밖에서도 이런 애정이 어린 시선을 가지는데, 왜 우리는 그 우물 안에서 더 깊은 애정을 가지지 못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다.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정리하자면, 작가가 말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비정통성'(과연 국적만 가진다고 우리의 견해가 정통적인가 싶지만)이라는 제한이 가져온 노력과 학습의 결과가 바탕이 된 매우 잘 정리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인이라서 드는 '반발이 조금 묻은 의구심(?)'도 있긴 했으나,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다른 시선'에 '같은 결'의 애정이 듬뿍 묻어있음도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래도 국뽕에 찬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우리나라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우리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고, 누가 물어봐도 우리 역사를 줄줄 꾀는 이가 되고 싶어졌다. 우물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역사를 노래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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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포르투갈 제국의 해외 원정기
로저 크롤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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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드리는 협상이 파탄 나자 분노했고 보트를 여러 척 파견하여 그들을 추적했다. 그들은 8월 30일에 잔잔한 해상 위에서 포르투갈 소함대를 따라잡았다. (...) 그때 갑자기 바다에서 폭풍우가 일어나 우리를 바다 한가운데로 더 밀어붙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는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임을 알고 뱃머리를 돌렸다. 그 후 우리는 정해진 항로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이는 인도양에서 앞으로 벌어진 수많은 해전 가운데 첫 번째 전투였다. (p.141)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사실 '콜럼버스'를 먼저 떠올렸다. (몇 권의 책을 읽고도 여전히 콜럼버스라니!) 포털에서 대항해시대를 검색해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이 먼저 등장하기에 대다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포르투갈의 진출이 대항해시대의 물꼬를 텄다고 한다. 하지만 '세우타 점령'이나 '탕헤르 공성' 등 짤막한 지식 말고는 포르투갈의 15세기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그 궁금증에서 시작했던 이 책은 나에게 놀라움과 깨달음을 동시에 준 것 같다. 포르투갈이 인도양을 향하는 여정에서는 긴장과 놀라움을 주었고, 그들의 행보를 통해서는 역사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을 또 한 번 깨닫게 하기도 했다. 

 

그간 '바다의 제국들', '부의 도시 베네치아',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등의 저서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전파해온 로저 크롤리의 신간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은 포르투갈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중해 기후와 아름다운 항구도시들로 유명한 포르투갈이 그 아름다운 해안 국가를 만들고 지키는 과정, 지금의 문화와 음식 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전부 유추해볼 수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달까.

 

작가 특유의 문장력을 여실히 드러낸 덕분에 포르투갈의 전사들이 거친 바다를 정복하는 과정이 어찌나 상세히 그려지는지, 긴장감을 놓기 어려운 책이었다. 어떤 장면은 매우 천천히 묘사되어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몰아치듯 빠른 호흡으로 쏟아부어 긴박함이 가득했다. 베네치아의 첩자로 인해 내 마음도 요동을 쳤고, 신앙과 상업을 양손에 쥐고 폭풍우를 나아갈 때는 그들 앞의 일들이 마치 나에게 닥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이토록 긴박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자의 문장력이 탄탄하고, 작가가 쥐고 있는 이야기 소재가 매우 넓고 깊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었다. 

 

사실 알고 있던 정복 전쟁 너머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기에,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겠으나, 단순히 '극적인 이야기'만으로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다. 물질적 욕심 너머 (종교나 사상의) 이념의 충돌, 물리적 장악과 학살까지 제대로 담고 있기에, 독자에게 더 생생한 당시의 역사를 엿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기회를 준 책이기에 여러 가지 방향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향신료나 금 등의 물질을 넘어 모험심과 이념, 사상 등이 인간에게 더 큰 영향과 목적의식을 줄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기회였다. 내가 믿는 종교 그 밝음에 가려진 어두움 역사에 대해서도 말이다. 

 

지중해와 인도양 등에서 일어났던 제국주의의 무력충돌과 약탈, 그로 인해 부수적으로(혹은 필연적으로) 이어진 교역과 교류 등이 전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에, 포르투갈이 행했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물론 그 후 500년의 역사 속에서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과 세계의 변화 속에 그 영광이 계속 유지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포르투갈이 세계에 쏘아 올린 화살들은 분명 큰 의미와 작용으로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질적 욕구 위에 사명감과 모험정신을 얹어 그들이 바다에 남긴 것들. 세계는 다른 의미에서 매일 전쟁하고, 물리적인 영토와 한계를 벗어난 '세계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날, 다양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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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활동이 좋다면 이런 직업! 이런 직업 어때? 4
캐런 브라운 지음, 로베르토 블레파리 그림, 엄혜숙 옮김 / 한솔수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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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연예인'이나 '건물주'를 이야기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래도 우릴 때는 아나운서나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얼마나 더 팍팍해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직 세상에 대해 생각을 만들어가는 우리 아이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기준이 아닌 '하면 행복해지는 일'을 기준으로 미래를 생각해보게 해주고 싶다. '이런 직업 어때 시리즈'가 더욱 반가운 이유는 '~가 좋다면'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아이를 위한 '진로 탐색'책”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잘한다면'이나 '미래유망직종'이 아닌 '좋아하는 것'으로 미래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라는 말씀. 

 

이번에 만나본 책은 '야외활동이 좋다면 이런 직업!'으로 건물 밖의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직업을 이야기한다. 야외에서 하는 일을 꼽으라면 몇 개나 대답할 수 있을까? 사실 어른들도 10개 내외를 이야기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는 무려 32개의 야외직종이 소개된다. 물론 잔가지를 펼친다면 훨씬 다양하게 확대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거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아볼 수 있는 가이드도 제시되기에, 아이들이 이 시리즈를 만나며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어떤 방향인지를 생각해보기 너무 좋을 것 같다. 혹여 오늘의 책에서 관심사를 못 찾았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동물, 스포츠, 우주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소개하는 시리즈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직업을 살짝 들여다보자면 생물학자,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생태학자 등 생태계를 연구하는 분야부터 선박기관사, 수색구조조정관, 레포츠 가이드 등 보다 활동적인 영역의 직업도 소개된다.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생생하게 다양한 직업을 간접경험 할 수 있고, 야외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직업이 있다는 소개 및 새로운 관심사를 만드는 물꼬가 될 수 있어서 이런 책을 다양하게 노출 시켜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의 적성을 100% 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 아닐까. 다양한 정보를 만난 아이들의 미래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특히 좋다고 생각된 까닭은 각 직업의 일과부터 장단점, 방향성과 목적을 모두 다루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은 단점은 이야기하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장단점을 알려주어 아이들이 다양한 직업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좋다. 또한, 일러스트가 매우 사실적이고 자세하여 그림만으로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잘 정리된 텍스트와 단순하고 명확한 일러스트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자연보호구역 경찰관' 등의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소방관'이나 '토목기사' 등의 직업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또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란 페이지에서는 어떤 활동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에 따라 어떤 직업이 어울리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아직 미래의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기에 우리 아이는 어리지만,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 아이가 꿈꿀 수 있는 미래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이런 책들이 아이에게 좋은 거름이 될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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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 20세기 한국사의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이름들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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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은 골동과 서화를 살 때도, 학생들을 교육시킬 때도, 문화재를 연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인색하지 않았다. 국외로 반출된 국보급 문화재를 다시 사들이느라 전 재산을 소진하다시피 해 말년에 이르러 자산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을 때도, 자신을 찾아온 역사학 교수와 문화재 담당 기자, 미술잡지 관계자들을 늘 풍성하게 먹이고 재웠다. 자신을 도와 일을 맡아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챙겼다. (p.260) 

 

 

이 책에서는 여전히 동시대를 살고 있거나, 최근까지 함께 웃고 울던 이들- 그러나 생을 살아냄과 동시에 역사를 써 내려간 인물 26인을 다룬다. 조선 최고의 무용수 최승희, 이상·김환기의 여자를 넘어 세상을 이끌었던 김향안, 강단 있는 자유주의 화가 천경자, 한국농구의 여왕 박신자, 미니스커트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업적을 남긴 윤복희, 한국 야구의 불꽃 최동원, 훈맹정음의 박두성, 노동자들을 지켜낸 전태일, 간송문화재단의 전형필, 시인 기형도, 가수 김추자, 한대수, 홍청자. 김창완, 김동원 감독, 조영래 변호사, 함세웅 신부님, 정종명, 현봉학, 진창현, 김벌래, 김중업 건축가, 이창호, 김일, 성철스님까지. 이미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고저 없이 모든 인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각 인물에 대한 탄탄한 정보와 절제된 감정이 균형을 매우 잘 이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작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에서 역사의 그늘에 가려졌으나, 자신의 이름을 묵묵히 빛낸 이들을 담담히 전하여 나를 울컥하게 했던 작가님은, 이번 책 역시 그들의 업적이나 명성보다는 그들의 삶, 살아낸 흐름을 기록한다. 그래서일까. 한 발치 물러선 시각이 만들어낸 거리감이 오히려 그들을 나처럼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여 오히려 그들의 업적을 더욱 반짝이게 했다고나 할까.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성정은, 자신을 낮춰 타인을 더 빛나게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가 담아낸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더 많은 감정을 품게 하는 느낌이다. 

 

이상의 아내에서 김환기의 아내로, 그러나 다시 김향안이자 환기재단 설립자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김향안의 이야기에서는 당대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여성의 진취성과 개방성을 느낌과 동시에 같은 여성으로서 척박한 삶이었겠다는 애잔함을 준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데도 인정받지 못한 천재 화가 천경자 역시, 화가로서의 예술성은 당연히 대단하나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키워내며 삶도 놓지 않은 강인함이 더 마음에 닿는다. 작가의 문장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으나, 오히려 그런 절제된 문장이라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던 전태일의 깊고 슬픈 분노가, 미니스커트에 가려져 세상의 등불로 더 빛나지 못한 윤복희의 시대적 안타까움이, 신념 때문에 더 빛나지 못한 최동원의 시간들이, 모두가 포기하라고 할 때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은 김윤심의 뚝심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비 오는 날 커피 향이 더 강하게 느껴지듯, 차분히 이어지는 그의 문장에서 독자는 더 많은 감정을,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작가의 말을 펼쳐 들었다.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하고 뜨겁진 않지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람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밝게 빛나던 존재들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그렇게 모였다. 이들이 일평생 온몸으로 써 내려간 자기 서사를 역사란 이름으로 다시 정리해 옮겨 적었을 따름이다. (p.5)”라고 기록한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감동을 곱씹었다. 내가 문장에서 느낀 것을 확인받는 기분도 들었고, '일평생 온몸으로 써간 자기 서사'라는 말이 괜히 울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낮의 태양 같은 사람들만 기억되기도 바쁜 세상에서, 별처럼 어느 자리에서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빛나는 이들을 발굴해주는 분들이 있어 우리는 그 빛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대되는 건, 이번에는 또 어떤 별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자리에서 부지런히 반짝이며 살아가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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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오 상담소 -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공감!
소복이 지음 / 청어람미디어(나무의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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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 말이 다 옳다는 자신감 같은 것인데, 사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답을 알고 있다. 그 답을 말해줄 사람이 별로 없을 뿐이다. (p.11)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멀고 먼 섬에서 또다시 만난 것이 운명이냐고. 그는 운명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라고 했다. (p.145) 하지만 또 언젠가, 지구 어딘가 우주 어딘가에서 우연히, 자연스럽게 만나면- 두 손을 꼭 잡고 이번엔 운명이라고 말해줘야지. (p.169)

 

 

이것은 분명 '만화책'이다. 소복이 작가님은 '애쓰지 말고, 어쨌든 해결', '소년의 마음',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등 매력적인 책을 여러 권 내신 작가님으로, 나도 그녀의 책을 몇 권이나 읽었다. (언제인가 작가님 사진을 보고, 그림 속 본인과 너무 다르게 예쁘고 번듯하게! 생기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 혹시 그녀의 책을 여전히 읽지 않았다면, 딱 한 권만 읽으면 다른 책들을 줄줄이 찾아 읽게 되는 매력이 넘치는 작가님이다. 

 

그녀의 새 책, '이백오 상담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도착하자마자 다른 읽던 책들을 잠시 미뤄두고 이 책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나는 웃고 울었다.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수십 명의 내가 등장한다. 물론 수십 명의 당신들도 등장한다. 외로운 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 일을 그만두고 싶은 나, 현실을 떠나고 싶은 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싶은 나 등.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들은 때로는 약이 되고, 때로는 웃음이 된다. 

 

이 책이 더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세상의 속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고, 모두가 빠르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소 느린 사람들, 다소 부족하다고(세상의 보편적 기준에) 판단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안아준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나 역시 세상의 느린 사람 중 하나이기에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을 얻었고, 누군가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감정은 나만 느끼지는 않을 듯하다. 대부분 사람은 때때로 아프고 자신을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럴 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나 책이 곁에 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 상담이 필요하다면, 위로가 필요하다면 - 소복이 작가님의 둥글고 따뜻한 위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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