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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요리의 역사 - 선사시대 불의 요리부터 오늘날 비건까지, 요리의 위대한 진화 ㅣ 한빛비즈 교양툰 20
브누아 시마 지음, 스테판 두에 그림, 김모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평점 :

그리스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단순한 사회활동이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은 식탁에서 정치를 논했다. 플라톤이 등장하기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은 집단 연회에 참석할 의무가 있었다. 이러한 시민 참여는 초기 민주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p.63)
내 피드를 종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음식을 잘하기를 꿈(만)꾸는 '프로 집밥러'지망생이다. 안타깝게도 열정보다 솜씨는 미천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리에 대해 애정은 나만 가진 것은 아닌지, 레시피 영상, 먹방 프로그램은 넘쳐난다. 맞다. '의.식.주'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즐거움과 아름다움, 안정감 등을 주는 '삶'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것일 터.
위에서도 거론했듯,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 식, 주가 필요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도나도 벌거벗었던 시절에는 그저 살기 위해 아무것이나 걸치고, 비와 바람을 피할 동굴만 있어도 되었으나, 음식은 다르다. 안 먹어도 죽고, 아무거나 먹어도 죽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선사시대의 요리부터 초기 문명의 요리 등 생존을 위한 것에서 점점 '요리'로 변하기까지를 살펴보면, 음식이 인류의 발전과 '사람답게 사는 것'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 깨닫게 된다. 먹기 위해 농경과 수렵이 발달하며 도구가 발달하였고, 그것은 현재의 문병을 가져온 기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책의 중반에서는 매우 다양한 지역의 요리 역사를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민주주의 기반이 된 식탁문화, 노예들을 힘겹게 했던 연회, 음식에 대한 낭비를 비판하는 철학자들, 각종 향신료의 발달, 여전히 남아있는 식탁예절,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요리들까지 정말 많은 역사 속에서 음식은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고 변화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또 현시대의 트랜드인 간편식에 대한 시각까지 아우를 수 있어, 음식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뒤편에는 20개가량의 레시피가 제공되는데, 한번 시도해볼까 싶은 레시피도 있었고, 그냥 알아만 두고 싶은 레시피도 있었다.)
얼마 전 지중해 역사에 관한 책 읽으며, 지중해의 운송 역사가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요거트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얼마나 많은 음식을 몰랐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해진다. 물론 음식의 역사도 다른 역사와 다르지 않아, 그 이면에는 희생이나 계급, 차별 등의 어두움도 깔려있지만 '요리'로 인해 발달한 수많은 것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발전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배제할 수는 없겠다. 이 엄청난 역사를 일반 책으로 읽었더라면, 이렇게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먹고 즐기는 음식에서 이렇게 다양한 역사를 찾아볼 수 있음도 놀라운데, 이것을 이토록 재미있게 이어간다니! 내가 학창시절 내내 '만화책'에 가져온 선입견을 깬 것이 교양툰이었고,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읽으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도 교양툰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혹시 만화에 대해 여전히 선입견을 품으신 분이 있다면, 부디 한 번만 이 책을 만나보시길. 익살스러운 그림을 통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은 재치있게 익힐 수 있고, 박스 안의 텍스트를 통해 지식전달 역시 빠짐없이 제대로 해주고 있어, 재미와 지식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게 돕는다. (나 역시 교양툰을 통해 의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영역을 만나고, 배우게 되었다.)
문득 내 손에 들린 커피,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앉아있는 의자까지. 역사의 순간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늘 당연한 듯 잊고 살지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