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 2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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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고 하였으니, 진정 죽어야겠습니다.” 

뒤주 속의 사내는 몽두를 쓰고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진행해온 모든 계획이 후포로 돌아간다. 

“살려달라고 하였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달려왔다. 이제 그만 뒤주에서 나오너라” 

뒤주 밖의 남자도, 뒤주 속의 사내도 그리할 수 없다는 걸,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안타까웠다. (p.16)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 뒤주에 갇혀 죽어간 세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도세자의 얼굴(사실은 배우의 얼굴)이 여럿이기에 사실 뒤주에 갇힌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색다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400페이지로 2권 분량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뒷장이 궁금하여 일어날 수도, 잘 수도 없었던 것. 이제야 나는 하룻밤에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도세자?'하는 마음이 드는 분께 감히 말한다. 이 책은 분명 사도세자의 이야기지만, 사도세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이와 궁전의 벽돌이나 풀 한 포기처럼, 있지만 없는 듯 살아가는 이들,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지킬 것을 지켜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각조각 퍼즐처럼 완성되는 엄청난 이야기다. 

 

물론 수많은 역사서와 소설 등을 통해 경종과 영조, 영조와 사도세자, 또 영조와 정조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 왔다. 그를 둘러싼 역사적 키워드는 너무도 많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비운의 왕자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처럼 그의 곁에 지견이 있었더라면, 그가 조금은 덜 슬프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이 부분만큼은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보았다. 

 

'중금'. 포털에서 검색해도 악기에 밀려 첫 번째에 나오지 않는 이 관직은 '임금의 시종을 들며 전갈을 하는' 것 정도로만 설명된다. 작가님은 이들을 '왕의 목소리'라고 표현하여, 이념과 마음조차 전달하는 이들로 삼았다. 자신들의 이익에 눈멀어, 오히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임금을 대신해 진실을 전하는 자로 세운 것. 그래서일까. 중금의 묵직한 마음이 임금의 마음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고, 자신만으로도 안쓰러운 생이었을 지견이 또 다른 안쓰러운 영혼 선을 만나 서로의 눈에 자신을 비춰볼 때마다 슬펐다.

   

분명 소설을 읽는 것임에도 나는 역사의 한 장면을 훔쳐보듯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일기도 했으며, 욕심 많은 관료들로 인해 나라를 잃어본 역사를 가졌음에도 변함이 없는 현시대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으로 지견의 모습을, 선의 모습을, 재운의 모습을, 효명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기도 했다. 감히 그들의 속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이야기의 회오리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속이 채 시원하지 못했으나, 어쩌면 그조차도 '사는 일이 그러하니까'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말'은 늘 가장 마지막에 읽는 편이기에 이 책 역시 그랬다. '역사 속의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일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일과 같다(p.4)'라는 공감되는 말로 시작된 솔직한 이야기를 읽으며, 글을 쓰는 일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아서,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던 마음을 문장으로 촘촘히 엮어, 올 하나 풀림이 없는 단단한 면포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가 온전히 필요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기에 하루빨리, 드라마로도 만날 날이 오기를 고대하게 된다. 아마 그때는 나도 '본방사수'를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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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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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고 하였으니, 진정 죽어야겠습니다.” 

뒤주 속의 사내는 몽두를 쓰고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진행해온 모든 계획이 후포로 돌아간다. 

“살려달라고 하였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달려왔다. 이제 그만 뒤주에서 나오너라” 

뒤주 밖의 남자도, 뒤주 속의 사내도 그리할 수 없다는 걸,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안타까웠다. (p.16)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 뒤주에 갇혀 죽어간 세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도세자의 얼굴(사실은 배우의 얼굴)이 여럿이기에 사실 뒤주에 갇힌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색다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400페이지로 2권 분량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뒷장이 궁금하여 일어날 수도, 잘 수도 없었던 것. 이제야 나는 하룻밤에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도세자?'하는 마음이 드는 분께 감히 말한다. 이 책은 분명 사도세자의 이야기지만, 사도세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이와 궁전의 벽돌이나 풀 한 포기처럼, 있지만 없는 듯 살아가는 이들,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지킬 것을 지켜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각조각 퍼즐처럼 완성되는 엄청난 이야기다. 

 

물론 수많은 역사서와 소설 등을 통해 경종과 영조, 영조와 사도세자, 또 영조와 정조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 왔다. 그를 둘러싼 역사적 키워드는 너무도 많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비운의 왕자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처럼 그의 곁에 지견이 있었더라면, 그가 조금은 덜 슬프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이 부분만큼은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보았다. 

 

'중금'. 포털에서 검색해도 악기에 밀려 첫 번째에 나오지 않는 이 관직은 '임금의 시종을 들며 전갈을 하는' 것 정도로만 설명된다. 작가님은 이들을 '왕의 목소리'라고 표현하여, 이념과 마음조차 전달하는 이들로 삼았다. 자신들의 이익에 눈멀어, 오히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임금을 대신해 진실을 전하는 자로 세운 것. 그래서일까. 중금의 묵직한 마음이 임금의 마음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고, 자신만으로도 안쓰러운 생이었을 지견이 또 다른 안쓰러운 영혼 선을 만나 서로의 눈에 자신을 비춰볼 때마다 슬펐다.

   

분명 소설을 읽는 것임에도 나는 역사의 한 장면을 훔쳐보듯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일기도 했으며, 욕심 많은 관료들로 인해 나라를 잃어본 역사를 가졌음에도 변함이 없는 현시대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으로 지견의 모습을, 선의 모습을, 재운의 모습을, 효명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기도 했다. 감히 그들의 속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이야기의 회오리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속이 채 시원하지 못했으나, 어쩌면 그조차도 '사는 일이 그러하니까'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말'은 늘 가장 마지막에 읽는 편이기에 이 책 역시 그랬다. '역사 속의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일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일과 같다(p.4)'라는 공감되는 말로 시작된 솔직한 이야기를 읽으며, 글을 쓰는 일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아서,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던 마음을 문장으로 촘촘히 엮어, 올 하나 풀림이 없는 단단한 면포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가 온전히 필요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기에 하루빨리, 드라마로도 만날 날이 오기를 고대하게 된다. 아마 그때는 나도 '본방사수'를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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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쓸모 - 개츠비에서 히스클리프까지
이동섭 지음 / 몽스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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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폴과 구속되지 않되 깊은 관계를 원한다. 그가 편할 때 전화 걸고, 그녀의 집에 드나들며, 약속을 변경하며 독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그녀만 사랑한다고 확신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요구함을 느끼면서도, 자기가 그녀를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p.14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내게는 '취미'라는 말로 부를 말한 것이 '책'뿐인 듯하다. 너그러운 범위에서는 몇 개쯤은 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활동'에 부합하자면 책뿐인듯하다. 다소 심심한 삶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그래도 그 덕에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고, 좋은 책을 인생의 굽이에 다시 읽으면 다른 감상을 준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사랑의 쓸모'를 읽으며 또 한 번, 나의 인생 여정에 따라 그 모든 문학이 새로운 감상과 생각을 안겨줌에 감탄했다. 개츠비의 사랑이 확고함인지 불장난인지, 오셀로의 행동이 미련함인지 씁쓸함인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때로는 그들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그러한 까닭에서다. 작가는 “'문학은 혼자 읽고 생각해서 각자의 답을 찾아간다.'라는 말에 기대어 나는 17편의 명작으로 사랑에 대한 나름의 답과 질문을 기록했다. 소년 시절에 시를 수백 편, 청순의 산맥을 넘으며 소설과 희곡, 영화를 수십 편 썼다. 홀로 읽고 버려진 그것들과 여전히 버려지지 않는 사랑이 이 책으로 맺어졌다. (p.9)”라고 기록한다. 아마 그도 우리처럼 누군가의 문장에 내 마음을 빗대어 보고, 어떤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며 울고 웃었을 거다. 그리고 반대로 그들의 모습에 타인을 비춰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했을 거다. 그래서 그의 문장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잊고 살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당신의 지나간 사랑에 닿게 되리라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음을 느끼며, 한 장 한 장 읽어내렸다. 이 책이 참으로 '가을 같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이제는 인생의 여름을 지나왔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밀란 쿤데라의 문학을 이제야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 결국 인간은 자신의 고독함을 이겨내야 함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랑은 감정을 증폭시킨다. 기쁘면 우주 끝까지 기쁘고, 슬프면 하늘이 무너지게 슬프다. 특히 질투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데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오셀로다. 그는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며 절정의 행복을 맛보았으나, 불과 며칠 후 부인을 죽이고 자살한다. (p.105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내가 다소 감정에 치우쳐 이야기하긴 했으나, 감성적인 섬세함만이 책의 장점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섬세한 문장뿐 아니라, 고전의 명문을 만날 수도 있고,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해석, 명화들도 만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엮여있지만, 남자와 여자의 '불꽃 같은 사랑'뿐 아니라(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인간 심연의 감정이나 모습까지 만나게 된다. 

 

그래서 감히, 이 책을 '문학의 깊이'와 '사랑의 농도'를 같이 맛볼 수 있는 책이라고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 책에 실린 문학들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사랑에 대해서도 여전히 우매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에 대한 진지함이 다 들어있어 이 가을에 완벽히 어울린다. 아! '러블리'한 표지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열었다면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쏟을지도 모르니 티슈 한 통 준비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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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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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뉴욕타임스 주목할만한 책'에 선정되었으며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잇는 대작, 최재천 교수님의 특별 추천사가 수록! 이 모든 문장이 조합된 <위어드>이기에 기대감이 매우 컸다. 혹시 벽돌책이라 섣불리 표지를 열지 못한다면 부디 그 두려움을 넘어서길. 책 속에 담긴 놀라운 세상이 '두께'가 '깊이'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위어드>란, '서구의 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 Educated, 산업화된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p.45)'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작가는 대부분의 심리학실험이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음에 그들과 '비위어드'사이의 차이를 찾다가, 이것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생각을 펼쳐나간다. 방대한 자료와 시각에 결코 쉬운 읽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을 펼칠 수 있는지 놀라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종교는 우리의 행동과 심리가 형성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더 놓은 수준의 정치. 경제 제도의 형성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p.208)

교회의 믿음과 관행은 유럽인들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놓고 다른 많은 신들과 혼령, 의례, 제도 등에서 경쟁했다. (p.218) 

 

사실 나는 날 때부터 종교를 가진 터라 오히려 깊은 고민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종교가 의사결정이나 심리, 나아가 사회의 형태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족의 형태를 변화하게 하고, 이것이 나아가 상업혁명에 영향을 끼치게 됨을 읽으면서 그 어떠한 현상도 단독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음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전쟁은 사람들의 상호의존적 심리를 부추김으로써 도시 중심지의 시민 전체를 포함한 자발적 결사체 성원들 사이의 결속을 강화했을 것이다. 전쟁은 또한 자발적 결사체의 성원을 늘렸을 것이다. (p.431) 

 

심리학적 발전이 전쟁을 이끌어오는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는 돈에 관한 생각, 노동이나 사유재산 등을 중요시하는 과정, 또 '길드'를 형성하고 집단과 집단의 결합 혹은 경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촘촘히 엮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까지 매우 상세히 풀어주기에 독자도 생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나는 위어드가 아니지만, 위어드의 입장도 비위어드의 입장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지식의 공적 공유를 치켜세우는 한편,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비밀로 하거나 증거를 날조하거나 다른 사람의 발상을 훔치는 이들을 제재하는 규범이 발달했다. (p.570) 

 

책 끝에는 이들로 인해 생겨난 법률이나 과학, 집단 지성을 위한 여러 기반을 이야기한다. 이들의 분석적 사고와 내적 속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는지, 또 그들의 독립성이나 비순응성이 '진화'를 끌어내게 된 것 등을 매우 흥미롭게 풀어간다. 

 

물론 작가도 전쟁이나 '지배'가 원인이 된 현실적인 결과들은 강조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견해처럼 인간의 심리가 변화하고, 문화적으로 적응하여 필연적인 변화를 끌어낸다는 것은 틀림이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직접 그 변화를 발견하는 눈은 갖지 못하더라도 양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눈 뜰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구의 독특한 심리와 문화 등이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사례를, 오늘날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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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필립 프리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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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담했지만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성벽이 무척 튼튼해서 직접적인 공격으로는 전혀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휘하 병력과 전초 기지로 그 도시를 포위하고 내부에서 탈출하거나 외부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게 철저히 차단했다. (p.75) 

 

대부분 사람은 '한니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이코패스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떠올린다. 간이 작아 공포영화를 못 보지만 나 역시, 어린 시절 사촌오빠가 보고 있어 몇 장면 보게 되었던 '양들의 침묵'을 기억한다. (내가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과 함께) 그러나 사실 진짜 '악명높은' 한니발은 따로 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진격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본디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기록되기 때문인지 한니발 장군은 늘 괴물이나 악마 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를 카르타고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희생된 국민을 위해 설욕전을 펼쳐준 '영웅'이 아닐까. 이 책은 그런 시각에서 만난 첫 번째 책이었기에 한니발에 대한 나의 이미지와 로마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수많은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카르타고가 건국되는 과정부터, 그들이 겪는 학살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어쩌면 한니발은 어린 시절부터 침략의 과정을 봐왔기에, 로마에 그 대가를 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성장했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의 턱 앞까지 가는 과정을 매우 세세히 다루고 있어, 그의 상황이나 여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때때로 상대방의 덤덤한 말은 오히려 나의 감정을 자극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진행이 너무 덤덤하여 오히려 나는 감정선을 발휘하여 그의 마음을 가늠해보게 되기도 했던 것. 조금 더 다정한 문체였다면 이야기는 한결 풍성했겠지만, 사실을 들여다보는 기회는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다. 

 

작가는 한니발을 괴물로 묘사하는 데 열을 올렸던 리비우스 같은 로마 역사가의 설명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찾아서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방법은 없는지, 한니발의 생애를 통해 제국주의를 원동력으로 삼았던 로마를 '정복자'로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은지(p.12)의 고민에서 이 책을 썼다. 아무래도 로마 시각의 한니발은 (많이 출간되기도 했고), 한층 더 극적이기에 그에 비하면 이 책의 재미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분명 재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남겼다.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은 전쟁광 장수에서,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키워진, 그럼에도 강인함으로 자신을 수없이 단련해온 육체보다, 정신이 더욱 건강했던 이로 인식을 바꾸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는 사실 연민이 들기도 했다. 만약 한니발의 아버지가 한니발의 앞에서 로마를 증오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카르타고 내부적 상황이 반쪽으로 갈려 혼란스럽지 않았더라면? 지중해 그 어디라도 로마의 편에 서지 않은 나라가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의 모든 상황이 그를 전쟁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간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그를 전쟁광으로 믿어온 것은 아닌지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고.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엄청난 매력도 지니고 있지만, 반쪽짜리 시각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시간도 선물한다. 그래서 읽는 과정이 꽤 걸리더라도, 이 책을 덮고 나서는 '그럼에도 읽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 역사서를 읽을 때만 해도 나 역시 흥미 위주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적 영웅, 세계적 사건들에 열광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여러 시각에서 역사를 만나고자 하는 나로 변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전쟁 괴물 한니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이 책의 한니발이 얼마나 새로운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이 책이 당신에게도 닿아, 역사라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물론 당신에게 앞면이 흥미로울지 뒷면이 흥미로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역사가 한층 깊게 재미있어질 것은 분명하다. 리비우스 로마사를 분명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제야 그 반쪽이 제대로 맞춰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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