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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만약 이 방법이 쉽지 않더라도
네가 쏟은 모든 시간들이 보답할 거야.
그저 약간의 인내가 필요할 뿐이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p.49, 디어 에반 핸슨, 글러브 길들이기)
엄청 매력적인 공연을 보고 나와, 그 여운을 그대로 담은 채로 친구와 마주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하며 공연을 안주 삼아본 적이 있는가. 그 순간에는 장소도 안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서로가 어느 부분을 어떻게 느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마음이 두근거리는 그대로 '온전히' 행복하고 완전하지 않은가.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공연에서 며칠이고 헤어나지 못하고 풍덩 빠져 사는 사람인지라, 내게는 그 순간을 곱씹는 것까지도 '관람'의 연장선이 되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딱 그런 기분이었다. '이서희'(작가)라는 친구와 뮤지컬을 보고 나와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느낌. 근데 심지어 이 친구가 뮤지컬에 빠삭하여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양념에 맛깔나게 버무려주기까지 하는 느낌이랄까.
책 판본 자체도 작고 텍스트도 많지 않지만, 분량과 관계없이 많은 이야기를 읽고 들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내가 이미 본 뮤지컬은 본대로, 보지 못한 뮤지컬은 또 낯선 느낌 대로 대사를 곱씹고, 음악을 감상해가며 듣다 보니 나의 가을이 한층 풍성했다. 뮤지컬에 대한 간략한 해설과 대표넘버들이 소개되고 간략한 견해를 곁들여주니, 한편으로는 잘 만들어진 교양프로그램은 본 듯 마음이 두둑해지기도 하고, 작가의 감상을 엿보며 친구와의 수다처럼 들뜨고 신나기도 하니 참 신기한 책이다. 이야기마다 대표넘버를 감상할 수 있게 QR코드를 넣어주신 것도 신의 한 수. QR코드가 마지막에 있다 보니 글을 먼저 만났는데, 나중에는 일단 먼저 영상을 만나 나만의 감상을 쌓고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형식으로 책을 읽었더니 한층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이 아닌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각 작품이 표현되는 점도 좋았다. 같은 작품도 공연마다 다르고, 출연하는 배우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기에 너무 '시각적'인 것에 사로잡혀 나머지 감각들을 채우지 못하지는 않나 싶을 때가 있었는데, 작가에게 인상적이었던 특정 공연을 인용하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뮤지컬을 몇 편이나 감상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본 뮤지컬이라면 나와의 감상과 작가의 감상이 어떤지 비교하며 즐기는 재미가 있고, 보지 않은 뮤지컬이라면 '아, 이런 내용이구나. 이런 배경이 있구나'라고 배우면 된다. 분명 여기 등장하는 뮤지컬을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 뮤지컬의 매력을 하나쯤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어쩌면 작품보다 유명할지도 모를(아니라면 유명한 작품만큼이나 유명한) '도레미 송'이 등장하는 '사운드오브뮤직'이 소개된다. 이 곡이야말로 이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곡이 아닐까. 그 노래의 배경이 어디인지 몰라도, 시대가 어땠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곡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공연장 시계를 멈추게 했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도 이제는 주춤하여, 그리웠던 공연들이 다시 우리를 하나둘 찾아오는 요즘. 공연장을 향하는 설렘과 공연을 보고 나온 여운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내일 리뷰를 남기면 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할 것 같아, 깊은 밤 굳이 리뷰를 남긴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