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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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 만으로는 죽을 수 없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p.234) 

 

 

그놈의 1루블은 우리나랏돈으로 얼마인가. 웃기게도 나는 이 책 '하얼빈'을 세번 연거푸 읽으며 거사 후에는 더이상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안중근의 생각에 가슴이 시렸다. 재판장에서도 우덕순의 밥값이 모자라지 않았을지 걱정하는 그의 의중에 눈물이 자꾸 났다. 그들에게 이미 빼앗기도 없는 '조선'이 무엇이었기에 당장 밥먹을 돈도 없으면서, 처자식의 거처를 의탁할 곳도 없으면서 대의 하나로 이토를 저격했나. 

 

사실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책은 이미 꽤 많이 읽었던 터기에 거사의 흐름이나 거사 이후, 가족들의 생활상 등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훈 작가님의 절제된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나니(오히려 '작가의 말'은 감정이 절절히 묻어난다.) 알고 있던 이야기도 다시 아프고, 읽었던 내용도 다시 슬펐다. 아무래도 작가님의 말처럼, 재판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조차 할 말이 없었던 안중근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 맞나보다. 

 

 

나는 안에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없다. 또 명령을 받을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p.232)  

 

몇년 전 부터인가 많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읽는다. 이유는 스스로도 알길이 없으나,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 출간과 동시에 몇번이나 다시 읽고도 책장에 정리하지 못하고 여전히 '읽고 있는 책'들과 나란히 꽂아두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저 막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 꾸준히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영향으로 그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가 남다른 아이라서가 아닌,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아는' 세상이면 좋겠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지금 적고 있는 것들이 이 책의 감상문인지, 내 마음 속의 생각을 적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또 한 번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고, 세상 곳곳의 '뭉우리돌'들이 기억되고, 돌아와야 한다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 

안태건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술자리에 모인 사내들에게 그 말은 이 세상을 향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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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머 - 초격차를 만드는 니체의 52가지 통찰
데이브 질크.브래드 펠드 지음, 박선령 옮김 / 서사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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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잠재고객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물어보지 말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의견도 물어보자. 그들이 항상 옳거나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면 경로를 설정하는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p.80) 

 

한때 철학책에 빠져 여러 책을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어려운 철학자를 뽑으라면 고민도 없이 니체를 고를 것 같다. 니체 말대로 낡은 사고방식의 사람인지, 그것을 깨고 새로운 스타일의 생각을 하는 게 참 어려운 '꼰대'인가. 아무튼, 여전히 그의 사상이 어려우면서도 궁금하고, 궁금하면서도 어려워서 피하고 싶다. 그런 나에게 니체가 '빨간 유혹'을 던진다. 이토록 빨간 강렬한 표지를 입고 '기업가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니체라니. 이것은 무슨 조합인가. 

 

니체와 '기업'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까닭을 저자는 “니체를 읽으며 우리는 기업가 활동과 벤처 투자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 궁금증, 걱정 따위를 자꾸 떠올리게 됐다. (...) 우리는 니체의 간결하고 함축적인 잠언을 확대. 적용하면서 기업가들의 경험담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원하던 성과를 얻었다”(p.20)라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이 바탕이 되었을 뿐, 니체의 동의(?)를 얻은 책은 아니지만 분명 독자에게 다양한 감상을 줄 것이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니체를 조금 더 쉽게 만난 기분이다. 니체의 한 구절을 기록하고 '현대적으로 읽기'라는 이름으로 풀어준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키워드로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형태다. 전략, 문화, 자유 정신, 리더십, 전술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나만의 길 찾기, 미래를 내다보기, 정신적 독립성 갖기, 자신의 기쁨을 찾기, 책임지기 등 리더의 개인적 덕목과 지위의 책임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각들을 확장해주는 것. 나는 이제 리더도 아니고, 더욱이 직장인도 아니지만, 이 책에서 사고를 풀어가는 방식이 새로웠고, 다른 니체를 만났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처음부터 차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목차에서 그날그날 읽고 싶은 키워드를 만나는 것이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지성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니체를 한 번에 줄줄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날그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만나는 편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여러 번 니체에 실패했다면, 이번 기회에 현대식으로 야금야금 뜯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현대적인,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가의 모습으로 위장(?)한 니체는 망치를 들고 있는 니체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듯하니 말이다. 

 

생각을 꺼내 성과로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되지 않은 일도 아님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그것을 기업에 적용하는 방식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이 책이 많은 독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당신도 이제 니체의 망치가 아닌, 자신의 망치로 자신을 에워싼 틀을 깨보는 것은 어떨까.

 

 

업계를 혁신하거나 세상을 바꿀 생각이라면,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 나갔고 비타협적이며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로 볼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와 노력을 유지하려면 내부에서 추진력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비전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본인에게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능력이 당신에게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정확성은 달라진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면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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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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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았어. 일종의 혀 말기 같은 거야. 학교에서 혀 말기에 대해 배운 적 있어? 누구한테는 당연히 말리는 게 누구한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잖아. 나한테는 그랬어. 명확했어.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P.45) 

 

 

'종말주의자 고희망'.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건물주이자 잘 되는 국밥집의 손녀지만, 내면은 먼저 죽은 동생으로 가족들과 데면데면함을 유지한테 살아가는 딱한 중2. '갑작스레 찾아온 불편한 침묵'으로 표현되는 가족의 아픔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성장시키고, 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유일하게 믿고 지내는 삼촌은 삼촌대로 자신만의 사춘기를 겪는다. (사춘기가 뭐 별건가.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 사춘기지) 그러나 '종말주의자'라는 수식어와 달리 희망이도 삼촌도, 부지런히 성장한다. 그 시간을 희망은 소설을 쓰며, 삼촌은 자신을 꺼내 보이는 것으로 이겨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결국, 종말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반에 널리 깔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단단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종말”은 어쩌면 졸업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졸업은 헤어짐의 개념도 있으나,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성장의 개념도 가지지 않나. 작가의 종말은 내면의 성장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줍잖은 감상문이 책의 깊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 희망이 결코 멀리 있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잘 살아내게 하는 '국밥' 같은 힘이다. (희망이네! 가게가 왜 하필 국밥집이었는지, 아빠가 왜 국밥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깔려있는지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힘든 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따뜻한 밥을 내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든든히 내어주는 것 같다. 

 

 

네가 잘못한 건 아니지. 넌 그런 애니까. 하지만 그런 점이 주변을 외롭게 만들수도 있다는 거야. 같이 있어도 혼자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거야.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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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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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노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표면으로나마 의미 있어 보이는 사적인 작업들로 그 시간을 채우게 되었지만 실은 그것들도 그저 허튼 짓거리일 뿐이다. (p.89)

 

 

현재와 과거의 밥그릇 차이를 예상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더 육체적 고강도의 노동을 했기에 지금보다 밥양이 훨씬 많아야 했을 거라는 유추에서 나온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 제시된 '오늘날의 밥양'보다 양이 적은 나는 “그럼 나는 노동을 덜 하는가”하고 피식 웃다가 문득, 이토록 고도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노동 사회와 그저 먹는 양만 달라졌나, 싶은 생각에 닿았다. 그때와 달리 첨단과학을 바탕에 두고도 왜 우리는 먹는 양만 적어졌을 뿐 여전히 노동에 갇혀, 노동이 주를 이루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하고 놀라움이 먼저 들었다. 지나친 양, 의미 모를 노동을 사회 전반에 지배된 '긍정'으로 수긍하며 (혹은 수긍하지 못해도 전반적 분위기가 그러하니) 지속해온 노동들이 사실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노동 자체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많은 분이 이 책을 접하면 놀라움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끼실 것 같다. 우리가 회사에서 '직접적 업무와 관련 없으나 해온 일들'이나 '눈치 보던 칼퇴근', '프로젝트나 회의' 등으로 만들어내던 스트레스 등이 실체가 없는 가짜 노동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 반면 유연하게 받아들일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역할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팬터믹'이 해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고 회식이나 회의가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들의 회사들은 대부분 하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비교적 잘. 결국 '일의 연장선' 등으로 불리던 회식이나 팀 회의 등이 없어도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물론 전반적인 경우겠지만) 

 

만약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노동을 '가짜'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이 책이 끝났다면, 이 책 역시 '가짜 노동'을 한 책이었을 터. 다행히도 이 책은 가짜 노동을 버리고 '의미'를 되찾는 법도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 역시 가짜 노동을 그냥 '도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생존력이나 돈, 그리고 기본적인 것을 넘어 성취와 본질 등의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내가 진짜 바라는 것,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목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작가는 말한다. 시간으로 노동을 계량하지 말라고. 근무시간표를 벗어나는 법과 왜 그래야 하는지에 읽으며 '법정근로시간' 자체가 우리의 노동을 시간에 구겨 넣고 있었음을 겨우 깨달았다. 또 나를 위한 의미, 진짜 일에 집중하는 법 등에 대한 작가의 견해도 꽤 많은 생각을 제시한다. 

 

물론 개개인만의 노력으로는 '가짜 노동'으로 묶인 노동 사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단체도 개개인이 모여 이루는 것이기에 하나하나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가 일하는 진짜 본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 아니었던가. 무의미한 일,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간을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우아한 물장구를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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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 - 고민하는 리더를 위한
존 M. 제닝스 외 지음, 곽지원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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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말로 성공은 승리, 실패는 패배를 의미하는 인간 행동에서 가장 목적 지향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단순할까? 만약 위대한 지휘관이 단순히 승리자로 귀결된다면, 나폴레옹을 연구한 문헌이 이토록 방대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왜 리더가 되고자 했던 이들은 그를 그렇게 열심히 연구할까? 나폴레옹은 초반에는 승승장구했지만 1812년 러시아에서 겪은 굴욕적 패배, 1815년 워털루에서 겪은 또 한 번의 패배로 경력이 끝났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이 위대함의 진정한 척도였다면, 연구하고 모방해야 할 인물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쿠투조프, 브뤼허, 웰링턴이어야 할 것이다. (p.19)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 선배 중에 나보다 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역사 중에서도 특히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다른 선배가 “'이긴 놈들이 자기한테 유리하게 남긴 기록'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는 말에 “모든 장수는 다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부하를 이끌어서”라는 대답을 했던 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제는 한 그룹의 리더가 된 그 선배가 떠올랐던 것은 그가 알고 싶어 했던 많은 이야기를 너무나 잘 끌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만약 당신이 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어떤 모습의 리더가 될지, 조직원이라면 어떤 리더를 따라 인생이라는 전쟁터를 누벼야 할지 생각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어떤 마음으로 리더의 자리에 향해야 할지도 가늠이 잡힐 테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깨알 같은 크기로 빽빽이 전쟁사에 등장한 수많은 리더를 나열하고 그들의 업적과 잘못을 세세히 풀어준다. 쉬운 내용은 아니나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리더들의 성향, 그 리더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 시발점, 한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치명적 결과를 매우 촘촘히 연결하기 때문이다. 분류도 매우 잘 되어 있어, 통독하기에도 매우 좋지만, 성향대로 발췌하여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몇몇 리더들에게 붙여진 '최악'이라는 단어 그 이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리더들을 모았기에 '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100%가 나쁘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저명한 책들로 굳어졌던 이미지를 깨기도 하고, 내가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 등 책만큼이나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 책이 다소 어렵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으나, 어려웠던 만큼 배운 것도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교사'. 다른 사람의 잘못한 일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말이다. 예전엔 '실패한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늘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타산지석'의 마음으로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야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들의 순간순간,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쓸모없는 돌'이라 여겼던 것들이 '금덩이'로 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의 짧은 식견이 작가의 깊은 뜻을 다 담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성공과 실패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며, 상황에 따라 승리자와 패배자도 갈릴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으로 대처한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탑을 쌓아 올린 모든 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 않나. 쌓는 행위서든, 완성된 탑에서든 우리는 분명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범죄자, 사기꾼, 멍청이, 정치꾼, 덜렁이 등 오명으로 포장된 리더들에게서 배울 것, 느낄 것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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