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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흔들려서, 마흔인 걸 알았다 - 인생 항로를 잃어버린 엄마들을 위한 단단한 마음 철학
김선호 지음 / 서사원 / 2022년 8월
평점 :

누구에게나 쉼이 필요합니다. 쉼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숨을 내쉴 수 있는 상태면 됩니다.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여행을 가고, 정신없이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수다 떠는 일은 쉬는 게 아닙니다. 그냥 잠시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지요. (p.17)
지난 몇 년, 나는 꽤 아팠던 것 같다. 그런데 제대로 아픈 줄도 몰라서, 아프다고 말할 줄도 몰라서 그냥 앓으며 그 시간을 버텨왔던 것 같다. 우연인지, 친구들도 각자의 아픔을 겪었기에, 우리는 오히려 말 대신 그저 옆에 있었고, 일상을 담담히 살아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버텨온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들고는 한참이나 표지만 바라보았다. 마음이 흔들리는 마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마흔이란 단어와 흔들린다는 말의 조합이 이렇게 마음에 닿을 일인가. 마흔은 내게 아주 먼일 같았으나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마흔은 그저 단단히 살아지는 나이인 줄 알았더니 불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여전히 세상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음이 흔들린다. 아 그렇구나. 마음이 흔들려 마흔인 줄 알았다는 말은 진짜구나.
'인생 항로를 잃어버린 엄마들을 위한 단단한 마음 철학'이라더니, 처음에는 나를 많이 울렸다. 이룬 게 없을 거라고, 콤플렉스도 여전할 거라고, 감정에 청소가 필요하다고. 참 웃기게도 울음에는 카타르시스가 숨어있다는 말이 진짜인지 실컷 울며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울고 나니 내가 좀 보이더라.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고통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말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고통을 잘근잘근 씹어 여러 번에 걸쳐 소화하느라 더 아프다. 실제 고통의 크기보다 더 아픈 까닭이 스스로 고통을 키우는 것 때문임을 또 한 번 생각했다.
또 아이와 나는 독립적 인격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남 대하듯' 아이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아이를 덜 사랑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아이의 인격을, 성향을, 성격을 존중하여 말로 상처입히지 말고, 표정으로 때리지 말며, 나를 투영하지도 말자는 것. 또 반대로 아이에게 생긴 결과를 나의 책임으로 만들어 아파하지도 말자는 다짐을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중간항로의 시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려면 일단 항구에 정박한 배를 출발시켜야 합니다.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출발하는 겁니다. 이제 행동을 미루지 않길 바랍니다. 지난 40년간 미뤘으면 충분합니다. (p.216)
어떤 문장은 호된 꾸중처럼 아팠고, 어떤 문장은 따뜻한 위로처럼 힘이 되었다. 그러나 책에 집중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들렸다. 돌아보니 내가 아팠던 순간들은 '김 대리', '아내', '며느리' 등 완전히 내가 아닌, 나의 한 순간순간들이었다.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육아 자체가 버겁지는 않았으나, 나는 필요 이상으로 '엄마'의 무게를 짊어지려 하고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너무 당연해진 이름들을 내려놓고 나를 오롯이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함을, 오롯이 나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오직 나뿐임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터널 같은 시간을 그래도 좀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던 요즈음.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 나의 중간 항로 즈음을 지나는 마흔을 그 단단함으로 맞이해야지. 이 책 덕분에, 내가 진짜 마흔이 되었을 때는 조금은 더 단단해져 있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