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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2022.여름 - 5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평점 :

아이는 맑고 또렷하다. 내가 그림책에 원하는 것은 실은, 세계의 불가능한 명료성에 대한 나의 갈증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명쾌하고 가닿을 수 없는 어떤 정수.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경이로운 세계, 그 생의 초반을 온몸으로 부딪쳐서 살아내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경의를 표한다. (p.64, 이수지 작가님)
아마 나와 소통해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도서는 그림책이다. (두 번째가 역사서) 아가씨 때도 눈치를 보며 그림책을 야금야금 사 모으던 나였기에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나, 주 독자층이 아이들이기에, 왜 아이도 없으면서 그림책을 모으냐고 묻는 것이 싫었다) 엄마가 돼서 좋은 점 하나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그림책을 사도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엄마가 되니, 거짓말처럼 그림책도 더 좋아지더라.
그런 나의 욕구를 가득히 채워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자금과 모음의 53번째 계간지, '자음과 모음 53 여름호 - 그림책'이었다. 더욱이 올해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신 이수지 작가님의 이야기도 담겨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되기도 했고. 이지원 작가님의 말처럼, 언제인가 한국 그림책의 역사를 논할 때, 2022년에 출간되었던 '자음과 모음 그림책 호'를 참고할 수 있을 만큼 알찬 내용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그림책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줬던 것처럼.
부모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동안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지지받았던 기억, 혹은 아름다운 시각예술 작품으로서 그림책을 발견하게 되었던 인상이 남아있을 것이다. (p.17, 김혜진)
드로잉은 연필이 선 하나 긋는 순간에 그릴 것과 그리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무수한 판단의 결과물이다. (p.59, 이수지)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책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내용의 책, 귀중한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가 아깝지 않을 책. 의미가 있는 책. (p.103,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또 이 책을 통해 신인문학상 수상작을 만나볼 수도 있었다. 수상작품 자체도 너무 좋았으나, 심사평이나 수상소감도 꼼꼼히 읽었는데 한 심사평이 마음을 둥둥 울렸다. “좋은 작품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게 읽힌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라 하더라도 선호의 강도와 이유는 천차만별이다..(...)이토록 우연한 결과에 크게 휘둘리지 말고 자기 작품에 대한 믿음을 이어나가셨으면 좋겠다. (p.177, 조대한 문학평론가”)라는 말은 아마 수상자 본인뿐 아니라,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자신의 글을 부지런히 품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기억하게 하는 말이 될 것 같다. 아니, 최소한 나에게만이라도.
묵직하고, 폰트도 작아 오래 읽었다. 긴 세월을 읽다 보니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인데도 꽤 걸렸다. 그런데도 한순간도 지겹다는 느낌이 없었고, 볼펜을 꼭꼭 눌러 글씨를 쓰듯 마음에 새겨진 문장들이 많았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여름호였지만, 2022년의 여름도 참 좋았다고 기억될 좋은 시간을 더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