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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의 탄생 - 1950년대 여성 독서의 문화사
김윤경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7월
평점 :

물론 18세기 유럽 중산층 여성의 독서 경향을 모든 여성의 경우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수많은 여성 독자들은 다양한 목적에서 독서를 한다. 때로는 정보를 얻기 위해 또 때로는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각각의 특수한 상황과 목적에 따라 여성의 독서는 감수성을 중시하는 정서적 공감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저자에게 저항하는 읽기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여성의 독서를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묘사해온 서양 문화의 역사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고, 그 결과 여성젠더의 독서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일부 유지되고 있다. (p.174)
미리 밝혀두자면, 결코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이 쉽지 않더라도 문학이나 독서 자체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은 1950년대 해방 이후 문맹을 퇴치하고 읽고 쓰는 행위가 보편화하며 이를 통한 학생들의 교육과정, 여성 문학의 발달, 여성지와 여성 문인의 인생까지 아우르는 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독자', '여성 작가'등의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엄청난 변화를 겪은 시대 특성상 '여성의 삶'이라는 특수성은 차별의 키워드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첫번째 책이었다고 할까.
이 책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여러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여성 독자 층의 특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소설 '행로난'이나 박화성의 '바람뉘', 고영림의 문학 등에서처럼 단순히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끝이 아니라, 문학 속에 숨어있는 시대상이나 작가의 사상 등을 이해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깊게 와닿는 읽기였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이 책을 통해 '여성'이 붙는 단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것도 있다. '비애'와 '번민'이라는 문학소녀의 망탈리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는데, 문학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들이 가진 애환은 지금의 것과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지금껏 다소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던 '여성'을 구분하는 직업에 대한 단어들(여선생, 여류작가, 여변호사, 여성 정치인 등)을 차별을 벗고 구분 지은 의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달까.
소설이 여성들에게 일상의 피난처이자 정서적 공감을 주는 도구가 되다 보니 여성의 독서는 감성적, 정서적인 '어리석은 독서'로 치부되어 온 것은 있으나, 현대에는 오히려 여성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이 사랑받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비하가 문학에도 깊이 남아있어 그것을 읽는 '후배' 여성으로서는 화가 나는 문장도 있지만, 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좋은 문학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 문학에 짙게 깔린 시대나 사상이 더욱 깊은 의미로 느껴졌고,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부정적 시선 또한 깨칠 기회가 된 것 같다.
지인과 수다를 떨다, 내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나 다행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양갓집 규수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으면 조부모에게 혼이 나며, 자수나 놔야 하는 삶이었다면 끔찍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쳐 말해야겠다. 1950년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삶을 만나 감사하다고. 문학에 목이 말랐기에 문맹 퇴치와 동시에 폭발적인 문학탐험이 시작되었겠지만, 읽고 쓰는 것에도 여성과 남성이 나눠야 하던 시절이라면 나는 지금처럼 많은 책을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선배' 여성들이 읽고, 쓰고, 탐미해준 덕분에 나의 읽고 쓰는 시간이 당연히 누려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소녀'로 살았던 이들의 시간에, 그 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