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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허은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평점 :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해도 괜찮다는 용기 말이다. 상처받을지라도 진심이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자. 뚜벅뚜벅 세상 속을 걸어가 보자. (p.72)
엄마가 된 후 보지 못하게 된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동학대, 그리고 동물 학대. 아니 꼭 학대까지가 아니더라고 아이들이나 동물들이 그렁그렁 눈물 맺힌 장면은 보기 힘겹다. 울부짖는 아이보다 미쳐버릴 것 같은 얼굴은 억지로 눈물을 참는 얼굴이다. 동물 역시 그러하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두려웠던 이유가 그거다. 과연 나는 이 책을 눈물 없이 읽어낼 수 있을까 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울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동물을 이야기하는 어느 수의사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책에서 상처받은 아이를,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는 아이를 만난 기분이다.
읽기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술술 읽힌다. 문장은 또 어찌나 감각적인지 어떤 문장은 깜짝 놀랄 만큼 섬세한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서 배운 것인지 엄마라서 배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무게 덕분이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어있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아이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고 욕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마음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둘 다 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명의 존엄을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동물들이 떠올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또 한 번 느낀다.
아이를 향한 사랑을 이입해 이 책을 읽은 내가 무지한지 모르겠다. 반려동물에 맞는 다른 감정이 필요한 건지도. 그러나 무식한 나 역시 이런 묵직한 마음이 되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나보다 훨씬 지성인일 많은 분께도 이런 울림을 주리라 생각해본다.
물론 저자가 말한 비윤리적인 행태가 짧은 시일 내에 개선될 수 있을지에서는 부정적 견해가 먼저 든다. 우리는 동물과 더불어 살면서도, 우리를 늘 그 위에 얹지 않는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법으로 정해두어야 하는 현실에 입이 쓰다. 그러면서도 '생명의 존엄'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호된 방망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너무 슬프다.
나는 '겁'과 다양한 '알레르기 반응'이 동시에 있는 사람이라 반려동물을 쉬이 키우지는 못하겠지만(엄마가 되며 '책임의 무게' 또한 배운 터라 더더욱) 작가의 한마디는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우리가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함께 사는 동물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까. (p.119)”라는 말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노력하고 공부를 하듯, 생명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에 버금가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 읽기였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 년이 되듯- 보다 성숙한 반려문화, 성숙한 반려동물 입양문화 등이 하루빨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또,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고귀한 생명체라는 존엄은 변치 않음을 늘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