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챌린지 블루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평점 :

사는 것도 똑같아. 열심히 준비했는데 허무하게 끝날 때가 많아. 각종 시험부터가 그렇잖아. 몇 년 공부해 단 몇 시간 안에 판가름 나. 생각하니 정말 허무하네. (p.47)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소설을 읽지 않았다. 육아에 직장에, 꾸준한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웠기에 손 놓기 힘든 소설을 읽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5분이면 5분, 2시간이면 2시간.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잡고 읽었다. 그러다 올해, 육아도 시간도 꽤 여유로워져 다시 소설들을 들춰보곤 했다. 역시 재미있다며 박수를 잔뜩 준비한 채 말이다.
꽤 길었던 '소설 금지' 시즌에도 '페인트'는 찾아 읽었던 나에게 어쩌면 '챌린지블루'는 당연한 순번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꿈과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라니.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어린 친구들을 멘토링하며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나이, 직업과 관계없이 꿈을 꾸라고. 그러나 정작 나는 먹고살기 위해 꽤 오래 꿈을 잊고 살았다. 아니, 살기 위해서 진짜가 아닌 꿈들을 만들어 그 안에 나를 욱여넣었던 것 같다. 승진이나 인정, 적금의 만기나 특정 물건의 구매 같은 '비교적 이루기 쉽고, 가치가 낮은' 것들에. 이 책을 읽는 내내 휘청이는 바림에게서 나를 본 것은, 다른 이의 천재성을 부러워하면서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심함을 마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는지도 모른다. 먹고 산다는 것을 핑계 삼아, 가지지 못한 재능을 그저 기회가 없어 못 가진 것처럼 포장해왔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꼭 바다로 가지 않는 물길도 쓸모없지 않음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바림도, 바림의 엄마도,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조금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리뷰에 이토록 나의 감정을 꼼꼼히 적는 것은, 이 책이 진짜 주고자 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블루는 세상에 하나도 없듯 모두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감상은 다르겠지만, 품었던 꿈에 대한 열정, 그 시절 갈망했던 응원은 같지 않을까. 그저 담담히 다림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같지만, 작가는 이 글 안에 꽤 많은 것을 담아두었다. 나보다 재능을 가진 이를 보며 그 사람의 노력보다는 '운'을 보려고 하는 옹졸함도, 꿈을 꾼다고 하여 모두가 바다로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성찰도,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만 진짜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까지도 빼곡히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오묘하게 다른 색의 나열조차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른 어떤 색이기에,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작가의 위로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무슨 색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살 가치가 있다는 것에 눈물이 났다.
페인트도 그랬지만, 이 책이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민하고, 생각하며 꽤 깊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철학적인 순간은 고2 겨울방학 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하더라도 그때만큼 나의 진로에 대해,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도 대답할 말이 없다.
나는 구분 짓기도 애매한 '청소년 문학'이라는 말 대신, '꿈이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문학'이라고 고쳐 적기로 했다. 마흔이라고 인생에 고민이 없고 명료한가 생각하니 곧바로 고개가 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진로나 인생을 고민하는 10대들에게 큰 도움을 줄 이야기지만, 나처럼 여전히 철들지 못한 어른에게도 응원을 주는 반짝이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