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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ㅣ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김경일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6월
평점 :

생각해보면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간의 꿈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망상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비행기라는 운송수단으로 현실화했습니다. 이렇게 이그노벨상은 인간의 엉뚱한 꿈을 자극하고 독려한다는 면에서 아주 이로운 상입니다. 경제성이나 현실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요. (p.24)
초등학생 시절, 발명품 만들기에서 상을 받은 것이 있다. 고무장갑에 수세미를 붙여 설거지를 편하게 한 것. 상도 받고 칭찬도 받았지만, 어른이 돼서 찾아보니(그때는 몰랐으나) 이미 일본에서 발표된 발명품이었고, 실제 사용해보니 사용할 때마다 새로 거품을 짜고 헹궈야 해서 세제 낭비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그 우스꽝스러운 발명품은 엄마와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아마 이그노벨상도 그렇게 시작된 것은 아닐까? 경제성이나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누군가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하는.
기상천외하고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은 고생하여 연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의 뜻으로 시작된 이그노벨상 중 특히나 황당하고도 흥미로운 연구를 '어쩌다 어른'의 김경일 교수, '혁신의 도구' 이윤형 교수, '역사저널 그날'의 김태훈 교수가 선별하여 책으로 엮었다. 저명한 교수님들의 픽이기때문일까? 나는 이 책에 담긴 연구들이 쓸모없다는 느낌보다는 유쾌하고 기발하다 싶더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그노벨상이 '누군가에게는 유의미한 발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개똥이 아니라 욕도 약이 된다고.? 욕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연구가 시행되었다는 것도 놀라웠고 욕이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음도 놀라웠다. 연구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심리학 교수님들이 풀어주는 욕 이야기는 더 좋았다. '내 감정을 잘 표현해야 그 감정 때문에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p.49)'는 말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유용함을 다시 일깨워주셨다. 한국인의 '고진감래'는 속병을 만드니, 적당히 풀고 살자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고!ㅎ
복수에 관한 연구들도 꽤 많았는데, 마음에 깊게 남은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행복하고 오래 산다고들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남성은 100점짜리 행복을 한 번에 크게 얻으려고 하지만, 여성은 10점짜리 행복을 열 번에 나눠서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70)
물론 이것이 모든 여성이 그렇다, 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행복하고, 그때그때 슬픔이나 불만을 털어내고 살자는 내 인생관과 너무 일치하는 말이라 마음에 닿았다. 이 책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더 순간순간 행복하고, 불행이나 슬픔도 순간에 털어내는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해야지.
그 외에도 소변에 관한 연구, 참는 것에 관한 연구, 거짓말에 관한 연구, 가격에 관한 연구, 설명서를 읽지 않는 심리, 수면이나 생활방식 연구, 나르시시스트, 사이코패스 등에 관한 연구들을 사례로 심리학 관점으로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정말 이런 것도 연구한다고.? 하는 생각에서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든 심리학을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쓸모없는 연구라는 인식을 하고 있던 이그노벨상이, 심리학자들의 풀이를 만나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한다.
어쩌면 혁신 대부분은 '쓸모없다고 여겨진 것들' 사이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또 잊고 살았던 거다. 알을 품는 아이의 엉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우리 아이도 에디슨처럼 자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