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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다 너의 마음을 보다 - 엄마와 아이가 더 가까워지는 그림책 대화 수업
장선화 지음 / 청림Life / 2022년 6월
평점 :

케렌시아는 그 어떤 공간도 가능하다. 내가 있는 공간 그 어디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위안을 받는 그림책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은 아이에게도 필요하다. (p.227)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육아서를 열심히 읽었다. 초보 엄마의 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는 역할이었달까. 그러나 어떤 육아서를 읽고 나면 뒷맛이 씁쓸했다. 내가 부족한 사람 같고, 내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방목 같고, 이러다 큰일 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목표가 '훌륭한 엄마'였던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육아서에 집착했을까. 육아서의 '잘난 엄마들' 혹은 육아서를 열심히 읽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내가 한 것은 그저 아이와 노는 것이었다.
난 그저 '좋은 엄마', 그것도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힘들어도 편하고 좋은 사람, 마음이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와 잘 노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아이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요리하고, 오리고 붙이고.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있지도 않은 '비결'을 물어 생각해보니, 나는 그저 그 시간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는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나도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고,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옆에서 캘리를 쓰고. 그렇게 나는 늘 나의 케렌시아를 확보하는 사람이었다. 같이 하지만 또 따로 하는. '우리'이기도 하지만 '너'와 '나'인. 내가 나의 것이 귀하기에, 아이가 '내 것' 개념을 가질 무렵부터 아이의 공간과 시간을 조성해주고,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때는 침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합집합이 아닌 '교집합 모녀'다.
처음에 '아이에게 꼭 읽어주어야 할 그림책 50권'이라는 설명에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도 했다. 다른 육아서처럼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책인가, 이 책도 뒷맛이 나쁘려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책'은 우리 집을 설명하는 한 단어가 될 만큼 우리에게도 귀한 것이기에 참고나 하자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참 많이 만났다. 혹여 나처럼 선입견을 가진 이들에게 미리 말하자면, 이 책에는 강요나 자랑이 아닌 그림책을 만나며 느낀 감상, 아이와의 대화, 일상이 이어진다. 책을 읽고 잔잔한 울림이 좋아 여행에도 이 책을 가지고 가서 다시 읽었다. 보석의 가치는 알아주는 이가 있을 때 더욱 빛난다(p.56)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 아이의 가치를 늘 알아봐 주는 엄마가 되자는 다짐을 하며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어떤 이들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림책만을 읽어줄 것이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혹시나 그동안 그저 그림책만을 읽어주는 엄마는 아니었을까.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듣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게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한다. 점점 글밥이 많아져도,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해도 아이가 원하면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자녀는 어릴 때 평생 할 효도를 이미 다 했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아이의 작은 행동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던가? 우리가 처음 가졌던 소망에 지나친 욕심을 더하여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이미 우린 염치없는 엄마일지 모른다. (p.17)
'처음 가졌던 소망'을 잊지 말자는 작가님의 말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처음 아이를 낳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선보이던 시기를 지나, 아이는 이제 무엇인가를 배우고 발전해나가야 할 나이로 접어든다. 새로운 단추를 끼우는 아이에게 욕심이나 강요로 상처입히지 말아야겠다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엄마로만 남아야겠다고 내 마음을 다독일 힘을 주는 독서였다. 염치없는 엄마가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경계하게 하는 책이었다.
욕심이나 기대 등을 내려놓고 처음처럼 아이를 향한 사람만 채워 다시 오늘을 살아봐야지, 내내 다짐하며 책을 읽었다. 때때로 잊고 살았지만, 아이의 단단한 내면은 내가 단단할 때 채워지고, 아이의 행복 역시 내가 행복해야 채워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모두 알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 종종 잊고 사는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자신과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아보자. 엄마의 말을 전하기 위한 첫 번째 준비물, 그것은 바로 미소다.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