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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이웃들 -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우와. 이토록 멋진 여름밤이라니! 나이팅게일도 음악을 선사한다. 그런데 딱 하나 부족한 게 있으니, 바로 분위기 만점의 조명이다. 반짝이는 밤하늘을 우리 곁에 가져다줄….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랴! 반딧불이 있지 않은가. (p.28)
“엄마, 오늘은 노란 달이 환해요.“, “엄마, 풀벌레 소리가 들려요.”, “엄마,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해님이 보여요.”, “엄마, 오늘 아침도 이렇게 환한 해님이 깨워줬어요.”, ”엄마, 나무가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우리 아이는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때로는 그 말들이 너무 예뻐, 잊어버리기 전에 받아적으려고 나의 순간순간은 몹시나 분주해진다. 우리 아이의 언어가 아니라서, 내 딸이라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까닭도 있을 터.
이 책은 딱 그런 느낌이다. 우리 주변에서 늘 살고 있지만, 우리가 종종 잊고 살아가는 '이웃'들을 선한 눈으로 바라보고, 공존하고자 하는. 우리 아이의 언어가 아닌데도 참 선한 눈이구나, 참으로 따뜻한 마음이구나 하고 느끼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일 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자연을 사랑해온 방식이 자연에도 선한 것이었는지를 고민하게 했고, 과연 우리는 자연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사는지도 생각해보았다.
나방을 위해 선행을 하고 싶다면 집과 정원의 야간 조명을 최소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전등 스위치는 완전히 꺼두어야 한다. 이는 전기를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 (p.43)
하지만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이 격렬한 울음소리가 전혀 싫지 않다. 그 울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 자신감 넘치고 사려 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p.76)
열기가 이글거리는 한낮에는 어차피 우리가 집 안에서 선풍기를 켜 놓고 지내니, 저녁에 내가 바깥에 나가 식물에 물을 주고 물통에 다시 물을 채울 때까지 그곳 동물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늘어질 수 있다. (p.98)
사실 원예학자나 식물학자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책이 더 마음에 닿은 이유는 동물이나 식물을 정말 이웃을 대하는 마음으로, 그것도 진짜 존중하고 아끼는 이웃을 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 식물학자나 동물학자는 그 대상을 그렇게 바라본다고.? 물론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작가의 시각처럼 그것을 '우리와 함께 매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연구와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관찰이나 탐구의 대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쪽에 가까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그 시각조차 '동물원'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시선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을 강제로 가둬놓은 동물원에는 거부하면서, 왜 나는 일상에서 그들을 '관찰'해왔는가.
사실 두더지나 멧돼지까지를 달가워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이 나에게 유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또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식물 일부는 우리나라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도 많고.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그들이 늘 우리 곁에 살고 있었으나 우리가 눈치채주지 못한 '선량한 이웃들'을 발견하고 나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그가 만난 이웃들을 통해 나도 내 이웃을 만날 수 있다면, 자연을 조금 더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쩌면 '사람 이웃'보다 훨씬 유익한 존재들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고운 필터'를 하나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