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 유연하고 충실하게, 이소은이 사는 법
이소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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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깎이고 다듬어지며 쓸모없는 것들은 털어내고 덜어내는 중이다.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돋을 때면 전보다 질긴 표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 변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and since i made it here, i can make it anywhere! (여기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어디에선들 못 하겠어!)”를 모토로 삼고 나아갈 생각이다. (p.277)

 

그녀가 가수로 섰던 무대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도, 호흡도 기억난다. 사실 아직도 그녀의 노래 한두 곡은 내 차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친구들이 “토토가”라고 부르는 차답게 내 차의 노래들은 나의 10대를, 20대를, 30대를 함께 함께 해오다 보니 노래들도 각자의 추억을 켜켜이 쌓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김동률과 부른 '기적'은 나의 첫사랑을 추억하게 한다) 아무튼 그녀의 아버지 책(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 이규천/ 수오서재)을 통해 그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오히려 이번 책은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해야겠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라는 꿀벌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늘 함께 하는 것일까. (P.39)

 

이 문장을 읽는데 코가 시큰했다. 나의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였을까. 물론 나는 그녀에 비해 이룬 것이 너무 없지만, 이룬 것이 없다고 한들 지나온 시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바쁘고, 슬프고, 괴로운 꿀벌이었던 나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글들을 통해 단단한 위로를 얻었다. 조금 울기도 하고, 결심하기도 하며 나의 밤들을 그녀의 문장으로 채웠다. 

 

 

나 자신이 되어라. 나는 이 말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고, 무조건적으로 긍정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타인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으며, 중심을 내 안에 두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P.10) / 네 마음의 소요를 지켜보며, 너를 참아내고 위로해주어라. 네 속에 있는 너를 다독이고, 용기를 주고,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넉넉한 주인이 되어라. (P.218)  

 

늘 그녀의 목소리는 “청아함의 대표주자”였다. 나는 맑은 목소리를 이야기할 때 늘 그녀의 이름을 꼽았던 것 같다.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그것이 내가 그녀를 형용하는 말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는 영혼까지 청아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선지 공책을 찢어 자신의 곡을 쓰던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을 차분히 그려온 것이 아닐까. 코스모스의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쉬이 꺾이는 것이 아니듯, 그녀는 여리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온 것 같다. 나아가되 아프지는 말자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둥둥 울린다. 늦은 사춘기를 겪는 중이지만, 그래도 매일 나의 길을 걷기 위해 느린 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쉼 없이 응원을 건네는 것 같다. 최근 몇 년간의 독서 중에서 가장 많은 인덱스를 책 곳곳에 붙이며, 나는 독자가 아닌 사람으로 위로를 얻었다. 

 

 

점을 옮기고,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변화시키고,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에서 벗어나도 좋다. 계획에 없던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비포장도로를 걷기도 하고, 잠시 멈추고 쉬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된다. (P.76)

 

얼마 전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하다는 글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실 때 그저 커피만 마셔도 된다는 걸 알았다는 말을 썼다. 나는 그토록 바쁜 꿀벌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30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내게 그녀는 비포장도로를 건너도 되고, 다른 길로 가도 된다고 말해준다. 나조차도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여전히 두렵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이 책을 만나는 내내 나는 온전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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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
김보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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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결에 따라 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자유로웠고, 쓸쓸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혼자 걸으며 무수히 많은 것들을 채집한다. 물리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둥둥 떠다니는 대책 없는 마음을 애써 메모로라도 부여잡는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그렇게 지켜간다. (p.62)

 

봄빛이 가득한 연 오렌지의 표지. 제주도. 여행기. 사실은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다.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하겠지, 하는 얕은 기대감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눈물 콧물 흘리는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모슬포 같은 마음을 털어내고자 혼자 떠난 제주도. 제주를 걸으며 자신의 지나온 길을 다시 걷고, 바다를 보며 50년이라는 삶을 되돌아보는 일기 같은 책이다. “내가 아닌 나는 될 수 없지만(p.27) 찌그러진 마음이 조금 펴지고, 어둡게 밝아 적당한(p.5)”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게 짠한데 때때로는 달콤한 유배기. 그리고 그 여행에서 그녀는 결심한다. “바람이 분다고, 나를 향해 부는 것이 아닌 것을. 겁먹고 살지 말자. (...) 개 떨듯 떨더라도, 뛰쳐나오고, 걷고, 살자. (p.61)”고.

 

어린 시절의 한 순간순간이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우리가 쉬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어른의 순간도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꽤 괜찮은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어른이 되어 겪은 순간순간이 여전히 아프고, 버거웠는데 나는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주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벗어나는 길도 눈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는 나보다 한발 앞서 이미 자신의 터널을 잘 빠져나오고 계심을 느꼈다. 같이 울고 웃으며 나도 이제 그 터널에 발을 디딜 용기가 나더라. 

 

 

느슨한 일상과 느린 걸음, 푸근한 자연은 걸음을 잡아주었다. 나하고만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생활은 안팎으로 여유를 주었다. 심장이 느려졌다. (...)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느리게 걸어야지. 조금 더 느리면서 열렬한 생활을 격하게 누려야겠다. (p.145) 

 

숲이 너무 좋아 나도 숲인 것처럼, 나도 자연의 하나로 배어든 것처럼 자연을 편드는, 식물과 동물을 편드는 생각이 걸음을 따라 이어졌다. (p.178)

 

느리게 살기. 사실 요즈음의 내가 가장 격렬히 지지하고 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책을 보지도 않은 채 가만히 커피만 마시기. 그냥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기. 요즈음의 지지하는 내 삶의 한 조각.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어려울 것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나에게는 왜 그리도 남 이야기 같았을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꼭 쥐고 있는 그 무언가! 그건 바로 나(p.6)”였음을 다 놓아보고서야 아는 미련함을 이제야 실컷 부려보는 중인 거다. 그러면서도 종종 친구에게 마흔을 목전에 두고 나는 왜 이러는지 쓸쓸한 웃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린 삶을 조금 더 지속할 예정이다. 내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말이다. 책의 나이가 현재형이라면 나와 띠동갑일 작가님을 핑계로 조금 더 느린 나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찮은 글도 읽히면 괜찮은 글이 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언젠가는 바다처럼 짜고, 귤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조금 더 '나'로 잘살아 보아야겠다.

 

작가님. 저 오늘부터 작가님 팬 할 거니까, 일단 술이나 한잔 다정하게 따라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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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세계사 - 뺏고 싶은 자와 뺏기기 싫은 자의 잔머리 진화사
도미닉 프리스비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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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금은 모르는 사이에 원천징수되고 강제로 징수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강제로 가져가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장 요원이 억지로 빼앗아 가지는 않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강제라고 한 말은 세금을 안 내면 전과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교도소에 갈 기회조차 없다. 세금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이다. (p.35) 

 

다양한 역사서를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세금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과자가 될 기회도 없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각종 세금을 내는 서민이면서도 그냥 당연한 무엇인가로            받아들이고 살았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세금이 역사 속에서 엄청난 흐름을 담당하고, 판도를 바꿀 “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듯 역사 속에 숨어있던 세금들을 만나며 알았던 과거는 새롭게 보이고, 몰랐던 과거는 다시 알게 된 읽기였던 듯하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에 6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 부채를 안겼다. (...) 소득세 때문에 채무의존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정부 지출의 반 이상은 채무로 충당했다. (p.126) / 루스벨트는 뉴딜정책 실시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1932년 선거 캠페인에서 맥주에 부과하는 주세만으로도 수억 달러의 정부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마도 뉴딜정책에 대한 기대보다 금주법 폐지 공약 덕택일지도 모른다. (p.171) 

 

우리가 당연한 듯 알아온 역사의 순간들에, 늘 세금이 존재했다. 그것도 우리의 생각보다 깊게, 때로는 주인공으로. 세금으로 인해 농노의 난이 발생하고, 조세개혁으로 인해 영국의 권력 구조가 바뀐다. 노예제도로 인해 대립한 결과로 발생했다고 배운 남북전쟁 역시 미국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관세로 시작되었다니 그동안 만나온 역사의 새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과거에 조세가 미친 영향들에 정신이 빠져 읽다 보니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명쾌한 분석들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모습을 너무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글로벌 시대의 개인과 기업에게 강력한 사유재산보호법과 우대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가장 많은 기업을 유치하게 되어 있다. (p.295) / 디지털 기술은 또한 징세효율을 높인다. 무인 자동차에 내장된 컴퓨터가 주행거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금을 낼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p.265) / 노마드족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도 없고 점포도 없다. 생활비도 선진국보다 적게 든다. 게다가 가장 큰 비용, 즉 국가에 내는 돈을 안 낸다. (...) 소득세는 얼마나 내야 할까? 낸다면 누구에게 낼까? (p.223) 

 

후반으로 갈수록 미래의 경제까지를 전망하는 책이라서 더욱 진지한 태도로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다른 역사서에도 느꼈듯, 과거가 단순히 과거로 끝난다면 그것이 전래동화를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전래동화도 많은 교훈을 남기지 않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사례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또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세금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방법(p.313)”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연하게 낼 일”이 아니라 공부하고 의논하고 토론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세금에 대한 의구가 아닌 “불만”만을 품어왔던 나지만 이제는 세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봐야겠다. 우리가 큰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세금은 또다시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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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난 행복해 비룡소의 그림동화 212
로렌츠 파울리 지음, 카트린 쉐러 그림,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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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번 읽을 때와 두 세 번 읽을 때 다른 울림을 주는 그림책이다. 처음 이 책을 일러스트만 볼 때는 곰과 쥐의 행복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고, (우리 집은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잘 보기 위해 처음에는 포스트잇으로 글씨를 가리고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나눈 뒤 떼어내 내용을 읽는 형식의 독서를 하고 있다) 내용을 읽으면서는 처음에는 곰만 많이 깨달은 게 아닌가 의혹이 생긴 책이었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읽으면서는 마치 이 책은 엄마와 아이의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울컥하는 책이다. 

 

곰은 엄마 같다. 아니 정확히는 나 같다. 곰의 방석은 마치 나의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 영역, 내 물건에 대한 집착이 꽤 심했다. 늘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 하고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내 영역, 심지어 나의 심신까지 모두 아이에게 내주고 나니 거짓말처럼 그 집착까지 사라지더라. 곰도 자신의 방석을 내어주고 아이에게서 즐거움을 얻듯, 쥐에게서 음악을 얻는다. 

 

곰은 쥐에게 피리도, 개암도, 조약돌도 내어준다.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꾹 참는다. (이 부분이 특히나 엄마 같아서 울컥했다) 그러나 조약돌에 반짝이는 달빛을 함께 바라보며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마치 서로의 숨소리에서 위안을 얻는 늦은 밤의 엄마와 아이처럼 말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가 진심으로 다가오는 순간 우리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깨달았다. 아이에게 다 내어주어도 행복한 마음, 또 그걸 받아들고 엄마의 사랑을 깨달아 더 행복한 마음.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 아닐까?

 

비룡소의 사랑 가득한 그림책으로 인해, 우리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서로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본다. 

2. 곰과 쥐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주며 마음이 어땠는지 이야기해본다. 

3. 함께 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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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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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공 안에 쇠망의 씨앗이 들어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p.96)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내가 언젠가 역사서를 읽다가 생각한 것을 시작으로 책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에서였다. '제국은 왜 흥망을 반복하는가?' 말이다. 여러 역사서를 읽다 보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제국도 결국 서서히 무너지고, 절대 커지지 못할 것 같은 제국도 서서히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장한 제국도 결국에는 무너진다. 그저 생태계의 원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동안 읽은 책 앞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글로 써오신 저자의 저력을 완전히 느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확한 포인트로 짚어내고, 간결한 부제로 묶음으로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저 오랜 역사 속 이야기들을 마치 오늘날의 이야기로 바꿔주는 느낌이랄까. 

 

 

경고음이 처음 울릴 때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주의해야 한다. (...) 로마공화정 말기에도 현명한 정치가가 있어 꼭 필요한 개혁을 과감히 시행했더라면 어떠했을까. (p.77) / 지도자의 능력이 몽골제국의 역사를 좌우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88) / 누구든 안팎으로 문을 모두 걸어 잠그면 스스로 질식하고 만다. 전성기에 오스만제국이 보여준 개방성과 종교적 관용에서 터키공화국이 새 희망을 발견하였으면 한다. (p.167) 

 

이 문장들은 나라에도, 조직에도, 어쩌면 개인에게도 참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부분의 실패는 경고음이 처음 울릴 때만 해도 바로잡을 수 있다. 비록 아픔이 따르겠지만, 그런데도 바로잡을 수는 있다. 수많은 역사는 그저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삶에 거름으로 삼아야 하기에 우리나라에, 우리 조직에, 내 내면에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반대로 나라가, 조직이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경고음이 될 필요도 있겠다. “애초에 시민은 공직에 나갈 길이 차단되어 있었고, 귀족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시민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기원전 494년부터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200년 동안 시민은 점점 많은 권리를 쟁취하였다. 고대 역사에서 보기 드문 쾌거였다. (p.41)”의 문장에서 느낄 수 있듯, 혼자서는 작은 목소리라도 모이면 큰 경고음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하나하나가 모이면 무서운 경고음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고 이끌어가셔야 할 테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과거의 것을 정리하고 풀이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흐를지를 이야기해주는 느낌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역사를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라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유행도 돌고 돈다. 유행이 10년이나 5년을 주기로 돈다면 역사는 조금 더 큰 주기로 돌고 돌아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미리 대비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역사를 고쳐 말하고 싶다. “지난 시간으로 내일을 대비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마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역사를 어렵다고 생각하여 피하기만 했다면, 이 책을 권해본다. 아마 이 책을 통해 역사도 재미있는 거구나, 뭔가 많은 것을 남기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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