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헌법 - 시민을 위한 헌법 첫걸음
임병택 지음 / 행복할권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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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헌법 제 10조 / p10)

 

아마 이 문장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윤리(지금은 배우...나….)시간에도 배웠고, 언론에도 자주 나오며,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나온다. 나 역시 많은 곳에서 헌법 제 10조를 읽고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헌법을 읽어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법학과를 나왔으면 읽어봤으려나. 법학개론, 행정법, 사회행정학 등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읽었는데 헌법은 그저 남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해온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저자의 “헌법이 알려지면 주인이 주인다워집니다. 권력이 권력다워집니다. 평등이 시작됩니다. 행복할 권리가 옵니다. (p.228)” 라는 말이 진짜 꼭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요즘 법 위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법을 수호하고 잘 지키라고 그 자리에 앉혀둔 높은 '분'들이 법을 기만하는 때도 많고, 자신의 욕구나 삐뚤어진 마음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도 세상 탓을 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등 남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너무 많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국민이 헌법을 알고 지키면 세상이 정리된다. 국민은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지키고 의무를 이행하고 부모는 자녀를 교육하고 지키며,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은 나라의 일꾼답게 일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문득 나의 윗세대, 그리고 나의 세대들은 먹고살기에 바빠서, 성공하기에 바빠서, 경쟁하기에 바빠서 헌법을 배우거나 천천히 읽어볼 시간 조차 없었던 까닭은 아닐까. 당장 오늘부터 모든 국민이 헌법을 지키고 살면 좋겠지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테고, 우리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헌법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지켜주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면 세상이 참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합니다. (제 69조 대통령선서 / p.186) 

 

하물며 나처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도 이 책을 보며 잘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반성하고, 나도 아이도 헌법을 읽고 나의 권리와 의무, 타인의 권리 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법을 공부하고, 평생 법으로 업으로 삼아온 대통령 당선인이기에 이 대통령선서문을 더욱 잘 지켜주기를 바라보았다. 다시 공수가 전환된 청와대(공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씁쓸하지만 아직은 이만큼 맞는 표현도 없는 듯하다. 있다면 부디 알려주시길)의 5년은, 현 정권에게 가졌던 야당의 “국민을 위한 일들”을 실천하고, 여당이 되어서는 “야당의 의견도 잘 듣는” 귀를 가지시길. 여야의 싸움보다는 올바른 논의가, 질책보다는 협동이, 비방보다는 격려가 가득하여야 그사이 조금 더 똑똑해진 국민의 질책을 받지 않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길!  

 

아. 그사이 우리도 더 공부해야 함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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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한국사 - 동아시아를 뒤흔든 냉전과 열전의 순간들
안정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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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를 늘리고 농업 생산량을 늘리려면 많은 농민이 필요했다. 오랜 전쟁으로 이미 많은 주민이 죽거나 고향을 떠나버린 농경지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p.93) /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던가. (...) 혹자는 박쥐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나, 누군가는 '생존'이라는 궁금의 꿈을 이뤄낸 대단한 망명객이라 평가하지 않을까. (p.98)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런 남자랑 맥주 한 잔 먹으며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고. 의미 없는 생각을 고이 접어두며 꽤 의미 없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내가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해서,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줘야지. 맞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주 재미있다”다. 내가 역사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진짜 역사서를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다고 할 거다. 자신 있게 “강력추천도서”라고 써놓고 나의 독서감상문을 시작해본다.

 

 

한국사회의 역사 인식과 교육은 '다문화사회'라는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사 교육체계는 폐쇄적 혈연 의식과 인종적 편견을 지양하는 국경 없는 교육을 실행하고 있을까. (p.144) 

 

이 책은 문장 자체가 매끄럽고 조리 있어 술술 읽히는 것도 장점이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읽어낸다. 단순히 승자와 패자를 벗어나 상황을 보여주고, 살짝 비켜낸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그래서 마치 이야기를 한 편 듣는 것 같다. 유튜브 등에서 맛있게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영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다. 매우 다양한 사료들이 녹아있어 쉽게 읽었는데 남는 것은 꽤 묵직하다. 이런 책이야말로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어, 아이들의 실질적인 “재미있는 역사 공부 책”으로 사용되면 좋겠다. 

 

풍덩 빠져 책을 읽다가 종종 날카로운 문장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 문장들을 통해 현재의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과거의 역사를 학습하고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많이 생각했다. 그러한 시각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내가 그래도 처음 역사서를 펼치던 때보다는 성장해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평생의 노력을 통해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p.174) 

 

요즈음의 동아시아 정세를 놓고 보면 마치 예전의 그것과 같다는 느낌은 지나친 억측일까. “왜”가 중요한 나라로 인식되지 않았던 과거처럼 일본은 다소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과 러시아가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니는 느낌. 그래서 요즈음의 나는 뉴스를 보며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는 것에 퍽 관심이 많다. 나의 편협한 시선은 모두 틀린 것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과거의 역사가 “그저 지나간 것을 학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오늘을 잘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냉정하게 되짚어보면서 현재 동아시아 각국 정상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치열한 이해타산과 그 밑바닥의 욕망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안목이 더해지면 그만 (p.39)”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조금 더 너른 눈을 가지도록 더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우리가 부지런히 읽고 알아야, 큰 분들이 공든 탑을 쉬이 무너트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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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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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은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라고 두 세 번 타이르시며 조금도 이별하는 것을 탄식하지는 않으셨다. (난중일기 1954.01.12)

 

난중일기를 읽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부분은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하는 문장과 어머니를 잃고 탄식하는 이순신의 비통함이었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 효심을 빼놓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나 말고도 그러한 듯하다. 충무공 이순신, 거북선, 난중일기, 삼도수군통제사.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등 그를 표현할 말들은 너무나 많고, 그를 주제로 한 책 역시 너무나 많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책은 그가 주인공이 아닌 이순신의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역사 속에서 유명한 어머니들이 몇몇 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은 신사임당이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지만(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 본인과 아들은 지폐에 나란히 얼굴을 새겼다. 다음은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로 죽으라”라는 가슴 아픈 편지를 안중근에게 남긴 조마리아 여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부족함이 없을 어머니, 초계 변씨가 바로 이순신의 어머니다. 그러나 그녀를 제대로 이야기한 책은 거의 없어 안타까웠던 찰나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의 배경이나 논란은 접어두고 책만을 놓고 말하자면 초계 변씨 역사관이라도 다녀온 듯 명확하고 깔끔했다.)

 

순신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학문하는 자세도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니 과거까지 갈 수 있게 준비해야겠어. (p.27) / 서울에서 왜 이주를 강행했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 아산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는 짐작이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p.96) / 내가 여수로 가자. 내 아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게 하지 말고 고달파도 내가 고달파야 하고 힘들어도 내가 힘드는 게 낫다. (p.143)

 

이 문장들만 봐도 변씨의 성향을 알 것 같다. 어린 순신을 두고 학문하는 자세와 외조부를 닮은 성향을 판단했으며, 자녀들을 위해 이사를 강행하고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망설이지조차 않았다. 실제 저자 역시 여러 차례 이순신의 올곧음이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녀의 효심이 그냥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존경받을 모습, 헌신적인 모습 등이나 혹은 소수의 케이스로 정반대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자라며 학습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중일기에 늘 절절히 표현된 그의 효심은 어머니의 강직함,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바탕이 되어 생겨난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이순신은 자신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p.141) / 이제는 잠을 자는 것조차 아깝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의 만남 아닌가. (p.178)

 

최근 떠났던 여수여행에서 엄마와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못난 자식이라 주저앉아 사는 것을 미안해하자 “온 동네가 이순신으로 먹고 살 만큼 대단한 사람인데, 그 이순신이 바다에 나갈 때마다 전쟁에 임할 때마다 그 가족들의 애간장은 얼마나 탔겠어. 엄마는 그런 거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늘 곁에 사는 자식이라서 훨씬 좋아.”라고. 그때 생각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애간장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겠구나, 하고. 자식이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해도 불안할 텐데, 화살이 날아다니고 총포가 오가는 바다에, 그것도 늘 불리한 전쟁에 자식을 내어놓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데도 귀한 아들에게 자립심, 충성심 등을 기르게 하고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강단을 심어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여수여행 중, 거북선 빵을 사 먹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부디 변씨처럼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많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역사 속 그들이 아닌, 그들 뒤에 서 계셨을 수많은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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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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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다 보면, 내 열망과 걱정으로부터, 내 슬픔과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이 좋다.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목이 말라 물을 찾게 될 때까지 걷다 보면 어느덧 나를 괴롭히던 그 문제가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던 나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p.53)

 

나는 월든을 두 번 읽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세 번째 읽고 있다. 첫 번째는 책이라면 전화번호부라도 읽던 맹렬한 독서기였고, 두 번째는 몇 년 전 독서 모임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두 번의 월든은 내게 그리 깊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소로가 현실로부터 도망쳐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월든을 꺼내 든 것은, 정여울이 만난 '자신만의 온도'를 나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는 일주일 내내 “역시 갓여울”을 외치게 만든 장본인 소로를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다. 

 

요즘의 나는, 어제의 나에 비해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게 산다. 잃어버린 것도 많겠지만 얻은 것은 더 많은 느낌이다. 분명 타인의 잣대로는 놓'친' 것이 더 많을 것인데, 나는 “놓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괜찮아진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나아져 있음을 더 많이 느꼈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지금 나를 위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관계와 접촉들에서 오는 피곤함, 감정노동을 내려놓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깊은 희열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다(p.276)'라고 했던가. 소로가 또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지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만 해도 왜 하필 월든일까 생각했다. 내가 큰 감흥이 없었던 책이기에 작가의 열광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소로는 내게 울림을 준다. “평화로운 것은 사랑하는 엄마랑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천천히 마시는 우유 같은 것”이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수많은 평화로운 순간들을 그것이 평화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냈다 싶어 아득해졌었다. 그런데 소로는 빗속에서 자신이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로도 정여울도 자신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행복의 가치를 느끼는 법을 알아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적정온도는 스스로에게도 한발 물러서 줄 수 있고, 타인이나 물건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함을 통해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오두막집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오래 아팠던 곳을 보듬으며 치유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의 고독이 그토록 아름답게 반짝인 것은 처음이었다. (...) 자연 속에 폭 안겨 있는 작은 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존재임을. (p.301)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우리는 고독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해 왔음을 깨달았다. 분명 함께 있는 시간도 의미가 있지만,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고독이 가지는 순기능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혼자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눈부신 단독자로 거듭나자(p.305)는 말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꿈을 생각해내느라 고민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뭐든 되어야만 한다'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느라 정작 오늘 하루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p.121)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지체했던 것 같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나의 압박감과, 내가 아이에게 가중한 쥐어준 '꿈'이라는 부담감까지. 나만 생각해도 여전히 흔들리고 휘청이면서도 아이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아이가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기를 기도하려 한다. 나 역시 각진 마음을 내려놓고 흔들리되 내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나도 마침내 나의 적정온도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모두가 여름일지도 나만은 봄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나만 움직이지 않고 이 자리에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싶다면 세상의 속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p.99)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이 이 책 전반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속도로 잘 걸어가는 것. 대신 대충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풍경도 보며 온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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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이와 할머니
황지영 지음 / 크레용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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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까풀 없이 작지 않은 눈, 풍성한 까만 머리, 둥근 얼굴, 통통한 몸매. 사실 내가 땡이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우리 아이의 외모와 참 많이 닮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꼬마 녀석도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과 나란히 바라보더니 배시시 웃더라. 그런데 책장을 펼쳐보고 안도의 마음과 반성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너무 예쁜 마음을 가진 땡이에게는 안도를, 그림책을 보면서 조차 땡이는 선한 느낌, 할머니는 뭔가 스산한 느낌이라 느낀 나 자신에게는 반성을 느꼈다. 귀여운 표지, 그 너머의 따뜻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가진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그런 편견을 가르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말이다.

 

이 이야기도 어쩌면 그런 선입견과 편견에서 시작된 듯하다. 자신이 가진 편견이나 선입견을 넘어서는 게 진정한 용기고 아름다움임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말에 실제 그런 마음을 담으셨다고 한다..)

  

작은 물방울에서 태어난 땡이.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동물들. (일러스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면 이 동물들이 십이지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는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각 동물을 짚으며 매칭시키는 놀이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맴도는 한 할머니. 아이들과 이 책을 만나셔야 할 분들을 위해 이 할머니가 누군지는 비밀이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해석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할머니의 자취를 따라가는 땡이를 통해 아이는 땡이처럼 할머니가 외모와 달리 따듯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이 그림책은 예쁘고 볼거리 많은 일러스트, 감동, 많은 이야깃거리가 가득 담긴 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글씨를 읽지 않고 일러스트만 감상해도 민화 전시회를 보는 듯한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가 흔히 가지는 편견, 두려움을 정확히 짚고 그것을 넘어서는 땡이를 보여주어 아이들에게도 그런 용기를 가지게 돕는다. 일러스트 하나하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어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두 시간 가까이가 흘러있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책이 가장 인기가 많다. 본문 자체가 재미있는 것은 당연히 좋은데,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숨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책은 더더욱 좋다. 땡이의 감정변화를, 할머니 머리에 사는 새들을, 동물들의 표정 변화를, 산과 나무를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땡이와 동물들은 우리의 식탁에서 함께 수다를 떠는 듯하다. 그럴 때 반짝이는 아이의 눈이란! 

 

그저 우리 아이와 닮은 외모라는 것에서 시작된 이 책과 만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판단 내려버린 것들,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주었을 상처. 자세히 들여본다면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 이런 것들을 여전히 훈련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와 함께 자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그림책들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좋은 책이다. 

아이보다 나를 더 성장하게 하는 책이기도 했고.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일러스트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 나무 등을 관찰하고 이야기해요. 

   (십이지신, 새의 종류, 나무 종류 등)

2. 알고 보니 생각과 달랐던 것들을 이야기 나누어요.

3. 편견, 선입견, 덥수룩, 불로초 등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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