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 애벌레 과학 그림동화 9
샬럿 보크 그림, 비비언 프렌치 글, 장석봉 옮김, 김성수 감수 / 비룡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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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월이다. 식목일이면 나무도 심고, 묘목도 나눠주고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잃어버린 것들이 정말 너무나 많은 듯하다. 식목일에 개별적으로나마 마당이 있으면 나무를 심고, 아파트라면 화분이라도 좀 들이면 좋겠지만, 여력이 안 된다면 책으로라도 아이와 나무 한 권(!) 심어보면 어떨까? (나무를 베어 만드는 책으로 나무를 사랑하라고 하면 너무 모순일까) 아무튼 자연을 주제로 읽기 좋을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책은 “쭈글쭈글 애벌레”이다. 아이의 눈으로 나비의 생애를 그려내는 책으로, 작은 풀잎 하나, 애벌레의 변화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고운 눈으로 생명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우연히 만난 알에서 애벌레, 고치, 나비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관찰하고 기다리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간다. 일러스트도 매우 상세해, 아이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 밥이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장들 속에서 분명 자연의 소중함을 만날 수 있고, '나'가 관찰하는 시선을 따라간다면 다양한 표현, 어휘 등을 익히는 것도 가능하다. 완전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정원과 나비의 생장 과정을 묘사하기 때문에 마치 잘 기록된 관찰일지 같다. 작은 화초를 키우거나 생명체를 키우며 아이가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이 되리라 생각하여,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화분 옆에 수첩을 가져다 두었다. 

 

우리 집에서는 일러스트를 따라 자연관찰도서를 찾아보며 실사 상태로 쐐기풀, 완두콩 줄기, 애벌레, 번데기, 공작나비, 쐐기풀나비 등을 관찰하며 독서를 확장했다. 여아들이 성장할수록 자연관찰도서를 점점 멀리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렇게 다정한 일러스트의 그림책과 연계하니 거부감없이 자연관찰 책을 읽어 더욱 좋았다. 장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밭이나 정원 등이 있으면 가장 좋고, 혹시 없다면 곤충박물관이나 식물원 등을 방문한다면 특별한 독후활동 없이도 아이가 자연의 소중함을, 생명의 귀함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 확장한다면 마무리로 환경관까지 방문하여, 나비가 오래오래 살 수 있는 환경을 이어나가도록 하면 정말 완벽한 독후활동이다!

 

우리는 주말농장과 생태공원, 지구과학관 등을 연계하여 매우 알뜰히 독후활동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아이의 최고 관심사는 “지구”로, 환경이 오염되어 지구의 온도가 5℃ 상승하면 지구는 정말 멸망하는지,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이었기에 우리에게는 더욱 알찬 독서였다. 실제 요즘 나비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으로 나비를 보여준 후, 환경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아이가 블로킹하며 나비 같은 작은 생명이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들어감에 일조하고 있다는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자연에서 쉽게 만나던 친구들을 이제는 만나기가 어렵다. 자연이 오염되며 점점 만나지 못할 친구들이 많아진다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통해 아이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면 그 걱정이 줄어들 수 있겠지? 많은 엄마가 이렇게 고운 책을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책의 일러스트를 따라 자연관찰 책을 같이 읽어요.

2. 할아버지의 농장, 식물원을 방문하고 집 근처 지구과학관에도 다녀왔어요.

3. 나비나 쐐기풀 등,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명을 일상에서 관찰해요.

4. 작은 생명도 귀해서, 우리가 잘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나누어요. 

(조금 더 큰 아이라면, 주인공처럼 자연관찰일지를 써봐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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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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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저는 00이랑 xx랑 꼭 같이 먹어줘야 한다는 속칭 '국룰'적 정서에 꾸준히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먹어'줘'야 한다는 표현부터가 벌써 뒷걸음질을 치게 합니다. '줘'라는 글자에서 남의 설렁탕에 다짜고짜 깍두기 국물을 부어놓고, 이게 제대로 먹는 거라며 껄껄대는 자들과 비슷한 악취를 느낍니다. (p.185)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웹툰을 보지 않아 들깨이빨이라는 작가님을 몰랐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 주변인 3명이나 “들깨이빨!”이라고 외쳐서 유명한 분임을 알았다. (죄송함돠)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간절히 읽고 싶었던 이유.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ENFJ(전 세계의 2~3%, 대한민국 1% : 말하는 직업, 작가나 디자이너 군에 많음)인 나는 분명 꿔보의 삶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도망치듯 휴직계를 내고 보니, 와 이거 뭐야! 혼자 식탁에 앉아서 노는 거 왜 이렇게 재밌지? (비록 꿔보테스트는 “활발한 활동가”로 판명 났지만) 나는 문득 꿔보로 사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작가님의 책을 만났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사람 나랑 비슷한 점이 꽤 있었다. 식자재 자체의 맛을 탐험하고, 통한 쪼가리, 계란 한 알에도 의미를 두고 바라본다. 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에 흥미와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스타일같다. 뭐 물론 다른 점도 많다.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채소를 “그나마” 맛있게 먹는다니! 그나마는 채소에게 붙을 말이 아니다. 채소는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라구요! 

 

서리태 : “나는 지금 건강식을 먹고 있다”라는 블랙푸드 특유의 플라시보 효과도 톡톡히 느낄 수 있죠.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날, 큰맘 먹고 손을 떨며 주문합니다. (P.45)

어쨌든 지금은 채소 맛의 광활한 스펙트럼을 탐험하는 게 무척 재밌습니다. (P.31)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꽤 많이 낄낄거렸다. 만화가들은 천재라는 “호적같이 쓰는 남자”의 말에 동의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대단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술술 풀어내는 문장력도 대단하다. 군데군데 그려진 그림도 재미있고, 레시피같지 않은 레시피들은 흥미롭다. (몇 개 따라 해본 것은 안 비밀)

 

“쓰고 보니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P.215)”

 

사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글을 쓰고 싶어 병을 앓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는 몰랐던 것 같다. 글이 좋아 글이 쓰고 싶은지, 좋은 글이 쓰고 싶은지, 글을 써서 다른 뭔가를 얻고 싶은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최근 식탁꿔보로 살면서 내가 꽤 행복한 사람이고, 어쩌면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작가님의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더라.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먹는 것, 책을 읽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그 모든 것이 “행복”이 주된 목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심플한 상태로 만들고 나면 그 모든 것이 더 명확해지는 데 말이다. 작가님의 글을 통해, 나는 명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까워진 느낌이다. 작가님의 '먹이'가, 나에게도 '행복의 도구'가 되어 기쁘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서리태 한 봉지를 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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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박유희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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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소녀에게 동전을 던져주던 사람들이 모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느라 심장에 손을 얹고 멈춰선 순간, 소녀는 이 땅에서 갈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을 강간한 이조차 오빠라 부르며 따라붙었던 소녀가 사람들 사이를 무연히 걸어갈 때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공범자가 된다. (P.120)

 

'책과함께'출판사에서 이 책을 SNS에 올리시며 “솔직히 조금 어려운 책. 그러나 영화광들은 환영할 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만 빨려드는 책. 영화광들뿐 아니라 근현대사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빨려 들어갈 책”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 맞다. 쉬운 책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100년을 드러난 주제, 표현이나 표상의 변천사, 이념이나 사상, 시대적 흐름까지를 짚어낸 책이 쉬우면 우리의 100년이 너무 가볍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지나온 100년이 급변의 세월이었던 듯, 우리 영화가 지나온 100년 역시 우리의 삶을 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100년의 세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담겨있다.

 

 

소녀 같은 눈망울 안에서 들끓고 있는 광기가 더해질 때 '엄마 김혜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엄마 이미지를 중층적으로 품으면서 모성의 이중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P.50) / 여성 캐릭터를 본질적인 모성성의 차원에서 포착하여 감정이 앞서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미지로 재현하는 관습은 법정영화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P.419) 

 

이 책을 읽은 후,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책에서 제시하는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등을 떠올렸을 때 가족을 제외하고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떠올리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가족이야 내가 워낙 밀첩히 닿아있는 부분이니 내 가족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 이후에 영화나 드라마, 책 등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가족을 떠올림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것이 단순히 '연습 된 뇌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제까지의 나라면, 지금부터는 '영화에 담긴 시대상과 이념의 학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보는 매체'였던 영화가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수많은 서사를 영상화한 매체'라는 인식변화를 준 것 자체가 매우 큰 의미가 아닐까. 

 

이제는 영화 한 편을 봐도 그냥 영화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 캐릭터들이 가지는 역할, 그 너머의 이념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는 내게 있어 '텔레비전'과 비슷한 존재가 아니라 '책'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플롯이나 만듦새가 관습적이어서 진부하든, 실제 사건 이상을 담아내지 못했든,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미국을 재현해온 역사에 의미 있는 변곡점을 드러내고 있다. (P.194) / 영화에서 각종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 영화에서는 결코 모호해질 수 없었던 '귀순'과 '잠입'의 구분, '국민'과 '간첩'의 분별 등이 어려워지면서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P.228) 

 

당연한 말일지는 모르나 영화는 시대를 담는다. 물론 책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고쳐 말하면 문화는 시대를 담는다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 한 편, 잘 쓴 책 한 권에서는 세상을 한 단락 만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받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가 지나온 길을, 우리나라에서 특정 단어가 지니는 의미가 변화해온 과정을, 시대의 이념이나 사상을 모두 만났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를 아우르며 '한국영화 100년'이라는 제목쯤의 다큐멘터리 한편을 본 듯 많은 이야기를 얻었다. 

 

며칠간 고전하며 읽은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책에만 몰두하여 다소 무시해온 '영상매체'에 대한 새 발견이었고, 읽어온 책들과 영화가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요긴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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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기가 싫어 - 달리고 싶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
브렌던 레너드 지음, 김효정 옮김 / 좋은생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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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겨야 할 유일한 상대는 '너 따위가 무슨 러너'냐고 비아냥대는 당신 머릿속 목소리다. (P.62)

 

“나는 달리기가 싫어♥” 뭐냐. 이 반어법적인 제목은! 

이게 내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이다. 그런데 그 뜻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운동을 몹시나 싫어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할 땐 조깅을 하는 나의 모순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덮으면서 생각했다. “와, 이 사람 뭐지? 글 왜 이렇게 잘 써?”

 

자. 이 책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달리고 싫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임과 동시에 “하루하루 삶을 성실히 살아가야 할 우리를 위한 가이드”라고 말해주고 싶다. 맞다. 이 책은 달리는 습관을 잘 기르기 위한 책인 것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자신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그 모든 것들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싫다면서 하트를 박아놓은 표지처럼, 이 책은 일단 “예쁘다”. 읽는 내내 삽입된 표들이 너무 예뻐서 읽으면서도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내용도 너무 쉽게 잘 풀어져 있어서 이 책을 덮을 무렵엔 나도 그럴듯한 러너가 될 수 있을 듯한 강력한 느낌까지 들었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P.40)”는 말에서 위로를 얻기도 했고, 주말 새벽 아이와 남편이 자는 틈을 타 동네를 달리(걸으)며 봄을 만끽하기도 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열심히 노력한 끝에 보상을 얻는다고 여겼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보상 일부는 노력하는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다. (P.128~129)

 

사실 나는 디스크환자다. 디스크가 증세가 심한 시즌에는 앉지도 못해서 서서 일을 하며, 사무실에서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고 서서 보고서를 살피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제대로 걷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휴직을 하고, 거짓말처럼 상태가 호전되었고, 요즘의 나는 다시 걷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뛰기도 한다. 노력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 견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P.69)는 작가의 말은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잘 뛸 수 있다는 말로 들려 많은 위로가 되었다. 

 

당신이 3등이건 3천 등이건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열광할 것이다. (P.102)

 

맞다. 내가 몇 등을 하는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또 얼마나 많이 뛰는 지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가 나만의 속도로 잘 걷고, 달리고 있는 것. 내가 나의 한계를 딛고 일어서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힘들었다면 일단 걷든 뛰어보라. 숨이 턱턱 막히면 힘든 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조금 달콤한 음료수 한잔을 마시도록. 세상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때로는 타인이 주는 위로보다 나 스스로가 주는 단맛의 위로가 더 클 때가 있음을, 달리기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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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과 어니스트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7
레이먼드 브리그스 지음, 장미란 옮김 / 북극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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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즐겨보지 않아도 낯설지 않은 몇몇 그림책들이 있다. 아마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 꼬마에게는 눈사람 아저씨보다 “코끼리와 버릇없는 아기”가 더 인기였지만, 레이먼드 브릭스의 책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특유의 따뜻함과 섬세함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따뜻함을 담은 작품이 바로 이 “에델과 어니스트” 아닐까? 

 

몇 해 전 같은 제목으로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라는 인사를 하며 한 우유배달부와 가정부, 가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공개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 만날 때보다 두 번 세 번 만날 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레이먼드 브릭스라는 대단한 작가님의 부모 이야기이기에 특별하게 느꼈지만, 만날수록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 이야기 같아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물론 에델과 어니스트가 겪는 상황은 우리 부모님과 다르겠지만, 모두 각자의 역사를 품고 가족을 일구어가는 과정은 같기에 더 찡하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매력이라면, 두 번째 매력은 영국의 현대사를 한눈에 만난다는 것을 꼽고 싶다. 영국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노동당의 집권 등 장면마다 런던의 풍경, 역사적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진격이나 히로시마 폭탄, 달 탐사선, 텔레비전, 전화 등의 출현 등 세계적인 역사의 순간들도 만날 수 있어 마치 현대사 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신문물을 만나는 에델과 어니스트의 모습에서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봤던 이 이야기를 만나며 몇몇 부분에 인덱스를 붙였는데, 에델과 어니스트가 헐빈한 신혼살림을 차리고도 신이나 우리는 부자라고 외치는 장면, 유리창이 다 깨지고 현관문이 나뒹구는데도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는 모습, 엄마의 마지막 모습 등이었다. 

 

개인적으로 책과 영상이 모두 만들어진 작품을 만날 때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영상물이 책보다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같은 이유로 나의 상상력이나 이해가 아닌 “설정된 이해”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에델과 어니스트” 역시 영상물도 매우 좋았으나 책이 나에게 주는 여운이 더욱 컸다. 사실 책보다 영상을 먼저 만나면 책을 읽을 때도 그 영상의 장면들이 복기 되기 마련인데, 그림의 잔잔함 때문인지 온전히 책에만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보통”의 힘을, 보통만큼의 행복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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