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오자와 다케토시 지음, 김향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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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해야 하는 일'에 쫓깁니다. 원래는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예정에 넣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쌓여가면 그 일은 때로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p.180)

 

오늘이 가득히 행복하다면, 단 하나의 고민이나 걱정이 없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처럼 마흔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휘청이고,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쯤 만나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3,500번의 죽음을 만난 호스피스 의사. 물론 그에게도 여전히 타인의 죽음일 테다. 그러나 그 죽음들을 바라보며 아마 그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게 무엇인지를 3,500번 본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그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내내 좀 울었다. 아니 정확히는 읽기도 전에 1년 뒤 오늘 날짜를 적으라고 할 때부터 눈물이 좀 났다. 나는 아직 못 이룬 것이 많은데. 아직 앞길이 구억구백만 리쯤 되는 어린애도 있는데. 그러나 이 책을 덮을 무렵에는 그래도 내가 꽤 많은 것을 이루고 누리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길이 구억구백만 리쯤 되는 어린애는 여전한 걸 보면 내 수양이 여전히 부족하구나.)

 

이 책은 내 삶이 1년 뒤에 끝난다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그동안 내가 이룩한 성취, 행복의 기준을 묻고 절망, 슬픔을 어루만지게 한다. 사실 이런 식의 책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뜬구름 잡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꽤 직설적인 편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소중한 사람을 만날 것 같냐는 질문은 칼에 베인 듯 가슴이 시큰했다. 언제인가 한 작가님이 앞으로 많아야 열 번 남짓 엄마의 김장김치를 먹을 수 있을 듯하다고 쓴 글이 선명히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느라, 가장 중요한 이들을 뒷전에 둔다.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건강할 때나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아무래도 일인칭 행복, 눈에 보이는 행복, 알기 쉬운 행복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일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버는 것, 남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사는 것 등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이들을 쫓게 되지요. (p.125)

 

이 문장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좋을 때 더 나를 돌보지 못하고 욕심만을 쫓으며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랄까. 그러나 후회는 짧아야 한다.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항상 무언가를 선택할 때 결정해야 하고, 아무리 고민을 거듭하여 더 좋은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때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은 남는 법. (p.100)”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나는 그 당시에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선택했었다. 그 과정들까지 후회하지는 말자고 내 마음을 도닥였다. 그러다 문득, 비로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다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도 났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사실 아직 미래를 기대할 자유는 남아있습니다. (p.152)

 

지금까지 인생에서 즐거웠던 일, 자신이 가장 반짝반짝하던 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것과 지난 과거에서 중요하게 여긴 일들이 마음속에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끝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p.201)

 

서두에도 거론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춘기다. 진짜 눈 깜빡하면 마흔이 될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 흔들리고, 여전히 꿈을 이루고 싶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런 내 모습을 괴로워했더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이 그런다. 쉰이 되어도, 예순이 되어도 그렇다고. 그러니 이루지 못한 것보다는 이룬 것을 보고 살고,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가진 것에 감사하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늘 고개를 끄덕이지만 뒤돌아서서 나는 또 흔들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명확해졌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곁가지를 쳐냈다. 굳이 하고 살지 않아도 될 고민을 몇 개 잘라내고 나니 (자르기까지는 힘들었지만) 머리숱을 친 마냥 속이 시원하다. 

 

우리의 삶이 사실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되는 경우도 세상에는 너무나 허다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것들이 참 부질없이 느껴진다. 맞다. 극단적 가정이다. 그러나 분명 그 가정은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하게 알게 한다. 

극단적 상상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생각. 사실 그것만 바라보고 걸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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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까, 짧을까? 길벗스쿨 그림책 21
이자벨라 지엔바 지음,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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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워~ 심심해~ 이제 뭐하고 놀지?

아마 많은 집 아이들이 한번쯤은 한 말일 것이다. 우리집 꼬마도 방금까지 재미있게 놀다가 5분정도만 공백이 생겨도 말한다. “이제 뭐하고 놀지?” 나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많이 제공한다고 노력하는 편인데도 그렇게 말할때면 생각해본다. 대체 아이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하고. 

 

그러다 이 책을 만났는데 정망 읽는 내내 아이랑 “극공”했다. 사실 시간의 길고 짧은 느낌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다소 걱정이 되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일러스트도, 내용도 너무 이해가 쉽게 표시되어 있어서 아이가 금방 알아듣고 재미있어 했다. 책을 읽은 후 나는 밥을 준비하고, 아이는 혼자 식탁에서 독후그림을 그리면서 “밥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 그러나 그림을 그리면 짧지”라며 대번에 응용까지 해내더라. 

 

이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책 표지에도 긴 시간이 지루한 어린이들과 하루가 너무 짧은 어른들에게” 라는 말이 적혀있어 읽기도 전에 몇몇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이지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었다. 나의 1분, 5분, 10분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할까.

 

요즘 아이가 시계를 배우고 난 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몇 시가 되려면 몇 분 남았다.”, “그런데 몇 분이 얼만큼이야?” 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굉장히 막연한 물음이라 난감할 때가 꽤 많았다. “유치원에서 우리집까지 걸어오는 만큼”, “돌체가 엄마 커피를 만들어주는 만큼” 등 아이가 알 수 있는 시간으로 빗대어 말해주곤 했는데 아이는 종종 헷갈려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잘못 알려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시간과, 날씨가 좋은 날 그 시간은 다른 시간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순간순간의 흐름에 대해, 또 우리의 시간에 대해, 시간의 개념에 대해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금도 아이가 묻는다. 엄마가 책 일기를 다 쓰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날 때마다 행복해진다. 나이를 먹을 수록 더 짧아질, 아이와의 시간을 알차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준, 깊고 짙은 책이다. 

 

 

※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아무것도 하지않고 1분을 가만히 기다려봤어요. (정말 길었데요)

2. 소리동화를 딱 1분만 들어봤어요. (시계를 쳐다봤는데, 시계가 빨리 움직였데요)

3. 시계장난감으로 1분이 몇개 모이면 5분인지, 

또 10분인지, 30분이 되는지 계산해봤어요. 

4. 우리의 길고 짧은 시간을 이야기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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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아저씨의 별난 만물상 정원 그림책
에밀리 랜드 지음, 김혜진 옮김 / 봄의정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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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더프 아저씨는 여전히 이런저런 물건 모으기를 좋아해요. 그것들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지요.

 

누구에게나 성역은 있다. 남이 뭐라든 내게 보물 같은 물건들. 나는 몽당연필이 그렇다. 중학생 시절 즈음부터 지금까지 모아왔는데, 종종 뚜껑을 열면 연필심 냄새와 함께 연필로 사각사각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쓰던 시절이 생각나서 막연히 행복해지곤 한다. 그런 나를 닮은 것일까. 잡동사니 마왕은 잡동사니 대마왕의 엄마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부작용(?)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원래도 작은 상자, 리본, 예쁜 홍보물 등을 좋아하는 녀석이 이 책까지 읽고 나면 더 많은 것을 쥐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잘 활용할 수 있어야 소중한 물건, 활용하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하면 쓰레기”라는 인식을 배우게 되었다. (맥더프 아저씨 고맙습니다.)

 

맥더프 아저씨. 이분도 나처럼 자신만의 몽당연필을 모으시는 분이다. 물론 그 영역이 방대하여 온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어진 선행들로 인해 버려지는 물건이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되고, 사람들은 모두 하찮게 여기던 물건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 환경이나 바이러스 문제 등이 가득한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내용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친근한 어투와 그림체로 편안하게 풀어냈다. 실제 환경오염을 생생히 보여주는 책도 물론 좋지만, 막연히 지구가 아프다고 끝나기보다는 한 칸 더 나아가 덜 버리는 방법, 덜 낭비하는 방법, 다시 쓰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물론 우리 아이들이 맥더프 아저씨처럼 뚝딱뚝딱 고칠 수는 없겠지만 자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재활용에 대해 교육하는 초석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은 후 우리 동네에 있는 '지구과학관'에 재방문하여 아이가 실천할 수 있는 지구 사랑법을 공부하였다.)

 

주제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엄마곰이 아니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일러스트다. 색은 딱 4가지. 흰 종이에 검정으로 그린 그림에 파랑과 갈색만으로 군데군데 채색을 했다. 그 단순함이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그려져 있어 그 물건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재활용될 수 있겠는지, 버릴 때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5세부터 스스로 분리수거를 하고 있어 꽤 많은 것을 척척 이야기했고, 잘 모르는 것은 함께 찾아보았다.

 

개인적으로 그림책이 꼭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림만 좋아도 되고, 재미만 있어도 된다. 분명 그 그림만으로도, 즐거움만으로도 아이에게 남기는 것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교훈을 지니거나, 아이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을 만나면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든다. 내가 부족한 엄마임을 알고, 같이 채워주시는구나 하고. 

 

재활용. 진짜 제대로, 잘 하려고 하면 참 어렵다. 사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 아이들이 잘 배워두어야 하고, 어른들도 함께 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 덕분에 나도 아이도 재활용에 대해,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하는 좋은 시간을 얻었다. 

 

많은 친구가 이 책을 읽어서 맥더프 아저씨네 동네처럼 대한민국 전체가 자원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면 좋겠다는 아이의 마음이 널리 널리 전파되길 바라본다. 

 

※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어떤 잡동사니들이 자원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요.

2. 맥더프아저씨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졌나 이야기해요.

3. 일러스트 속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보아요.

4. 일러스트 속 그림들을 어디에 버려야 할지 이야기해요.

5. 함께 쓰레기도 줍고, 분리수거도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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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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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 머무르는 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도 자아의 확장도 요원한 일일 겁니다. 벽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은 무작정 나를 죽이려는 존재가 아니며 그들과 함께 얼마든지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게 되는 날이 있을까요. (p.345)

 

이 문단으로 리뷰를 시작함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늘 단절, 철벽 등의 단어를 느껴왔는데 그것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민족적, 문화적 등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문단을 읽은 후에야 '선을 긋는 일본인'이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작년, 한 책을 읽고 “우리 깊숙이 들어있는 공통의 감정 중, 반일 혹은 혐일 감정은 아마 그리 낯선 일이 아닐 것이다. -@책과함께 #한국과일본은왜 의 리뷰 참조-” 라고 썼다. 리뷰 끝에 “이 한 권으로 모두의 사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듯, 지금도 한국과 일본은 평행선을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미움으로 등 돌린 평행선이었다면, 요즘은 너는 너, 나는 나. 같은 느낌이랄까. 일본의 참혹함을 겪은 세대들이 팔순이 되어 미움도 사그라든 것인지, 우리나라의 분골쇄신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의 미움보다는 새로운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자리에 채워야 할 것은 묵은 감정이 아니라, 올바른 마침표와 선한 경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지피지기를 제대로 실천한 책이다. 이 책에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가득 들어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교”가 아니라, “이해” 관점이다. 특히나 좋았던 점은, 단순한 현상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대중심리, 민족심리 등을 반영하여 그것이 끼치는 영향과 결과를 자세히 분석해냈다. 단순히 '먹방의 나라'와 '야동의 나라'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심리에서, 어떤 욕구에서 기인했는지를 제대로 풀어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는 것.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입니다. 각자의 영역에 선을 긋고 그 안으로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들과는 다른 방식이죠. (p.25)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을 위한 또 다른 모습을 내세우는 일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솔직하게 드러내는 한국인. 이러한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p.107)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하는 책 중,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쉽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와 유행, 그 요소들이 일상적이어서였을까. 재미있게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릴 때쯤 되면, 냉철한 어퍼컷 한 방에 얼얼해진다. 이런 사람들이 강의하면 일타강사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재미있는 주제를 미끼로 던지고, 핵심으로 낚아채는 기술이라니. 

그야말로 백전백승의 문장력이다. 

 

작가가 이 책이 무심히 보아온 문화적 요소들에 숨어 있는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 (p.99)가 되기를 바랐듯,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감정적이었고, 그들을 다소 곡해해왔음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독자의 깨달음은 다를 테고, 때때로 어떤 사례는 들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이 '옳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나도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문화가 옳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p.189)”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아는 것 아닐까. 너와 내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 그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문화의 맥을, 심리적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낸 책이다. 

 

'지피지기'는 작가가 도와주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백전불패'를 할지, '이해와 발전'일지 결정하는 것 역시 각자 몫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나아감을 위해 후자인 편이 좋겠지만 말이다. 

훌륭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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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인생문답 - 100명의 질문에 100년의 지혜로 답하다
김형석 지음 / 미류책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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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능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결국 떨어지고 말거든요. 그러면 만회하기가 힘듭니다. 천천히 능력을 갖춰가면서 올라가면 오래갈 수 있어요. 성장하는 기쁨도 누리고요. (p.118) 

 

이 책을 단 한 줄로 표현하자면, “천천히 읽으며 종종 눈물을 훔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 연휴가 끼어서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읽었는데, 그렇게 읽어 더 의미가 있던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아마도 내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종종 이 책을 뒤적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김형석 철학자님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 읽은 것 같다) 그동안의 책들도 다 좋았지만, 이 책은 현인의 말씀을 듣듯 그저 편안하게, 오늘 몇 장 읽고 내일 또 몇 장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나도 올해에는 책 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진 누구라도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31개의 문답을 뒤적여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10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러나 꼰대가 아닌 “오호 그랬구나. 그럼 이렇게도 생각해볼까.” 하며 따뜻한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주는 할아버지가 딱 이 책의 느낌 아닐까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정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조차 알 것 같은 그런 따뜻함.

 

인생은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까지가 내가 내 인생을 완성하는 길이에요. (p.29)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말고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우정을 나눠야 해요. (p.97)

 

사실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세수하며, 밥을 먹으며, 청소하며 여러 번 곱씹어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계산 없이 주는 마음과, 온전하게 받는 태도 모두가 중요하겠다고. 내가 가진 행복을 계산하지 않고 잘 퍼주는 것도 중요한데,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때 그것이 행복인지 알고 온전하게 받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잘 받아야 주는 사람도 더 행복해지고, 나도 더 잘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이래서 현인이구나. 이래서 현답이구나 하고. 그의 지혜가 몽매한 내게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것은 정말 깊은 생각이라서가 아닐까. 우직하게 책을 읽어온 이유가 이거다.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아주 조금씩이라도 키우기 때문에. 인생의 좌표로 잡아 온 '우공이산'에 김형석 철학자님이 몇 삽을 보태어 주신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길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내 인생의 잣대를 갖고 남을 평가하거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에요. (p.48)

 

매일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흔들리며 살아온 나지만 이제는 정말 좀 많이 괜찮아졌다. 이제야 헐벗은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고, 이제야 내가 가진 아픔을 스스로 물 위로 꺼냈으니 말이다. 괜찮다는 말로 덮어두기만 했던 나에게 이 책이 말한다.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라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고,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았다.  

 

 

추신) 당신이 올해는 책을 한 권쯤 읽어볼까 생각했다면, 이 책이 참으로 그럴듯하겠다. 책을 너무 오래 읽지 않아 읽을 자신이 없어도 되고, 이해력이 없어도 된다. 이 책이 당신에게 어린 시절 이후 다시 읽는 “컴백도서”가 되어도 되고, 올해의 마지막 책이 되어도 좋다. 일단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졌다면, 이 책의 목차를 펼쳐 제일 마음이 닿는 물음을 먼저 읽어라. 나머지는 이 책이 알아서 해준다. 책이 알아서 그 누구라도 천천히 편안하게 읽어놓고 때로는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문장이나 눈물이 울컥 차는 문장을 만나게 하는 마법을 부려줄 테니 당신은 그저 목차만 펼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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