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구를 망치는가 - 1%가 기획한 환상에 대하여, 2022 우수환경도서
반다나 시바.카르티케이 시바 지음, 추선영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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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의 머리말로 이 리뷰를 시작하는 것은 책을 읽은 후 이 말이 내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꽤 많은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편이기는 하나 정말 나의 복지가, 나의 자유가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저 빨대를 쓰지 않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의 행위를 벗어나 의식적으로 진짜 “웰빙”을 지켜왔던가. 그래서 오늘의 리뷰는 반성문이 될 지 모른다는 말로, 또 함께 진짜 더불어 사는 것을 생각해보자는 권유로 시작하고 싶다. 

 






오늘날을 지배하는 체계는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의 뿌리를 뽑아내는 일을 진보의 길이라고 간주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일이 오늘날의 '발전' 모델에서 가장 폭력적인 측면으로 자리 잡았다. (p.44)

 




저자를 급진주의자라 불러야 할지 보수주의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저자는 극과 극, 전혀 다른 방향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녀는 둘 다라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이며, 그것을 전파하는 강인함은 급진적임에 가깝다. 사실 환경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나의 시야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인류가 만나게 될 심각한 미래에 대해 서늘함이 들기도 했다. 

 


진정한 지성, 진정한 종자, 진정한 식량, 진정한 부, 진정한 자유의 부활은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자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자각할 때 우리의 상상력을 못 쓰게 만들고 우리를 노예로 전락시킨 1퍼센트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p.53)

 


그렇다면 그 1%는 누구인가? 맞다. 금융이고 기술이다. 물론 조금 보태자면 자연이 인간의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으로 착취하고 있는 일부 금융과 기술로, 우리에게 깊숙이 교육된 기계론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잠재력을 축소해 모든 자연이나 인간을 “금융의 원료”로 환원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정체성을 바로잡으면 기술과 금융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공상과학에서 늘 이야기해왔듯, 화성 등 “지구의 대체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 책을 읽으며 다소 불편한 마음을 느낄지도 모르고, '빌런'처럼 거론된 몇몇은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소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사실 어릴 때부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언제인가 지구가 그 생명을 다하면 화성 등의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만큼 과학이 발전했으리라고 학습 당해왔다. 그러나 지구가 목숨을 다한 시점에 인류가 살아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또 다른 행성은 지구인들에게 자신을 내어준다는 보장은? (만약 내가 지구라면 그 행성에 카톡을 보내줄 것 같다. 나를 이렇게 만든 빌런들이 너에게 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시 한번 우리가 지구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나와 자연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 역시 재화로 평가되고 있음도 씁쓸했고. 


 

나는 '보호주의'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구, 가정, 가족, 문화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생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있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p.223)

 


이 문단을 풀어보자면 지구, 가정, 가족, 문화를 보호하는 것을 나의 삶을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탱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내가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살아가려면 지구를, 가정을, 가족을, 문화를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냐고? 그 당연한 것을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을 너무 쉽게 믿고 너무 쉬이 배워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와 같은 방향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와 지구의 상관관계만큼은 다시 정립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해졌다.

 




자. 이제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하는 나의 당부와 함께 질문을 하나 던진다.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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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는 관성 - 딱 그만큼의 긍정과 그만큼의 용기면 충분한 것
김지영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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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P.103)

 

솔직히는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읽다 보니 사실 그 말이 그 말 같고, 다 비슷한 말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매일 쉬지 않고 걷는 삶과 가끔 뛰더라도 종종 멈추어 쉬는 삶.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일 뿐. 그러니 오늘이 혹시 그런 날이라면 오늘 당신,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p.143)”라는 말을 읽다가 울어버렸다. 늘 “오늘 걷지 않으면 뛰어야 한다”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정말 매일매일 부지런히 걷던, 때로는 경보라도 하듯 숨차게 걷던 내게 남은 것은 디스크뿐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 멈춰 있는 것이 종종 불안했는데. 마치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나를 달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도 된다고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내게는 바람이 차다. 

아무래도 나의 봄은 좀 더 더디게 오려나보다. (P.30)  

 

 

돌아보면 나란 아이는 참으로 꾸준했다. 아니 좋은 말로는 꾸준하고 나쁜 말로는 징글징글하다. 뭘 하나 좋아하면 미련하게도 놓지를 못한다. (이놈의 책도 글씨를 읽을 수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한결같다. 한때는 이것으로 밥을 벌어 먹고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해 꺼이꺼이 운 날도 있었으나 나도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그저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둘 때 아름다움을) 취미도, 사람도, 옷도, 성향도 참으로 한결같아서 사실 나는 휴직을 결정하고 마지막 근무를 하던 날 아무와도 인사를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상사의 말도 몸이 안 좋다며 거절했다. 솔직히는 내일의 나를 만날 자신이 없어서였다. 출근의 관성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회사에 가지 않는 내 모습이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이 되니 아무렇지 않더라. 그저 커피도 맛있고, 햇살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쳇바퀴를 벗어나 진짜 사람답게 사는 길을 향해 걸을 준비를 한 것 같다. 

 

작가는 말한다. 멍때리는 것도 건강에 좋으니 죄책감은 내려놓으라고. 시간에도 여백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지금의 나처럼 이래저래 놀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나의 단단한 행복을 위해 내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고작 커피 한 잔으로도, 고작 책 한 권으로도, 고작 햇빛 쐬기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며 더 잘 놀아보기로 했다. 뭐 어때. 

 

이 “뭐 어때”라는 말이 딱 이 책의 느낌이라고 하면 작가님이 섭섭하실까. 그러나 내가 느낀 이 책의 감상은 엄마가 아닌 이모다. 엄마의 잔소리보다 조금 더 유하고, 조금 더 느슨하고 한발 물러서 있는 그런 것. 이런 류의 다른 책에 비해 작가는 잔소리를 덜한다. 대신 그래도 괜찮아,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문장이 많다. 그래서 편안하게 읽어지기도 하고, 작가가 묻는 말들에 그저 잠시 시간을 내어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도 편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 말은, 작가의 말을 빌려 적어보려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 새날에 내어줄 심신의 공간을 '버리기'를 통해 미리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비는 시간은 많고 불필요한 만남은 적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없다. 머지않아 분명히 올봄, '진짜 봄'을 그리며 오늘도 먼지 쌓인 집과 마음을 쓸어 담는다. (P.177)

 

맞다. 내 쉼의 시작이 나였든, 타의 의도였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정말 온전히 내가 쉬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기회를 통해 버릴 것과 취할 것이 분명해지니 이보다 더할 나위는 없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오늘을 더 천천히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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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 당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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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실은, 가스라이터는 한번도 당신의 친구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p.268) 

 


이토록 자극적인 문장으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함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혹시라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으면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부디 하루라도 빨리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장을 택했다. 사실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다만 받아들이지 못할 뿐. 

 


우리가 그들의 가스라이팅을 쉬이 가스라이팅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들은 당신이 괴로워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러나 증명하기엔 불충분할 정도로만 괴롭힌다. (p.117)” 그래서 스스로도 이게 정말 가스라이팅인지, 내가 가스라이터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헷갈려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 반복적으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 맞을까? 그 선상에서 생각해보면 결론을 내는 일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이 책을 쉽게 읽지 못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도 가스라이터일까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열었고, 이 책을 덮을 때에는 이 사람은 가스라이터이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딱한 영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내가 이 말을 굳이 적는 이유는, 사실 대부분 가스라이팅에 노출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특별히 나약한 누군가만 당하는 일도 아니고, 특별히 사악한 누군가만 가하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모두 가스라이터가 되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그게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을 더욱 권하고 싶은 이유는 구성이 너무나 좋다.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굳이 차례대로 모든 장을 읽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이유를 너무나 절절히 알겠더라. 감정적 호소에서 전문적 지식까지를 모두 담아냈기에, 정말 누군가에게는 한줄기 빛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던 내게도 저자는 계속 말했다. “stop. 너 자신을 위해서 이제는 stop.”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고 당신의 감정을 인정해줌으로써 이해받는다는 기분이 들도록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터는 당신에게 얻을 게 있을 때에만 사과한다. (p.28)

 


가스라이팅에서 우리는 “후버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당신이 멀어진다 싶을 때, 가스라이터가 당신을 다시 흡입하는 방식을 묘사하는 말이다. (p.69)






 

만약 가스라이터를 향한 애정이, 가스라이터로 인한 괴로움보다 큰 상태라면 이 책은 다소 아프게 읽힐 수도 있다. 저자는 끈임없이 그 덫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로움이 즐거움보다 큰 관계라면 당장 아플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벗어나야하기에, 치유되어야 하기에 이 책이 던지는 쓴소리는 약이 될 것이다.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이라도 든 채 이 책을 찾은 것이라면, 꼭 그 약을 먹고 더는 아프지않기를 바란다.

 


책의 말미에 치유법이 담겨있는데, 이 파트의 소제목이 “당신 스스로를 도와라”였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도울 생각이 없을 때 주변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그것은 마음에 닿지 못하기에 이 소제목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파트는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꽤 다양한 치료법을 담고 있기에 각각에게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리라 생각된다. 우리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각기의 성향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고, 우리가 맺는 관계들도 과거의 그것과는 점점 다른 양상으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을 한가지는 “나를 도울 절대적 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김혼비 작가가 한 말처럼 누구에게도 늦지 않게 이 책이 건네져야 하는 이유도 아마 그 점에서 일 것이다.  

 


세상에는 분명 다양한 가스라이터가 존재한다. 그들은 때때로 선의 얼굴을 쓰고 있고, 내게 필요한 것을 제시할 때도 있겟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신이 그들을 참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p.252)”는 말을 부디 그냥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이 책이 쓰지만 좋은 약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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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대화법 -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소통의 기술
임정민 지음 / 서사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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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목적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상대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고 했듯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말로 표현하자. (p.128) 



 

어른의 대화법. 사실 책 제목을 보고 걱정이 먼저 들었다. 과연 나는 어른의 대화를 하는가,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책을 읽다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금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하는 문장에서 섣불리 '예', '아니오'를 대답할 수 없던 망설임이 나의 시작이었다면 이 책을 닫으면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이 책이 내게 준 효과는 분명한 것 아닐까. 

 


사실 우리는 수많은 마음 도서에서 '나'를 찾으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나'를 찾고 싶지 않아 안 찾는 것일까? 아니. 못 찾는 거다. 사실은 나를 제일 찾고 싶은 사람은 나다. 그런데 몇몇 책은 굉장히 모호한 말로 나를 찾는 법을 제시한다. 아. 뜬구름이여. 반해 이 책은 보다 세분된 개념을 제시해준다. 부모 자아(P), 어른 자아(A), 아이 자아(C)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이 꽤 명확해서 순간순간 내 마음이 어디에 치우치는지를 꽤 많이 생각했다. 타인의 언어나 행동에서도 '아 지금 저 사람이 아이자아구나. 이런 마음으로 한숨 기다려주자'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양육 태도와 성향을 비교해둔 부분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특정 문장이나 말로 이 부분을 다 옮기기는 어렵지만, 나의 성향이나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또 순간적 상황에서 PAC을 생각해본다면 아이와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꽤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은 다 다른데, 부모·자식인들 어찌 같을까. 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가장 객관적이기 어려운 아이와 나를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한 칸 띄우기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르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상호보완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다름을 대하는 소통방식 때문에 부딪히고 싸우는 일이 많다. (p.21)

 



사실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권하기 제일 힘든 책이 실용서적이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무리 좋았어도 타인에게 가서 닿지 않으면 그저 문장 쓰레기가 돼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히 이 책을 추천해보자면, 비대면으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게 많은 요즘 특히 도움 될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오해도 많아질 수 있는데, 이를 현명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을 많이 제시해주었다. 저자는 원래도 유명한 소통전문가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요즈음의 소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한걸음 물러선 느낌의 코치라 더 좋았다. 사실 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채 소화를 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가볍게 얹어주는 느낌이라 훈수나 충고라기보다는 “도움” 느낌이랄까. 

 



 

누군가와의 소통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만약 어느 외딴섬에서 혼자 산다면 우리는 사람과 소통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을 잘해야 할 이유도 없다. (p.63)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뒤돌아 후회할 수도 있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늘 경계하자. (p.128)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소통의 기술”. 어쩌면 우리가 가장 간절히 바라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생각해본다. 나도 타인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감정을 조금 내려놓기. 이왕이면 긍정에 가까운 단어들을 찾아 말하는 연습을 하기. 이렇게 하나씩 구체화해간다면 나의 언어는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여전히 휘청이는 나의 삶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외딴섬에 살지 않기에 나 자신도 고슴도치가 되지 않기를, 고슴도치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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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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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수집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것의 상실은 문명 쇠퇴의 조기 경보일 수 있다는 정신이다. (p.65)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묘했다. 책을 불태우다니! 물론 상징적인 말이겠지만, 늘 져버린 문화도 문화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내게는 참 어려운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때로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 나는 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과서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 한다.”며 몇몇 사례들이 가지는 매혹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이 책을 기록한다고 말한다. 사실 역사는  “승리해서 기록물을 후세에 남긴 이들”의 관점이 많지 않나. 그래서 '파괴'된 이면은 만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책을 좋아한다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이다혜 작가님의 서평은 이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격정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물론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미의 격정은 아니지만. 문서와 도서관이 보존되거나 파괴된 역사속에서 어떤 문화는 보존되고 어떤 문화는 파괴된다. 그리고 그 파괴 안에는 물리적인 굴복도 부족하여 정신이나 사상까지 굴복시키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싶은 잔혹함이 담겨진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때때로 아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문경새재의 칼자국난 나무들을 떠올렸다면, 단 한명이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가치는 그러한 수집품들을 지금 대학도서관들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기관들 사이에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상인들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것들은 학생들에게 연구할 원자료를 제공하고 학문의 생산성을 높이며 교육 기회를 풍성하게 한다. (p.226) 

 

 

 

도서관과 기록물을 파괴하는 동기마다 사례는 각기 다르지만, 특정 문화를 말소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p.246)

 

 

 

도서관, 서점과 신문사 본사 파괴는 “분명히 타밀 문화에 대한 조적적인 공격”이었다. 한 타밀 정치 단체는 스리랑카 경찰에 의하 타밀 도서관 파괴가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p.261) 

 

 

 

우리의 일상생활이 갈수록 디지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의 보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 역사의 통제와 사회의 기억 보존은 누가 책임지게 될까? 지식은 민간조직이 통제하면 공격에 덜 취약할까? (p.310)

 

 

 

사실 이 책을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사색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록이 가지는 의미, 깊이를 생각했고 오늘날 “디지털기록물”들이 가지는 손쉬움과 단편성을 생각했다. 마치 그것은 고서와 오늘날 글들이 가지는 깊음의 다름같은것인가. 혹은 디지털 기록물에 대한 나의 편견일까. 가벼운 글을 싫다고 말하면서, 굳이 어려운 단어를 쥐어짜서 쓴 듯한 글은 더 싫다는 나의 치졸함인가. 이런 고민을 내내 하며, 그 와중에도 디지털로 생각을 기록하는 나의 행동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남겨진 문장의 깊이를 실감하면서도 가벼운 말을 내뱉듯 타자를 치는 나는 무얼하는 인간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기록물들은 태어나고 죽고를 무한히 반복중이다. 도서관이 타서 사라지듯, 수조수만개의 디지털도서관(개인사고라고 해두자)는 불에 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이 언제까지 “지식과 정보의 홍수”라고 불릴지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것은 그것이 언제 “범람”하는 것인가이다. (사실은 이미 범람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아프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기록물들에 대한 인지가 없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죽어서 이름이 아닌 “흔적”이나 “댓글”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가.”하고. 물론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아득한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책의 힘을 아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귀하게 기록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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