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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댜틀로프는 규율이 엄격한 사람이긴 했으나 맡은 일은 확실히 수행했다. 이것이야말로 상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이었다. (...) 그의 기억력은 그가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아주 소중한 자산이었다. (P.118)
지금 도쿄에서는 32회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보통이라면 세계적 축제로 불리는 올림픽이 즐거움보다는 우려와 불안의 시선이 많은 까닭이 코로나19 단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끝없이 터져나오는 스캔들과 비리, 뻔뻔한 정치놀음, 그리고 방사능.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는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역인 후쿠시마에서 열리고,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식자재가 사용된다고 하니 선수들을 넘어서 전 세계가 불안의 시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최근 후쿠시마 원전에 사용된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뉴스에 분노했던 사람이기에 이번 올림픽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거둘 길이 없었다. 자연재해로 시작되었으나 결국은 인재가 되어버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닮기도 하고 닮지 않기도 했다. 각종 안전장치가 차단된 상태에서 무리한 실험을 강행하여 중대사고 된 체르노빌과, 자연재해로 시작되었으나 설계기준 초과와 극한 상황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완벽한 실패를 맞은 후쿠시마. 하필 후쿠시마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체르노빌 원전에 대한 책을 읽으며 더 생각이 많았떤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상단에 따넣은 문장은, 사실 매우 화가 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맡을 일을 충실히 한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의 말을 충직히 따르고, 진급을 위해 무리한 실험을 강행한다. 말그대로 말 잘듣는 개 하나와 욕심에 눈 어두운 몇몇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에 분노와 복잡한 마음이 오간 것은, 어쩌면 지금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치권 뉴스를 보다보면 코미디보다 더 웃긴 상황들을 많이 만나는 데, 이 상황들이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제3의, 4의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리라는 보장이 없을 듯 했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침묵을 지킨 것도 오제르스크 패턴을 따랐다. 1986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니콜라이 리시코프, 그리고 모스크바와 키예프에 있던 그 아래 관료들은 햇재난 사고를 다룰 때 담습해야 할 모델이 있었고, 사고의 공표, 아니 이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과 관련한 선례도 있었다. (P.241)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부터 500KM 어진 곳에 살았으나 결과적으로는 간접적으로 피복을 당한 작가는, 현대판 폼페이인 프리퍄트를 여행하며 체르노빌에 대하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 먹었고, 원자 폭발부터 이후의 조치들까지를 담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여러번 마음이 답답했고, 나머지 원자로가 함께 폭발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떠올라 먹먹해졌다. 덤덤하지만 분명한 어투로 이어가는 참담한 사고 이야기. 그러나 이 안에는 많은 이의 희생이 들어있고, 소수의 위선이 들어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이들의 희생이 들어있고, 결코 반복되지 않아야 할 탐욕의 교훈이 들어있다.
사실 비교적 어려운 주제와 달리 스토리구성이나 전개가 매우 탄탄하여 책을 읽는 내내 호흡이 끊기지 않았고, 책을 읽다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몰입력이 좋았다. 생각보다 너무 잘 읽혀 마치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리뷰를 쓰려고 다시 책장을 뒤적이면서는 차라리 이게 진짜 소설이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시큰해졌다.

세상은 더 커졌지만 더 안전해지지는 않았다(P.467)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체르노빌의 재앙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죽은 땅이 채 수습조차 되기 전에 일본에서는 후쿠시마에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관리 인력 기강이 낮았고, 인력의 부족함, 제도적 결함, 자연재앙 등과 합쳐서 일어난 사고였으나, 그 후의 처리는 체르노빌과 비교하여 결코 달라진 게 없음을 깨닫게 한다. 빠름만을 외치는 사회, 이기심으로 둘러쌓인 등 세상은 더욱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세상은 더이상 이런 유사사고를 겪을 수 없다. 절대 겪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책을 읽어야한다. 모르는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 적어도 우리의 기본생활권을 일부의 권력자들에게 빼앗기지 않기위해서는 알아야만 한다. 지금도 코로나19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아마 이 외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실 독서가 꼭 무엇인가를 남길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저 읽고 즐거워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묵직함을 남기는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소비한 시간이, 내가 책에 소비한 돈이 엄청 값지게 이용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나는 매우 부족하고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이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 조금 더 알고, 조금 나아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체르노빌 히스토리. 매우 값진 독서였고, 묵직한 생각을 남기는 책이었다.
이 묵직함을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도 느끼기를, 자리에 대한 책임과 진정성을 가지고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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