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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이 푸른 그림자도 몇 시간 뒤 다시 떠오를 태양 아래 사라져 버리겠지. 오래 전 네가 내 마음에 남겼지만 결국 사라져버린 아릿한 멍 자국처럼. (p.31)

오랫동안 즐겨 왔던 허세가 하나 있다. 바로 문화예술. 아는 것도 없고 잘 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도 그림을 좋아하고, 음악을, 공연을, 책을 사랑해왔다. 그 중 그나마 자신 있는 게 책이라 갈증을 가장 많이 채워왔던 게 책이기도 하고. 한 달에 두 어 권은 꼭 문화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마치 핸드백을 사듯, 립스틱을 사듯- 그림을, 음악을, 예술을 읽는다.
이 책은 표지부터 그런 나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일단 <혼자>라는 단어가, <북유럽>이라는 단어가, <천천히>라는 단어가 제각기 나의 가슴을 울려댔고, 푸른 표지가, 또 손으로 얽기 설기 그려놓은 그림이 마음을 퉁퉁 울렸다. 한달 넘게 혼자 1박2일 여행을 떠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내게 이 책은 숨통 같았고, 쉼표 같았고, 눈물 같았다. 그렇게 나는 책상에서라도 자유를 만났다.

- 한자리에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빙하는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 위대한 힘의 출발점 앞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p.216)
- 이 서정적인 도시가 대 화재로 인한 폐허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잿더미 위에 다시 피어난 아름다운 꽃. (p.243)
북유럽이라는 장소가 그런 걸까, 저자가 그렇게 서정적인 사람일까? 별 것 아닌 풍경도 저자의 펜 끝에서 아름다움으로 피어났고, 그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이 겨울 밤, 나에게 전해졌다. 차갑고 쓸쓸한 겨울 밤에 따뜻한 방에 앉아 이렇게 감미로운 책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일도 많고, 생각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그림을 탐미하고, 음악에 빠지는 것일까. 문득 이렇게라도 음악과, 책과, 맥주와, 그림과, 문장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눈물 나게 감사하다.

- 그동안 이 도시는 수없이 많은 아침과 저녁을 맞이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이 도시에 찾아온 무수한 파편 중 한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그 아름다운 여름밤 속에 내가 있었다. (p.258)
이 문장에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참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더라. 그래, 내 삶 속에서의 오늘 하루는 무수한 파편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만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그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지는 내 마음에 달린 것임을 또 잊고 살아왔다. 또 바보같이 놓치고 살아왔다. 누군가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마음으로 얼마나 챙기고 있는지 모른다고, 그 세세한 게 뭔지 물어보면 구차해서 말하지 않을 거지만, 마음으로 가득히 챙기고 있다고. 그 무수한 파편들을 하나하나 보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그 아름다운 시간 속에 내가 있었음을 몰랐던 어리석음이 안타깝고 속이 상하다.
오늘부터라도,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순간을 가득히 사랑하며 살아야지. 혼자, 천천히 혹은 둘이, 셋이, 여럿이, 천천히 혹은 빠르게 살게 되더라도- 그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아야지.
참, 아름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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