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와 발리에서 한 달 살기
김승지 지음 / 블루무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는 “엄마 손 꼭 잡고 절대 떨어지지마” 라는 말 대신, “엄마가 지금 무서워서 그런데 엄마 손 좀 잡아주겠니” 라고 하면 아이들은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고. 물론 엄마가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장기여행에서 아이는 훌륭한 동반자이자 친구가 된다. (p.83)
이 구절을 읽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이의 온기가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나이기에, 아이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의지할 곳이 되어주기도 하는 철부지 엄마로써 가슴이 찡했기 때문이다. 이 문단에서 “장기여행에서” 라는 말을 빼고 읽어보라. 그렇게 읽어도 충분히 말이 된다. 여행뿐 아니라 우리의 삶 역시, 아이는 분명 동반자이자 친구다. 아 문장을 읽은 후, 저자의 글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한층 따뜻하고 부드러움으로 느껴졌다.

- 몇 걸음 걷다가 간신히 머리만이라도 비를 피할 곳이 나타나 잠시 멈춰서 기다리기로 했다. 덩굴이 길게 내려앉은 좁은 도로에 라이트를 켠 차와 오토바이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플립플롭을 신고 간 탓에 두 발가락에 힘이 꽉 들어가고 다리 뒤쪽은 흙탕물이 튀어 엉망이었지만 매력 가득한 그 길은 너무 낭만적이고 멋있었다. 갑자기 내린 장대비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행복이 북받쳐 올라 조증 환자마냥 목을 젖히고 껄껄 웃어댔다. 여유로운 여행이 주는 우연이라는 선물, 장기여행의 이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p.158)
아, 이 말 너무 좋다! 정말이지 나는 이 부분을 읽다 말고 혼자 소리 내어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라. 내리는 장대비를 맞아본 기억이 있는가? 있었다면 얼마나 과거의 일인가? 또 그 비를 맞으면서 웃은 적이 있던가? 특히 여행길 가운데서 멈춰서 비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여행 스타일에 가능한 일인가? 이 모든 물음에 대부분은 “no”를 택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사람의 여행은 국내든 국외든, 마치 다시는 못 올 테니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고 갈 것이라고 다짐이라도 한 듯 꽉꽉 채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그 공간을 즐기기보다는 “인증샷”만 찍고 돌아서는 것이 흔한 일이다. 아이가 없을 땐 나도 그랬다. 이 타국을 언제 또 오겠냐며, 혹은 이 지역을 언제 또 오겠냐며 꽉 찬 일정을 힘겹게 소화했다. 그래서 돌아보면 그 장면만 마음에 남을 뿐, 그날의 감상이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이야기는 완전히 그 곳을 즐기고, 마음을 그대로 남겨두고 온 이야기다. 어쩌면 이게 진짜 여행이다. 그들이 나눈 대화처럼, 정말 3박 4일이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행복이었을 테다. 그래서 더욱 특별한 문장으로 느껴졌다.

최근 아이를 데리고 영덕여행을 갔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 보니 해맞이공원을 다 걷지도 못했고, 해변도로 길을 완주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느리게 걸으며 비 오는 바다를, 나무 위의 달팽이를 구경했다. 아이는 우산을 쓰고 뛰어들어간 “목공 체험장”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아이가 만든 것은 평소에도 몇 번이나 만든 평범한 목걸이였음에도, 아이는 “비오면 뛰면 안 되는데, 엄마가 뛰었어요. 나 비 맞아봤어요” 하고 어린이집 선생님께 자랑도 했다고. 아이의 말에서도 행복의 포인트를 엿볼 수 있다. 원래는 뛰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엄마랑 해서 좋았다는 것. 원래는 맞으면 안 된다고 하는 비를, 엄마랑 맞았다는 것.

이 쨍한 색감의 책에서(사실 책으론 흔치 않은 형광 표지다.) 난 파스텔톤의 햇살을 얻은 기분이다. 그 끈적한 더위의 “더운 나라” 소식이 아닌, 바스락대는 호텔 침구에서 느끼는 햇살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물론 나는 당장 발리를 여행할 계획이 없어 감상적인 포인트로 이 책을 읽었으나, 만약 당장 발리를 여행할 사람이라면 정말 다양한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을 책이다. 발리 유명 학교의 서머스쿨 입학정보부터, 예산이나 숙소 등의 이야기와 마켓이나 약국 등의 생활정보, 서핑 등의 즐길 거리, 요가나 마사지 등 엄마를 위한 정보까지 꽉꽉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을 가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가며 필요한 정보든 다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문득, 아이와 이렇게 훌쩍 한 달을 떠날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이 부러움에는 시간적 여유나 금전적 여유 등이 다 포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부러운 것은 그들의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아무리 돈이나 시간이 있어도, 마음을 낼 수 없는 자는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발리에서한달살기 #김승지 #300만원 #블루무스 #앤의서재 #책속구절 #책속의한줄 #책스타그램 #독서 #책 #책읽기 #리뷰 #리뷰어 #서평 #서평단 #책읽어요 #책으로소통해요 #북스타그램 #소통 #육아 #육아소통 #책읽는아이 #책으로크는아이 #찹쌀도서관 #딸스타그램 #책으로노는아이 #책속은놀이터 #찹쌀이네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