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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빠진 로맨스
베스 올리리 지음, 박지선 옮김 / 모모 / 2023년 9월
평점 :

그는 “내일 아침에 나랑 아침 먹을래? 혹시 또 모르지….”라고 했다. 아침 데이트를 신청하는 건 매우 의미심장했다. 그것도 밸런타인데이에. (p.8)
레그는 “로소. 이쪽은 카터. 카터, 여긴 로소. 카터, 로소에게 술 한 잔 사주지 그래? 제대로 대접받을 만한 여자야”라고 말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카터는 여전히 레그의 말을 믿고 있는 듯했다. 그가 밸런타인데이 점심 데이트에 미란다를 데려가려는 레스토랑은 메뉴에 가격이 쓰여 있지 않고 가장자리에 유약으로 광을 낸 접시를 사용하는 그런 곳이었다. (p.25)
“언제든지 날 데려가. 내가 가짜 남자친구 역할을 훌륭하게 해줄 테니. 턱시도 입을 구실이 생겨서 좋기도 하고.” 조지프는 이미 현재 제인의 삶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았다. (p.35)
여성 수목 관리자로 일하는 털털한 미란다, 작은 상점 직원인 소심한 제인, 당당하고 잘 나가는 라이프코치인 시오반은 모두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다.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닌, '완벽하게' 다른 세 여자는 우연히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밸런타인데이에 바람을 맞았다는 것. 그것도 조치프 카터에게.
「셰어하우스」로 데뷔부터 주목을 받았던 작가, 베스 올리리의 신간인 『내가 빠진 로맨스』는 세 명의 전혀 다른 여자들이 번갈아 등장하며 쉴 새 없이 이야깃주머니를 풀어놓는다. 책의 초반에는 세 여자가 조지프에게 바람을 맞는 순간, 그와의 연애감정이 싹튼 순간 등 섬세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나는 이 부분들을 읽으며 “이거 완전 망할 놈이네”를 여러 번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넘어진 놈 버리고 가는 놈”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고 움츠린 제인에게 하는 행동에서는 화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후반부로 흐르며 나는 그를 “망할 놈”이 아닌 “모자란 놈”으로 부르기로 했다.
'혹시나' 하며 상상했던 것들과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펼쳐졌던 이야기들이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가기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사실 조금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생각을 했음에도, 『내가 빠진 로맨스』의 후반부는 반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눈뜨고 코 베이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나는 결말을 어느 정도 상상했음에도 “헐”과 “아이코”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다른 여자도 있고, 자신을 바람맞히기도 한 그를 버리지 못한 마음들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내가 빠진 로맨스』는 로맨스 소설임에도 미스터리소설 못지않은 반전과 빠른 전개를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로맨스 소설 특유의 섬세함과 빼어난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 책을 덮은 후 내용을 돌아보면, 정말 단 한 줄도 그냥 쓴 문장이 없었구나 싶어진다. 480페이지, 로맨스 소설치고 꽤 두꺼운 책임에도 군더더기 없이 완성도 높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빠진 로맨스』의 모든 주인공이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는 점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각자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빛을 향해 나아갔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 빛나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 빠지기 좋은 계절, 그 누구라도 풍덩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내가 빠진 로맨스』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아!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영화보다 책이 더 재미있다. 책에는 상상력의 한계가 없기 때문! 그러니 부디, 영상이 제작되기 전에 이 책을 꼭 만나보셔라. 주인공들부터 서브 캐릭터들까지 매우 특징적이고 매력적이라 영화로 제작되면 너무 재미있겠다, 생각했더니 이미 소니 제작사에서 영상화를 확정했다고 한다.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은 다 똑같다!)
자,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소니보다 빠르게 『내가 빠진 로맨스』를 만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