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일에 세번은 수원에서 경수산업도로를 타기 위해 지름길을 지나간다.
빠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이유는 통행료 내기 싫어서이지.
저수지를 지나 산 하나를 넘어가는 자그마한 도로인데 대충 8키로는 더 되는, 산길이라 더 멀리 느껴지는, 풍광 아주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딱 맞는,개나리-진달래 울창한, 어쩌다 차 한대 지나가는, 화사한 햇살에, 따사한 봄바람에 나릇해지는, 멀리 아주 멀리 고속도로가 보이고, 인가 하나 없는, 둘이 밥 싸들고 가기에 좋은 머 그런 곳이다.
해가 지면?
그래 별이 보인다. 도시의 백야는 여기선 더 이상 없다.
'칠흑 같은 밤' 이다.
하이빔도 별 무소용이다. 수십미터 이상 똑 바로 이어지는 도로가 없으니까.
나는 1시경에 이길을 지나서 퇴근한다.
처음엔 누군가가 코를 골았다.
옆자리, 뒷자리, 물론 트렁크에도 아무도 태우지 않았다.
시골길에 심기가 불편해진 소나타의 삐꺽임이겠지.
아니면 졸다가 내 코고는 소리에 내가 깬걸까.
그러고서 몇번을 더 산을 넘은뒤.
하이빔 속으로 등이 완전히 굽은 할머니가 뛰어 들었다...기 보다는 나타났다.
이 길에서는 밤낮 가리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이다.
지나치며 힐긋 보았다.
아는 사람이구만. 누구? 동네 마트에서 끌어 온 쇼핑카트에다 폐지 모아가는 할머니.
그 무언가를 동네 할머니로 인식해 버리는 내 대뇌의 패턴 인식 메카니즘이 경이스러울 따름이다.
몇주가 지난뒤.
길가에 두 여자가 서 있다.
앞쪽 여자가 뒤쪽 여자보다 머리하나는 더 크다.
머리는 보자기를 눌러 동여 매고 비옷 같은 걸 덮고 (입고 보다는 덮고가 맞다)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내 차를 보고 있다.
이제 여잔지 먼지는 관심이 아니다.
이번에 또 어떤 류의 패턴 인식 오류일까?
길가에 있던 구조물 중에 저 정도 높이로 2개가 나란히 서 있는게 멀까? 급경사 표지판?
다음날
두 여자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그자리에 서 있다.
차를 세우고 그게 먼지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으나 그 시간엔 만사가 다 귀찮은 법.
속도만 좀 줄이고 차를 바싹 붙여 지나갔다.
앞에 있는 여자와 정확히 눈이 마주 쳤다.
물에 젖은 천조각이 뺨위에 붙어 있고, 망막에서 반사된 빛으로 두눈이 순간 번득였다.
착시라고 하기엔 디테일이 너무나 훌륭하다.
한주쯤 뒤
비가 많이 왔다. 어두운데다 비까지 덮치니 시야는 매우 제한되었다.
시각 정보가 축소되니 착각도 심해질 것이란 기대를 가졌고 배신당하지 않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이정표가 붙어 있는 철기둥 중간에 차 한대가 바닥을 드러내고 휘감겨 있었다.
고속으로 미친듯 달리다 커브길에서 튕겨져 나가 철기둥과 충돌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내내 심각하게 검토 해보았지만 이 현상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현인에게 이 모든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 보았다.
현인은 그 무엇인가가 내가 차에서 내리기를 원하고 있다 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