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 저승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2
김미혜 글, 최미란 그림 / 사계절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이야기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게 꽤 많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처음 시작한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에 교육방송에서 유아를 위한 인형극을 하는데 호랑이가 나오는 온갖 옛이야기는 다 모아서 해 주는 걸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도 만만치 않다.

해님달님의 못된 호랑이로 시작한다. 그것도 앞의 오누이가 어떠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짜고짜 수수밭으로 호랑이가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그 소리에 놀라 달려와서 죽은 호랑이를 보는 표정은 얼마나 웃기던지. 어른들은 무서워하거나 겁에 질려 있는 반면 아이들은 가까이서 호랑이를 '관찰'하며 웃고 있다. 역시나 어디에서든 아이들은 아이답다. 한편 오른쪽 위쪽에선 저승사자가 구름을, 아니 말인데... 어쨌든 뭔가를 타고 달려온다. 달려온다는 표현에 맞게 말을 그리긴 했는데 그렇담 하늘에서 말을 타고 온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사실 처음에 구름은 보질 못한 상태에서 먼저 말이 보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과 구름을 함께 적절히 조화시켜서 둘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켰다.

저승에 가서 옥황상제 앞에 있는 호랑이와 그 뒤에 있는 많은 대왕들 그림은 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이 이야기 자체가 바로 절에 있는 '시왕도'라는 그림으로 표현된 것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죄를 많이 지은 호랑이는 결국 온갖 지옥으로 끌려다니며 고초를 당하다가 다시 호랑이로 태어나라는 명을 받는다. 반면, 후반부에 나오는 호랑이는 나무꾼을 형님으로 모시고 그 형님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신 착한 호랑이가 나온다. 당연히 그 호랑이는 죽어서 앞의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저승에 갔지만 착한 행실이 드러나 사람으로 태어난다. 

호랑이의 살아서 삶도 대비되지만 죽어서의 삶도 완전히 다르다. 저승이라는 곳... 우리 아이도 가끔 묻는다. 진짜 저승이 있느냐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정확히 대답해 줄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중간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전부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가장 앞에 나오는 할머니와 손주 이야기와 마지막에 나오는 둘의 이야기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아마도 나쁜 호랑이가 아이들이 상상하기에도 너무 끔찍한 벌을 받는 것에 움츠러들었다가도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의 깜찍한 말을 읽으면 그동안의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다. 어른인 나도 그랬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의 오르간 마음이 자라는 나무 15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둘째가 너무 순해서 누나에게 맨날 지기만 한다. 그나마 요즘은 조금씩 반항을 하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마보다 누나를 더 무서워했던 아이다. 현재 6학년인 딸은 얼마나 말이 빠르고 기가 센지 항상 동생을 들들 볶는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이 꼭 우리집 아이들 같았다. 나이도 비슷하고 누나와 동생이 있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동생은 늘 무엇이든 괜찮다고 하기 때문에 누나가 시기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우리집 동생이 그 동생처럼 책만 보는 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지만.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도모미가 성장해 가는 이야기라는 것은 눈치로 알겠는데(책을 하도 보니 그 정도 눈치는 생겼다.) 어떤 식으로 성장을 나타낼까 내지는 오르간은 무슨 역할을 할까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다. 책을 덮을 때까지도 오르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큰 역할을 하진 않았다. 병약한 동생과 함께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며 남매 간의 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과연 우리집 아이들은 그런 정을 알까. 괜히 감상에 젖어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곳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사실 요즘에 보았던 전개가 빠른 책을 보다가 이걸 읽으니 시간도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런 책은 읽고 나면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고 잔잔함이 길게 남는다. 가족의 해체 위기에 놓여있는 것을 도모미는 옆집 할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생 데츠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옆집 할아버지를 곤경에 빠트리려 하고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이다. 물론 도모미 엄마와 아빠가 별거를 한 데에는 옆집의 영향도 있지만 그것은 최초의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남은 식구인 할아버지를 포함한 넷은 거의 남이다시피 생활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데츠와 함께 폐품을 버리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남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고 남에게 관심을 가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도모미 가족은 그동안 그것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되어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면서 도모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더이상 예전의 아무 의미없이 생활하는 도모미가 아니며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며 내년의 봄도 분명 올해의 봄과 다를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예전의 자신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보기에 도모미가 이번 봄을 지낸 것은 단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닌다는 의미겠지만, 도모미가 느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마음의 성장이라는 것 아닐까. 

그런데 초반에 나오는 도모미의 꿈이 중간에도 계속 반복되는데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용을 너무 가라앉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고양이를 키웠던 것과 동생과의 일들을 기억하며 썼다는데 거기에 도모미의 꿈이 과하게 결합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사춘기를 제대로 치르고 그것을 잘 극복하기 시작한 도모미가 대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출장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당시는 하이닉스로 바뀌기 전이었다.)에 다 가 봤다. 그런데 사내 시설이나 휴게실 등 여러 시설면에서 삼성이 확실히 깔끔하고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삼성은 관리를 잘 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난 지금도 가전 제품을 사면 주로 삼성 대리점을 찾아간다. 그 이유는 A/S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연중에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광고카피가 머릿속에 내재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어찌되었든 지금은 가전업계에서 삼성의 독주체제나 다름없다. 가전 3사(물론 일각에서는 대우의 기술력을 빗대어 2.5사라고 하지만) 중 두 곳이 현재 제 구실을 못 하는 실정이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의 영향력은 대단한다. 또한 세계에서도 꽤 인정받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나도 삼성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다른 나라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다. 삼성이 망하는 걸 절대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경영구조가 투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단한 법무 인력을 배치해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경영권 세습을 하려고 하는 현재의 그런 상태로는 세계적으로 신망받는 기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법무부에 있는 인력보다 훨씬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 법무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이건희 일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웬만큼 관심만 갖고 있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왜 정부나 관료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워낙 오래전부터 삼성이 조직적으로 로비를 하고 관료들을 관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그냥 막연히 그럴 것이다에서 이번에 김용철 변호사의 선언으로 인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 뿐이다.

숲에 있으면 그 숲의 크기나 모양을 알 수 없듯이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는 당시에는 그저 하나의 시간으로 인식되다가 나중에 돌이켜보면 혹시 운명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시사저널이 삼성에 관한 기사 때문에 파업을 하고 힘들게 새로운 기틀을 막 마련할 즈음에 마침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거취를 정확히 확정지었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이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한겨레와) 새로 창간한 시사IN은 그 기사를 다루었다. 어찌보면 교묘히 시간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만약 시사저널 기자들이 그냥 사측과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일전에도 삼성에 관한 기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적도 있었으니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삼성에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일을 자세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룰 수 있었을까. 현 언론이 처한 상황이나 여러 정황상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 삼성에 관한 사건이 막 터졌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뭐, 지금도 김용철 변호사가 이야기했던 수많은 불법적인 일들이 다 밝혀지리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그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태도를 보면 마치 선심 쓰듯 내가 다 짊어지겠다라는 식이어서 어이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잖은가. 분명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많은 법을 위반했으니 이제라도 원래대로 돌려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예전부터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부당함과 위험성을 각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 정부는 출총제를 완화한단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쟁점이 되었던 금산법도 완화해서 결국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대선에서도 이것을 정치적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주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곤 별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냈더라도 언론이 받아주지 않고 공론화 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어떤 문제의 원인을 찾다보면 결국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으로 판명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

금산법 철폐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있었던 때에 내가 극구 반대 목소리를 내자 누가 그런다. 금산법을 철폐한다고 해서 삼성이 금방 금융을 소유할 수 없다고. 제도적으로 대기업은 못 갖게 하면 된다나. 그러면서 인터넷 신문에서 그런 식으로 설명이 되었다고 한다(내가 워낙에 조중동을 읽는 사람하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이야기했기에).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논리는 어디서 많이 본 논리다. 조중동. 사실 보수 일간지를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본다며 내심 치우치지 않는 언론매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그만 더 들여다보면 결국 인터넷 포탈에서 제공하는 기사는 조중동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신문이 사실을 이야기할지언정 진실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한 신문을 꾸준히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어있다. 글 잘 쓰는 기자들이 설득하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까.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설득 당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 안타깝다.

삼성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일곱 명의 이야기를 싣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제발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실체를 알아보았으면 한다. 삼성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가 오너의 부당한 행동 때문에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그만 덮고 가지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분명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 지금 이런 것들이 결코 삼성을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명한 삼성을 만들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삼성이 무노조인 이유, 밖에서는 모두들 그만큼 직원들에게 알아서 다 해주고 복지가 잘 되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의별 방법으로 노조 설립을 막고 그것도 안되면 어용 노조를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노조 신고를 하기 20분 전에 누군가가 먼저 신고했단다. 아주 극비리에 진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과연 정보력의 삼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만약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그런 문제도 쉽게 풀릴텐데...

금산법이나 출총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삼성 측에서는(지금은 정부 측에서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으레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곤 한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우리처럼 순환출자 구조는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자회사는 모회사와 지분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인용하는 사람들은 속은 안 보고 겉에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나타낸 그림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그 쪽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전혀 상식도 없는 상태에서 보려니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렸었다. 나중에야 이해했다. 그게 바로 순환출자구조라는 것이구나라고.

이제 삼성특검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파헤칠까. 그럴 의지나 있을까 걱정이다. 사실 지난번 국세청이 자료를 거부할 때 기겁하는 줄 알았다. 과연 우리나라가 법치국가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특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런지... 거대한 삼성이 하루 아침에 개혁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삼성은 경영도 깔끔하게 하고 회계부정도 하지 않는 아주 깨끗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성에도 좋고 우리 경제에도 좋은 것이니까.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삼성의 비리를 캐면 외국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외려 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일 게다. 경제를 위해 조금 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대기업 오너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까딱하다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 듣게 생겼다. 이제 제발 제대로 된 대기업문화를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 아빠다! - 물구나무 그림책 66 파랑새 그림책 63
마이클 그레니엣 글.그림, 김정화 옮김 / 파랑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이 세상의 어린이들과 부모의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유치원에 다니는 또래의 아이들은 과학이고 논리고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거기에 맞춰 부모들은 자식의 터무니 없는 요구라도 들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꾼다. 그래서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도 부모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서슴없이 한다.

책을 펴는 순간 정말이지 크레파스로 대충 그려진 듯한 그림부터 심상치 않다. 키아라를 데리러 온 아빠 품에 안기려 하는 모습은 절로 따스함이 느껴진다. 집으로 가는 도중 장난감 가게가 있나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지. 그 안에 있는 코끼리를 들여다 보며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망을 품는다. 그러나 아무리 허무맹랑하더라도 들어주고 싶은 게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키아라 아빠라고 다를 리 없다.

우연히 만난 코끼리가 전해 준 코끼리가 되는 비법에 대한 책을 따라 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특히 코끼리의 상징인 기다란 코를 만드는 방법은 접혀 있는 책장을 펼치며 작가의 재치에 웃지 않을 수 없다. 변신한 아빠를 알아보고 오히려 좋아하는 아이. 이 또한 전형적인 아이들 모습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또 어떤가. 이제 원하던 코끼리를 얻었으니 행복해 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마지막에 놓여 있는 사자 그림이 그려진 상자를 보면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말도 안 되고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으며 생활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래도 웃을 수 있고 키아라가 사랑스러운 건 아마도 그림책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만약 지나치게 어른의 사고방식을 고집했던 사람이라면 웃음을 지을 수 없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진정 아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금방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게 바로 그림책의 매력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개야, 날아라!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새잡이 소년의 이야기, 물구나무 그림책 70 파랑새 그림책 70
존 윈치 글.그림, 조민희 옮김 / 파랑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중반까지 읽을 때만해도 왜 부제에 레오나르도가 언급되었는지 갸우뚱했다. 그저 새잡이 아버지의 아들인 자코모가 아버지처럼 새잡이가 되고 싶어하는 이야기인데 왜 그랬을까. 그러나 조금만 더 책장을 넘기니 그 의문이 풀렸다. 어렸을 때는 많은 아이들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일이 특히 어렵고 험한 일일수록 부모는 자식에게만은 그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코모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비록 당신은 새잡이 일을 할지언정 아들은 공부를 해서 더 좋은 직업을 갖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에 없는 어느 날 왕궁에서 전령이 와서 붉은꼬리솔개를 잡아오라고 한다. 물론 자코모는 이 기회를 그냥 넘길 리가 없다. 온갖 방법으로 솔개를 잡으려고 하지만 엉뚱한 새만 눈에 띈다. 그런데 한 면에는 어떤 노인이 자코모와 상관없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습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혹시 자코모의 아버지일까 라는 생각에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와서 살펴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여하튼 자코모는 그물망도 쳐보고 올가미도 만들어 보지만 솔개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아까의 그 노인이 나오는 페이지에는 자코모가 보았던 새들이 함께 나온다. 무슨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정도로...

결국 포기하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솔개를 찾아 들어간 곳엔 신기한 것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독자는 알게 된다. 아, 그 노인이 레오나르도였구나. 어떻게 금방 아느냐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하면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자코모와 레오나르도는 금방 친구가 되어 함께 붉은꼬리솔개 연을 만들어 왕자에게 갖다 준다.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그러나 자코모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그 후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자주 갔을 테고 그래서 그에게 그림을 배웠을 것이다. 새를 그리는 새잡이가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모두 알게 된 레오나르도의 진면목. 단순히 화가만이 아니었고 예술가이자 발명가였던 그는 많은 설계도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것은 그냥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한참 후에, 과학이 이미 많은 발명을 이룩한 뒤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너무 일찍 시대를 앞서가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은 셈이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가 어느 한 소년을 만났다는 짤막한 구절에서 힌트를 얻어 작가가 상상으로 써 낸 이야기라고 한다. 열 살의 한 소년을 만났다고 한 후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단순히 지나가는 아이를 만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그가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을 배우는 소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 아닐까. 짤막한 글에 자코모의 새를 잡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둘의 우정 이야기는 오히려 우정의 깊이가 특별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