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외계인 미래의 고전 28
임근희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아이들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드러나는 양상이 달라져서 그렇지 내면을 들여다보면 똑같다는 얘기다. 우선 가장 급한 건 친구 문제, 그리고 그 다음은 가족과 성적이다.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크게 이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성적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라도 친구 관계가 원만할 때 성적이 걱정되는 것이지 친구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그게 우선시 된다. 이 얘기는 즉 또래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친구 관계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동화의 소재 중에는 친구와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가족이나 성적 때문에 고민인 경우라도 친구가 있어서 힘이 되는 걸 보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맞긴 맞나 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자전거 뺑소니>에서는 친하고 싶지도 않은 같은 반 친구에게 우연히 누명을 씌우게 되면서 갈등하다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다. 수호는 지후의 자전거를 빼앗다시피 타고 가다 개를 만나 도망치고 만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전거를 내팽개칠 때 주인 할아버지 차를 긁고 만다. 지후의 자전거가 맞긴 하지만 엄연히 잘못은 수호 자신이 했건만 혼나는 게 두렵고 돈을 물어줄 엄마한테 미안해서 거짓말을 하고 만다. 처음에는 지후가 약자였지만 이제부터는 수호가 약자가 된다. 그래도 양심은 있으니 지후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둘이 앞으로 친구로 잘 지낼 것임을 암시하며 끝나는 훈훈한 이야기다.

 

  위의 이야기가 남학생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쌩쌩이 대회>는 여학생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확실히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되기까지나 소통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딸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끊임없이 수다 떨고 집에 와서도 문자를 하고 그랬는데 아들은 덤덤해 보인다. 오죽하면 친구가 없냐고 물어볼 정도로. 그냥 있으면 같이 놀고 없으면 마는 것이 남자들의 방식 같아 보인다. <자전거 뺑소니>에서 둘이 별 얘기도 나누지 않다가 친구가 되었지만, <쌩쌩이 대회>에서는 서로 잘 챙겨주고 양보하는 단짝 친구지만 속으로는 이기고 싶어 안달하는 본 모습을 그린다. 결국 잘못했다가 그걸 만회할 기회를 얻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다소 반전에 반전이 있지만 그래도 훈훈한 이야기다. 어쨌든 둘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가 있기 때문에 희주의 그런 마음을 못됐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희주의 그런 솔직한 마음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는데 모두 착하게만 나오면 어린 독자들은 갈등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그런 마음을 갖는 게 나쁜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가 괜찮았다.

 

  친구나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골치 아픈 아이의 이야기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보호자인 할머니의 입장에서 애잔하게 손녀를 바라보는 마음이 전해져서 짠하게 만든 <마음으로 쓰는 편지>는 동화에서 보기 드물게 화자가 할머니다. 만약 거짓말을 일삼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공부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를 묘사한다면 그 아이는 보나마나 문제아다. 그래서 대개 그 아이 주변 인물과의 갈등을 그리면서 해결해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문제아라도 할머니가 보기엔 더없이 예쁘고 착한 손녀라는 당연한 얘기를 기존의 이야기들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들려준다. 아이의 생활을 제대로 모르면서 안이하게 대처하는,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한 보호자가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마음 놓이는 이유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잔잔하면서도 책장을 덮을 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비록 현실은 그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이야기는 안심하게 만든다. 냉소적이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길 기대하면서도 이처럼 마음 따스한 이야기를 읽으면 일단은 마음이 편하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의 이민 이야기 - 이주와 다문화의 지구촌 상수리 호기심 도서관 20
소피 라무뢰 지음, 기욤 롱 그림, 박광신 옮김 / 상수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살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만은 막상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생각하고 별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을 보면 용기가 부러울 정도다. 게다가 요즘은 여행이든 이민이든 외국 나가는 일이 예전보다 쉽고 간편해졌기 때문에 훨씬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이유는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같은 나라 안에서 하는 이사든 다른 나라로 가는 이민이든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사와 달리 이민은 전혀 다른 환경과 다른 풍습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 또한 현재 사는 곳보다 더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궂은 일을 하게 될 게 뻔한데도 가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 간 1세대들은 고생을 많이 한다.

 

  인류는 원래부터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았다. 정식으로 이민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나라의 구속력이 강해서 다른 나라로 가려면 제약이 많고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민자의 낙원이라고 여겨졌던 미국의 이민사에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는데 어찌보면 다양한 민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이 지금의 강한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시대에 더욱 필요한 합의와 조화를 진작부터 이루었기 때문에.

 

  이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 권의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많다. 뒷부분에는 우리나라의 이민사를 덧붙여서 따로 정리해 놓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이민의 역사를 안다면 다른 나라로 나가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맞이하든 똑같은 사람이라는 데 초첨을 두고 상대방을 대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랜더스의 개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42
위더 지음, 원유미 그림, 최지현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충직하게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커다란 개가 우유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책으로 접하기 전에 만화로 접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를 얼핏 봤던 기억은 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본 기억은 없다. 게다가 EBS에서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대개-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어느날 갑자기 중단되었다가 또 어느날 갑자기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곤 해서 동일한 부분을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가 하면 때로는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 기억으로는 <플랜더스의 개>도 동일한 부분을 몇 번 보았고 마지막은 넬로와 파트라슈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딱 한 번 보았나 보다.

 

  웬만한 아이들은 한때 개를 기르고 싶어한다. 파트라슈처럼 말도 잘 듣고 멋지다면 당연히 키우고 싶어할 것이다. 하긴 그런 개라면 어른인 나도 키우고 싶을 정도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러나 파트라슈가 처한 상황이나 넬로네 환경을 보면 그처럼 낭만적인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일을 죽어라 하지만 제대로 된 밥 한끼 얻어먹지 못하고 매맞다가 그렇게 죽는 것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플랜더스 지방의 개라면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넬로네 형편은 또 어떤가. 간신히 하루하루 일해서 먹고 사는 할아버지와 손자, 그마저도 할아버지는 노쇠해서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동네 사람들의 동정과 친절 덕분에 그나마 입에 풀칠하고 사는 게 넬로의 상황이다. 그나마 파트라슈가 있어서 할아버지와 넬로를 도와준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넬로는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로아의 아버지가 못된 소문만 퍼트리지 않았다면 근근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넬로가 원하는 그림을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넬로에게는 그 두 가지 일이 모두 일어났다. 한편으로 넬로에게 가혹하기만 한 작가가 야속할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아주 가끔 우연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어쩌면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 게다가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보통 사람은 더 힘겹다는 사실. 시대가 변했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슬프게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센트의 비밀노트 사파리 마스터피스 1
팀 키호 지음, 가이 프랜시스 그림, 김영선 옮김 / 사파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발명가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특별한 사람이고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정도의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소한 것이라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다른 각도로 보는 습관을 갖고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면 커다란 발명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발명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종종 어린 아이가 어떤 것을 발명했다는 소식이 들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에는 발명이라는 것을 규모가 크거나 획기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발명가를 꿈꾸는 것은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마트의 생활용품 코너에 가면 신기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도 모두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센트는 열네 살 밖에 안 되었지만 상당히 유능한 발명가의 기질을 갖고 있다. 물론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주변이 깜깜해지고 오로지 아이디어만 선명하게 보인다(그것도 다른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빈센트의 눈에만 보인다.)는, 다소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하지만 말이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 잠깐 장난감 코너에서 기웃거리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그쪽은 아예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장난감을 발명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 시기의 아이들은 또 언제나 장난감을 좋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니 장난감 개발이야말로 언제나 계속되어야 하는 업종이겠다. 이 책의 저자가 원래 장난감 발명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 잘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장난감에 전혀 관심없는 내가 보기엔 이게 뭐가 재미있을까 의아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지해주고 도와주던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실의에 빠진 빈센트에게 친구이자 동생인 스텔라가 많은 도움이 된다. 새엄마는 빈센트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스텔라는 많은 면에서 빈센트에게 도움을 준다. 게다가 예술가인 엄마를 따라 미술관을 수시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사물을 바라보는 빈센트의 감각이 남달랐던 것 같다. 뭐, 아빠도 미술관 관장이니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히 두꺼운데다 발명가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어디까지가 실존인물이고 어떤 게 허구인지 몰라서 책 내용에 쉽게 빠질 수 없었고, 인물끼리의 연결고리도 허술해서 솔직히 읽는 '맛'은 덜했다. 게다가 우연은 또 왜 그렇게 자주 일어나고 위기 상황에서도 어쩜 그리 해결이 잘 되는지. 또한 지나치게 사건을 늘였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하는 '맛'을 느끼고 싶은 아이들이라면 두꺼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뭐, 프래니나 제로니모는 사건의 개연성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 수염 생쥐 미라이 보림문학선 9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김규택 그림 / 보림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 중국 작가의 책을-이 작가의 책을 포함해서-몇 권 읽어보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거나 의미있었다고 여겨진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라서 신비한 맛이 덜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 중국의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지금의 중국 모습을 안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은 여전하리라고 짐작한다. 우리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문화가 남아 있으니까.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생쥐 미라이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여 인간과 자유자재로 이야기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는 이야기, 인간인 즈루이가 오히려 인간과는 교류를 하지 못하다가 시궁쥐인 미라이를 통해 위안을 삼고 딸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지만 미라이 집안의 생쥐들을 통해 인간의 세속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꼬집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을 너무 쉽게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미라이의 형인 미자자는 욕심많고 교활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알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술수를 쓰는 모습이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냈다가도 금방 가면 쓴 모습으로 돌아가는 등의 모습을 통해 직설적으로 그런 부류의 인간을 풍자하지만 솔직히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무기력해진 아버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질서가 잡히고 다른 가족을 통치하는 생쥐 가족의 모습을 보며, 만약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중국이니까 그런 모습으로 가족을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진짜 생쥐들이 어떻게 군집생활을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싫어하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바람에 다른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려지고 말았다. 작가가 미자자의 가족을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그렸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이야기를 하고 권모술수를 쓰지 않는 미라이를 보며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때로는 위험에 처하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삶은 마치 군자의 모습 같다. 미라이가 생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생쥐들과 다르게 사색을 즐기고 가치를 다른 곳에 두는 모습에서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 연상됐다. 어쨌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 작가의 동화가 훨씬 재미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세련되었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