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레에게 일어난 일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티너 모르티어르 지음, 신석순 옮김, 카쳐 퍼메이르 그림 / 보림 / 2011년 12월
평점 :
나이를 먹는 것이 당연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라지만 가장 부인하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아니, 나이를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늙어서 모든 기능이 퇴화하고 사고력까지 떨어지는 것, 또는 치매와 같은 병으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레의 할아버지는 정말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본다. 흔히 호상이라고 부르는 죽음.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지막을 보지 못해서 안타깝겠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고통도 받지 않았으니 그렇게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큰아버지는 칠순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앉아서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주무시다 돌아가셨으니 모두 호상이라고 했으나 큰어머니와 엄마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처음에 마레는 태어나는 것부터 특이했다. 간혹 길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까지는 괜찮다지만 책 읽는 것에 빠져서 아기가 나올 것도 잊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은 엄마에 비해 마레는 참을성이 없다. 게다가 태어난 지 여섯 달이 지나 주변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니 이건 보통 아이가 아니다. 글에는 걸어다녔다는 말이 없으니 그때부터 걸어다녔던 것인지 아니면 기어다녔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림에서는 아이가 꽤 커다랗고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섯 달이 지나서부터 걸었나 보다. 이쯤되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 안젤리카>를 생각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평범하다.
마레는 할머니와 취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져서 말도 못하고 행동도 자유롭지 않게 변한다.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뇌졸중인 듯싶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하는 할아버지와 거짓말일 거라며 듣는 마레가 나오는 그림과 할머니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는 그림은 마치 마레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줄곧 화사한 그림과 꽃이 나오는 그림에 비해 어두운 색의 그림은 독자의 마음까지도 우울하게 만든다. 게다가 할아버지까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마레에게 너무 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러나 할머니가 웃음 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조금씩 호전되리라 기대해 본다.
다른 사람은 모두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마레만은 할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내고 심지어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고 마음을 읽기까지 한다. 그동안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는 걸 말렸지만 마레가 억지로 우겨서 할머니를 데려갔고 덕분에 할머니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와 다르게 성장하는 마레의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하며 읽었는데 나중에는 할머니의 뇌졸중으로 힘들어하는 마레가 나온다. 그래서 <오른발 왼발>의 토비처럼 할머니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는 마레를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경험한다. 정말 마레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지 않을까 싶지만 마레는 모든 것을 잘 이겨냈다. 처음엔 별 의미없이 읽었는데 찬찬히 다시 보니 인생과 죽음, 그리고 노인 문제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음, 그러고 보니 그림책에서는 조부모가 치매나 뇌졸중에 걸린 경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로 어린이가 나온다. 조부모와 손주의 특별한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가 보다. 어린이가 읽는 책이니 그들의 눈높이에서 서술되는 게 당연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