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권리가 있어! 뚝딱뚝딱 인권 짓기 1
인권교육센터 ‘들’ 지음,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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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예산이 제일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가 그들에게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물론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투표권이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예산이 책정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이 봤을 때 필요한 예산일 뿐이다. 진정으로 어린이가 원하지만 어른이 보기에 별 시답지 않은 정책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뒤로 밀린다는 얘기다. 엄연히 어린이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린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른의 소유물로 생각하거나 자라지 않은 어른일 뿐이기에 어른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에서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나 아직도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 간혹 있다. 그래서 '내 아이를 내가 때리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오히려 당당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어린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지만 때로는 정확하게 구분짓기 애매한 것들도 있다.(이럴 때는 애정남에게 물어봐야 하나?) 책에서도 문제제기는 하되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므로. 예를 들면 성폭력을 당했을 때는 혼자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주위 어른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정확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국가보안법이라던가 영진법 같은 경우는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의 경우도 조언은 해줄 수 있지만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직 어려서 합리적인 생각이 힘들고 어른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사사건건 관여하지만 어린이도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알아야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당한지 알 수 있고 개선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즉 아예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 알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후자의 경우는 언제든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책의 역할이자 기능을 후자에 두고 싶다.

 

  '아동 인권'이라 하면 웬지 어려운 용어를 사용한 거창한 설명이 나올 것 같아 선뜻 책을 집어들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만화로 사례를 이야기해 주고 있어서 부담없이 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만화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간략하게 설명하고 어린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사실 살다 보면 정답을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 훨씬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책을 만들어가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즉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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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이 사라진 날 평화그림책 4
야오홍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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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 번 읽으면 웬만큼은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림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그러면서 아, 이런 느낌의 책이구나를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그런데 내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학교에서 이 책의 원화 전시회를 하기 위해 다른 학교에서 보내온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도와줘서 이젤 스무 개를 쉽게 설치했다. 그러자 이제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해달란다. 뭐, 읽었던 책이니까 그거야 쉽지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어느 강에서 경극 배우가 매일 연습하는 장면을 소년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보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전쟁이 나서 떠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강가에서 기다렸지만 그 배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가 경극에 초대해서 소년은 구경을 갔다 온 후 그 배우를 만나지 못했다는 내용이라며 설명을 해주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날 각 액자 아래에 글을 일일이 써서 붙여 놓았다. 그랬더니 한 선생님이 "글을 함께 읽으니 그림만 볼 때보다 내용이 확 와닿네요." 한다. 한 번 읽었는데 어쩜 그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그래서 자세히 다시 보고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액자에 붙이는 글을 쓰느라 다시 한번 읽었으나 누군가에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다.

 

  여하튼 경극 배우가 소년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배우가 준 초대권으로 처음 경극을 본 감동을 들려준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 그 배우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 사이에 경극의 화려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이야기를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경극 배우와 전쟁의 연관성이 약한데 마치 제목부터 전쟁 때문에 경극 배우가 어찌 되었다거나 경극이 아예 공연되지 못했던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둘의 관계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데 제목에서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워서 정리가 안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경극 배우가 전쟁의 홍보 수단으로 경극을 이용하려는 것에 찬성하지 않고 아예 떠나버렸으니까. 그러나 이 부분은 나중에서야 기억에 자리잡았기에 그런 오해를 했다.

 

  이 책은 한중일이 공동 기획한 평화그림책의 하나다. 중국과 우리는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화 했고 중국은 일부 땅이긴 하지만 침략을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국 이야기가 쉽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일본 작가의 그림책은 어떨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며 평화를 이야기할까 자못 궁금하다. 아니,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까 궁금하다. 우리 작가와 중국 작가가 쓴 평화그림책이 나왔으니 이제는 일본 작가의 책이 나올 차례가 아닐런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로 물꼬를 틀지 기대된다. 2차 세계대전으로 자신들이 핵폭발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만은 아니길 빈다. 피해를 입긴 했어도 적어도 그게 먼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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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셜록 홈스와 붉은머리협회 동화 보물창고 4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시드니 에드워드 파젯 그림, 민예령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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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셜록 홈스에 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만 현재도 추리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반면 난 그렇지 않다.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어린 시절에 푹 빠져 읽었던 홈스를 생각하며 우리나라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다가 긴장감보다는 뭔가 찜찜함만 남는 것 같아 읽기를 그만 둔 뒤 추리소설을 읽지 않았다. 즉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의 구성이 어떤지, 소재는 주로 어떤지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모르긴해도 오늘날의 추리소설은 구성도 탄탄하고 긴장감도 훨씬 강하며 문체까지 세련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열광하며 읽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겠지.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길을 가면서도 읽었던 셜록 홈스 시리즈. 글씨만 보고도 그 사람의 키가 어느 정도인지 습관은 어떤지 알 수 있다는 홈스를 존경했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범인이 누구인지 감이 안 잡히는데 불과 며칠 아니 때로는 몇 시간만에 범인을 유추해내는 홈스를 보며 신기해 하기도 했었다. 물론 범인이 잡히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일일이 설명하는 방식이 모두 비슷해서 식상하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 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능력에 더 매료되었기에 그 정도는 신경쓸 게 못되었다. 또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도 그런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당시의 풍조였다고나 할까. 딸도 초등학교 때 홈스 책을 한 권 읽더니 무척 재미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 단, 그 한 권 외에는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 다른 책은 읽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혹시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1학기 때 홈스 시리즈를 몇 권 샀으나 반응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하다. 언젠가는 나도 다시 홈스 책을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드디어 읽을 기회가 왔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책들은 장편이었으나 이 책은 단편 모음집이다. 그렇다해도 어차피 생각나는 이야기라 해도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아주 조금 생각나기 때문에 단편이든 장편이든 상관이 없다. 그래도 <춤추는 인형>은 생각난다. 중학교 때 도서실에서 어렵게 찾아낸 홈스 책이었는데 아주 얇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암호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이 책에 사용된 암호는 아주 단순한 원리다.) 이런 그림으로 암호를 만든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따라했던 기억도 난다.

 

  독자에게는 정보를 모두 주지 않기 때문에 홈스처럼 추리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홈스가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책의 주인공을 실존인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책들은 주인공을 만들어 낸 작가를 염두에 두고 말을 걸지만 이상하게 홈스에게만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코난 도일이 뒷전으로 밀린다.-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홈스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조차 지나치지 않는 세심함과 상당한 집중력을 갖고 있다. 다만 지금 다시 읽으니 미묘한 심리전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글 쓰는 방식이 변했고, 현재 다양한 방식의 글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읽고 싶었던 홈스를 만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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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날 - 오늘의 일기 보림 창작 그림책
송언 글, 김동수 그림 / 보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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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코 책장을 넘기니 그림일기가 나온다. 딱 세 줄의 글과 함께 제목이 있다. '내 이름은 구동준'과 '내 이름은 김지윤'. 아, 두 명의 일기가 한 면씩 나오는 구성이구나. 그러면서 천천히 읽어나간다. 입학 통지서를 받고 식구들이 어느새 입학을 할 나이가 되었느냐며  기특해 하는 장면. 아이가 처음 입학할 때는 특히나 긴장되고 걱정이 앞섰던 때가 떠오른다. 여전히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노는 동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차기를 했단다. 아직도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한때 구슬과 딱지가 유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윤이는 병원 가서 홍역 예방주사를 맞는다. 시력 검사도 하고. 맞아, 홍역 예방주사 확인서가 꼭 있어야 했지. 첫 아이 때는 학교 가기 전에 시력 검사를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시력 검사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밖은 추운 겨울 날과 설날을 지내고 예비 소집일이다. 학교 선생님을 처음 봤는데 무섭단다. '입학실 날엔 코 닦을 손수건을 꼭 달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읽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앗, 요즘엔 코 닦을 손수건 달고 다니지 않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제야 그림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오른쪽 그림은 요즘의 학교가 맞는데 왼쪽 그림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 이제야 그림이 제대로 들어온다. 통장 아저씨가 통지서를 전해주는 그림에는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지나가고, 오른쪽 그림에는 아파트가 있어 경비실 아저씨가 입학 통지서를 갖다 준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으니 왼쪽 그림에서 연탄을 보고도 그냥 넘겼던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화 포스터가 지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왼쪽은 지금의 아이들 기준으로 보자면 옛날 입학하기 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전형적인 오늘날 여자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다리가 있는 텔레비전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 방에서 엄마는 바느질하고 형은 공부하고 한쪽에서는 실뜨기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금도 이렇게 사는 집이 있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니 그 옛날의 증거들이 속속 눈에 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다리 달린 텔레비전이나 원기소, 오래된 잡지가.

 

  오늘날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유치원을 졸업하지만 그 옛날에는 유치원이라는 과정이 없어서 마냥 놀기만 했었지. 간혹 공부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학교에 가기 전에 간단한 한글과 숫자 공부를 시키곤 했으나 그마저도 안 하는 집도 있었다. 그래도 동준이네는 형이 있어서인지 한글도 가르쳐주고 사과를 깎아서 숫자도 알려준다. 드디어 가방을 사는 장면. 왼쪽 그림을 보니 현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들어온다. 지금은 영화 세트장이나 시골 재래시장에나서 볼 수 있는 가게 모습이다. 반대로 오른쪽은 여자 아이답게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된 방에 역시나 분홍색 가방이 놓여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입학날이다. 이제 한쪽은 옛날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현재 모습이라는 걸 알기에 차이를 알 수 있다. 추운 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치르던 모습과 6학년들의 손을 잡고 실내에서 치르는 오늘날 입학식의 모습이.

 

  다른 반은 예쁜 여자 선생님인데 자기네 반 선생님은 할아버지라 싫다고 투덜대던 지윤이가 그래도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줘서 괜찮다고 한다. 나 또한 나이가 많아도 그림책의 가치를 아는 괜찮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준이의 꿈은 선생님이란다. 뭐, 그 시절 대부분 아이들의 꿈이 선생님이었으니까 특이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윤이도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었단다. 짝꿍도 칭찬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보다 잘한 점을 찾아내서 칭찬하는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왼쪽에서 펼쳐지던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오른쪽과 절묘하게 만난다. 마치 다른 시대에 같은 사건을 겪는 평행이론처럼. 지금까지 잔잔하게 읽혔던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이 갑자기 커다란 이야기가 되어 나타났다. 단순히 두 시대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는 책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이 밀려왔다. '참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라는 단 한 문장에 말이다. 전혀 다른 것을 설명하지 않지만 이 한 문장에 모든 의미가 들어있고 구성을 이렇게 잡은 이유가 한번에 이해된다. 한 문장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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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될래요 신나는 책읽기 32
신연호 지음, 허구 그림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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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다닐 때 과연 내가 착할까, 더 나아가 착한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 일도 도왔으며 공부도 꽤나 잘 했지만 스스로 착하다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듯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을 돌아볼 철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더 신기한 것은 어린 시절 기억이 그닥 많이 나지 않는데 유독 이것이 생각난다는 사실이다. 여하튼 그때 결론을 어떻게 내렸는지 모르지만 그 후에는 거기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에게도 굳이 '착하'다는 말에 신경쓰지 않고 키웠다. 간혹 착한,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해서 내 속을 뒤집을 때는 진작 말 잘 듣게 만들 걸하는 생각이 들지만 잠시 뿐이다.

 

  시현이는 남을 위해서 착한 행동을 하려고 애쓴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데, 어린 것이 꽤나 피곤했겠다. 천성이 착한 사람도 있지만 남을 의식해서 자신을 억누르며 착하게 행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긴 언젠가부터 '착한 아이 컴플렉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부작용에 관심을 갖고 부모들도 자녀를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 하지만 솔직히 아이가 착하면 부모는 편하다. 하지만 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지낸 아이는 언젠가(어른이 되어서라도)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다고 하니 키울 때 조금 힘들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낫다. 그러기에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던 시현이가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엄마가 혼내기는 커녕 많이 컸다고 대견해하는 것일 게다.

 

  그나마 시현이는 아홉꼬리 여우인 금미달에게 도움을 받아 자존감을 찾았지만 실제로 금미달을 만나지 못했거나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부모가 그러한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한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모란 원래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드니까. 살면서 어른이든 아이든 자존감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래서 전에 중학교로 집단상담 봉사를 나갈 때 틈만 나면 자존감에 대해서 역설하곤 했다. 이것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남이 보기엔 못났더라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아무래도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원래 자존감이란 것이 항상 높은 게 아니라 높을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는 법이다. 다만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하튼 현실에서 금미달을 만나지 못하는 아이가 이 책의 금미달의 도움을 받아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자존감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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