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즈 2 - 거대 괴물들, 무스크라트를 습격하다! 슈퍼 히어로즈 2
제로니모 스틸턴 지음, 성초림 옮김 / 사파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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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니모의 환상모험을 처음부터 만난 게 아니라서 처음 읽었을 때는 얼떨떨했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괜히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뒷부분이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헌데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봐서인지 훨씬 친근한 느낌이 든다.

 

  제로니모 시리즈의 등장인물은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쥐다. 그러나 재미있게 그려서인지 쥐도 잘 보면 귀여운 면이 있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업다. 게다가 악당 쥐와 영웅 쥐가 서로 대결하는 구도라서 조금만 읽다 보면 쥐에 대한 선입견을 느낄 겨를도 없다.

 

  이번에는 거대 괴물이 무스크라트 시를 습격하고 유명한 여배우를 납치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슈퍼 히어로즈의 활약이 펼쳐진다. 잠자리가 거대하게 변해서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가재 또한 거대하게 변해서 항구를 휘젓고 다니는데 이쯤되면 혹시 잠자리나 가재가 겉모습만 그럴 뿐 실제로는 로봇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건 아니다. 문득 그 안에 사람이, 아니 악당 쥐가 타고 조종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치 그 옛날 마징가 만화처럼. 하지만 그건 아니고 진짜 생물이 크기만 변했을 뿐이다. 즉 잠자리는 단지 날고 있을 뿐인데 워낙 크기 때문에 주변이 초토화된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모험, 상황에 맞는 글씨체, 그리고 가끔 히어로즈들이 내뱉는 황당함을 표현하는 말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사실 어른이 보기에는 정신없는 이야기에, 현란한 색깔의 글자들이 정리가 안 되는 듯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걸 즐긴다. 하긴 어른도 자꾸 읽다 보니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나름 재미있다. 아직도 일반인일 때의 이름과 영웅일 때의 이름이 대응이 안 돼서 헤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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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물고 간 노루 꽁지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4
박영만 원작, 원유순 엮음, 이웅기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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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이야기에 나오는 범 혹은 호랑이는 대개 어수룩하다. 표지 그림에서도 눈만 커다란 것이 무섭다기 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처럼 여기 나오는 호랑이는 방울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는 단순히 곶감만 무서워하는데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여기 나오는 호랑이는 노루의 꽁지까지 물고 가는 바람에 지금의 노루 꽁지가 그처럼 뭉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어수룩한 호랑이 이야기와 '이래서 그렇게 되었대요'식의 이야기가 합쳐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있으니 다양한 옛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선 방울소리에 놀라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어수룩한 호랑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많기도 하다. 처음 보는 동물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 보니 말이다. 게다가 소금장수는 비록 몸은 약하지만 꾀가 많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기회로 이용했으니 호랑이에게는 이래저래 볼리한 상황이었다. 방울이 범을 잡아먹는 오르릉새라고 말해도 호랑이는 '용감'하기 때문에 다까이 다가갔으나 소금장수가 한 수 위였다. 오르릉새를 범의 꼬리에 잽싸게 매달았으니까. 호랑이가 용감하긴 했으나 호기심이 더 강해서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 

  보이지도 않는 꼬리에서 범을 잡아먹는 오르릉새가 소리를 내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원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두려운 법이다. 그렇게 도망가다 만난 노루는 범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어쩔 수 없이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물건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호랑이를 데리고 간다. 노루의 꽁지를 물고 가는 호랑이 모습이라니. 어쨌든 소나무에 걸려 있던 방울 소리에 놀라 지레 겁먹고 도망간 호랑이 때문에 노루 꽁지가 지금처럼 짧아졌다나 뭐라나. 

  흔히 옛이야기는 교훈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억지로 교훈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서운 호랑이가 골탕 먹고 어수룩하게 나오는 것도 일종의 은유가 아닐까. 무서운 존재를 곯려주고 싶은 백성들의 마음 말이다. 재미있게 웃고 기억에 남아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연상될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약이 너무 심했나. 그러나 옛이야기에는 풍자와 해학이 들어 있는 것은 확실하니 언젠가는 삶의 지혜로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라고 하는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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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 몽골 땅별그림책 7
바아승수릉 벌러르마 지음, 어트겅체첵 담딘수렌 옮김 / 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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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둘째 아이 친구가 생각난다. 다섯 살 때 이곳에 와서 열두 살 때 다시 몽골로 돌아갔다. 당시 둘째와 함께 책 읽고 간단하게 글쓰는 수업을 했는데 이 책이 그 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몽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그 친구는 자기네 나라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텐데. 

  얼마전에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몽골인들의 생활모습이 떠오른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유목생활을 하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여서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될까 싶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 볼이 빨갛고 손이 텄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행복의 기준이 모두 다르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우리네 기준으로 그들의 삶이 고달플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젊은 사람들은 울란바토르로 떠난다고 하니 그들의 생활이 결코 녹록치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여하튼 이곳에 있는 내가 보기에 몽골인들의 유목생활은 참 자유로워 보인다. 질루는 첫 번째 집인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두 번째 집인 요람에서 잠깐 머문 다음 세 번째 집인 게르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지만 네 번째 집인 지구에서 쑥쑥 자랄 것이라며 자연과 하나되는 생활을 이야기한다. 

  질루가 태어나서 돌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몽골인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 계절마다 이동하는 모습이며 설날의 모습, 돌을 맞이했을 때의 모습으로 미루어 몽골인들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같은 동양이라 그런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 몽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에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몽골인들의 전통적인 의상인지 아니면 그 중에도 특수한 계층에 속하는지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하긴 하지만 그들의 생활모습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추운 겨울에 새끼 양을 밖에서 키울 수 없어 게르 안에 데려다 놓고 우유(양젖이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불러야겠다.)를 주는 모습이 독특하다. 아마 이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은 자연에서 얻었겠지. 이렇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자연을 이용하며 사는 몽골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 책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전통 관련 그림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느꼈던 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때로는 안타까움을 그들도 느끼겠지. 이렇게 그림책이 타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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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나를 보고 웃다 일공일삼 75
김리리 지음, 홍미현 그림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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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데도 이 책을 보는 순간 어떤 드라마가 떠올랐다. 남녀 주인공 배우 때문에 청소년들이 열광하며 보았던 드라마. 소복 입고 나와서 재주를 훌떡훌떡 넘어 사람이 되는 기존의 구미호가 아닌 예쁘고 천진하며 인간적(?)이기까지 한 구미호 이야기라서 딸이 꼬박꼬박 챙겨보던, 그래서 나까지 덩달아 가끔 옆에서 보았던 드라마였다.  

  이 이야기도 어딘지 모르게 그 때의 그 구미호가 생각난다. 비록 역할과 모습이 다르지만 구슬이라는 존재가 비슷하고 여우라는 설정이 동일하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지금까지는 모두 꿈이었습니다'로 끝나면서 꿈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주어서 모두를 경악케 했던 어떤 드라마도 겹쳐진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내가 마치 드라마란 드라마는 모두 섭렵하는 사람이라 착각할 테지만 전혀 아니다. 아주 일부만 보거나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꿰어 맞춘 것이다. 어쩌면 드라마를 전부 본 게 아니기 때문에 봤던 부분이 더 기억에 잘 남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전체적인 이야기는 드라마와 전혀 다르지만 일부와 마지막이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하긴 작가도 어린 시절 보았던 전설의 고향을 이야기하니 내가 너무 드라마와 연관시킨 것만은 아닐 게다. 

  머루가 영재에게 구슬을 하나씩 줄 때마다 머루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영재도 눈치챘을 텐데 영재는 왜 마지막까지 구슬을 달라고 했을까. 게다가 별다른 죄책감을 갖거나 욕심을 너무 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달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동안 머루에게 했던 행동에 비추어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미안해서였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작가는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바로 인간이니까. 하나만 더 얻으면 정말 행복하고 더 이상 스스로 잘 할 것처럼 생각되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좋은 것을 얻고 싶은 게 인간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공부도 그저 그렇고 얼굴에 여드름이 많아서 위축되었던 영재가 일차로 여드름이 없어지자 자신감을 되찾을 때까지는 좋았다. 아무리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해도 스스로 위축된다면 무시할 수 없으니까. 서로 진실한 친구가 될 것 같았던 머루와 영재가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영재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없어질까봐, 혹은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자신의 참모습은 감춘 채로 아이들에게 다가갔으니 주위의 시선에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머루에 대해 쑥덕거리자 자신도 그런 취급을 당할까봐 거리를 두고 결국 이용만 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리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머루와 다른 친구들도 믿지 못한 것이다. 영재와 머루의 우정은 사상누각이었던 셈이다. 

  이 작가의  책인 이슬비 시리즈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소소한 일상을 어쩜 그리 정확하면서도 재치있고 재미있게 담아내는지 감탄스러웠다. 그렇기에 김리리 작가가 쓴 장편동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읽고 싶었다. 비록 소재와 구성 면에서 다른 것과 겹쳐져서 신비한 맛은 덜했지만 읽는 동안 인간의 욕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영재가 무언가를 눈치채고 마지막에는 뉘우치거나 깨닫길 바랐으나 그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래도 꿈속의 머루가 그토록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으니 현실에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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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 - 철학 교수가 들려주는 지혜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28
제브데트 클르츠 엮음, 이난아 옮김, 박혜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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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출근하며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 고전의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이 있다. 아주 간략한 이야기인데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이자 때로는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뻔한 것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면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도 모두 평이한 이야기들이다. 간혹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어떤 울림이 있어서 간혹 책을 읽다 말고 곰곰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 이야기가 생소해서가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을 너무 어려워하거나 아니면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가장 중요한 부분이 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누군가의 이론을 연구하고 진리를 찾아 묻고 또 묻는 그런 철학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작은 것 하나라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그런 철학 말이다. 

  예를 들면 '사막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의 경우 이기적인 삶이 당연시 되는 요즘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훗날 안 좋은 소문 때문에 사막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낭패를 볼 것을 염려하니 말이다. 그 남자는 대인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라면 살맛 날텐데, 불행히도 안 그런 사람이 훨씬 많다. 

  '꿈 풀이'에서는 언어, 즉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을 이야기하되 상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어찌보면 아부를 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없는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꾸미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롭게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리한 사람이라면 두 개의 말이 결국은 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알 테지만 언제나 그런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잖은가. 내가 워낙 사실을 투박하게 표현하는 타입이라서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정리가 됐다. 언어의 섬세함을 살리지 못한 것과 인간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섬세하고 노련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의미가 같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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