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니모의 환상모험 플러스 10 - 사라진 여덟 번째 불가사의를 찾아서 제로니모의 환상모험 플러스 10
제로니모 스틸턴 지음, 성초림 옮김 / 사파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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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는 시리즈다. 사실 처음에는 당췌 무슨 얘기인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읽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읽고 나서도 아리송했는데 몇 권 읽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걸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뭐랄까.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 안에 그럴듯한 메시지도 있다.

  이번에는 겉표지에 장미가 잔뜩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제로니모가 첫 눈에 반한 생쥐를 만난다. 헌데 상당히 매력적인(근데 생쥐라서 그림으로 봐서는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그 여자 생쥐는 모든 조건이 뛰어나다는 문제가 있다. 즉 제로니모처럼 평범한 생쥐는 감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제로니모가 유명해지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여덟 번째 불가사의를 찾아 떠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조카와 동생들의 설득에 못이겨 불가사의를 찾아 떠나지만 어찌보면 제로니모가 한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비행기 멀미에 배멀미까지 골고루 하다가 도착해서 조카의 도움으로 땅 속 세상을 발견한다. 반짝이는 나비의 도움으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지만 사진도 못 찍고, 아니 찍었지만 잃어버리고 설상가상 동굴 입구까지 막혀 버려서 앞으로 발견될 가망성이 없는 세상. 이쯤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로니모는 결국 여덟 번째 불가사의를 찾아내어 유명해지지만 이미 사랑은 변해버렸다. 갑자기 유명해지니까 프로볼레타가 시시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로 진심을 공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게다. 여기서 그런 것까지 나오지는 않지만. 벤저민이 동굴로 들어갔을 때의 그림이 나오면 좀 구경하려 했더니 전적으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말았다. 결국 그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영화를 떠올렸다. 천방지축, 말도 안되는 모험을 하는 스틸턴 가족이지만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거기서 재미까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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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하오광차이 글, 알레산드라 토니 그림, 김선영 옮김 / 사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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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 중에는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유아기 때는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일 게다. 동일한 제목의 책이 여러 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증명된 것 아닐까. 대개의 동물들도 엄마라면 제 새끼를 끔찍이 아낀다. 시골에 고양이가 있는데 새끼를 낳으면 꽤 클 때까지, 그러니까 다음 새끼를 낳을 때까지 어미가 어찌나 끼고 도는지 아니꼬울 정도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

  엄마가 뽀뽀해 주기를 기다리다 그냥 잠이 든 메이린은 잠결에 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깬다. 알고 보니 아기 양이 엄마를 찾고 있는 중이다. 메이린이 함께 아기 양의 엄마를 찾아다니며 각 동물의 특징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아기 양이 아무에게나 엄마라며 쫓아가면 메이린이 그 동물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면 아기 양이 자기와 다른 점을 이야기하거나 아기 양이 먼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메이린이 그 동물의 이름과 특징을 말해주는 식이다. 토끼의 경우 다리가 네 개지만 자기 엄마보다 몸집이 훨씬 작으므로 엄마가 아니고 기린은 너무 커서 엄마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게 둘은 아기 양의 엄마를 찾아 여러 동물을 만나다가 결국 아기 양을 찾고 있는 엄마를 만난다. 그런데 여기서 엄마 양이 아기 양을 찾고 있었다고 말은 하는데 그림으로 보아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 양이 풀을 입에 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잃어버렸고 찾아다녔다면 한가하게 풀을 먹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것 아닐까. 풀을 뜯고 있는 양 그림이 나오길래 엄마 양이 아니라 옆집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원래 이쯤되면 엄마 양은 열심히 아기를 찾아다니고 주변에 풀 뜯고 있는 양이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엄마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그림과 약간 과장된 듯한 동물 모습이 재미있지만 워낙 독특하고 기발한 그림책이 많아서인지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다. 타이완의 유명한 작가라는데 아직 우리의 그림책 수준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자만에 찬 평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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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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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읽으면서 갖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그럴 때마다 메모를 하기로 마음먹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다행히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되면(이런 맛 때문에 책 모임에 꾸준히 나가게 된다.) 뿌듯함을 느끼지만 그도 아니라면 리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그래서 간혹 리뷰 쓰는 일이 번거롭고 부담스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어서 이 또한 뿌듯하다. 대개 책을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는데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 원래 시간이 지난 뒤에 리뷰를 쓰면 그동안 책 내용을 곱씹으며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에 쫓기다 보면 책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는 뭔 점검이 그리도 많은지-나와 관련된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사람이 혼자 살 수 없기에 도와줘야 했다-도무지 짬을 낼 시간이 없었다. 책을 읽은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따라서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서두가 좀 길었다.

  주류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섬을, 그것도 가까운 섬이 아니라 멀고도 먼 섬을 찾아간다는 기획의도를 듣고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뒤부터 과거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그러니 딱이겠다 싶었다. 우선 유배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정약용과 정약전일 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면서 조선의 인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그런데 내가 역사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했나 보다. 여기서는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규보를 제외하면 전부 조선시대의 인물인데도 처음에 이규보가 나와서인지 뇌리에는 그런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아마 여기서 다루는 인물들이 어떤 사건과 함께 언급되면 알아도 이름만 덜렁 나오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짧은 역사 지식 때문일 게다.

  한때는 유배를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마을 사람들과 왕래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며 심지어 결혼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책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참했나 보다. 햇빛이 안 들게 처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면 습도는 얼마나 높을 것이며 하늘은 제대로 보였으려나. 그곳에서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어느 곳도 갈 수 없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좌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배라는 형벌이 무서웠던 것이리라. 그러나 정약전이나 김만중 같은 사람은 유배지에 가서 오히려 걸작을 낳기도 했다. 여기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그냥 허송세월을 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좌절하여 속으로 한이 쌓이기도 했다. 하긴 왜 아니 그랬을까.

  유배지가 서해의 섬도 있지만 대개 남도의 섬이 많다. 서울에서 가장 먼 섬을 찾다 보니 그리 된 것일 텐데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그곳까지 가려면 그것부터가 고역이었겠다. 고문을 당한 후 유배지로 향하다가 죽는 일도 다반사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 아닐까 싶다.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정치범이었기에 정권이 바뀌어 승승장구 한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참 덧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물과 역사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그 보다는 섬의 현재 모습이 많아서-현재 모습도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인 모습이 너무 많기에 공감이 잘 되지 않아-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한 시대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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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 아기너구리 보림 창작 그림책
이영득 글, 정유정 그림 / 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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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에서 너구리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너구리를 본 기억은 없다. 다만 '너구리' 하면 눈 주위의 동그란 무늬나 꼬리가 먼저 생각난다. 이 그림을 보니 너구리를 직접 보면 상당히 귀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기너구리가 아주 귀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기너구리는 사냥(갑자기 너구리가 고기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낯설다. 지금까지 으레 산에서 살려니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책의 너구리는 강마을에 산다. 고로 생계수단이 산이 아닌 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간 아빠를 기다리다 우연히 물총새를 본다. 그런데 이 물총새는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둘레를 콩콩 뛰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났는데 마침 물고기가 튀어 올랐고, 때마침 물총새가 그 고기를 잡는다. 오비이락이라고나 할까. 아기너구리가 생각하기에 물총새의 행동은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쉽게 이루면 그 뒤에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거기서 아기너구리는 깜찍한 생각을 한다. 바로 물총새가 그린 그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도 써 먹겠다는 것.

  그런데 얄궂게도 물총새는 그림을 몽땅 지우고 가버린다. 과연 물총새의 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슨 그림이었길래 금방 물고기가 튀어 올랐을까, 아기너구리는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물총새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더 궁금한데 아기너구리는 그보다는 그림이 더 궁금하다. 그래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엄마 제삿날이니 꼭 물고기가 필요하다. 헌데 알고보니 물총새의 그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고기를 그린 것으로 보아 그냥 취미삼아 그림을 그렸을 뿐인가 보다. 그러기에 아기너구리가 물총새에게 요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전혀 관심도 갖지 않고 날아가 버렸겠지.

  그래도 아빠너구리는 아기너구리의 말을 믿어준다. 아기너구리가 아빠를 보자마자 물총새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 않고 '아들 덕분에'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대개의 어른들이라면 괜한 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 아빠너구리는 이해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인물인가 보다. 원래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것이 공감과 인정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여하튼 욕심부리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얻는 너구리의 평화로운 삶이 잔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아름다운 자연을 담백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 앉는다. 결국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도 매일매일이 소중한 삶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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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7
이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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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권으로 된 어린이용 책을, 실은 내가 읽고 싶어서-그러나 아이들이 읽으면 좋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학기 도서 구매할 때 구입해 놓고(참고로 한시적으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시간만 재고 있었다. 모임에서 이 책을 포함해 판타지 책을 읽었을 때 비록 나는 못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기에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차에 마침 합본으로 된 청소년용 책이 나왔단다. 이럴 때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가운 책이다.

  이현, 이미 여러 책들을 통해 만났던 만큼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그동안의 작품은 약간의 환상성은 있을지언정 주로 현실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완전한 판타지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이현이라는 작가는 톡톡 튀는 글을 판타지에 어떻게 적용할까 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IT 관련 쪽에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작품에 몰입을 잘 못하는 편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글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개의 SF 소설이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비슷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그다지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도 있다. 미래는 디스토피아이며 돈과 권력에 의해 신분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사회라는 공통된 점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점이 그간 보았던 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거의 사람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몸이 자라지 않을 뿐이지 감정도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저장된 정보를 꺼낼 수 있으며 시각 청각 등 모든 면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로봇인 나로와 아라, 네다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셋이 똑같이 만들어져서 출하되었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는 각자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비록 셋이 로봇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어느 정도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로의 경우 인간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다는 로봇의 원칙 때문에 바이러스를 심지만 네다의 경우는 바이러스를 심지 않아도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만 보아도 이미 네다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디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베타인이면서도 로봇이나 델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횃불들처럼 말이다. 백곰 할아버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신은 현재 그 상태로도 많은 권력을 누리고 아쉬움 없이 살 수 있지만 자기보다 못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욕심을 대표하는 인물이 피에르 회장이었다면 로봇의 욕심을 대표하는 인물은 노란 잠수함이다. 아무리 슈퍼 컴퓨터라도 자신을 자각하고 다른 컴퓨터를 조종한다는 설정이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인공지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는 게 병이다.) 대개의 SF에서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이나 로봇이나 누구든 완전한 평등이란 그야말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읽었던 다른 SF소설이나 영화가 모두 오버랩되었다. 나로와 아라, 네다는 겉모습이 인간과 똑같다니 피부에 상처가 나면 그 안에 있는 기계들이 드러나는 <터미네이터>가 생각나고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아이 로봇>이 생각난다. 자신을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로봇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쓰는 인간 형사의 모습에서는 백곰 할아버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여하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로봇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과 미래를 들려준다. 그래서 인간이 조종하는 로봇의 삶을 살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는 로봇들의 미래가 불안하지만 희망을 품게 한다. 그래, 언제 어디나 희망은 있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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