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를 사랑한 고양이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6
레나 헤세 글.그림, 김현좌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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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며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사랑이 더 깊어진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들고양이 프레드와 회색 거위 애너벨은 아주 친한 친구다. 그러나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새는 날 수 있지만 고양이는 전혀 날지 못하는 대신 나무는 잘 탄다.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새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한다. 게다가 고양이는 추위를 잘 탈지언정 한 곳에서 정착해 사는 반면 거위는 따뜻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철새다. 둘의 공통점이 없어도 너무 없다.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여름동안 많은 추억을 쌓은 둘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거위 애너벨이 가족과 함께 좀 더 따스한 곳을 찾아 떠나야 했던 것이다. 프레드는 할머니에게 돌아와서-아쉬우니까 주인을 찾아온다. 그러나 할머니와 프레드의 관계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기에 프레드가 애너벨과 보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일 게다-따스한 난로 옆에서 겨울을 난다.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만 믿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애너벨의 걱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레드가 혹시 다른 거위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니 말이다. 사람의 시선으로 이들을 봐서인지 아니면 원래 모든 동물의 기본적인 마음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정확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이 사랑하는 이야기,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면 다양한 모습이 나올 것이다. 인종이 다르다거나 겉모습이 다르다거나 등등. 그러나 종을 떠나 그냥 순수하게 나와 다른 생명체를 사랑할 때의 마음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에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메시지를 들려줄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성으로거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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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7가지 결정적 순간들
필립 윌킨슨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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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냉전을 이끌었던 두 나라 중 하나인 소련이 무너지던 날, 그보다 앞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였던(외적으로만 비슷했지 내적으로는 많이 달랐지만) 독일의 장벽이 무너지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전에도 커다란 사건이 있었을 테지만 아직 어려서 세상사에 관심갖지 않던 때와 달리 두 사건은 어느 정도 세상을 알 나이에 맞닥뜨린 일이라 더욱 생생했을 것이다. 당시도 훗날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로  기록될 날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당시를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건만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당시는 별 것 아닐 것 같았던 일이 결과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되는 경우이 가끔 있다.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 몇 방이 1차 세계대전으로 번질지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그 전쟁은 결국 2차 세계대전까지 연결되지 않았던가. 어디서나 암살은 있어왔지만 암살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그 사건이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임에는 틀림없다.

  이 밖에도 영화로도 나와서, 아니 영화로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타이타닉호의 침몰이라던가 인간이 달에 착륙하던 일과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으며 쓰나미라는 말을 일반화시킨 인도양 지진해일 등 단순한 사건에서 더 나아가 그 후에 여러 모로 영향을 준 사건 7가지를 말한다. 내가 보기에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사건도 있고(비행선인 힌덴부르크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내 개인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제 다시 퇴행하게 될 사건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바로 우주 산업이다. 2011년, 미국에서 NASA에서 하던 일을 중지하면서 앞으로 우주 산업은 자연히 둔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쨌든 그 사건으로 인해 인공위성이 발전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첨단산업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으니 결정적 순간이 맞긴 하다.

  어느 한 사건을 단지 '사건'으로만 인식하면 근시안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은 물론 차후에 끼칠 영향까지 두루 생각할 줄 알아야 생각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은 모두 알 것이다. 예를 들자면 1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들이 전투에 나가자 그 전까지는 집안일만 하던 여성이, 남성이 하던 일을 대신하면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좋은 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것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할 게다. 그러한 책에 이 책을 끼워넣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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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와 사냥꾼 - 태국 땅별그림책 5
쑤타씨니 쑤파씨리씬 글, 찐따나 삐암씨리 그림, 김영애 옮김 / 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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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나기 쉽지 않았던 나라의 그림책을 소개하는 '땅별 그림책' 시리즈를 좋아한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새로운 나라의 이야기를 만난다는데 의의를 둔다. 지금까지 만난 책들이 대개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기에 아무 생각없이 이것을 옛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꼭 옛이야기로 분류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이야기만 그렇게 시작할 뿐 그림책인데 처음 시작하는 그 말 때문에 습관적으로 옛이야기로 분류했나 보다. 다른 사람은 전혀 상관없지만, 내가 알아보기 편하게 리뷰 항목을 분류하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걸 창작그림책으로 넣어야 하나, 옛이야기로 넣어야 하나 하고 말이다. 

  이 그림은 쇠라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세 주인공 중 사슴과 거북은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지만 새는 확실히 점묘법으로 그린 듯하다. 숲도 점묘법으로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색맹 검사지처럼 느껴지다고나 할까. 그러나 뒤로 넘어갈수록 익숙해서인지 새가 잘 보인다.

  연못가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사슴이 그만 올가미에 걸려서 거북이가 줄을 끊는 사이 새는 사냥꾼이 오지 못하도록 한다. 이 부분까지만 보면 다른 나라 그림책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새가 사냥꾼의 집으로 갔을 때 드디어 어렴풋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새가 앉아 있는 나무의 꽃이 낯설다. 우리나라에 피는 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꽃은 선뜻 알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사냥꾼의 집도 우리네 집과는 다르고 심지어는 사냥꾼의 뒷모습조차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모습도 아니고 뒷모습인데 말이다. 아, 이런 게 바로 문화라는 것인가 보다. 아는 사람은 멀리서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듯이 차림새를 보고도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슴을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사슴은 도망갔는데 거북이가 사냥꾼에게 잡히자 나머지 두 친구가 서로 도와서 결국 거북이를 구해낸다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셋의 우정은 평범하지 않다. 사냥꾼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다리를 절룩거리며(곧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잡힐 듯 말듯 도망가는 사슴의 모습은 지금까지 사슴에게 가지고 있던 순하디 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친구를 위해서 꾀를 내는 영악한 모습이지만 밉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냥꾼이 나쁘게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일 뿐이다. 마지막에 원문을 축소해서 싣는데 태국어는 아무리 봐도, 정말 그림 같다. 원문을 '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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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난 수염 - 스리랑카 땅별그림책 4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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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나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때로는 비슷한 것도 있고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묻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옛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야 좋다는데 내가 옛이야기를 잘 모르니 아이들에게 들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책으로 보여줬다. 한때는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내가 먼저 이야기를 읽고 바로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제대로 되지 않아 두어 번 시도한 다음 포기했던 기억도 난다.

  영미권이나 유럽의 옛이야기는 많이 만났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권의 옛이야기는 오히려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내 기억으로 단행본으로 만난 스리랑카의 옛이야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전에 모임에서 각 대륙별 옛이야기를 공부하면서 아시아권의 옛이야기를 공부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책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옛날 스리랑카 사람들은 수염을 길게 길렀단다. 좋거나 멋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수염을 자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위가 없어서 수염을 자르려면 물고리를 자르는 것처럼 해야한다니 번거롭기도 하겠다. 그래서 지혜로운 바분 할아버지는 쥐를 길러서 쥐에게 수염을 자르도록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쥐의 이빨이 무뎌져서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수염이 엄청 빨리 자랐나 보다. 이빨이 자랄 새가 없을 정도로 수염을 갉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 후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쥐가 이빨을 뾰족하게 만들러 간 사이 수염이 자라고 자라 사람들을 친친 감고 나무도 감을 정도였으니까.

  갑자기 수염이 빨리 자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 속도로 자란 것인데 쥐 덕분에 몰랐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엄청난 속도로 자란다. 여기서 문득 궁금해진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의심을 전혀 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까. 나처럼 수염이 갑자기 자라는 것이 뜬금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나. 이런 것이 바로 그 나라의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냐 아닌가가 차이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라투 메니카를 쫓아가던 수염이 불에 타면서 그동안 친친 감았던 사람들이며 나무를 놓아주고 적당한 길이에 머물렀을 때 바분 할아버지가 불을 끄면서 한바탕 소동은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불이 나서 할아버지가 다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시나 옛이야기의 특성답게 천연덕스럽게 일이 해결된다. 아무튼 스리랑카의 옛이야기,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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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보림문학선 8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김일형 옮김, 울리치 뢰싱 그림 / 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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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역지사지'라는 단어처럼 중요하고 필요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역지사지를 할 줄 안다면 적어도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덜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기득권들이 꼭 기억해야할 단어라는 생각도 든다.

  안도 일종의 기득권이'었'다. 족장의 아들이기에 많은 것을 가졌고 아무런 걱정없이, 현재의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노예로 일하는 아스케는 언제나 노예였을 것이라는 데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안과 아스케를 제외한 모든사람들을 잡아가고 만다. 하필이면 마을 남자들이 다른 곳으로 떠난 때였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안의 세계가 변하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에는 노예와 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조차 달갑지 않지만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여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노예에게는 일을 시키는 때 외에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배웠던 안이 아스케와 점차 마음을 터놓는 과정이 섬세하게 펼쳐진다. 특히 안의 내면의 변화는 마음을 따스하게 하며 그래도 아직은 사람에게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차츰차츰 아스케와 대화를 하면서 안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아스케도 처음부터 노예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게다가 아스케도 족장의 아들이었단다!) 잡혀간 자신의 가족들도 어딘가에서 아스케처럼 노예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의 섬을 침입한 사람들처럼 어딘가에서는 침략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지만 노예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이전의 안과 노예도 어딘가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의 안은 분명 다르다. 따라서 앞으로의 삶에 크든 작든 변화가 생길 것이다.

  기득권이었던 안이 자신의 기득권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었는가를 깨닫고(오늘은 유난히 깨닫는다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노예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역지사지 아니겠는가. 기득권에게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라는 것이다. 안이 아스케에게 '너는 자유인이 될 것이지만 족장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미안해하는 부분은 가슴 뭉클하다. 비록 기득권은 안이 계속 갖게 되겠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작은 것부터 역지사지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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