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하늘공원에 가면 그곳의 예전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사진과 쓰레기 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만치 쓰레기가 쌓여있다.) 주변으로 천막이 늘어서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진들. 그랬던 곳이 지금은 하늘공원이라는 예쁜 이름과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져서 사람들이 산책하러 간다. 물론 그 밑에서는 쓰레기가 썩고 있어서 매년 조금씩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하늘공원이 생각났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하늘공원이기 전에 난지도의 쓰레기 산이 생각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그곳에서도 살아지는 게 사람이다. 우리나라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에 그러한 모습이 전혀 낯설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베할라의 사람들이 안됐고 불쌍하게 여겨질 뿐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는 슬프다. 그래서 때로는 그러한 이야기를 선뜻 집어들지 않게 된다.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이 책도 분명 그런 마음이 들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른 때 같으면 나중으로 미뤘을 책이건만 <빌리 엘리어트>의 연출자가 영화화한다는 글귀를 보고 혹 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뒷표지의 글귀가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쓰레기 하치장에 사는 라파엘과 가르도는 우연히 가방을 줍는다. 헌데 그 가방안에는 꽤 많은 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열쇠와 지도가 들어 있다. 마치 보물섬을 찾는 듯한 분위기다. 만약 경찰이 가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지 않았다면 라파엘과 가르도는 돈만 챙겼을 것이고 당연히 그 다음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가방을 찾기 위해 베할라의 쓰레기를 샅샅이 뒤지자 라파엘은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라파엘과 가르도는 수녀님과 래트의 도움으로 열쇠의 비밀을 찾고 덩달아 상당히 많은 돈을 손에 넣지만 셋이 쓸 만큼만 챙기고 나머지는 죽은 자의 유언에 따라 그 돈을 여러 사람이 나눠갖는 방법을 선택한다. 마치 뤼팽이나 임꺽정처럼 아주 극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세 아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처음 이런 책을 읽으며 가졌던 걱정이 해결된 셈이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 처음에는 헷갈렸다. 그냥 별 생각없이 한 명의 서술자가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조금 지나자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서 보니 서술자가 달라져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한 명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는 대신 다양한 시선에서 사건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하튼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잘 해결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삶 덕분에 초조하고 움츠러들지 않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저자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을 충족했다고나 할까. 다만 진짜 현실에서도 이처럼 낙관적인 일이 자주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얼마전에 학생 토론수업을 참관했는데 선생님께서 학부모도 참여하라며 종이를 주신다. 거기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는데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여섯 명을 고르란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골랐는데 거기에는 목사도 끼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교회를 다니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지라 종교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주저하지 않고 목사를 고른 이유는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종교란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종교를 갖진 않았지만 종교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게을러서 종교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일요일이나 휴일에 갑자기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많았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고려하건대 종교가 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때는 교회를 다녀보고자 비교적 큰 교회에 나갔으나 한 번 나가고 그만 두었다. 목회자의 경험과 철학이 묻어나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간 것인데 계속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만 하고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는 등 기대한 바와 너무 달라 그 후로 가지 않았다. 아마 지금 대개의 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두 교수가 하는 말을 빌리자면 심층으로 들어가지 않고 표층에만 머무는 종교인 셈이다. 가장 관심 없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종교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종교생활을 하든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아예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한 친구라도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계기로 종교라는 것도 관심을 가질만한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종교를 가졌다고 할 수 있으니 인간과 종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세계 자체를 이해하는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솔직히 종교학이라는 분야는 특정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 관심 갖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심지어 충분히 매력적인 분야라는 생각까지 든다. 특히 비교종교학은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역사와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오랜 세월 종교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때로는 갈등이 해소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상대방을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원인이 각각의 종교가 표층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각각 가로로 잘랐을 때 각각의 종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세로로 잘랐을 때 개별종교 안에서의 차이가 더 크다(53쪽)'는 오강남 교수의 말이 지금의 종교 문제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종교의 본질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기에 종교에 의미를 두지 않는 나조차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종교의 기본에 대해 궁금해서 세계의 종교를 훑어주는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책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책으로 인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좁고 편협한 생각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 말이다.
근래 조지 오웰의 작품을 차근차근 읽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마음 먹고 읽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당장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게 된다. 그래서 여럿이 읽을 기회가 생기자 얼른 동참했다. 그때는 일단 <1984> 먼저 읽고 다음에 <동물 농장>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을 읽으며 문득 어떤 그림책이 스쳐 지나간다.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라는 책으로 모든 일을 오리에게 맡기고 농장 주인은 일을 하나도 안 하자 주위의 동물들이 회의를 거쳐 주인을 몰아낸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책에서 오리는 주인에게 반기를 들지 않고 동료들이 주인을 몰아내는지조차 모르며 주인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장면도 없다. 혹시 작가가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 아닐까. 어차피 창조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유에서 변형시키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그림책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 모습이 나온다. 또한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동물들이 처음에는 대의를 가지고 장원농장의 주인인 존스를 몰아내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존스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만인이 평등한 나라라고 해도 그 나라를 누군가가 다스려야 하고, 그러려면 계급이 생기게 마련이다. 처음 마르크스의 이론에 입각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정말로 모두 평등하고 다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란 마약과 같다고도 하지 않던가. 한 번 맛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것.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이미 그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서로 자기가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이전 존스보다 더한 착취와 노동을 강요한다. 책을 읽다 보면 대충 누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떤 사건 혹은 어떤 종류의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연상시킨다. 벤저민은 아는 게 많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회의주의자를, 클로버는 교육 받은 무기력한 중산층을 의미하는 듯하다. 역사에는 언제나 강온이 대립되어 나타난다. 큰일을 치를 때는 힘을 합치지만 막상 목적을 이루고 나면 노선이 갈라지곤 한다.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한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비록 구소련을 풍자하는 이 책을 여전히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림 출판사의 진경문고 시리즈를 좋아한다. 주위 사람들이 이 시리즈 책 중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무척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그랬고.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왼쪽 상단에 찍혀 있는 '진경문고'라는 글자가 마냥 반갑기만 했던 이유다. 신분제가 엄격하고 남녀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여자의 몸으로 금강산을 다녀온 김금원에 대한 이야기란다. 김금원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긴 주류 역사에서 벗어난 인물이니 모를 수밖에. 남자라도 서얼 출신이라면 제약이 많았던 시절, 어머니가 기생인지라 금원은 소실의 자식인데다 여자였으니 최악의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금원도 어머니를 좇아 관기로 등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금강산을 다녀오고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내면적으로 많이 성숙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여자가 금강산을 다녀올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자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금원의 부모님은 극구 말렸던 것이고. 하지만 워낙 뜻이 강하고 당찬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자의 몸으로서는 불가능하니 방법은 하나다. 바로 남장을 하는 것. 만약 금원의 부모님이 무척 고지식하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딸이 간절히 원하더라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금원의 부모도 어느 정도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교우하며 시를 짓는 모임을 만들었다니 비록 신분 제한 때문에 마음 고생은 심했을지 몰라도 한때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모 기각과 시를 주고 받으며 위안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본문 곳곳에 여러 사람의 시가 나오는데 워낙 고전과는 거리가 먼데다 시와도 친하지 않아서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특히 한자로 된 시가 있는데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사실을 나열한 듯한 문장이라 <책만 보는 바보>와 같은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뭐랄까, 그냥 김금원의 행동을 따라다닐 뿐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섬세한 묘사는 없었다고나 할까. 김금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뿌듯했지만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남지는 않았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
이거 은근 중독성 있는 책이가 보다. 바로 전 이야기인 6권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아직 제로니모에 대해 분위기 파악이 안 되어 그런지 몰라도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두 번째 읽으니 나름대로 재미있다. 하긴, 어린이 책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디 한 두 개인가. 프래니 시리즈(그러고 보니 이것도 사파리 출판사다.)도 그런 이야기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느냐 말이다. 나 역시 도서실에 와서 재미있는 책 추천해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첫 번째로 권하는 책이 프래니 시리즈다. 이번에는 제로니모와 함께 그야말로 제대로 된 모험을 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를 마지막으로 제로니모에게는 시련의 나날이 닥쳐온다. 제로니모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경기를 자신이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원래 내가 하기 전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해도 막상 그 일을 해보면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제로니모처럼. 얼떨결에 로켓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는 경기에서 1등을 하고 다음 경기에서도 그야말로 우연히 1등을 함으로써 유명해진 제로니모.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참여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웅으로 비춰진다. 제로니모의 원래 성격은 소극적이고 겁이 많다는데 여기서도 약간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자 원래부터 용감했다고 거들먹거리지만 말이다.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비서 핑키가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다. 그것도 옴짝달싹 못하게 모든 기자들을 불러 놓고. 아마 다음 권은 그 이야기가 펼쳐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