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벌꿀 - 태국 땅별그림책 3
쑤타씨니 쑤파씨리씬 지음, 김영애 옮김, 티라왓 응암츠어칫 그림 / 보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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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동일한 사고 과정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전혀 만날 기회가 없는 대륙간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이야기도 그렇다. 욕심을 부리다 되려 손해를 보는 이야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서 대대로 이어지게 했으리라.

  이 이야기는 우리 옛이야기 중 개가 뼈다귀를 물고 가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개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다 입에 물고 있는 것까지 빼앗겼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다만 다르다면 개 대신 원숭이가 등장하고 뼈다귀 대신 벌집이 등장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환경에 따라 문화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원숭이가 등장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 반면 태국은 원숭이를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나무도 생소하다.

  원숭이들은 물속에 비친 더 큰 벌집을 얻기 위해 갖가지 꾀를 낸다. 여러 원숭이가 앉아서 방법을 생각하는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원숭이는 벌집을 건드리면 벌이 날아올 것을 걱정하고 어떤 원숭이는 진지하게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원숭이는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다. 원래 여럿이 모이다 보면 구성원이 다양한 법이다.

  영미권의 그림책에 비해 쉽게 만나기 어려운 태국이나 그 밖의 나라의 책을 펴내는 땅별그림책은 의도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내가 괜히 뿌듯하다. 작가 이름이 좀 생소하고 이야기 배경이 좀 생소하고 때로는 그림책 수준이 우리보다 약간 떨어지는 듯해도 마냥 좋기만 하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나는 일은 즐거우니까. 아, 그리고 마지막에 원문 그대로를 두 페이지에 걸쳐 축소해서 보여주는데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기쁨까지 맛볼 수 있다. 그런데 문득 그림이 접히는 부분 없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축소한 그림은 책의 형태가 아니라 접히는 부분이 없어서인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접히는 부분을 생각해서 그림을 그린다지만 그래도 느낌이 다르다. 이래서 원화를 보면 확실히 다른 맛이 느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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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가디언 푸른도서관 44
백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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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올해가 몇 년인지 모르겠기에 둘째에게 물었다. "올해가 몇 년이지? 2011년? 2012년?" 둘째 왈, "엄마는 그런 걸 항상 기억하려고 애써야 해?" 물론 아니다. 날짜도 아니고 일 년 365일을 같은 숫자로 쓰는 연도를 '올해가  몇 년이더라, 아하, 몇 년이지!'라고 되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랬을까. 그건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먼 미래도 아닌 2030년과 2060년 등 나도 살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실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모호한 세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판타지 책을 읽으면 유난히 읽는 속도가 느리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완전히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도 있을 게다. 즉, 읽어 가다가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거나 조금 안 맞는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자세히 읽는다. 무슨 시험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맞아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SF판타지를 읽는 동안은 두 세계를 사는 기분이다. 현실과 책 속 세계. 책을 읽는 동안은 완전히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책을 덮으면 마주치는 현실 세계가 공존한다. 그래서 2030년인지 2011년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렸던 것이다.

  블랙홀에서 유래한 듯한 타임 홀이 있어서 그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는 발상이나 그러한 과거로 가서 상황을 바꿔 놓으면 미래가 되돌려지는데 이때 아주 커다란 영향을 줄 일이라면 집단으로 같은 꿈을 꾼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아니, 흥미롭다. 대개의 SF에서는 과거로 가든 미래로 가든 조건은 상황을 바꿀 어떠한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자주 과거를 바꾼다.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현재의 사람과 다시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꾸면 그로 인해 미래도 바뀌지 않을까, 그래서 미래에서 온 사람들의 존재가 불투명해지지 않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객관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느라 속도가 더욱 느려졌다.

  현실의 아라가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아라와 동일인인 홍나영의 정체를 파헤치고 홍나영처럼 되지 않기 위해 다시 자신의 과거를 바꾸고 아버지의 모습을 바꾼다면 지금까지 아라와 현성이네가 겪었던 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서가 애초에 타임 슬립을 한 최소영으로 돌아간다면 아라가 마주친 진서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는 이야기일까. 단순히 과거를 바꿔서 현재를 바꾸는 것까지는 많이 보았던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다시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현재와 과거에 개입하는 것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현재 있는 사람들 중 진짜 현재를 살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한 어떠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지구인 속에 끼어 있는 외계인을 식별해 내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처럼.

  이미 이 작가의 다른 책을 통해 시간대를 옮겨 가며 여러 곳의 상황을 동시에 끌고 가는 방식을 접했기에 조금 익숙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과거의 필연을 바꾸는 것이 큰일이므로 조심하다가도 때로는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필연을 바꾸는 모습은 약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어느 순간부터 그토록 아라와 일행에게 애착을 갖고 있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던 가디언고의 교장은 사라지고 기술부장의 역할만 남았다든가 이 모든 일이 결국 GMO 식품의 부작용을 감추기 위한 거대 기업의 음모였다는 평범한 결론이 약간 아쉽다. 어쩌면 그래서 수긍이 쉬운지도 모르겠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병이 출현했더라면 전혀 터무니없는 공상과학소설로만 기억될 수도 있으니까. 여하튼 책을 읽는 동안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생활하다 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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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덕분에 반올림 27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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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책이 한창 많이 나올 때 단편이건 장편이건, 국내 작품이건 외국 작품이건 정신없이 읽어서 나중에는 섞이기도 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이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것들이 다시 읽으니 어렴풋이 기억 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두 이야기도 전에 다른 단편집에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조금 읽으니 어렴풋이 기억난다. 특히 <Reading is sexy>의 경우 처음 읽을 때 참 신선하고 발랄해서 기억에 남았던 단편이다. 가정 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안됐다는 생각보다는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꽤 오래 전에 읽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꾸 지금의 청소년들이 아니라 예전의 청소년들에 대입하며 읽는다. 예전이래 봤자 불과 2,3년 전인데도 말이다. 이것은 아마 새롭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처럼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앞의 두 이야기는 이미 다른 책으로 나왔던 작품이고 표제작인 <그 녀석 덕분에>는 읽으며 <변신>도 생각나고 변신을 모델로 했던 다른 책(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도 생각나고 <흰 쥐 이야기> 같은 옛이야기도 생각나고 그런 옛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던 <수일이와 수일이>도 생각났다. 이렇게 작품은 끊임없이 변주를 하는가 보다. 여기서는 딱정벌레로 변한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가 인간으로 변했으니 두 이야기가 짬뽕 되었다고나 할까.

 위에서 언급했던 많은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변신>을 제외한 책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고 이 이야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 이야기하고자 하는 깊이가 다르다. 바퀴벌레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오히려 그 '덕분에' 자신을 찾은 양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시니컬하지만 어딘지 매력적인 민구를 보는 재미도 있다. 아니, 그 보다는 이처럼 각 인물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작가의 모습이 재미를 더하지 않았나 싶다.

 옛이야기에는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사람이 되었다는데 여기서는 아주 오랜 세월을 지구에서 살아온 바퀴벌레가 사람으로 '변신'했다. 게다가 실제로 인디밴드였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럼'의 추모 공연을 소재로 하고 있어 순간 정말 바퀴벌레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진짜 양호와 가짜 양호가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나'로 규정짓는 것이 진정 자신의 내면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모습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일까. 진짜 양호가 자신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바퀴조차 우리의 고3에게 어떻게 사느냐고 불쌍하게 바라보는 모습 또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진짜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기꺼이 은둔자의 삶을 선택하는 마지막 모습은, 그들의 입장에서 잘 되었다 싶다가도 그 부모들이 나중에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받게 될 충격과 상처가 걱정된다. 역시 아무리 청소년 소설을 읽더라도 부모의 입장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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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용감했던 17일 - 대한민국 1%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도전과 열정의 키워드 생각이 자라는 나무 22
한국로체청소년원정대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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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어느 것에 열정을 가지고 활약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든 자신과의 싸움이든 상관없는 걸 보면 열정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나 보다. 그런 것을 지향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로체 원정대를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간략한 소개글을 보고 이런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딸에게 도전해 보라고 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알았어도 통과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혹시나 통과했더라도 원망을 많이 들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이들의 훈련 과정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히말라야를 보내주는 것으로 생각해서 지원했다가 3차 심사까지 가는 도중 진심으로 원정대가 되고 싶었다는 어느 청소년의 말처럼 처음에는 나도 단순히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서 교류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웬만큼 험하기로 이름난 산들을 오르고 추운 겨울에 텐트에서 자며, 심지어 침낭 하나에 의지하며 숙박했다는 글을 읽으며 견문을 넓히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나라도 자신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딸은 더더욱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 있는 청소년들도 처음부터 그처럼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던 이들은 아닐 테지만.

 여하튼 대단한 청소년들이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학생들이라니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는 청소년들은 아닐 듯한데 그래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처럼 힘든 과정을 마치고 났을 때는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확연히 느낄 수 있으리라. 비록 도중에는 뭐 하는 일인가,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훈련을 마치고 나면 제출한 보고서를 모아서 책으로 낸 듯한데 그 글들에서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글이 매끄럽거나 정렬된 느낌은 덜 들어도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현장감은 훨씬 더했다.

 이미 큰아이는 시기가 지났고, 산이라면 질색을 하는 터라 아예 생각도 안 하지만 둘째는 한번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직 멀었지만.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아니 오히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일부러 겨울을 선택한 국내의 등반이 고생스럽고 힘들더라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아마 모르긴 해도 원정대에 다녀온 청소년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겁내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지 않을까 싶다. 히말라야도 갔다 왔는데(모두 다 올라간 것은 아니더라도) 무엇은 못할까. 국내에서 힘들게 훈련하는 모습도 가슴 뭉클했지만 히말라야의 임자체를 등반했을 때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니 이들의 부모들은 오죽했을까.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고 함께 가는 것, 이것이 진정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비록 반 년을 시험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면서도 이들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공부만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을 테니까. 내가 진정 원하는 교육 방식인데 이것조차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로체 원정대를 거쳐단 청소년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만이라도 지나친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약자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성공을 위해 친구를 제치고 앞만 보고 달려가서 결국 목적을 이뤘을 때, 자신이 겪지 않은 다른 계층은 아예 알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로체 원정대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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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막지 공주의 모험 신나는 책읽기 31
김미애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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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란 옛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기본적으로 환상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요즘 나오는 동화가 워낙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치있게 다루고 있어서 그 사실을 잊곤 한다. 한쪽에서는 고학년 대상 동화는 환상성보다 현실성에 비중을 둔 작품이 많지만 저학년 대상 동화의 경우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래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러한 생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아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는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지극히 현실적인 내가 '요즘 시대에 웬 공주'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었다. 예전에는 마음속으로 어떤 선을 긋고 책을 읽었는데 동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조금 너그러워졌나 보다. 아예 처음부터 그러한 선을 긋지 않고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않으니 훨신 재미있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빈틈없이 꽌 찬 성'에 사는 막무가내 공주 치우는 처음 이야기로 보자면 잘난 척 쟁이에 제멋대로에 예의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다. 보통 이런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라면 미운 법이나 치우 공주는 미워할 수가 없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버릇이 없는데도 주위에서 말리기는 커녕 쩔쩔매는 걸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치우 공주는 마음이 따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은 그저 아무 걱정없이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치우 공주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다 결국 영웅이 되기로 결심하고 영웅이 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영웅이 되어 모자라 군대를 물리치지만 전쟁이란 서로 상처를 받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빈틈없이 꽉 찬 성 2호'를 만든다. 물론 처음에는 모자라 동굴을 자신의 성과 똑같이 만들고 싶어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는 마음이 바뀐다. 결국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모자라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금방 씨앗이랑 만배물 씨앗을 모자라 동굴에 뿌린 것이다. 그러니까 공주에게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말도 안 되는 공주의 모험 같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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