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된 꼬마 씨앗 사파리 그림책
크리스티나 발렌티니 글, 필립 지오다노 그림, 최재숙 옮김 / 사파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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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이것은 아이를 위한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 특히 아이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를 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품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일 뿐,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는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하다. 마치 이 책의 나무처럼.

씨앗이 나무를 떠날 때가 되어 하나 둘 떠날 때 나무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보냈다. 처음부터 떠나리라는 것을 알면 보내기가 쉬운 법이다. 그런데 작은 씨앗은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무도 처음에는 얼른 친구들을 따라가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핑계로 씨앗을 옆에 둔다. 비가 오면 우산을 만들어서 비를 막아주고 햇볕이 너무 세면 그늘을 만들어준다. 지금까지는 그 어느 씨앗에게도 이렇듯 과잉보호하지 않았는데 한번 정을 준 꼬마 씨앗에게는 점점 집착한다. 처음에는 단지 며칠만 더 있기를 바라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꼬마 씨앗이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들며 붙잡는다. 꼬마 씨앗도 자신이 없어서, 겁이 나서 그냥 나무 곁에 있기로 한다. 비록 나무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냥 지금의 나무 곁에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꼬마 씨앗은 전형적인 아이들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무는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이고. 이론적으로는 아이를 떠나보낼 때는 과감히 떠나보내야 하며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면 못 미더워서 갖가지 핑계를 대며 곁에 더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댄다. 씨앗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신발을 준비하고 여행 가방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수록 아이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러다 결국 그 자리에 머물고 마는 과정을 나무도 고스란히 겪는다. 정말이지 이 정도면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꼬마 씨앗이 어디로 가야할지 꼭 집어서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해와 바람이 있는 풀밭이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무. 이 또한 우리네 모습이다. 아이가 갈 길을 미리 알아서 닦아 놓아야할 필요없이 대략적인 방향만 알려줘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런지. 꼬마 씨앗이 조금만 용기 내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듯이 아이들도 조금만 용기 내서 스스로의 길을 찾는다면 멋진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아이와 나를 대입해서 읽어서인지 첫 장과 마지막의 하트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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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는 색시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3
이미애 엮음, 정승희 그림, 박영만 원작,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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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는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그래서 같은 제목이라도 어느 것을 원전으로 삼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이 이야기도 그렇다. 아이가 읽고 나서 첫 마디가 '이건 좀 다르네. 해피엔딩이야.'였다. 전에 읽었던 책은 약간 무서운 결말이었던데 반해 이 책은 전형적인 옛이야기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을 원전으로 하는 시리즈를 펴내서 주목을 받았던 이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밥 안 먹는 색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가 있으면 밥이나 축낼 게 뻔하다며 예순이 가깝도록 혼자 살 정도로 구두쇠 영감은 그림만 봐도 얼마나 구두쇠인지 짐작할 수 있다. 뾰족한 턱에 끝이 올라간 눈, 갸름한 얼굴 모양은 척 봐도 마음이 넓지 않아 보인다. 나이 들어 결혼은 해야겠기에 밥 안 먹는 색시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수소문해 보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자신의 딸을 구두쇠라도 부잣집에 시집 보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어느 가난한 농부가 자기 딸은 밥을 안 먹고 산다고 헛소문을 퍼트린다. 여기저기에 소문이 퍼져 나가는 그림이 재미있다. 음, 소문이 퍼지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그나저나 밥을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 농부는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혹시 색시가 밥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쫓아내지나 않을지, 아니면 색시가 어떻게 몰래 밥을 먹을지 궁금해하며 읽는데 색시는 전혀 뜻밖의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구두쇠 영감을 곯려주면서도 결국은 영감의 잘못을 깨닫게 만드는 방법을 잘 찾았다고나 할까. 특히 개인적으로, 색시를 감시하라고 보낸 심부름꾼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오히려 영감을 곯려준 색시의 모습은 소극적인 옛날의 여자 모습이 아니라 좋다. 거짓말이 들통나서 곤경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헤쳐나가는 장면이 마음에 든다. 비록 색시가 거짓말한 것은 나쁜 행동이지만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인 구두쇠 영감의 행동이 원인이기에 할 말이 있다. 여하튼 새로운 '밥 안 먹는 색시'를 만난 즐거움이 큰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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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3
야마모토 켄조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길지연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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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는데 마음이 많이 무겁다. 우선 세발이의 모습이 그렇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둘이 떨어지게 된 것이 그렇다. 주인공은 세발이와 마음을 나누면서 힘을 얻었고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게 되었으며 결국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났지만 남게 된 세발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세발이는 소년이 없어도 꿋꿋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소년이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서 비록 말로 안 했지만 세발이에게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숱하게 마음으로 이야기했다지 않은가. 이렇게 위로하고 서로 좋은 길로 갔을 것이라고 애써 위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허전하다. 

  함께 살던 엄마가 돌아가셔서 외숙모 집에 얹혀 살게 된 소년은 보기만 해도 기운이 없다. 언제가 같은 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사촌들이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베푸는 입장에서의 생각일 뿐이다. 보아하니 그것도 잠깐이었지 싶다. 소년이 또래에게 해코지를 당한 후 학교에도 안 가고 세발이와 친구가 되어 놀기만 할 때 사촌과 외숙모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간신히 세발이와 친구가 된 소년은 어디를 가든 항상 세발이와 함께 한다. 이렇게 서로 의지했는데 세발이만 두고 떠나면 과연 세발이는 잘 지내 수 있으려나. 애초부터 누구의 세발이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세발이었다지만 자꾸 '인연'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너와는 특별한 인연이었잖아, 그런데 두고 떠나다니. 차라리 데리고 가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려본다. 차라리 세발이와 말로 이별을 했더라면 슬프기라도 할텐데, 이건 마음으로 알려줬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만큼 소년이 세발이에게 의지했다는 얘기니까. 그래도 시간이 꽤 흘렀는지 마지막의 그림은 이제 소년이 아닌 어른이다. 그 시간동안 그는 세발이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 속으로 언제나 세발이를 생각했고 오로지 세발이만 친구였는지 여전히 고독함이 느껴진다.

  강아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맑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큰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라니. 특히 강아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눈이 더욱 맑다고 느껴질 것이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억지로 표정을 꾸미는 것도 아니니까. 집에 강아지 혼자 둘 수가 없기 때문에 키우는 강아지를 가끔 시골에 맡길 때가 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밖에서 차소리가 나면 얼른 달려가 창밖을 내다본단다. 혹시나 우리가 왔을까 하고 말이다. 혹시 세발이도 소년과 비슷한 옷을 입은 또래 아이를 보면 혹시나 하지 않을까. 물론 개는 냄새를 잘 맡으니 그런 착각을 할 리는 없겠지만. 소년은 세발이 덕분에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았고 그 덕분에 떠날 용기를 얻었는데, 그러니까 소년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남겨진 세발이가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가장 마음 아팠던 원인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세발이가 자꾸 소년에게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여겨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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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최강 문제아 - 푸른문학상 수상작가 동화집 미래의 고전 24
신지영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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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재미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얘네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아이들은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등등 혼자 이 애가 되었다가 저 애가 되었다가 한다. 그러다 생각이 향하는 곳은 바로 '그럼 우리 아이는?'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엄마가 싫어할 일만 골라서 하는 준우의 행동을 보며 한심해 하거나 이 엄마 정말 속터지겠다 싶다가도 혹시 내가 이런 적은 없었나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겠지만 겉으로 그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이에게 선입견을 갖게 만든 적은 없었던가 자문하는 것이다. 내가 동화를 열심히 읽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책 속 인물을 통해 내 아이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해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준우의 행동이 조금 심했다 싶다가도 상황을 알고 나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또한, 준우 엄마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리라 본다.

  그런가하면 아픈 딸의 병원비 때문에 밤이나 휴일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 영찬이 아빠를 보고는 잠시 동화라는 것도 잊은 채 부모로서의 책임감에 가슴 뭉클해진다. 사실 이런 때는 슈퍼맨의 정체가 알고 보니 자신의 아빠여서 창피해하는 영찬이의 마음보다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에게 더 마음이 간다. 만약 아이가 읽는다면 자신들도 엄마나 아빠를 창피해하거나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찬이에게 더 감정이입해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어른인 나는 영찬이를 이해하기 보다는 가족의 상황에 더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어린이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것은 모두 동화를 읽으며 느끼고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그냥 글로써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꺽정불의 비밀> 같은 무생물이 주인공일 때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의 뒷 이야기쯤 되는 <보리밥 잔치>도 무생물이 주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쉽게 공감이 가고 오히려 기발하다는 생각까지 드는데 <꺽정불의 비밀> 같은 이야기는 내겐 참 쉽지 않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을 비꼬거나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지만 거기에 그닥 눈길이 가진 않는다. <달려라, 나의 고물 자전거> 같은 경우도 너무 흔한 이야기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읽게 되지는 않는다. '내가 이래서 동화를 읽는다니까'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면 쉽게 공감하고 이야기에 푹 빠질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라 감탄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때로는 기발한 소재에 감탄하고 때로는 특이한 서술 방식에 재미있어 하며 읽는 동화는 내게 아이를 이해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귀한 존재다. 그래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어찌나 기쁜지 모른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동화를 즐기며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이 책에 있는 작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로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독자의 또 다른 기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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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
김영철 지음, 이승원.박동호 그림 / 우리교육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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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관심이 꽤 있어서 한때는 봄이 되면 도감을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닌 적이 있다. 길을 가다 생경한 풀꽃을 만나면 도감을 뒤적이며 이름을 찾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간신히 찾아서 이름을 알고 나서 다음에 또 그 꽃을 보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외우고 잊어버리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여전히 그 상태다.가장 큰 원인은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점일 게다. 그러나 여전히 관심은 있다.

  베란다에 있는 화초를 바라보고 신기한 점을 발견해서 아이들에게 흥분한 채로 이야기하면 둘째는 그런다. '엄마는 식물이 좋아? 난 재미없던데.' 한창 활동적이고 빠르게 변하는 것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는 식물은 재미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것은 어렸을 때 그토록 많이 만났던 풀꽃에 대해 보기만 했지 이름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궁금해했다면 어린 시절의 감성과 만나 그들의 이름이 뇌의 한 켠에 자리를 잘 잡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도감이라는 것이 이처럼 보편화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하찮게 여기는 '풀'에 대해 알려주는 도감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내가 어렸을 때는 관심이 있었다해도 금새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평창에 있는 자생식물원은 개장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가봤다. 남자들은 관심이 없다고 차에서 있고 딸과 나만 갔던 기억이 난다. 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며 걸어가다 만난 엷은 분홍빛의 노루오줌꽃밭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자생식물원에서 일하며 우리 꽃을 연구하고 있단다. 그 정도면 흔히 자신이 알고 있는 풀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리라 생각할 테지만 꼭 그렇지 않다. 설명하는 부분은 맞지만 마치 나는 모든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로운 꽃을 만났을 때 잘 몰라서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구하는 모습과 어렸을 때의 이야기가 적당히 섞여 있다. 솔직히 처음엔 자생식물원에서 연구한다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물론 자생식물원에서 연구하기 한참 전의 이야기겠지만 독자는 현재의 모습만 기억하나 보다.)이 의아했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저자가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정감있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찾아다닌 결과 이렇게 되었다는, 아주 당연한 이치를 간과했다고나 할까.

  처음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려니 생각했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란다. 어쩐지, 글이 빽빽하지 않다 싶었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방식만이 아니라 풀꽃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좀 억지스럽다. 어린이 대상 책이라면 모를까, 이런 책에서는 조금 유치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내용은 새로 알게 된 부분이 많다. 쇠비름의 줄기가 통통한 이유가 그곳에 물을 많이 저장하기 때문이라거나(그래서 잘 죽지 않았구나. 정말 질긴 풀이라고 생각했었다.) 겨우살이가 싹을 틔우기 위해 사용하는 교묘한 방식 등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야기는 특히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여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식물에 관심을 덜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식물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노력없이 그 자리에서 살고 있으리라 여기니 관심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비록 움직이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해도 그들 나름대로 엄청나게 머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이처럼 그들이 살아남고 후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싸움을 알면 조금은 관심 갖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이 더 신기한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시골에서 엄마가 베란다에 놓으라며 하늘매발톱 몇 포기를 예쁜 화분에 담아 주셨는데 그게 지난 겨울에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밖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베란다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니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늘매발톱은 두어 달 추운 날을 맛봐야 꽃을 피운다던데. 올해 꽃 안 피우면 내년에는 꼭 밖에다 두라고 말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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