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이야기 한국사 세트 - 전2권 - 개정판 다시 쓰는 이야기 한국사
호원희 지음, 조장호 그림 / 소담주니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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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때는 모두 '옛날'로 인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훗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 1990년대의 독일 통일과 소련의 해체를 내가 사는 시대에 경험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흥분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옛날 일이네! 맙소사, 어떻게 불과 2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옛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에는 내가 오히려 황당했지만 이젠 그럴 수 있겠거니 한다. 나도 내 부모가 어린 시절을 살았던 시기를 옛날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역사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물론 흥미를 갖는 아이들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과는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 지금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일을 알아서 무엇에 쓰겠냐는 것이다. 역사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려면 아마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 다음일 것이다. 역사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아이들이 읽는 역사책은 형식이 다양하다. 편지처럼 들려주는 방식,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해 주는 방식, 특정 사건별로 이야기하는 방식 등.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이야기로 풀어주는 방식이다. 특히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어떤 일을 이야기하면서 역사적인 상황을 함께 이야기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적인 상황에 맞게 현실의 사건을 끌어낸 것이지만 여하튼 그런 방식이다. 

 준호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듣는 방식인데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부분과 준호의 생활을 보여주는 부분의 말투가 똑같아서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지만 형식은 그렇다. 시대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개괄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맥을 잡는데 용이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면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설도 있는데 무조건 부여를 떠나 결혼해서 나은 아들로 되어 있다. 백제의 삼천궁녀에 대한 이야기도 부연 설명이 필요할 법한데 그냥 통상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물론 한국사를 두 권에 압축해 들려주는 상황에서 곁가지 이야기들까지 할 상황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아쉽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으면 아이들도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재미있게 읽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의 역사를 현재와 결부시켜서 잘 이어준 점은 좋았다. 그럼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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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쳐 줄게 사계절 성장 그림책
앤더 글.그림, 신혜은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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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매력적이고 심지어 위대해 보인다. 무엇을 시작할 때는 마치 끝까지 할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캐시도 워낙 피아노 장난감을 좋아해서 진짜 피아노를 사 줬을 때는 마치 언제까지나 피아노를 좋아할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물건을 올려놓는 용도로 바뀌지 않았느냐 말이다. 이런 경우는 비단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든 아이든 생활에서 얼마든지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보편적인 일이라는 얘기다. 

 여자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큰아이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학원에 보내면서 피아노를 사줬다. 남편은 굳이 피아노를 살 것까지 있느냐며 부정적이었지만 어차피 둘째도 있으니 큰맘 먹고 샀다. 물론 처음엔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이도가 어려워질수록 피아노 치는 것을 싫어했다. 피아노 뚜껑은 줄곧 닫혀 있었고 먼지만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캐시처럼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있긴 했나 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캐시는 외적인 요인으로 극복했다면 딸은 내적인 요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캐시가 피아노 연주회에서 끝까지 마치지 못한 것이 좌절의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줬어야 하지만 캐시 엄마와 선생님은 약간 성급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기대감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걸 보면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결론은 성급해 보인다. 다만 아이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 그나마 맞지 않을까 싶다. 

 어느 것을 좋아했다가 좌절을 겪고 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냥 캐시가 겪는 일이거니 하고 읽다가 어느 순간 퍼뜩 깨닫는다. 아, 캐시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래서 성장그림책이라고 하는가 보다. 게다가 우리네 아이들 모습(겉모습이 아닌)과 비슷하므로 아이들은 캐시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읽을 것이다. 그러면서 비슷한 때를 기억하며 위로를 받겠지. 또,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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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세트 (최신판, 전5권) (특별부록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가이드북)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고화정 외 엮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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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순수 문학 작품, 그것도 현대 작가들이 청소년을 위해 쓴 작품에만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요즘 작가들이 쓴 작품이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내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바로 다양한 작품을 접해야겠구나라는 것이다. 그 시절 비록 완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진 못했어도 좋은 작품을 읽고 여운을 주체하지 못하던 때가 기억난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읽을 가치가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단순히 국어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치있는 작품을 읽어둬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독서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시간은 유한하고 할 일은 많은 고등학생이 무턱대고 많이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꼭 읽어두면 좋은 작품을 고르고 골라 펴낸 이런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때 교과서에 나왔던 작품은 모두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작자의 생몰연도를 알아봤으니 분명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그냥 교과서에 나오니 같은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듯싶다. 문득 박민규나 공지영, 황석영, 김훈의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강연회에서 얼굴을 보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그들을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런지. 개인이 필요한 작품을 일일이 찾아서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골고루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말이다. 

 사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즈음에 이르니 근래 나오는 청소년책들만 읽을 것이 아니라 여기에 나오는 것과 같은 작품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요즘이다. 게다가 시집을 찾아 읽을 리는 절대 없는데 시까지 엄선해 놓았으니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정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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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쟁이 고모가 좋아 내책꽂이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홍미라 옮김, 이승연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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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고모라는 단어는,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는 단어는 아니지 싶다. 내가 아직 고모가 되어보질 않아서 조카에게 고모란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으나 니콜과 케빈은 고모를 아주 싫어한다. 잔소리를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고모는 단지 잔소리만 심한 게 아니었나 보다. 오빠에게도 비가 온다고 투덜대는 것으로 봐서 원래 까다로운 성격인가 보다. 어른이야 상황을 이야기하면 설득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무조건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닐까 싶다. 케빈의 엄마가 고모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도 아이가 없을 때는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엄마와 아빠가 떠나지 않기를 별별 구실을 대며 부탁하지만 결국 고모가 오고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 집으로 떠났다. 역시 고모는 오자마자 청소부터 한다. 이처럼 깔끔한 사람이 아이 둘 있는 집에 왔으니 오죽할까. 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런데 고모가 좋아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긴다. 그 전부터 약간 조짐이 보이긴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부터 그랬다. 그제야 아이들도 고모가 약간은 편해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무에 올라갔다 내려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렸을 때는 나무에 잘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은 니콜은 고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신기해한다. 하긴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으니까. 

 고모와 공감대를 형성한 아이들이 이제 고모랑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겠지. 그리고 고모도 드디어 아이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혹시 표지 그림처럼 되는 건 아닐지. 니콜에게 사 준 인라인 스케이트를 고모가 빼앗아서 신나게 타고 다니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나머지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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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의 특별한 여름 - 국제독서협회 아동 청소년상, 뉴베리 영예상
재클린 켈리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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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그냥 흐를 뿐인데 우리는 거기에 커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아니, 흐르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규정지어 놓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1999년과 2000년의 차이는 숫자상의 차이일 뿐 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흐르는데도 전 세계가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당시는 컴퓨터로 처리되는 일이 상당히 많아서 그에 대한 오류를 걱정한 것이라 해도 지구가 종말을 하네 마네하는 얘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1899년과 1900년은 어땠을까. 1999년과 2000년의 차이 정도는 아니어도 세기가 바뀌는 시기이므로 약간의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당시 현재의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그랬겠지만). 그보다 훨씬 전, 그러니까 999년과 1000년은 현재 계산법대로만 존재하는 것이니 당시는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1899년이다. 그리고 1900년이 시작되는 날에 이야기는 끝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는 부분을 읽다 문득 2000년을 맞이하던 때의 호들갑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이제 책으로 돌아가서 캘퍼니아가 살던 시기의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먼저 알아봐야겠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았고 대공황이 오기 전이니 그럭저럭 괜찮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여성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었고(1920년에 처음 투표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사회 활동이 상당히 드문 때(전화 교환원을 우러러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였다. 캘퍼니아의 엄마가 딸을 사교계에 진출시키고 요리와 바느질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자들의 최대 목표는 남편을 잘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것, 곧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시대에 보편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캘퍼니아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남자 형제들만 있는 집의 여자 형제는 대개 천방지축이기 쉽다. 환경이 그런데다가 성향까지 그러니 누가 말리겠나. 게다가 그것을 은근히 부추기는 할아버지까지 있으니 캘퍼니아의 미래는 당연히 시대를 앞서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가정교육을 중요시하는 때였기 때문에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는 척한다. 식사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고, 밥 먹기 전에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백인 여자 아이는 절대 들일을 해서는 안 되는 등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정확히 구별되던 때였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여자들이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부채질 하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옷이 왜 그리 입고 싶던지. 그러나 그런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칼렛처럼 해야하며 때로는 기절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또한 여자가 남자의 부속품처럼 취급받던 시절이었음을 알고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숙녀로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의 바람과 달리 캘퍼니아는 들로 뛰어다니며 곤충을 채집하고 식물을 관찰한다. 그러나 시대적인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한 면을 볼 수 있다. 엄마가 반대할 것을 뻔히 알기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해 예의바른 척한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벽을 넘고자 시도한다. 또한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한다. 개인적으로 캘퍼니아 같은 아이를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그린 점이 의아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의사에 변호사이면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쓰다니. 사실 그래서 과학적인 부분은 약간 못미덥긴 하다. 게다가 뒤에 감사의 말에 오류가 있으면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개발되지 않은 대자연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어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이 많은데도 모두 애정을 갖도록 따스한 시선으로 묘사했다. 커다란 사냥개 에이젝스까지도 나름대로 비중을 차지하니 말이다. 우리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듯 이 책도 일종의 역사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역사동화는 대개 피지배자가 주인공이라 아프고 울분을 토로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있는 집'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낭만적이다. 캘퍼니아가 차별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조차 덤덤하고 심지어 재미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진보는 너무 진지하고 유머가 없다는 말이 왜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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