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밥상, 농업 미래생각발전소 4
서경석 지음, 이철민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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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은 시골에서 주로 논농사를 지으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물론 전에도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지 못했으나 점점 그 간극이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정부에서 논농사를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어 머지 않아 현재보다 논농사 비율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골 주변만 보더라도 이미 화훼 단지로 바꾸거나 산업 단지로 변경한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는 현재 쌀이 많이 남아돌아서 그런다는데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과거의 역사를 알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현재를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라니 다른 나라의 실정을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먼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밀가루를 보면 된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밀을 직접 생산하는 농가가 많았으니 미국에서 밀가루를 저가로 퍼주는 바람에 우리의 밀농사는 사라졌다. 그러자 서서히 밀가루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럼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밀가루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다. 결국 우리의 밀 산업은 망했으니 비싼 가격에, 그들이 부르는 가격을 주고 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요즘은 서서히 우리밀을 재배하는 사람이 많고 가공 방법도 좋아져서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제 쌀이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베트남의 경우도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으로 쌀 수출국이었으나 플랜테이션 작물로 바꾸고 나서 이제는 쌀 수입국이 되어 버렸다. 논을 없애고 밭으로 만들어 한때는 짭짤한 재미를 보았으나 세계 곡물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그보다 몇 배의 돈을 주고 주식인 쌀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왠지 지금의 우리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식량은 단지 먹는 것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안보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주식을 수입하는 입장에서 수출국이 문을 닫아 버리면 우리는 꼼짝없이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쌀이 그나마 자급이 되니 식량자급율이 20%대를 유지하는 것이다. 쌀을 제외하면 자급율이 5%라니 수입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태에서 쌀까지 포기하면? 그 후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현재의 이익에 어두워 미래를 저당 잡히는 꼴이다. 그런데 현재 정책은 그렇게 가고 있으니, 도대체 정책입안자들은 이런 걸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설마,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 

 앞으로는 종묘 즉 씨앗 전쟁도 예고되고 있다. 실제로 씨앗을 받아서 이듬해에 심는 농작물이 얼마 되지 않는다. 이처럼 번식을 맡는 유전자를 없애거나 바꾸어 이 종자를 심어서 얻은 다음번 종자는 심어도 싹이 트지 않게 하는 기술터미네이터 기술이라고 한다. 이는 종묘회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씨앗이 맺지 않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보다는 이미 유전자 조작 식물이 많이 퍼져있는 상황에서 재래종과 교배하면 새로운 유전자 조작 식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아예 씨를 맺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아직 GMO 식품에 대한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별 다른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전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1차 산업인 농업 문제를 다루다 보면 여러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유전자 조작 식품과 종자의 독점, 공해 등 때로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까지 사실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논은 천혜의 습지라니 식량 문제와 환경 문제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먹거리를 이야기하는 책 같지만 사실은 세계의 역사와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의 특징과 문제까지 두루 살펴보는 책이다. 그러면서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도와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이 시리즈의 책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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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2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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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네 학교 선생님과 이야기 도중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선생님은 소설을 읽지 않으신다는데 그 이유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란다. 내가 봐도 그 선생님이 맡은 반 아이들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그게 바로 소설이 될 것 같긴 하다. 아이가 읽는 동화는 현직 교사가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아이들의 생활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이니까. 이 책의 저자도 선생님이기에 이처럼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최기봉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님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하다. 아니, 냉정한 게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게 두려워서 가르치는 제자들 이름도 외우지 않는 선생님이 바로 최기봉 선생님이다. 일 년을 함께 생활하는데 이름을 모른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런가 하면 유보라 선생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에게 관심가져 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공주리를 보고 화를 낸다. 어째 여기 나오는 선생님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제자들의 이름을 절대 알려고 하지 않던 선생님이 드디어 변했다. 15년 전의 제자에게 받은 도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이들과 엮이며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공주리가 어떻게 선생님의 결제서류와 상장에까지 도장을 찍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항상 말없이 청소만 하던 주리도 다른 사람의 관심이 필요했나 보다. 거기에 현식이와 형식이, 일명 두식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선생님과 교집합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으로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는데 다른 작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첫 작품인 듯하다. 도장을 훔쳐간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각 인물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나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등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지만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우선 형식의 아버지가 박 기사 아저씨라는데 형식이의 성은 민씨다. 또한 우연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도 그렇다. 하필이면 최기봉 선생님 때문에 상처 받았던 유보라가 같은 학교로 왔고 두식이가 혼날 때 박 기사 아저씨가 그곳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 여하튼 우연이 좀 많았단 생각이 든다. 우연이 많더라도 교묘하게 숨겨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주리의 아픔에 대해 나올 것처럼 하다가 그 이야기는 쏙 사라져서 아쉽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니라 선생님 같았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눈길이 가기 보다 최기봉 선생님과 유보라 선생님의 아픔에 더 눈길이 갔다. 아이들은 그저 주변 인물에 머문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동화라고 해서 꼭 어린이들의 이야기만 나오라는 법은 없지만 인물의 무게중심이 어른에 쏠려 있고 인물들의 사고 범위가 어린이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작가가 너무 이야기 속 선생님과 밀착되어 있다고나 할까. 아이들의 시선이 아닌 어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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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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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선입견은 편리할 때도 있지만 때론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한때 모임에서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우리 작가의 책을 대거로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주로 만났던 작가가 최나미, 이현, 유은실, 박효미였다. 각각의 작가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이야 달랐겠지만 내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봐서인지 그들이 같은 범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책은 분위기가 비슷한 생각마저 든다. 특히 유은실 작가의 눙치는 방식(한켠에서는 동화 기법이 아닌 소설적 기법을 띤다고 하지만 여하튼 난 좋다.)을 좋아하는 내게 이현의 작품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읽어보면 차이가 나지만 확실히 그 이전에 활동하던 작가들과는 뭔지 모를 차이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이현은 <<짜장면 불어요>>와 <<우리들의 스캔들>>을 읽으며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작가였다.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4차원일 것 같고 성격이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은 작가다. 그러기에 언젠가는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 작가소개부터 독특하다. 음악과 여행(인지 바다인지는 모르겠으나)을 좋아하는지 그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는 웬 가수들이 잔뜩 나온다. 이 책을 읽는 요즘 아이들이라면 머릿속으로 언급되는 가수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겠지만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이 사람처럼 여겨지는 나로서는 당췌 모르겠다. 그저 작가가 노래를 참 좋아하는구와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시간의 어느 순간에 다른 일이 벌어졌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에 관한 이야기인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을 해보았을 법한 이야기다. 만약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아니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영두도 우연히 어느 순간에 갈라진 자신을 만난다. 그러나 둘의 인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든 상황이 안 좋기만 한 문제아 영두와 평범한 영두의 모습은 읽는 이조차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 밖에 외계인을 만났는데 지구에서의 삶이 희망이 보이지 않아 그들을 따라갔다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 가족이라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 등 각각의 이야기는 읽고 나서도 마음 편해지지 않는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빨간 신호등>은 그 또래의 아이, 특히 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읽게 된다. 종원이의 사고방식이 비단 책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줄곧 종원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시온이 마음도 종원이와 같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남자는 '사랑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강간이었던 것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결코 마음 따스해지는 부류의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현실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이점이 바로 작가의 특징이지 싶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점. 그리고 현실 참여적인 눈과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기에 당장은 아프지만 그래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법이다. 청소년들에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만 들려줄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들도 현실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기에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 당장 마음이 편치 못해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현재의 청소년들 편에 있는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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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베이비시터 사계절 1318 문고 65
마리 오드 뮈라이 지음, 김영미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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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 착한 사람이라면 독자는 안심하고 책을 읽는다. 그러나 툭 하면 거짓말이나 하고 엄마와도 사이가 그닥 좋지 않은 사춘기 소년이 주인공이라면 안심할 수 없다. 우연히 시작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면 언제쯤 진실이 드러날까 조마조마해 하며 읽는 게 보통이다. 거짓말이 들통나야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어른들은 믿으니까. 그러나 에밀리앵을 바라보는 작가는 그렇지 않다. 처음엔 그 점이 불편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삶이란 잘못했다고 꼭 벌을 받는 것도 아니며 좋은 일을 했다고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것처럼 때로는 작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도 있지만 별 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는 일도 의외로 많으니까.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에밀리앵은 평범한 학생이다. 물론 엄마와 에밀리앵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다.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웃는다. 다만 엄마는 항상 일 때문에 바쁘고 약간은 신경질적이기에 엄마에게 애틋한 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래서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만난 안토니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자 책까지 사다 읽으면서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연구한다. 에밀리앵은 안토니 엄마가 자신의 엄마처럼 자식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봐주며 심지어 자신의 형제라고 여기는 것만 보아도 사랑이 고프긴 했나 보다. 그러나 그들은 에밀리앵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떠나자 역시 가족은 자신과 엄마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에밀리앵이 비록 처음에는 컴퓨터를 사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했지만 그로 인해 정이 무엇인지 배웠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툭 하면 거짓말하고 그 거짓말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그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알고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리앵이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들켜서 외적으로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에밀리앵의 문제로 놔둔다. 대신 아망딘느를 만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아망딘느의 행동을 알게 된 후 아망딘느가 곤경에 처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멋진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리앵의 말처럼 운명적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망딘느를 보며 도둑질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에밀리앵이 물건을 훔치고 만다. 그것도 관계가 소원해진 마리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엄마가 에밀리앵을 데리러 가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데리고 오는 것까지다. 앞으로 에밀리앵은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와도 사이가 좋아질 것을 암시하면서. 그러나 에밀리앵이 반성한다든지, 엄마에게 훈계를 듣는다든지 하는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에밀리앵 엄마는 쿨하고 재치있게 넘긴다. 에밀리앵이 잡혀 있는 가게에 가서도 당당하게 돈을 내고 데려오는 모습은, 우리 작가의 글에서는 만나기 힘든 장면이다. 만약 그랬다면 뻔뻔한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에밀리앵 엄마에겐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후에 아들에게 하는 말과 연결시켜 보면 뻔뻔한 게 아니라 아들을 믿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동안 에밀리앵의 엄마가 아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너무 자신의 삶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엄마로서 자격미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 마음은 여느 엄마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다. 커다란 사건이 있는 듯 없는 듯 잔잔하고 때로는 밋밋하게 펼쳐지지만 사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다. 자꾸 읽고 되새길수록 각 인물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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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꽃 - 김환영 동시집
김환영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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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아이는 왼손잡이다. 엄밀히 말하면 양손잡이다. 우리집 가족 구성원의 75%가 왼손잡이니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때는 그림을 그릴 때다. 왼손으로 스케치를 하다가 오른손으로 지우는데 특히 글이 있는 그림의 경우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 다른 사람들은 한 손으로 이것저것 하느라 거쳐야 할 단계가 많지만 딸은 그렇지 않아서 남들이 부러워한단다. 이 시집을 펼치고 그 안에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양손잡이인 딸이 생각났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니 얼마나 멋진가. 남들이 딸을 부러워하듯이 나도 이 시인이 부럽다.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본 것을 그려놓는다면 얼마나 멋진 추억이 될까. 그림책 작가 중에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은 봤지만 시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동시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런 동시집과 느낌이 다르다. 아름다운 말만 골라서 예쁘게 표현하려고 하는 시들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되 시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진솔하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동시집을 읽을 때는 치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가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아, 시는 이런 것이구나, 시는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시를 느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작약이 피기 전에 개미가 줄지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깜장꽃이 피었다고 표현한 것이나 나비가 팔락이는 모습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표현한 재치. 누구나 보는 것들을 시인은 이처럼 다르게 표현하다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도시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머리에서 나온 동시가 아니라 생활에서 느낀 동시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생활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최근에 읽었던 동시집 중 가장 마음에 콕 박히는 동시들이었다. 

  이제 겨울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2010년 12월에 걸맞는 시 한 편을 소개해야겠다. 처음에 제목을 보지 않고(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대개 제목을 먼저 보는데 이 시만은 제목을 안 봤다.) 시를 읽었는데 순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가 그 의미를 알고 웃었더랬다. 제목이 무엇인지 맞혀보시길. 참고로 이 제목의 전문(全文)이다. 

밤새 자동차를 먹어 치운 

북극곰들이  

두 뒤만 푹푹 내어놓고 

주차장마다 드르렁 드르렁 

코나팔을 불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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