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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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오래전에 읽어 놓고 리뷰 쓰기가 겁나서 미루다 이제야 마음 잡고 쓴다. 무엇 때문에 리뷰 쓰기를 두려워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아마 딸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도 아니다. 부모가 딸을 빚 갚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도 보았고 잘 살게 해준다는 이야기에 속아 딸을 노예로 넘기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읽고 되새기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부모가 의도적으로 돈을 받고 딸을 넘긴 경우라면 부모를 실컷 욕하기라도 할텐데 라크슈미처럼 속아서 인생을 힘들게 사는 이야기는 더욱 안타깝다. 물론 라크슈미의 새아버지는 알면서도 모른체했으니까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인 아버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엄마의 무기력함과,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제도가 답답하다. 우리 사회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라크슈미가 처한 현실보다는 훨씬 낫다는데 위안을 느껴도 되겠지만 그 조차도 라크슈미와 같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크슈미가 결국은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고 라크슈미가 함께 떠나자고 해도 확신이 없었던 아니타는 그냥 남지 않았던가. 그곳에 계속 남아 있는 아이들은 과연 무엇에 희망을 걸고 살아야 할까. 

이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소설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사람의 욕심은 과연 끝이 있을까. 뭄타즈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그것도 어린이를,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차마 시키지 못할 일들을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는 파렴치한 인간이 어느 곳에나 있으니. 뭄타즈는 그들의 사회제도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하튼 너무 화나는 이야기지만 당장 바뀔 것 같지 않아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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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버거 대왕 환경지킴이 4
이미애 글, 이주윤 그림 / 사파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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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무척 좋아하는 둘째가 이 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림에 나오는 햄버거를 보는 재미가 훨씬 크지 않았을까 싶다. 침을 삼켜가며 봤이리라. 다 읽고 나더니 하는 말, 헨젤과 그레텔이랑 똑같네!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여기서 똑같다는 말은 기본 구성이 같다는 얘기다.  

야채 반찬뿐인 밥상을 보고 집을 나가는 하나와 두리. 내가 보기에 진수성찬이지만 정작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없다. 우리도 친정 엄마는 아이들 반찬(특히 둘째)을 따로 챙기신다. 어렸을 때야 워낙 안 먹으니까 따로 했지만 지금은 신경쓰지 않는데도 그러신다. 그러면서 누구네 애는 나물도 잘 먹는다는 말씀을 빼 놓지 않고. 큰아이도 어렸을 때는 야채를 그토록 안 먹더니 어느 순간부터 무척 잘 먹는다. 몸에 좋다는 건 일단 먹고 보는 욕심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맛있단다. 둘째도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집을 나간 하나와 두리는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간 곳이 바로 햄버거 집이다. 이 후로는 이야기가 예상한 대로다. 다만 하나는 햄버거 대왕이 하는 말을 듣고 음모가 숨어있다는 걸 눈치챈 후 햄버거를 먹지 않는다. 햄버거가 왜 나쁜지를 알려주기 위해 햄버거 대왕이 혼잣말을 하고 그것을 하나가 엿듣는 방식을 채택했다. 결론도 예상대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차려 놓은 식탁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 맛있는 냄새로 느껴진다. 뚱뚱해진 두리가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두 장면에서 모두 처리했다. 달리고 뛰고 걷는 사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 

두리의 모습은 마치 어릿광대 같다. 그런데 아빠도 모습이 좀 독특하다. 하긴 엄마도 평범하진 않군. 온통 현란한 옷에 배경 그림까지 화사해서 어른인 나로서는 정신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좋아하겠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지각색의 햄버거도 눈길을 끈다. 아, 콜라컵에 그려진 걸 보니 두리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그랬구나. 앞 장에는 다른 회사를 의미하는 컵이 있다. 아이가 제목을 보고 버거킹을 의미하느냐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난 다양한 의미로 해석했다. 

뒷부분에는 햄버거가 왜 안 좋은지 환경적인 면에서 접근한 설명이 들어 있다. 모두 맞는 이야기고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여전히 좋아한다. 아예 못 먹게 할 수는 없어서 최대한 먹는 횟수를 줄였다. 일단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의도는 좋으나 그것이 너무 직설적으로 드러나서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 하긴 비교할 만한 책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이런 방식이 참 어려운 것인가 보다. 확실한 주제는 있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실천해야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하는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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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느림보 그림책 12
이민희 지음 / 느림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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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강렬한 메시지가 전해지는 책. 그래서 읽고 나면 일단 통쾌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작가가 일갈한 '사람들'에 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매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아무 할 일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하다가도 막상 일이 없으면 괜히 허전하고 허탈해서 결국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나를 되돌아 본다. 그나마 적어도 남에게 내 일을 대신 맡기는 것을 꺼려한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며. 그러니까 적어도 돼지가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던 일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많고 많은 동물 중 왜 돼지를 택했을까. 흔히 돼지를 먹보에 미련하다고 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단다. 3분의 2 가량을 돼지들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어려운 연구를 하고 멋진 건물도 짓고 여가도 즐길 줄 안다. 돼지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형태만 돼지일 뿐 사람의 모습 그대로다. 할 일도 너무 많아서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할 판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대신 일해줄 무언가가 없을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사람들이다. 돼지들이 보기에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다 대신 일을 시킨다. 원시 생활 모습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영하는 모습 뒤로 모나리자와 뭉크의 절규가 있다. 물론, 주인공은 모두 돼지로 바뀌어 있다. 이런 식의 그림은 어린이 책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제 돼지들은 춤추고 놀기만 하면 된다. 돼지가 하던 일은 똑똑한 사람들이 다 한다. 하필이면 왜 똑똑한 사람들을 선택했을까. 좀 덜 똑똑한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고. 그랬으면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돼지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또한 똑똑한 척척로봇을 만드는 걸 보면 그 상태에서는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 보다. 자신들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어야 하니까. 똑똑하지 않으면 일이 줄어들지 않을 것 아닌가. 

돼지가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면서 서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돼지로 변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첫 장의 돼지 그림이 전부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 후에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앞에서 돼지가 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전철을 밟으리라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에 치여 시무룩하고 생기라고는 없는 모습의 사람을 보며 혹시 이게 현재 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지만 그렇다고 일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그나저나 마지막 그림, 압권이다. 모두 '단추'만 누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각 집에 한 명씩 그런 사람 있지 않을까. 하긴 리모컨이 어디 한 두 개라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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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이니까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36
후쿠다 이와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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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이와오의 <난 형이니까>를 읽으며 무척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동생만 예뻐하는 엄마 때문에 동생이 더 미운 형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책이다. 그러면서도 동생을 미워할 수 없는 형의 마음이 잘 드러났던 책이기도 하다. 즉 <난 형이니까>는 형의 입장에서 동생을 바라보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나온 이 책 <우리 형이니까>는 동생의 입장에서 형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표지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생은 무조건 형을 따라한다. 그만큼 동생에게 있어 형은 경외의 대상이다. 잘 놀아주고 힘도 세고 철봉도 잘한다. 레슬링 놀이를 하다가 형에게 져서 약올라 우는 동생에게 겁쟁이 울보라고 놀리지만 정작 겁은 형이 더 많아서 텔레비전에서 귀신 영화가 나오면 목욕도 같이 하자고 하고 잠도 함께 자자고 한다. 물론 무서워서 그렇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혼나서 울고 있으면 슬그머니 화장지를 갖다 주는 형이 그냥 좋단다. 

하루는 유치원에 엄마 대신 형이 데리러 왔다. 엄마는 가방도 들어 주지만 형은 으스대며 따라오라고만 말하고 성큼성큼 앞장서 걷는다. 게다가 동생이 항상 다니던 길로 가지 않고 구불구불한 골목만 찾아다닌다. 겉표지를 만나면 나오는 약도를 보면 형이 가는 길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동생은 처음 가는 길이니 형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쫓아가야만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형이 사라진다. 개는 짖고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망설이는 동생을 먼 발치에서 보여주고 있어 당황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뒤에서 나는 소리에 놀란 동생의 모습이 큰 그림으로 보여지고 반대쪽은 검은 형체만 있어 더욱 긴장하지만 다행히 형이다. 반가운 마음에 형에게 와락 안기지만 형은 무뚝뚝하기만 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앞장서 걸어가는 모습은 으스대는 형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동생은 여전히 형이 좋단다.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고 울보라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 보다는 그냥 우리 형이니까 좋단다. 형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때로는 미울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가는 듯하지만 형제간의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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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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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지난한 책읽기였기에 드디어 다 읽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나서 계속 다른 일이 끼어들었기에 시간이 걸린 이유도 있겠지만 매끄럽지 못한 문장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고 때로는 앞 장으로 다시 가느라(그야말로 작가가 말했듯이 초보독서가들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다. 물론 그것을 몽땅 번역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워낙 학술용 단어가 많이 나오고 내용 자체도 상당히 전문적이라 내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더라도 만족한 문장들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난독증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책을 꽤 읽는다고 여기는 나조차도 가끔은 단어를 반대로 읽는다던가 글자를 빼놓고 읽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의아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글자만 다른 글자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 기회에 난독증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는데 그건 좀 무리한 욕심이었나 보다. 하긴 난독증에 대한 연구 역사가 길지 않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고 충분한 데이터도 축적되지 않았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확실히 알려면 전문정보를 다룬 책을 봐야할 텐데 그러기에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일 게다. 

그렇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한 책 읽기가 헛되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우선 인간의 뇌가 처음부터 책 읽기에 맞춰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의아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글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다만 조금씩 세월이 지나면서 뭔가 기록해야 할 일이 생기고 전해줘야 할 일이 생기면서 문자의 필요성을 느꼈고 더불어 문자가 창조되었고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자각했다. 그 전까지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런 게 바로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싶다. 소크라테스가 우려했던 문자로만 받아들여서 거기서 지식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더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흔히 자폐아는 특정한 부분이 유난히 발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난독증도 일견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여기서는 뇌의 활성화 영역을 스캔한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을 0%와 100%로 나눌 수 없듯이 난독증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책에서 예로 든 다 빈치나 에디슨, 아인슈타인만 보더라도 그렇다. 또한 현대에서도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알고 보니 난독증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문제는 작가가 지적했듯이, 또한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바로 이러한 난독증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위축되어 다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잃을까 우려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조금 과장을 하자면 인류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 또한 내가 가장 관심 갖는 부분이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부분이라 많이 공감이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책에서 다양한 단어를 만나야 언어가 풍부해진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고 직접 느끼기도 했다. 그러므로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은 부모가 됐든 보모가 됐든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책을 접할 형편이 안되는 아이와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책을 접한 아이의 언어구사력을 추적조사한 예에서도 보듯이 유아기의 책은 아주 중요하다.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이렇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아쉬움 하나. 우리 언어를 가지고 이처럼 방대한 연구를 한 사람이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내가 그런 쪽에 관심이 없기에 못 봤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겉표지만이라도 봤던 책 내지는 이슈가 되었던 책을 돌이켜 보면 없었던 듯하다. 여기서 예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서 우리 언어로 치환시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그것은 이런 문자도 있다는 수준에 그친다. 우리도 우리 언어에 대해 연구하고 고심한다면 아무리 배우기 쉬운 문자라지만 여전히 글을 몰라 어려워하고 더 나아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도 주저하는 많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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