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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머니 ㅣ 평화그림책 1
권윤덕 글.그림 / 사계절 / 2015년 9월
평점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면으로 마주치기 힘든 일을 피하고 싶어한다. 회피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피하면 어떤 일이 바람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강하게 억압하면 무의식으로 들어가서 예기치 못할 때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제로는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일 경우가 많다.
올해로 한일병탄(아직까지 용어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병합' 또는 '합병'은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흡수 통합하는 것이므로 두 나라 이름을 병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강제 병합 또는 무력에 의한 침탈의 뜻인 '병탄'이라고 써야 한다고 말한다.) 100년을 맞았다. 너무 아픈 역사이기에 잊고 싶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다. 역사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식민시절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일본의 확실한 사과를 받지 않았으니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한중일 삼국이 공동기획해서 만든 '평화그림책'의 첫 번째 그림책이란다. 아직 우리나라 작가의 책만 나왔으니 과연 일본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다. 현재도 그들의 교과서에는 식민지배와 2차세계대전을 왜곡하고 진실을 말하기를 꺼리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악랄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지는 과연 알기는 할까 궁금했던 차다. 일단 그 의문은 풀린 셈이다.
여자로서 정말 치가 떨린다고밖에 할 말이 없는 위안부. 인간의 본능을 최대한 이해한다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그들의 행태(그러나 더 화가 나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식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에도 화가 난다.)를 고스란히 드러낸 책이다. 보는 우리도 이토록 아픈데 이렇게 말하기까지 이 할머니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여기서는 꽃할머니라는 한 분의 이야기를 하지만 단순히 한 명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골에서 나물 캐다가 일본 군인들에게 끌려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 일본 군인이 잡아갈 때만 해도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몹쓸 짓을 당하는 순간부터는 옷만 그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고, 기억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잊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머리에서는 지워지더라도 뼈속 깊이 새겨진 아픔은 어찌할까. 꽃할머니는 결국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던 50년의 세월이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50년이라니. 그동안 이 할머니들(지금이야 할머니지만 당시는 꽃다운 나이였을 것 아닌가.)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하나. 그것은 일본이 정식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일본의 전쟁을 다룬 책들은 대개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만을 강조한 이야기였다. 과연 그들이 가해자라는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이번에 기획에 참여한 일본 작가들은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사실 여기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적어도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일 텐데도 그들의 순수성에 의심이 가며 두고 보자는 마음이 앞선다. 이것은 아마 일종의 피해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을 넘어서야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다.여하튼 일본 작가의 그림책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