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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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당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국가는 필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가끔 다른 나라에게 못되게 구는 행태를 보면서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일례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을 때 악랄하게 행동했던 것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국가라는 이름 뒤에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지는 전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모든 사람들이 식민지배와 착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까 싶기도 했다. 어느 사회나 잘못된 정책을 눈치채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지금까지 일본은 워낙 전체주의적인 국가라서 모르는 것인가 답답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지난 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명분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다른 나라를 뒤에서 조종하는데 그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디나 의식이 제대로 정립된 사람이 있기 마련이므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며 비난을 퍼붓더라도 말이다(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우리의 어떤 사건이 오버랩된다). 다만 아무래도 내가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기에 기회가 오지 않으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세스 토보크먼처럼 비록 자기 나라의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옳은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게는 소중한 기회다. 

솔직히 굵직한 사건 외에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 워낙 세계를 주무르는 나라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정보가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책을 보며 답답했다. 우리가 우러러 보고 따라가기 위해 기를 쓰는 나라가 이런 모습이라니. 비록 현재의 수정자본주의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 분야는 전부 따라잡은 셈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도 이럴진대 우리라고 별 수 있겠나 싶어서. 일종의 패배감이자 열등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의 역사는 우리가 훨씬 짧으니까. 

거대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경제정책이나 대홍수 이후 오히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업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어쩜 우리와 똑같은지, 역시 잘 배웠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성이 같아서 그런 건지 현대의 자본주의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들의 세세한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차마 더 이상 실을 수 없었단다. 이러한 것조차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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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이 살아났어요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11
박수현 글,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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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니 마루 기둥이 휘어진 것이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다. 게다가 제목도 시골집이 살아났다니 그럼 귀신이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인가 싶었다.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가서 겪는 이야기가 많이 있으니 그중 하나려니 했다. 특히 무서운 이야기.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뭐, 완전히 빗나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공포가 아니라는 얘기다.


강이, 산이, 들이 세 쌍둥이네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앞으로 펼쳐질 일을 보면 세쌍둥이들을 데리고 아파트에서는 살기 힘들겠지 싶다. 저 마루에 누워 있으면 엄청 시원하겠다. 대개 마루는 땅에서 떨어져 있는데다 뒤쪽에 문이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한다. 게다가 널찍한 마당도 있으니 답답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처음에 아파트 숲으로 이사왔을 때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살 때는 더울 때 밖에 나가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시원해졌는데, 아파트에서 살 때는 공원으로 나가도 온통 아파트라 하늘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오히려 답답했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물인지라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셋은 신 나게 뛰어다니며 말썽을 부린다. 어른의 기준으로 봤을 때야 말썽이지 쌍둥이들은 그게 바로 놀이다. 우물에 돌 던지고 장독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그림만 봐도 아슬아슬하다.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와 술래잡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말썽부리느라 술래잡기도 잊어버린 듯하다. 


대문 문고리에 매달리질 않나 문턱에 걸터앉아 놀질 않나, 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난다. 할머니는 술래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말리기 바쁘다. 도대체 저 할머니는 누굴까. 그 의문은 마지막에 가서야 풀렸다. 엄마 아빠가 외출해도 아이들은 따라갈 생각을 안한다. 만약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아이들만 두고 나갈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이 집에 있으려고 할까. 게임을 제외하면 놀거리가 없는 게 바로 아파트의 생활이다.


그렇게 아이들만 남아 있는 집에 어둠이 찾아드니 낮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화장실이 가고 싶단다. 아이들도 '화장실은' 아파트가 더 좋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세쌍둥이의 수난이 시작된다. 화장실에 갔더니 뒷간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쫓아오고 수문장이 아이들을 혼내준다. 뒷간 귀신을 피해 가는 곳마다 그곳의 신을 만나니 아이들이 놀랠 만도 하다. 그러나 뒷간 귀신을 제외한 신은 무섭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만나는 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낮에 놀던 곳과 연결이 된다. 그러니까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일거라 오해를 했지만 이쯤되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전통 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화장실에 사는 뒷간 귀신, 즉 측신을 비롯해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과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삼신까지 두루두루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을에 추수를 하고 나면 시루떡을 해서 집안 곳곳에 갖다 놓았다. 당시는 그걸 왜 하는지 몰랐다가 아이 키우면서 이런저런 책을 보며 알았다.


마침 이번 휴가 때 닭실마을을 다녀왔다. 한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고 있는 마을이다. 대문도 이처럼 운치있게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다. 지금의 직선만 있는 아파트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 안에는 널찍한 마당도 있다. 물론 그 옆으로는 세쌍둥이가 집으로 뛰어갈 때 나오는 담장도 있다.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길을 걷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시에서는 주변을 돌아볼 새 없이 무조건 앞만 보며 걸었는데 여기서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주거환경이 변한 게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너무 많은 게 변했다. 그러면서 덩달아 너무 많은 것이 사라졌다. 나 또한 그러한 중간 매개자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발전해도 전통을 잊어서는 안 될텐데. 그래서 자꾸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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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詩겠습니까 2 - 중학생이 사랑하는 시 아침이슬 청소년 13
이상대 엮음 / 아침이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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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올해 청소년들이 쓴 시와 수필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발제를 우연히 내가 맡게 되었다. 당시는 쉽지 않은 주제로 여겨져 부담이 되었지만 발제 책들을 읽으며 내가 발제를 맡게 된 걸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발제를 맡지 않으면 대충 보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비교적 꼼꼼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청소년들이 쓴 소설집 <로그인하시겠습니까?>를 만났고 이어서 이 책도 만났다. 만약 내가 발제를 하지 않았으면 관심도 없었을 테고 이런 책이 나왔는지도 몰랐을 것 아닌가.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지만, 책을 좋아하지만 가장 안 읽는 분야가 바로 시집이다. 시집을 어쩌다 읽고 나면 괜찮다, 그러니 앞으로는 자주 읽자라고 다짐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일단 끌리지 않는데 어쩌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간혹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드는 시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아주 가끔이다. 청소년인 딸도 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나도 그랬다. 교과서에 나온 작품만 간신히 읽는 정도였으니 딸에게 시를 읽으라고 권하지도 못하겠다. 그런데 중학생들이 시를 읽고 느낀 글을 모은 책이라니 우선 궁금했다. 아니, 시를 좋아하는 애들도 있나 싶어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기특하면서 부러웠다. 얘네들은 어쩌다 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니 얘네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이 시대의 중학생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서중학교 학생들은 특별한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인생에서 아주 귀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후기에서도 나오고 느낌에서도 가끔 나오듯이 아이들도 처음에는 시 공책 쓰는 걸 부담스러워했단다. 하긴 무엇이든 시켜서 하는 건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처음엔 싫었지만 자꾸 쓰다 보니 시가 좋아지고 좀 더 일찍 이런 걸 했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날 때 시집을 꺼내 읽으면 마음이 정리가 된다거나 가방에 항상 시집 한 권이 들어있다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도서관에 가서 시집을 들춰보는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도 자신의 경험과 결부될 때 느낌이 남다르다. 그건 각 시를 읽고 느낌을 적은 글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엄마와 싸우고 나서 읽은 정채봉의 '엄마'라는 시가 눈에 들어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은 어른으로서 청소년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실 한창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글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책도 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인데 그들을 생각없이 행동한다고 치부한 건 아닌가 싶다. 어떤 학생은 자신을 본성이 사악하다고 말하는데 이런 시 공책이 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어찌 보면 자신과 만나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아픔도 치유되지 않을까. 그리고 가끔은 아주 풋풋한 사랑앓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당사자는 아플 텐데 웃어서 미안하군). 

나 혼자 여기 있는 시들을 읽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느낌들을 청소년들을 통해 많이 느꼈다. 오히려 이들의 감상글을 읽으며 많이 배웠다. 시는 이렇게 읽으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청소년들이 쓴 시와 수필, 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런 기회가 얘네들처럼 특별한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점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때로는 치유할 수 있어서 좋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에만 매달리는 현재의 모습이 변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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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맞춤 - 유기장이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9
김명희 지음, 최정인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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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출판사(당시는 언어세상이었다.)의 <똥떡>을 보고 환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히 재래식 화장실에 사는 귀신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다. 자투리 문화라는 말답게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관심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꾼 장이 시리즈'를 내놓아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주인공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시골 내려가서 우연히 헛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향로를 발견하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하다가 꿈에서 제대로 알게 된다는, 조금은 진부한 줄거리지만 주인공의 꿈속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유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유기로 유명했다는 안성의 5일장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안성맞춤이라는 단어의 유래까지 알 수 있다. 만들 유기와 똑같이 나무 모형을 만들고 개펄 흙으로 나무 모형을 넣고 거푸집을 만들어 쇳물을 부어 만드는 과정이 글과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식책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자칫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다행히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꿈 속을 나타내는 장면은 연기가 배경으로 깔려서 약간 몽환적인 느낌도 난다. 

집에서는 거의(아마도 '전혀'가 아닐는지) 사용하지 않는 유기. 솔직히 나도 유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드는지 잘 모른다. 아니, 몰랐다. 그저 그릇을 닦기 위해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가끔 들었을 뿐이다. 간혹 어떤 식당에 가면 놋그릇을 사용하는데 그냥 놋그릇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비로소 했다. 놋그릇은 찬음식은 차갑게, 더운 음식은 더운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니 말이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또 상한 음식이나 독이 묻으면 색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안전하기까지 하단다. 

모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다시피 하는 유기에 대해 이렇듯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도록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뭐, 이 시리즈 전체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치 국시 꼬랭이 시리즈가 우리 문화를 다시 돌아보는데 일조를 했듯이, 이 책도 지금은 별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한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은 전통이라고 하면 무슨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워도 단순히 외워야 하는 대상일 뿐 이해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아이들만 탓할 게 아니다. 생활에서 직접 볼 기회가 없으니 당연히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현재 아이를 키우는 부모 세대도 전통에 대해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직접 보여주거나 알려줄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그 '부모 세대'에는 나도 포함된다. 어느 순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깨달은 후에 전통 관련 책을 열심히 보여준다. 비록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나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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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쿠스토 - 생명의 바다를 기록한 최초의 해저 탐험가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5
제니퍼 번 글, 에릭 퓌바레 그림, 유범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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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인물 그림책을 보고 프리다라는 인물을 처음 만났다. 그 후로 프리다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분명 그러한 정보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저 무의미한 정보였을 뿐이다. 그러다 프리다라는 인물을 알고 나서 그녀와 관련된 정보들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쿠스토라는 인물을 만났다.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프리다처럼 말이다. 

191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쿠스토는 어려서부터 바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고 함축적이며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쿠스토의 어린 시절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았을 테고(그러니까 새로 산 카메라를 분해했겠지.) 모험심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직접 실험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카메라로 직접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니 이러한 것들이 훗날 쿠스토가 영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바닷속은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분야다. 그러니 쿠스토가 생활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야말로 바닷속은 미지의 세계이자 경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소설에도 바다를 그리는 것들이 많았을 테고. 여하튼 지금은 그래도 상당 부분 해저의 비밀이 드러났는데 그게 모두 쿠스토 덕분이란다. 지금 깊은 물속에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스쿠버 장비가 바로 쿠스토가 발명한 것이라니 말이다. 그가 이러한 것을 발명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실패를 거듭하지 않았을까. 그림책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하긴 프리다의 경우도 이렇게 만나고 좀 더 관심이 가서 자세한 책을 찾아 읽었으니 아마 쿠스토도 그럴 것 같다. 

쿠스토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해저 세계의 신비로운 광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바닷속에 있던 유물을 발견해서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또한 바다 밑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것을 깨닫고 환경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스쿠버와 수중카메라를 발명한 것만이 아니다. 해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고 무엇보다 바다를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 1위에 꼽히는 것일 게다. 오늘 새로운 인물을 만났다. 그것도 권력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과 정신 때문에 존경받는다는 사람을 만나서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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