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라오양의 부엉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다연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끝 지점에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갑자기 무너져내렸고 꽤 긴 세월 동안 허무한 생각과 무기력한 나를 보듬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슬픔, 상처, 아픔이라는 감정이 아물기까지 방황으로 점철된 하루의 공백은 빠르게 또 지나갔다. 세월이 약이었는지 홀로 지낸 그 시간이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본업으로 돌아왔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회생활을 한다. 그때보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지만 회사와 집이 대부분 일만큼 꽤 단순해졌다. 가르침을 주는 어른도 몇 남지 않았고 살다가 흔들릴 때 잡아줄 사람도 없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인생은 본래가 그렇다"며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철학서는 아니지만 삶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알려주듯 유연하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우리들의 삶을 계속 이어지며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무언가 의미를 찾아가야 다시 활기차게 여정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은가.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듯이 나에게 벌어진 행운과 기쁨으로 우울감을 잠재우는 지혜를 얻어야겠다. 삶이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 길이 보이지 않은 것 같아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듯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가능성을 덮어두지 말고 뭐든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다. 이 책에서 지혜와 위안을 받고 별거 아닌 일에 생각을 오래 두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삶이라는 바다에서 표류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도 방향도 잃어버린 채 떠있는 지금, 나침반처럼 분명하게 알려줘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나이가 들고 늙었다는 변명은 그저 운명 탓을 하며 체념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눈앞의 난관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영원히 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이를 핑계로 대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도전을 꺼리는 건 무수히 많은 핑계들을 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뀌는 건 없고 타성에 젖어 체념한 채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내일을 바꾸기 위해선 오늘의 작은 시도와 노력이 쌓여서 이뤄지는 것인데 나는 왜 안 될 거라며 포기해버렸나. 출퇴근길에 마주치듯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에서 생각해 보니 운명을 정하는 것도 결국 내 선택인데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삶은 밤하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리라.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박산호 지음 / 지와인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남들과 같은 형태의 가족은 아니지만 잘 지내며 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기준에 따라 억지로 끼워 맞춰서 살지 않지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이들 2인 가족은 어머니처럼 남편과 이혼한 편부모 가정이다. 스릴러 전문 번역가인 엄마와 고3인 딸 릴리가 알콩달콩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대한 기록들이다. 다른 가정과 별다를 게 없고 오히려 릴리의 자립심이 높아 보였다. 시크하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도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기 때문에 보인 반응일 것이다. 여자 둘이 살기 때문에 동거하면서 부대끼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SNS에서 독자들이 그렇게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글 자체가 맛깔나다 보니 어느새 여자 둘이 사는 그녀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곁에서 엿듣는 것 같았다. 투닥거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건강한 생각이 오가는 가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딸에게 무조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잘 들어주며 무심한 듯 딸은 전형적인 모녀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립심도 강해 나중에 크면 엄마에게 무조건 의지하지 않고 독립할 것 같았다. 영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어까지 배우려는 욕심을 가진 것을 보니 나중에 뭐라도 되겠다 싶었다.


진정한 관심은 사사건건 간섭하고 사생활에 개입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모두가 다 같은 형태로 성장하는 시대는 가버린 지 오래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재단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며 그들이 행복하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생각보다 정말 잘 살고 있었고 저자도 아이 양육에 신경을 부단히 쓰고 있었다. 스릴러 전문 번역을 하다 보니 재택근무할 시간이 많은데 코로나19로 딸과 붙어지낼 시간이 많아졌고 그 때문에 오히려 딸을 알게 될 순간들이 늘어났다. 재미있게 일상을 들여다보며 읽기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잡 시대에 부쳐 워커스 라운지 1
홍인혜 외 지음 / 보틀프레스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하나의 직업이 아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N잡러들은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어서 N잡러가 되었을까? SBS 스페셜 '부캐로 돈 버실래요?'를 보면 대부분 취미 삼아 배웠는데 푹 빠져 계속하다 보니 또 하나의 직업으로 발전한 경우다. 그러다 보니 본업에 활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이 곧 직업이 되고 사업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자신에게서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부수입이 들어오니 점점 더 재밌어지게 되는 과정들은 보면 N잡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는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보다는 '여러 우물을 파는 사람이 낫다'는 격언으로 바뀔 것 같다. 불확실성 시대에는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가능성을 점점 확장하게 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을 보면 한 번 사는 내 인생인데 속에서 꿈틀대는 열망과 꿈을 애써 감추려 들지 않았다. 자유를 갈망했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그들도 좋아하는 일에 열중해서 만화가, 작가, 시인, 유튜버, 강연가 등 활동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열망은 늘 갖고 있다. 이들은 회사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닌 더 먼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힘찬 날갯짓으로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을 조금 더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쓰는 지금이, 매일 달라지는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만족스럽다. ... 도전하고 노력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많을 것이다.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에 내가 내린 수많은 선택과 우연의 연속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회사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이 큰 변화가 있거나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 회사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유롭게 시간을 쓰지도 못한다. 자유라는 특권을 매일 달라지는 내일이 기대되고 성장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시간의 소중함을 제일 크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혀야 하고 수많은 선택 속에서 내일의 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대신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을 것이다. 뭐든 꾸준히 하다 보면 숙련되어 잘하게 되어 있다. 여러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건 삶을 지금보다 풍요롭고 재미있게 살아가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대 자루를 끌고 지하철 칸을 이동하면서 잡히는 대로 무료 신문을 담던 노인들, 리어카를 끌거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 노인은 일명 다달이에 주워온 폐지를 차곡차곡 담아 한곳에 모아둔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재활용품들이 보이면 수집하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만큼 가격을 쳐주지 않는데도 동네 사방팔방 거리에 내다 놓은 재활용품을 수거해간다. 지자체 공공 근로로 일하는 것보다 노동시간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금을 받는다거나 개인 소유 주택도 없다. 한두 가지 이상 질병이 있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금의 대부분이 약 값과 월세비 내는데 쓰이는 형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그나마 정부로부터 혜택도 받고 지원금이 나와 괜찮은 편이지만 가난에 몰린 극빈층은 좁디좁은 고시원이나 그것마저 어려우면 노숙자로 전락한다. 2020년 기준 인구 5,178만 명 중 65세 이상인 노인이 812만 명은 전체 15.7%를 차지한다. 이미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제 은퇴하여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야 할 시기인데도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길러 출가시키느라 정작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 까닭이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대다수 노년층은 일자리 문제도 한정적이라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에 내몰리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은 나와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며 애써 외면해왔다.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로 대변되는 그들의 사회적인 문제를 고발하고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서 가난도 구조화되버린 것은 아닌지 공동체 관점에서 바라보면 심각한 문제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테지만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고생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일인데 삶의 밑바닥으로 쫓기듯 내몰리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재활용 정책'과 '재활용 산업'은 각광받는 분야지만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가난한 노인들의 삶으로 연결 지으면 씁쓸한 사회의 단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커, 웨스트, 허스턴, 아렌트, 매카시, 손택, 케일, 디디언, 에프런, 헬먼, 애들러, 맬컴까지 이들은 글로 이목을 집중시켰고 몇몇 여성은 서로 교류하거나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연결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일종의 사회로부터 받게 되면 편견으로부터 당당하게 지면을 할애하여 목소리를 냈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여성들이 항상 옳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20세기의 훌륭한 논쟁들에 치열하게 참여했다는 점만으로도 그녀들은 인정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지금보다 훨씬 전통적인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였음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장을 펼치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아이러니, 풍자, 조롱이 섞인 글로 되갚아 주는 등 우아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시대마다 남성들보다 유난히 똑똑하고 특출난 재능을 가진 여성들에게 무조건 찬사만 쏟아지지 않았다. 일부 남성들은 반발 심리에서인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든 창피를 주려고 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분위기나 인식 앞에 매몰되거나 설득당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대로 당당하게 맞섰다는 점이 후대에 와서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처럼 출판사에 문을 두드려 글을 쓸 기회를 얻었던 것처럼 기회를 스스로 찾았고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분명한 것은 그녀들은 글과 행동으로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커다란 위력을 보인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들이 펼친 주장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다. 기존의 전기를 읽을 때처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상기시키며 한 인물을 천천히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책에 언급된 12명의 인물들은 서로 같은 공통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사상이 부딪히며 동일화시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인데다 워낙 글쓰기에 소질을 갖고 있어서 그들처럼 내 글이 곧 내 이름이라 부르게 되도록 글에 더 애착을 가지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