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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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상상에서 출간한 책들 중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제국 시대라는 시기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서양 문물이 보급되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민중들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역동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특히 급변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신문에 게재된 논설이나 이도영 화백이 그린 시사만평은 풍자와 유머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민중들은 정보를 구전으로만 전해져듣다가 1896년에 '독립신문'이 창간된 이후로는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독립신문이 창간되자 뒤따라서 제국신문, 매일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대한민보 등 근대식 신문 미디어들이 등장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보의 시사만평과 각 신문마다 3면 기사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세상살이를 알아봄으로써 혼돈과 격량의 시대를 겪어야했던 사람들의 모습들에 대해서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총 15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무당과 점쟁이, 스캔들, 사생활, 성병, 통변, 만민공동회, 도박, 청결, 생계형 협력자, 사진, 개 규칙, 정신병, 추첨, 일본 관광단, 얼개화꾼으로 시사만평과 함께 읽으니 절로 폭소가 터지고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사람 사는 건 어디가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워낙 근현대사에 대한 자료를 간헐적으로만 접해서 그런지 생소한 부분도 있고 현대식 건물이나 사진 속 사람들을 보며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무당과 점쟁이 편을 보면 공포와 불안이 들어올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외부의 영적인 무언가에 의지하게 되는 듯 싶다. 무당은 그런 인간의 속성을 잘 이용했는지 왕후를 찾아간 날 자신의 앞날을 점쳐달라는 요구에 왕후의 환궁일을 점쳐주었고, 신통하게도 무당이 점지해준 날에 왕후는 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의 왕후는 명성왕후인데 드라마나 영화, 뮤직비디오에서 묘사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뭏튼 이를 발판으로 삼은 무당 왕후의 총애를 얻게되어 그 위세가 드높아졌다. 한순간에 진령군으로 봉해지고 남관왕묘 정전이 지어진 것이다. 이렇게 무당과 점쟁이들이 창궐하게 되면서 조정이나 일반 백성들은 사리분별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무당이라면 먹히는 시대였으니 신분상승을 위해 이를 악용한 셈이다. 고종이나 명성왕후가 이에 심취했다는 건 나라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뭔가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떄 합심해서 한마음으로 뜻을 모으는 일은 잘하나 보다. 1899년 2월 2일 '독립신문'에서는 백성들이 남관왕묘 화재로 인해 의연금으로 너무 많은 돈을 기부해 정부가 돈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1899년 5월 6일자 '독립신문'에서는 남관왕묘 중건비로 정부가 지출한 돈이 약 19,351원이었다고 하니 한낱 무당을 위해 만든 건축비를 위해 관과 민이 같은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정작 민중들의 삶은 피폐하고 더 나아지는 점은 없는데 마치 나라가 큰 위기에 빠졌던 IMF때 국민들이 금모이기 운동으로 바리바리 장롱 속이나 집에 보관중인 금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 당시에 마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신문이 있는데 '국민신보'와 '대한신문'인데 일본에 우호적인 신문기사를 써내면서 사실을 왜곡 및 날조하여 민족의 뒷통수를 쳤던 언론이다. 오죽하면 시사만평에서 '공평한 언론을 억압하면 천벌을 받을지어라. 이 악마야'라고 썼겠는가. 그 패악이 도를 지나쳤던 것이다. 신문기사라는 것은 명확히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지 누군가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로 사실을 왜곡하여 호도한다면 이미 언론으로서의 기능은 정지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제의 권력에 빌붙어서 한몫 잡아 부귀를 누리거나 입신양명하여 신분상승을 꽤한 천한 의식이 이런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이 민족을 위하는 길인지 아니면 배신하는 길인지 그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아마 대한제국 시기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궁금했었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저잣거리에서 민중들이 특정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으며, 격동과 혼란의 시기에 신분상승을 노린 사람들의 말로와 신문 보급으로 인해 개화되어 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두말할 것없이 근현대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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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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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이방인>이다. 근데 책 띠지에 적힌 말들이 도발적이다. 25년을 속아왔다니 그러면 지금까지의 번역은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라는 말인가? 오래 전에 <안네의 일기> 국내 최초의 완역본이라 소개한 책을 읽으면서 원래 이렇게 두꺼웠었나 의아해했는데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적나라한 부분까지 있어서 삭제되었던 것이다. 번역은 제2의 문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가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원문이 다르게도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한 작가의 작품만을 담당하는 전문번역가도 있는데 누구보다 작가의 문학세계나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전 명작을 재번역 과정을 걸쳐서 다시 내놓는다는 건 심리적 부담이 큰 작업일 것이다. 원문을 읽으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해냈는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 사실 <이방인>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갖고 있다. 근데 번역의 오묘한 점은 같은 줄거리를 가진 번역서임에도 다르게 읽힌다는 점이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역자노트는 <이방인>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역자가 번역하는 동안 겪었을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 번역을 거치면서 단어 선택과 잘못 표현된 조사까지 바로잡는 과정은 완벽하게 내용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화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이렇게 많은 분량을 역자노트에 할애했다는 것은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누락되었거나 인칭대명사의 차이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어투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음을 부연설명으로 달아두었다. 그래서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분위기 자체가 외롭다. 전혀 따뜻하지가 않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겪는 일들도 무미건조할 따름이다. 감정 자체를 극도로 자제한 듯 나와 타자를 구분한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 이방인의 삶을 추구한다. 무리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무관심으로 채워져 있다. 요즘 같으면 자기방어로 인정되어 사형에 선고되지 않을텐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뫼르소'는 타자에 의해 비도덕적인 인간이 된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뫼르소'에겐 빈껍데기 뿐인 인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카뮈는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수많은 번역서들을 서점에서 만난다. 하지만 정말 문장이 어색해서 읽기 거북한 책도 있는 반면 자연스럽게 읽히는 책도 있다. 번역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책이라서 이 책 이후에도 잘못 해석된 고전들이 재번역되어서 나왔으면 한다. 번역자가 책임감있게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책들이기에 역자노트에서 기존 번역서와의 비교와 해석은 한번쯤 독자들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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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부모에게 답하다 - 청소년과 부모가 영화로 소통하는 인문학 이야기, 2014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선정 도서 인문학 콘서트 1
최하진 지음 / 국민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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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곱씹어서 읽을만한 책을 만났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몇 번을 봐도 감동적인 작품들이다. 아이와 함께 영화감상한 뒤 느낀 점들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좋은 책이다. 영화와 인문학을 소개하는 책 중에서 아마 교육적으로도 좋은 시도이고 실제로 청소년과 부모가 서로 소통하는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이 책에 제시한대로 시도해봐도 좋을 듯 싶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명작들을 보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 정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아무리 부모가 아이를 교육시킨다고해도 잔소리 정도로만 듣게 될텐데 명작들은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가족의 소중함과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할만하다. 


어릴 적에 눈물을 흘리며 봤던 영화를 내 아이가 보면서 어떤 감동을 받을지 그런 과정들이 반복될수록 서로 돈독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책 내용 자체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몰입하면서 읽을만한 재미있다는 점이 좋다. <자전거 도둑>에서 느꼈던 부성애와 아버지의 그늘진 뒷모습은 저자의 경험과 겹쳐지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바로 내 얘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명작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의 많은 교훈들은 본인이 직접 겪거나 아니면 간접적으로 겪는 방법이 있다. 영화와 책은 우리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얘기들인데 인문학적 요소를 잘 살린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책이다. 영화마다 아이들이 쓴 감상문도 실려있으니 아이들에게 감상문을 쓰도록 한다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 같다. 21편의 영화들은 저자가 내리는 해석과 영화에 담긴 가치는 결국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단순히 영화에 대한 소개와 경험담이 전부가 아니라 명작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고 꼭지마다 시가 있어서 읽을만한 가치가 높은 책이라 하겠다. 누군가 영화와 관련된 괜찮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와의 소통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영화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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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괴테를 읽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류시건 옮김 / 오늘의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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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만으로 생각했던 것은 괴테의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괴테 필생의 역작인 <파우스트>에 주석을 달아서 꼼꼼하게 설명하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첫 장을 펼쳐보니 제목과 다른 <파우스트>였던 것이다. 이럴거면 <파우스트>라는 제목으로 나왔으면 제목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에도 <파우스트>라는 작품은 여전히 불멸의 고전임에는 변함이 없다. 636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파우스트>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무려 60년에 걸쳐 완성한 책인데 1771년에 처음으로 구상하였는데 이 때 괴테의 나이는 불과 22세였다. 27세에 초고를 완성한 뒤 57세에야 1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1831년 8월에 이르러 대망의 <파우스트>은 완결짓게 되는데 82세에 이르러서야 그가 젊은 시절에 구상한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파우스트>는 명작의 반열에서 항상 언급되는 작품인데 인간의 본성과 영혼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는 대서사시이다. 희곡 형태의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에 비견될만하며 다른 번역본보다는 조금은 읽기 쉽게 번역하여서 읽는데에는 무리가 없다. 파우스트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오류투성이이며,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이다. 아직 이 작품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 대화 속에는 파우스트가 사랑을 갈구하지만 점점 타락해져가는 모습을 그린다. 1부에서는 그렌첸을 사랑하고 2부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헬레네를 사랑한다. 완벽하게 꾸며진 이 무대는 등장인물 간의 대사가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다운 지 언어 선택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로 인해 계속 되새기며 읽게 된다. 인간의 욕망은 선과 악 사이에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희곡 형태의 책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무대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그리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긴 런닝타임의 무대를 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고어체를 살리지 않은 점은 호불호가 갈릴 듯 싶고 오탈자로 인해 의미를 이해하는데 방해하는 점은 책의 완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마디로 큰 차별점은 느껴지지 않은 책이었고 그나마 부록에 실린 해석으로 <파우스트>가 쓰이게 된 배경과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이왕이면 차별화되지 못한 편집과 구성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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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해도 괜찮아 - 똑같은 생각만 강요하는 세상을 색다르게 읽는 인문학 프레임
박신영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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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생각이 깨어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교육은 단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다른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보고 왜 세상을 삐딱하게 보냐고 다그친다. 아웃사이더같은 존재로 낙인찍히며 까칠하다거나 성격이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넓혀보면 우리가 배운 것,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창조적인 생각이 나올리가 없다. 음악이나 예술을 제외하고는 우리 일상속에서의 모습은 매우 균일화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강요당한다. 튀지 않고 군중 속에 섞여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생각도 비슷비슷해진 것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환승 지하철을 오가는 통로에서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여기에 디스플레이 광고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누구나 음악이 나올 때 똑같이 춤춘다면 어떨지에 대한 상상은 내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만족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중에 나온 <삐딱해도 괜찮아>는 우리가 익히 읽어왔던 문학작품부터 영화, 전래동화까지 저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다. 보다가 피식거리기도 하고 앗! 그럴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흥겹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여자친구나 학교친구가 들려주는 것처럼 여성만의 감수성으로 녹여내었다. 우선 내용이 무겁지 않아서 좋다. 각각의 작품들을 가볍고 신나게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부담도 없다. 누구나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다르게 내리듯 이 책도 그런 생각으로 읽고나면 깨달음을 뒤늦게 밀려온다. 저자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데 정작 나는 내 생각을 투영하여 해석을 내리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그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것처럼 오인하여 묵인한 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는지. 저자는 내 편견을 깨주는 책과 세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역사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중근 의사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뜻인데 이는 하루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남을 헐뜯게 된다고 한다. 다양한 책을 읽게 되면 세상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을 잡아준다. 그리고 52편의 이야기를 마치는 맺음말에는 저자가 도움을 받은 책과 강력추천하는 책들이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을 듯 싶다. 마치 메타북을 읽다가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처럼 독서의 편식하지 않고 두루두루 읽어볼 일이다.


독자중에 인문학을 색다른 시점에서 읽고 공감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즐겁게 쭉쭉 읽어나갈 수 있는 <삐딱해도 괜찮아>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마다 의문점을 갖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똑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현재 프레임에 손을 번쩍 든 저자처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자. 그건 삐딱한 것이 아니라 편견을 갖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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