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
이소연 지음 / 예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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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서 받은 느낌처럼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소품처럼 아담하게 그려내었으며, 감수성 높은 작가의 섬세한 글솜씨와 지나간 기억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담담하게 그린 예쁜 책이다. 저자의 일상도 나와 달리 특별한 무엇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어느새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 살면서 하나하나 스치는 글귀에 꽂혀 공감하게 되고 내가 살아온 삶에 남겨진 흔적들을 찾아보게 된다. 내게 위로가 되는 말들이 참 많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이해는 오해니까. 나도 남을 오해하며 산다. 다만, 나의 이해가 오해일 가능성, 타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새로운 일면을 갖고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뜻밖의 선물처럼 스르륵, 오해가 풀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성큼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다. 나만큼, 남도 복잡하다. 사람은 다 그렇다"



간혹 강연 프로그램에 나가서 방청하다보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지금 바로 무엇이든 시작하라. 일단 저지르고 보라."는 말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반복적으로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었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하기엔 생각할 것이 많았다. 이미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 과정 속에서 힘든 일이 많았을텐데 무턱대고 시도해보라니 덜컥 두려워지기도 하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갈 지도 모른다는 다소 소심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무모하리만치 저지르고나서 결국엔 괜찮았던 일들도 꽤 많다. 춤이라면 몸치인데다 박치라서 평생 춤다운 춤을 춰본 기억이 없는 내가 홍대의 한 클럽에서 살사를 배운 일이다. 6주간 기초과정이라는 말에 혹해서 한 번 해볼까 하다가 기초적인 스텝을 배우고 그 속에서 2시간 동안 주말에 춤을 췄으니 지금도 낯선 경험이지만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건이기도 하다. 



작가가 경험한 일들도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인생의 장면 중 하나일텐데 설령 그 기억들이 좋든 나쁘든 지나고보면 추억으로 떠올린다는 것처럼 말이다. 얼음이라는 에피소드부터 시작되는데 작가가 느낀 생각은 컬러로 강조되어 있다. 근데 그 문구들이 정말 좋다. 한번씩 곱씹어보면 좋을 정도로 간결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이다. 그녀가 느낀 사랑은 얼음처럼 누군가에게 자꾸 채워주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을까? 대개 이런 류의 에세이들은 잔잔하게 흘러서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감정들이 사사롭지 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매력이 있다. 결국엔 다 괜찮아질테니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자. 안해서 후회하느니 저지르고 후회해도 늦지 않을테니...




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

저자
이소연 지음
출판사
예담 | 2014-11-1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좋았던 시간도, 나빴던 시간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고 추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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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 판미동 영성 클래식 시리즈
제임스 앨런 지음, 장순용 옮김 / 판미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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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이 책의 제목처럼 <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사망소식이 잇따르면서 인생의 허무함과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듯 싶다. 사람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장 높은 천국에 오르기도 하고 가장 낮은 지옥에 떨어지고 한다. 책 처음에 나오는 글귀가 바로 생각을 강조하는 말인데 오래전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과 <시크릿>이 연상되는 책이다. 제임스 앨런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참된 성공, 행복, 풍요,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의 본성을 키워 내면의 어두움을 물리치라고 하는 보통 자기계발서에서는 빠지지 않은 내용인데 특별할 것이 있는 잠언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서 내 인생이 극적으로 변화되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 같다.


<시크릿>류의 책들이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의 하나가 내가 가진 고민을 다른 차원으로 돌림으로써 내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면을 강화하기 위해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쉬는 것도 그냥 쉬는 것이 아닌 전투적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하는 피곤한 사회에 살고 있다. 바쁘게 살다보니 자신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도 세상을 빠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금보다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살아가는 삶인데 가슴 뛰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래도 이런 류의 책이 백년의 고전으로 불리우면서 천만 독자를 변화시킨 이유를 꼽으라면 삶의 지표를 바로 세운다는 점이다. 지금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오직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실려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내 하루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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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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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추리소설이나 역사소설보다 확실히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재미로 충만한 소설이다. 현실과 과거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이런 설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하나의 퍼즐조각을 맞춰나가듯 소설은 빠르게 전개된다. 방송국 PD인 진석은 우연히 어린이 과학관에 전시된 비차를 보면서 장영실이 무악산에서 실험했던 비차의 모형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그림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다큐멘터리로 기획하고 있는 <한복 입은 남자>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신 작가와 들렀는데 그곳에서 엘레나라는 여성을 알게 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진석이 기획하는 것과 엘레나가 알고 싶어하는 것 사이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 온 엘레나는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라며 그에게 조상의 유품으로 전해내려오는 비망록을 몰래 맡긴다. 그 비망록에는 3개 국어의 글자와 그림이 복잡하게 담겨있는데 고고학에 일가견이 있는 자신의 친구이자 지하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강배를 찾아가 해석을 의뢰하는데 이 시점부터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분제와 사대주의가 뿌리깊게 내려앉은 조선시대에서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내려야할까? 비록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우수한 과학기술을 갖고 있던 그는 갖은 핍밥을 당했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가 그를 알아보고 농민들의 가뭄을 해갈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실을 지원한다. 밤새면서 일에 매달리던 그는 무자위라는 장치를 고안하게 되는데 물의 흐르는 속성과 높낮이를 고려하였고 유속을 활용하는 방법 외에도 장정 둘이 수동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등 그 당시에 이런 기법들을 어떻게 발명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매우 신기했다. 순전히 눈으로 보고 들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내서 만들었을텐데 천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영실에게 하늘의 길이 열렸는지 그의 기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는데 사또 이자청의 추천으로 만복과 함께 대궐 안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에 들어갔을 수 있었고, 몇 년 뒤 상의원에 배속되게 된다. 그때가 태종때 만들어진 도천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비록 신분이 노비라 미천할지라도 기술과 재능이 있으면 대궐로 불러서 일할 수 있는 한시적인 제도였는데 세종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시행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를 보면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고 명나라를 큰 나라라 칭하며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양반들의 태도를 보며 나라의 자주적인 기틀을 다지고자 했던 세종대왕은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을지 짐작된다. 


시대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인지 일찍이 기술의 중요성을 알았던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낮은 신분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장영실도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들 수 있는 환경적인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자격루, 혼천의, 측우기, 신기전, 간의, 풍기대, 수표, 앙부일구, 휴대용 앙부일구, 관천대, 일성정시의, 위부인자를 발명해낸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셈이다. 금속활자부터 해시계, 천문기술, 신무기, 농업기구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발명품이 없을 정도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계속 남아서 후대를 양성하지 못하고 석연치 않은 가마사건 이후에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병조판서였던 이암을 비롯한 친명파는 노비의 신분임에도 정5품 상의원 자리에 오른 장영실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이들이 사랑채에서 나눈 대화가 정확히 그 당시 양반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여실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 개혁하지 못한 이유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낸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대주의의 폐해로 인해 명나라를 넘어선 무언가를 개발하거나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멀리하게 된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단적으로 문신을 우대하고 과학자같은 중인을 천대한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서양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였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런 시대에 장영실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 장영실이 명나라 유학길에 환관 출신으로 세계 해양을 누빈 정화 대장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영실의 천재성을 알아본 장화는 계속 그와 교류하면서 영실이 유럽으로 건너올 수 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동래현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오누이같은 사이인 미령이라는 존재도 매우 흥미로웠다. 정의공주와의 애틋한 감정은 신분제를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땅을 떠나는 영실에게 정의공주는 비단보따리를 선물하는데 그 옷이 바로 한복 입은 남자에 등장하는 그 옷인 것 같다. 정화와 함께 피렌체에 온 영실은 일찍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직 교황이 지배하는 유럽은 지동설은 곧 사탄의 저주라며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이단으로 매도되었던 시대였다. 정화의 함대가 이탈리아 로마에 당도한 것은 세기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만나기 위한 운명이 아니었을까? 이 부분이 소설에서 극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조선시대에서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전 유럽에 도착한 동양인의 시선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다 빈치의 스승으로 장영실은 천문과 기계설계 등 그가 가진 기술을 모두 전수한다. 다 빈치가 화가나 석조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 천재성을 보인 것도 장영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작가적인 상상력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합리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사적으로보면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겠지만 한국 땅에서 장영실의 기술력이 뿌리내리지 못함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다 빈치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술 뒤에는 장영실이 10년간 전수한 가르침 덕분이었고, 이는 유럽의 르네상스가 활짝 꽃피는 출발점이 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두 천재가 하나로 만나니 이는 우리 피렌체의 복이라고 말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말처럼 일찍이 그를 알아본 사람과 후원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지 않나 싶다.


537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뒤에 참고문헌이 실린 것처럼 저자가 10년간 꼼꼼하게 조사하고 자료를 모은 덕분에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소설로 재탄생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영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우린 아직 그가 언제 태어나서 죽었는지 조차 모른다. 왕실이나 양반 외에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후대에선 이를 알 도리가 없다. 그의 우수한 과학기술은 지금 보아도 경이로울 뿐이다. 이제라도 우리 땅에서 태어난 우수한 과학자와 발명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역사소설을 속도감있게 읽은 책이라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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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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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이한 책이다. 어릴 적엔 <백 투 더 퓨처>같은 영화나 SF 공상과학소설을 읽으면서 과거나 미래로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타임머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내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일 뿐 현실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한 번 결정되고나면 돌이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걸로 현재의 순간들이 만나 미래에 펼쳐질 운명과 우연들이 겹쳐 인생이 된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에 등장하는 이반 오소킨은 자신이 사랑하는 지나이다가 민스키 대령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극심한 절망감을 느낀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되돌릴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다. 오소킨은 얼마전부터 알고 있던 마법사를 찾아가는데 그 마법사는 계속 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지나이다와의 사랑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12년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마법사에게 요청했는데 정말 12년전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은 마침 꿈인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14살로 되돌아간 오소킨은 과거에 자신이 행동한대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생각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황을 기억하고 있으면 독백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속으로 생각을 말한다.


몸은 14살 소년이지만 생각은 26살 오소킨이다. 이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부제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인생을 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그래서 제목도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이라 이름 지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대로 갈 뿐인데 인생을 다시 살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근데 오소킨은 왜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면 엉망이 된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그건 주인공의 정신이 나약해서인지도 모른다. 설령 사랑하는 애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지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걷어내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했을텐데 주인공은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완벽하려고 해도 잦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인생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게 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듯 한 번 살아가는 삶이 각본에 짜여진대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은 한 번 살아볼만하다고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더라면은 류시화의 유명한 시집 제목이다. 이반 오소킨처럼 우리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으로 독특한 주제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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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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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박사의 저서들은 참 맛깔나게 쓰면서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체가 간결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들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말테의 수기, 탕자, 돌아오다, 레미제라블, 파이 이야기까지 문학작품들 속에서 기독교적인 영성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작품의 명성이 자자했지만 완독해본 적이 없다. 이 책에 나온 줄거리만 알아도 충분히 전체적인 느낌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전들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게 드는가보다. 반드시 자신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깊이 있게 읽는데 도움을 주며, 일단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다른 편견을 접어두고 문학 속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대한 해석은 미쳐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읽으면서 놓친 부분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육필원고나 삽화, 사진 등은 적절하게 요소마다 삽입되었으며, 작가에 대한 설명도 반드시 챙겨읽자. 엄청난 책 두께 때문에 포기한 책도 있으며, 호흡이 길어서 전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둘러 완독한 책도 있다. 이어령 교수가 첫번째 영성문학 강의에서 선별한 작품들은 완독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선입관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어령 교수가 짚어주는 얘기들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 영성과 신앙에 대한 부분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한 것 같다. 레미제라블은 신부가 등장하거니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일반 독자가 읽는 것과 이어령 박사가 보는 시선은 좀 다른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들이고 이미 영화화되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부분을 알고 있을 독자들은 이어령 박사의 깊고도 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내려놓는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작품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소설에서 하나님과 영성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여러모로 다른 작품들을 알 수 있어서 여러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직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어온 것은 아닌가 반성도 되면서 다시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이 강의형식으로 쓰여져서 더 친절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작품 속에 숨겨진 영성의 의미를 알게 되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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