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고 가장 아끼는 책들을 모아본다.

내 삶을 이끌어 갈 정신을 배우는 책이다.   자기계발이 아니고 자기개발이 되는 것이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바람의 파이터 - 전10권
방학기 지음 / 길찾기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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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막 7장 그리고 그 후-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홍정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11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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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생철학
데일 카네기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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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힘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의 21가지 원칙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서동민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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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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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입 ]








ㅇ 나는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다. 아시겠지만, 대학교 때 고시 3개를 합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외무고시 2등, 행정고시 1등,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 큰 절을 했었다.



 똑똑한 머리를 물려줘서가 아니라, 사실은 변변찮은 외모덕에 그저 고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 본 론 ]








ㅇ 내 직업은 ① 변호사이면서, ② 방송도 하고, 3년 전부터 ③ 책을 쓰고 있다.



 평생 소원이 1년에 1권씩 평생 책을 내는 것이다. ④ 글도 쓴다.



 모 신문사에 경제기사를 1주일에 2개정도 쓴다. ⑤ 또 오늘과 같은 특강도 한다.



 평균 1주일에 2회 정도. ⑥ 증권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회원수만도 3만 5천명 정도 된다.



 나름대로 홈페이지 관련 사업을 하나 구상중인 것도 있다.



 ⑦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 많은 것 같고 어떻게 이걸 다 할까 생각이 들겠지만



다 가능하다. 이 중에서 한가지만 하더라도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다 가능하다.








ㅇ 무엇이든지 목표가 중요하며,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일수록 확신을 갖지 못한다.








ㅇ 사람들은 나의 삶을 보면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 노력의 결과다.








ㅇ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해 봤을 것이다.



 고 2때 수학 45점의 낙제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대학을 못 간다는



 선생님의 말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외를 한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래서 6개월간 죽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2학기 때 400점 만점에 400점을 받았다.



 그 이후로 매 시험마다 1등 했고, 석달에 한 번 정도 2등을 했었다.



 학생시절 나는 여러 차례 내가 결코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남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ㅇ 인생에 있어 2가지 자세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적게 노력하고 결과는 남들과 같은 똑같이 나오게 하려고 한다.



 사실은 이것이 경제학 법칙에 맞는 것이다. 투입을 적게하고 효과를 많이 내는 것.








반대로, 다른 사람들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경험상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남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해서 비슷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ㅇ 그럼 노력이란 무엇이냐?



 나는 “노력이란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라고 정의 내린다.



 하지만 물론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력에도 함수 관계가 성립한다.








* 노력 = f(시간 × 집중)



내가 실제 노력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판단하려면 시간을 많이 투입했거나 집중을 잘 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ㅇ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시간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실제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지만



 나머지 2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더 많이 알기 위해 그 2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ㅇ 집중에 대해서 얘기해 보면, 고시 공부할 때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고시 공부를 1년간 해서 합격했다. 어떻게 가능 했느냐?



 첫째는 된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고시에 합격하려면, 봐야 할 책이 50권, 권당 페이지는 500P,



 그 책을 5번을 봐야 합격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7번을 보았다. 이를 계산해 보면



50 × 500 × 7 = 175,00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1년을 360일로



계산해보면 1일 목표량이 나온다. 즉, 1일 5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봐야 한다는 계산이다.








ㅇ 이처럼, 목표를 세울 때는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막연한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다.








이 결론을 보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게 된다.



설사 하게 되더라도 하다가 흐지부지 된다. 이렇게 목표에 대해 확신이 없고, 목표를 의심하는 사람은 집중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에 확신을 가져라.








ㅇ 된다는 사람만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된다. 일단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85%의 사람들은 이미 나의 경쟁상대가 아닌 것이다.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만 나의 경쟁이 된다.



 그럼 경쟁대상이 줄어드니 훨씬 마음도 한결 가벼워 진다.








ㅇ 세상도 절대적으로 잘 하는 사람은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남 보다만 잘 하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보다 잘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것은 나 자신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인간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은 선에서 멈추면 남들도 그 선에서 멈춘다.



 남들보다 약간의 괴로움이 추가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노력이란 것을 했다고 할 수 있다.








ㅇ 고시 공부할 때 7시간 잤다. 장기간 공부를 해야 할 경우라면 일단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하루 24시간 중 나머지 17시간이 중요하다.



 고시생의 평균 1일 공부시간은 10시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잠자는 시간 빼고 17시간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정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남들과 똑같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찬 떠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씹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모든 반찬을 밥알 크기로 으깨어 밥과 비벼 최대한의 씹는 시간도 아꼈다.



숟가락을 놓는 그 순간부터 공부는 항상 계속 되어야 했다.



나의 경쟁자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냐 하고 생각들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ㅇ 미국에서 생활 할 때 보면 소위 미국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점심시간 1시간 다 쓰고, 이래저래 20~30분 또 그냥 보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들에 비하면 일 하는게 아니다.








ㅇ 집중을 잘 하는 것은 벼락치기 하는 것이다. 벼락치기 할 때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우등생은 평소에 벼락치기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목표를 가지면 이렇게 긴장이 안되지만 분명하면 항상 긴장되고 집중을 잘 할 수 있다.








ㅇ 방송하면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 주변 사람들은 말렸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면 해도 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ㅇ 나에게는 인생 철학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A와 B가 있을 때 나는 A가 더



 중요하지만 B를 선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때 나는 A는 여자친구 였고, B는 고시 합격 이었다. 대학시절 한 때 A는



내게 무척 중요한 시기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t1,t2 판단법이란게 중요하다.



내가 A를 선택하면 난 B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든다.








그러나, 나의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A를 성공하는 일 또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B를 먼저 해서 좀 더 유리한 조건이 되면 A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고시합격을 더 빨리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집중도 잘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낀 것이다. 장기간 동안 시간의 흐름을 계산해 볼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ㅇ 그래서 난 남들이 말려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코미디 프로에도 나갈 수 있었다.



 난 " 할 수 있을 때 뭐든지 해 버리자 " 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쌓아 가면 된다. 하다가 안되면 포기하더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아예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ㅇ 나의 징크스는 시험에 합격하려면 10번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합격의 확신을 갖는다. 3~4번만 보면 불안하다.



 그래서 그냥 뭐든지 기본적으로 10번을 본다. 몇 번 3~4번 책을 보고 시험을 본 적 있다.



 역시 떨어졌다.








[ 결 론 ]








ㅇ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자.








첫째는 남보다 많이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는 어려운 목표일수록 확신을 가져 보자. 그러면 정말 되는 일이 훨씬 많다.








셋째는 남보다 최소 3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ㅇ 직장에서 윗 사람이 일을 시킬 때 남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나한테만 어려운 일을



 시키더라도 신나는 표정을 지어보자. 대부분의 사람, 아니 나의 경쟁자는 이럴 때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기려면 그들 보다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괴로움을 추가해 보자.








ㅇ 남들에 비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3배의 노력만 한다면 4번째 부터는 분명 가속도가 붙어 급속도로 차이가 날 것이다.








ㅇ 마지막으로 대인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나 혼자의 노력 외에 대인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최소 5분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으로 할애해 보자.








ㅇ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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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10년전에 취업하던 때가 생각이난다...
그땐, 대학만 나오면 기본적으로 자기본분도 모른채 대기업이나 이름들어본 회사아니면 상대도 안하던 정말 세상모르던 때였다.
동기중에 9급공무원 시험을쳐서 졸업전 일찌감치 취업한친구를 보면서 그땐 정말 그친구가 아깝다는 생각을했었는데...
썩어도 준치라고, 이름난 회사들만 시험치러다녔으나
서류전형에서 주루루.....
그시절엔 관심회사에 가서 서류를 받아서 자필로 회사양식에 맞춰 이력서작성및 증명사진을붙여서 내던때여서
취업철엔 친구랑 날잡고 서울시내를 몇바퀴씩 몇날며칠돌았었다....
그러다 간간히 면접보러 오라는 곳들도 만만하게 보고가서 면접때 한마디도 못하고 미끄러졌던.....
내가 생각해도 그순간들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도대체 아무생각없이 면접을 보러다니고 정말 아무생각없이 대답하고...

그러다가, 일년반동안 자의반 타의반 취업재수를했다.
지금처럼 직장이없어서라기보다는, 이름나고 좋은곳이란데를 들어가기위해....세상물정을 정말 몰랐다..
일년간은 여유를 부리며,,(여유있는 상황이아니었지만)
그때 처음 사귀게된 오빠의 지지를 받으며 도서관에서 능률오르지 않는 토익,상식공부를 한다며
결국 가을무렵 다시 취업철을 마지하며 그전해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이력서 쓰기 신공과 면접연습까지 준비했지만
몇군데 은행권과 통신업체시험에서 면접에서 낙방하는 분루를 삼켜야했다.

은행면접 최종에서떨어진 날이 지금도기억난다...
사귀던 오빠가 어떻게됬냐고 묻기에, 합격연락이안온다고....-_-
오빠가 집앞에 나오라고해서 갔더니 지금까지 안오면....-_-;; 하지만 괜챦아... 너에게 더좋은기회가 열릴꺼야.
근데, 이거 어쩌지...사실 너주려고 준비했었는데...품에서 "훌륭한 은행원이 되는 비결"이란 책을 꺼내다가
다시 뒷춤으로 치워버렸다... ㅠ ㅠ 그모습에 감격이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해서
그날 세시간동안 오빠품에안겨서 눈이 안떠질때까지 엉엉울었던 생각이난다...

그러면서 겨울을 맞이했고,,, 그해 겨울 아이엠에프라는 초유의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맞이했다...
아이엠에프와 맞물려
몇년간 형편이 좋지않아 병원한번 안가던 어머니는 자궁제거 수술을 하러 입원하셨는데
5시간이 넘도록 수술실에서 나오지 못하시고 담임박사님은 아버지와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나팔관암 3기말입니다. 아마 3개월정도라고 생각하십시오......

순간 눈앞이 전기가 나간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한번도 좋은것 좋은옷 좋은곳에 가보지 못하시고 평생 고생만 하신엄마가 암선고...그것도 삼개월....
아버지도 나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연이은 실패와 부채로 어머니를 치료할 돈조차 없는데

그날....집에가서 엄마옷가지와 쓰시던 물건들을 보면서
혼절할때까지 통곡을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이렇게 엄마를 보내야만 하는 내처지가 한탄스러웠다.
엄마처럼 평생 가난하고 궁색하게 살지않겠다고 악을쓰며 대학을 갔던내가 엄마가 이제 우리곁을떠날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내가 된것이...
엄마가 조금만 기다려줘서 내가 돈벌어서 엄마 제주도라도 한번만 보내드릴수 있을때까지 살아계셔달라고
하나님께 처음으로 서원기도를했다......

그날부터 난 내 자존심을 잊어버리기로했다...
엄마를 살릴수만 있다면 그럴수있는 돈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하기로했다...


취업도 힘들었지만, 가만있지 않기로했다.
수술후 거동을 못하시고 그후로 아무도 생각지도 못하게 8년을 살아주신 엄마를 병원이며 집이며 왔다갔다하면서
살림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이렇게 악바리가 되었다.....

백화점 세일기간이 되면, 면도기와 전동칫솔을 수입하는 회사에 전속 소속이 되어 미친듯이 물건을 팔았고
열성을 인정받아서 나중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로 승진했고
취업하기전까지 세일때마다 불려다니며 일을했다.
아침 아홉시에 출근해서 밤 여덟시까지 한번도 못앉고 다리가 부었지만 일을 할수있다는데 감사했다.
그당시 하루에 4만원의 일당이었으니 나에겐 정말 큰돈이었다....

세일이끝나고 일이없을땐, 안산역에있는 일용직센터를 찾아가서 아무일이나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고하고
공장으로 다니며 전자기기에 기름을 닦거나 조립하고 포장하는 일등을 했다.
라인에서는 중국에서 온사람들과 아주머니들이 대학졸업생이라는 나를 신기한듯관심을 가져주셨고
그분들의 따듯한 온정을 느낄수있었다.
그리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무곳이라도 나를 써주시면 미친듯이 일하겠노라 구직을 하러 다녔다.

집앞 국밥집에 새벽에 서빙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해서 자정부터 새벽 다섯시까지 일을 도왔지만
지금말하자면 취업사기었던지 사장은 돈없다면서 노동한 댓가를 주지 않기도 했다...


아이엠에프로 꽁꽁묶인 취업시장은 올해의 졸업생도 받아주지 못하면서 취업재수생까지 흡수할순없었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첫 수술비및 화학치료비를 치룰수있었지만
니가 꼭 일해서 스스로 어머니치료해야 하고 나중에 수입이 생기면 꼭 갚아야 한다는 말슴에
반드시 그 은혜 잊지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사회는 아무 경험도 없고 이력도 없는 여자 대졸재수생을 받아주는곳이 없었다...


그러다, 기회는 우연챦게 한꺼번에 몰려왔다.
취업이 도통 되지 않아서 지금생각하면 구청이었던것 같은데 취업을 원한다는 취업의례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잊고있었는데 , 마포에있는 한 무역회사에서 부름이있었다.
사장님도 무척 좋으셨고 일도 많이 배울수있는곳 같았다...
그러다가, 친구가 우연히 발견했다며 안산에있는 미국계 부품회사인데 집도가까우니 어머니 병간호도 하면서
다닐수있을것 같다고 도전해 보라고했다....

무역회사는 거의 확정상태였고 사장님과 연봉을 협상하던 상태였고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곳이라면 엄마와 멀리 떨어지지 않을수있으니 안산에있는 회사에도 도전했다...
지금생각하면, 그땐 가깝단 이유하나로 그바닥에 발을 디뎠지만
미국계 회사에 발을 디딘것이 지금으로선 나에게 좋은 출발이 되었다.

그회사에 지원하기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어디서 끌어올랐는지 미친듯이 신들린듯 자기소개서가 술술써졌다....
사람이 너무나 절실하면 없던 초능력도 나타나는지.... 지금생각하면 그당시 어떻게 그런 자기소개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이일이절실하며 얼마나 내게 일자리가 필요한지
난 추상적으로 이일이 나의 자아발전에 기여한다는 생각까진 할여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아니면 어머니를 살릴길이 없으니 아픈엄마를 배수의 진이라 생각하고
더이상 뒤로 갈곳이 없단 각오로 미친듯이 일하겠다
아무리 험하고 힘든일이라도 맡겨주시면 자존심 다 버리고 열심히 일하겠다.
나를 채용해주신다면 결초보은의 심정으로 모든일이든 하겠다.
이미 난 공장에서도 일해보았고 여자라고 해서 힘들고 지저분한일 못한단 생각은 버렸다.
대학을 나와서 공장단지에서 일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해본적도 없다.
꼭 나에게 기회를 주시라고.... 야심찬 부하직원이 여기서 회신을 기다리겠노라고.....

나중에 알고보니 아이엠에프 덕분에 사장님이 대학졸업자도 한번 싼맛(?)에 써보잔 생각도 있으셨고
회사를 확장하면서 여성인력이 필요했다고 하셨다.
경쟁률은 420대 4였으니 백대일을 넘는 경쟁이었던것 같다.

인사부장님이 연락오셔서 면접을보러오라고했다.
여의도에 있는 서울사무소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는데
사장님은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시면서 압박 질문을 던지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인사부장님께서 나와같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하셧고 사장님은 이렇게 돈이 절실한 사람이 들어오면 노조결성하고 평화를 깰수있겠다고 경계하셨다고 한다.

사장님은, 집이 몇평이냐 아버지가 왜 젊은나이에 놀고계시냐 당신이 왜 소녀가장처럼 일해야 하냐
그럼 놀고있으면 친구만날때 밥은 누가사냐? 매일 얻어먹고다니면 아주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거냐
당신은 우리회사 들어오면 사람들 선동해서 노조결성할것 아니냐? 등등등.....

적대적으로 압박하는 면접이 한시간 동안 치뤄졌다.
같이 참석하셧던 본부장님이나 이사님들은 사장님의 심한 질문과 냉소에 미안했떤지 내눈치를 오히려 보고계셨고
난 심하게 구겨지는 자존심앞에 눈물이 앞을가렸지만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허벅지를 누르면서
그앞에서 울지않았다.

전 젊기에 아무일이라도 닥치는대로 할수있지만 아버지는 연세도 있으시고 차마 놀고계시지만 아무일이나 하시기 어려울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버지가 용돈도 못주는 처지이시지만 그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해 본적이없습니다.
어려운가운데서도 저를 이제까지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셨고 전 부모님들도 누리지 못한 교육혜택까지 받았으니 감사할뿐입니다.
사장님은 친구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려울때 밥한끼 기꺼이 사줄수있는 친구가 없다면 세상을 헛살았다고 해야 하지않을까요?
제주변엔 제가 언제까지 백수로 있더라도 기쁘게 맞아줄 친구가 많습니다. 저또한 제가 형편이 좋아져 친구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마찬가지로 모른척 하지 않을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람을 선동하고 더많은것을 취하기위해 룰을 깨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사장님의 편견이십니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후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냐 하셨고
난 눈물이 나오려는걸 억지로 참으며 잠기는 목소리를 열어 담대하게 말씀드렸다.

"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면접실을 돌아나오는데, 면접수고했다고 경리가 2만원의 차비를 손에 쥐어주었다.
난 그돈을 쥐고 여의도 공원에 앉아서 두시간정도 혼자 서럽게 울었다...
내 형편과 내처지가 한탄스러워서 ..... 내가 이렇게 나를 구겨가면서도 일자리가 필요하단 절실함에 북받쳐서....
그날 친한 친구를 만나서 이렇게 힘들었던 면접이야기를 하고 , 만나던오빠를 만나서 또 펑펑울었다....
그런곳에선 오라고그래도 안간다고 ㅋㅋㅋ


그후 마포에 있는 무역회사를 가기로했고 이미 결정했는데 압박면접을 햇던 곳 인사부장님이 전화오셨다.
면접에 합격하셨는데 안산에 있는 본사로 언제 교육받으러 나오십시오.

죄송하지만, 전 가기로 한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면접을보면서 사장님의 인품과 사상을 엿보고
그회사에 가지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쉽지만 포기하겟습니다.

그때 나를 잡아주신게 인사부장님이셨다. 본인또한 대기업에서 노동위원장을 하시다가 해고당하시고 오랜 어려움끝에
취업을 하셨기에 나의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사장님께 마치 자기일처럼 나를 어필해드리고 결국 사장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셨다고 한다.
사장님이 인성테스트삼아서 심하게 한것이니 이해를 하고 꼭 다시 오라고., 나를 봐서라도 꼭 다시 오라고...

결국 우여곡절끝에 다시 그 나를 구박하던 회사로 다시 들어갔고
입사동기는 최고명문여대및 미국유학출신자 언니, 미국학교 졸업자, 명문여대출신의 빼어난 미모의 동생...그리고 보잘것없던 나..
이렇게 네명이었다.
파이널 리스트를 보면 알겠찌만 사장님의 엘리트추구정신은 정말 타의추종을 불허하셔서
최고의 학력과 최고의 집안환경을 보고 합격자를 결정하셧다고 한다... 난 그야말로.....이악물고 덤빈 승부근성 하나...-_-

그후로도 사장님은 최종합격자들앞에서 연설을하시면서도 굳이 나만꼭 찝어서 앞으로 데모하지말라고 하질않으시나
나만 차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셨따.
나중에 옆에 언니가,아니 학교다닐때 데모주동자였나요? 사장님이 왜저러세요? -_-

그후로, 사장님은 세사람은 편안하고 나름대로 하이클래스스러운 일을 시키시고
난정말 막말로 뺑이친다는 부서로 보내주셨다.
학교다니며 배운거라곤 책을 파는일밖에 없었는데, 여기저기 드르륵드르륵 서류 전표 돌아가는소리와
급하면 공장에 뛰어가서 같이 아줌마들하고 라인돌리고 포장하고 손톱이 부러저라 노동을 해야만하는
하루 삼분의 이는 노가다에 가까운일을 하는 전투부대로 배치가되었다.

일복은 이때부터 타고나서, 입사하자마자 7년경력 전임자가 나입사한 3일만에 주산끼가 있어서 애를 낳으러 가버리고...-_-
인수인계받은것도 없는 나는 바로 현업에 뛰어들어 서류 보는것 수주처리하는것 고객전화상대하기 납품하기
공장가서 체크하기 여기저기부서알아보기 주간월별 레포트 만들기 등등
아침 일곱시 출근하면 밤 열두시나 되야 집에들어가고, 남들 다 쉴때 혼자 불도 안들어오는 공장사무실에 앉아서 두손 호호불어가며
주말내내 그 밀린일 마치느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출근을하면서
3년 반을 보내야했다....
일이 너무나 고된회사였기에 여직원 평균 근속이 1년을 넘지못했고 내밑으로 뽑아서 가르쳐 놓으면 몇달안가서 그만두기 일수였고
결국 회사서 어렵고 까다롭고 힘든일은 다 나를 시켰다.

사장님은, 나를 안뽑았으면 어쩔뻔했냐고 정말 아찔했따고 겉으로만 말씀하시면서, 여전히 인센티브등등은 같이 입사한
후광이 비추는 여사원들에게 더많이 준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일이 너무 힘들고 모시던 부장님은 정말 싸이코고 힘들고 지쳐서 매일매일 울고
집에가면 엄마한테 엄마때문에 일도 못그만둔다고 원망하며 소리지르고
만나던 오빠에겐 업무상의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주다가....결국엔 내가 먼져 헤어지자고 그러고...
그만두기 일보직전엔 해외업무를 보던 분이 그만뒀는데 그일마저 나더러 하래서 화딱지가 났다가
이 해외업무를 조금 해본것이 경력이 되어서
나중에 미국반도체회사로 경력이 인정되어 이직을할수있게되었다. 연봉이 두배가까이 뛰면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원형탈모가 생기고 성질 더러워지고
아무튼 참 힘든 시작이었다.....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겠따고 하니, 사장님이 집으로 두세번씩 전화해서 만류하시고 일시키지 말라고그러고
사장님실에 불러놓고 며칠동안 잡으시려 하고
직급도 올려주고 월급도 올려주고 인센티브도 더주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사장님께서 앞에서나를 위하시면서 뒤로는 후광비치는 사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챙겨주신것을 알기에
앞에서 티는 내지않았찌만, 너무 감사하지만 저의 더 큰발전을 위해 이직결정했습니다. 놓아주세요.
언젠가 제가 다시 업무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해서 다시 사장님과 일할수있는 기회를 꼭 기다리겟습니다.
그때까지 많이 배워올테니 저를 이쯤 놓아주십시오.

사람이, 나올때 아쉬운사람이 될수있단것...그만둘때 많은사람들이 고생한 보람있네 어딜가나 잘살꺼야 라며
등두드려주시고 웃는낯으로 다시보자고 아쉬워하던모습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내가 그고생했찌만 헛살지 않았딴 생각이들었다....


두번째 회사에 면접을 갈때도
항상없을땐 없고 있을땐 몰린다고, 힘들게 회사다니면서 이직을 알아보았찌만 이미 이십대 후반이 가까와서
옮기기가 쉽지가 않았는데 영어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일본계 유명기업에 합격하여 최종협상을 하러가야 하던날 우연치않게 발견한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제출했더니
연락이와서 하루 월차를 내서 두군데를 다 면접보러가게되었다.
사람이 오라는데가 많으면 또 베짱이 생긴다고
이 미국계 반도체회사에 오전일찍 당도하니 사장님이 미팅중이라 약속한것보다 한시간이나늦게 부르셨다.

이번 사장님은 또 아주 특이한 개성의 소유자로서 나중에 알고보니 톡톡튀는사람을 좋아하셧따고 한다.
난 이미 붙을데 붙었고, 여기도 되면 교통좋으니깐 좋지만 잘 모르겠다 생각하고있는데
사장님이 뭔가를 자꾸 물어보시고 길게 끌어주신다....

사진은 왜케 여시토깽이같은걸 붙이셨나? 부터해서....술은 얼마나 잘마셔? 여느 면접과또다른 종류의 테스트였다...-_-
사실 면접이력서 사진이,, 꽃밭에서 턱괴고 앉아서 찍은 만나던오빠가 이쁘게 찍어준사진이었는데
알고보니 사장님이 괴짜시라서, 사진보고 바로 뽑으라고 했다고 한다...ㅋㅋㅋㅋ

저 죄송하지만, 다른곳에 면접이 또있는데 약속시간이 다가오니
사장님 빨리 결정해주십시오. 저를 채용하실건지 안하실건지.....-_-;;


어이없는 사장님은 니 지금 뭐라했나? 하시면서 갑자기 오기에 불이 붙으셨다.
야...거기가 더좋아 여기가 더좋아?
제생각엔 둘다 좋지만, 교통으로따지면 여기가 더 좋은것 같습니다.
뭐? 교통만 좋아? 야 거기서 얼마준데냐?
얼마얼마 주기로했는데 최종협상 남았습니다.
오냐.. 내가 거기다 삼백 더 붙여준다 . 그럼 여기 다니는거다?
-_-? 네? 아...네...!

정말 운좋게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면접이었지만 사장님과 내 코드가 맞아서 일사천리로 그냥 그자리에서 연봉협상이랑
입사날짜까지 잡고 나와버렸다....-_-


이 괴짜사장님과 얽힌 이야기는 그후로 책 세권분량의 에피소드가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마
며칠날밤을 새야 할것이다...
아무튼 이 두번째 회사에서 난 정말 개성으로 똘똘뭉친 직원들과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듯한
사이키 악동기질의 카사노바 사장님을 삼년간 모시며
정말 많이 웃고 많이 울고 또 많이 감동받으며 많은 배려속에
엄마 간병하라고 병가도 내주시고, 후원금 걷어다 주시고, 엄마 돌아가시고나서까지 특별배려를 해주셨다....
변사장님 싸랑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타고난 일복을 자랑하듯 정말 많은 일거리를 영어로 하면서
영어능력이 일취월장되면서 또 한번 이직의 기회를 가질수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엄마돌아가신해에 결혼하려생각햇던 사람과 종교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고말았다.
두달텀으로 일어난 이 힘든상황에 어디론가 또 챌린지를 찾아 떠나곳싶었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수있었다....
첨에 어딘지도몰랐는데 알고보니 이바닥에선 유명한 회사...-_-
삼차의 영어면접을 통해서 합격되었고( 합격의이유는 언어적 능력이 제일 중요시 되었다고 한다..그러니 영어공부들 하시길..)
회사가 막 확장일로에 있어서 셋업시기라
배울것도 많고 부닥치며 내가 세워야 할일도 많고 아주 회사를 하나 차리는 단계를 배우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겁없이 미국에 건너가서 프로그램과 하는일 전반에대한 교육을 짧게 받고돌아와서
모르면 여기저기 해외전화 돌려서 물어보고 옆나라 슈퍼유저들한테 부탁하고 물어보고 하면서
또다시 정말 일은 힘들어죽겠지만, 업무능력이 일취월장해서
지금은 어디다 갔다놔도 살아남을수 있을것만 같아졌다.....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는건 , 어려운일일지라도 기꺼이 맡아서 실패하면서 배워가면서 끝장을 보는 경험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일.......
일이 많아져서 밑에 한명을 더 채용했었는데 일주일만에 힘들다고 도망가버렸다....
입사한지이제 이년을 넘어섰는데 이년동안 한번도 맘편하게 일이 마무리된적이 없다....
늘 긴장의 연속이다.....

지금은 무척 일이 고되다...
새벽 네다섯시까지 일해야 할때도있고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늘 전화오면 로긴해야 하고 새벽까지 기다려서 국제전화해야 할때도많고
다국적의 인간들의 정서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가면서 일해야하고
사람사이에 부딪히는 일들도 많다......

하지만.....
십년전 그때 국밥나르며, 다리가 부어가며 아르바이트하며, 공장에서 기름칠을 하면서
어디서 밥한술이라도 주면 경험이라도 조금만 쌓게해주면 배수의진을 치고 결초보은하겠다던
처음 시작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
이렇게 어려운시기에
힘들어도 내가 아침마다 가야 할곳이있고 내가 없으면 안되는 환경이 있다는것
매일매일 사표쓰고싶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일할수있는 곳이 있다는것에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내가 평생 또 어떤일들을 할수있을지 모르겠찌만
험하고 힘들어보이는 일 , 사실 바로 그일을 할수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어떤일도 할수있는것이리라.......
정말 그땐 피하고 싶고 힘들어서 죽을것만 같아도 극복하고 지나가면
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 주는 기회였다는걸 알게되는 깨달음....

그리고, 열심히 악착같이 일하고 모아서
반드시 힘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뜻있는곳에 힘을줄수있는 그런 선한부자가 되고말것이라고~~~









이렇게 나는 오늘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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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상당히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버트 기요사키의 돈을 보는 새로운 관점에 주목하게 되고 그의 사분면 이론이 많은 사람을 투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란 그저 돈이 많은 부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아도는 돈이 별로 없는 보통 사람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결국 투자를 해야 한다는 그의 이론이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개념이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을 이미 성취한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나 찾아보고 그 방법을 모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고 모든 것을 한번에 쉽게 이루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고 목표를 단기간에 이루려다가 오히려 후퇴도 하면서 결국은 그들이 목표한 바에 도달했을 겁니다.

 

돈을 버는 문제와 영어를 잘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서 이 두 가지의 큰 차이는 영어 공부와는 달리 부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합니다. 엄청난 자본과 재능을 가지지 못한 일반인이 재벌 총수가 되기는 정말 어렵죠. 하지만 영어 공부는 다릅니다. 재능도 없고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적절한 공부 방법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공부하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전에 영어 공부를 하기 전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의 공부 방법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오랜 동안 노력을 했다는 것을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았으며 물론 그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현재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제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혹은 영어의 대가가 되기까지 우리의 선배들은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간조선에 나온 제 모습입니다. 누굴까요?

전에 언급드린 영어 듣기에 관해 다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영어가 안들리는 이유는 바로 발음을 몰라서, 단어를 몰라서, 숙어를 몰라서, 혹은 액센트 때문이라고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영단어 일만개 정복, 영숙어 오천개 정복, 영어 테이프 이천 시간 듣기 정도하면 해결될까요? 고시 공부 하듯이 산속의 절에 들어가서 손에 굳은 살 박히도록 써가면서 깜지를 산더미처럼 만들고 불경 외우듯이 하루 종일 중얼중얼 영어 단어 외우고 하루 종일 자는 시간까지 영어 테이프 듣고 하산하면 귀가 다 뚫려있고 영어의 달인이 되어 있을까요.
 



전에 리양의 crazy English라는 것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까지 유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 소개된 리양이 마치 무슨 종교 광신도처럼 둘러싼 중국인 군중들이 큰 소리로 영어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공산국가에서 적국의 언어인 영어를 저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고 공부 방법도 너무 우스꽝스러워 별 희한한 것을 다 본다는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라면 생각나는 것은 학원가서 원어민과 프리 토킹하고 토익 학원가서 문제 풀이하고 학교에서는 문법책으로 영어를 분석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었지요. 당시의 저에게 너무나 다른 그들의 공부하는 모습은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습니다.

 

깊은 산 속 절에 가서 고시 공부하듯 하는 영어 공부로 돌아가서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입니다. 될래야 될 수가 없습니다. 만주를 뺏어가고 동북공정까지 해대는 중국을 결코 좋아하지 않지만 이 중국 사람들의 공부 방법이야 말로
영어 공부의 핵심을 포착하고 있다고 봅니다.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의사 소통)입니다. 의사 소통을 할려면 입에서 말이 나와야 합니다. 손으로 단어를 쓰고 조그만 소리로 단어를 반복해서 읽고, 테이프를 듣기만 하는 것은 절름발이 학습법일 뿐입니다. 아무리 머릿속에 든게 많아도 일단 미국에 데려다 놓으면 햄버거 하나도 사먹지 못합니다.

 

나중에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나서 저는 리양의 학습법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고 왜 중국에서 나왔는가 정말 통탄했습니다. 한국이 영어 학습의 역사도 길고 영어 공부에 투자되는 돈도 많을텐데 어떻게 중국인이 먼저 생각해 내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제가 내린 결론의 일부는 앞서 나온 제 글인 ‘영어 학습법의 가장 깊이 숨겨진 비밀’에 언급이 약간 되었는데 결국은 ‘돈’이 아닌가 합니다. 영어 학습 시장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뭔가를 팔아야하고 단지 미친듯이 영어 책 하나 잡고 소리내서 읽으라는 이야기는 가장 돈이 안되는 이야기이니까요.

 

첫 번째 영어 공부 비법 공개합니다. 영어 공부 도사들이 공부했던 바로 그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학습법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제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리양 뿐만이 아니고 한국인 중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이 방법은 언어와 문화에 상관없이 외국어를 익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모든 경우 적용이 가능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이 제가 주장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직한 공부의 핵심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주장이 별로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영어 교육자들이 이 방법이 옳다고 호응해주고 있습니다.('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나 '정철의 영어공부 혁명'보세요. 그렇게 써 있습니다.)

 

좋은 책 하나 잡고 큰 소리로 소리내서 읽으세요. 수준에 따라서 영어 동화책도 좋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도 좋고 신문이나 소설도 좋습니다. 냉수 한 그릇 옆에 갖다 놓고 목을 축여 가면서 큰 소리로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는 한 페이지씩 읽으세요. 한 페이지당 최소 20-30번은 읽어야 하는데 100번 이상 읽어야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기준은 하도 많이 읽어서 거의 외워져서 다음 문장이 뭐가 나오는지 예상이 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단 외우려고 노력하지는 마세요. 어떻게 영어 한 페이지를 다 외웁니까. 천재도 아니고. 그냥 읽는 겁니다. 기억은 입 근육과 혀 근육에 됩니다. 그냥 술술술 나오는 것이죠.

 

이것이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두뇌를 속이는 겁니다. 죽어라고 뭔가를 암기하면 (기말고사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하듯이 단어를 외우면) 이 저장된 용량은 해마회(hippocampus)라는 두뇌의 부위로 가는데 이 기억은 계속 재생시켜주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잊어버립니다. 이래서는 영어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구단을 외우던 기억을 해보세요. 그냥 말로 노래하듯이 떠들면서 외우는데 평생 외울 수 있죠. 자전거 타기는 어떻습니까. 어렸을 때 한 번 배우면 평생 가지 않습니까. 문장을 계속 읽다 보면 패턴이 저절로 파악이 되게 되고 이 패턴의 기억이 해마회에서 전두엽(특히 expressive language 영역인 Broca's area)과 두정엽(행동의 패턴을 기억하는 부위)으로 올라갑니다. 넥타이 매면서 여기를 이렇고 꼬고 여기를 잡아 올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죠. 그냥 저절로 되는 겁니다. 영어도 저절로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사항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좀 쉬고 다음에 찾아 뵙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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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뱅쿠버 국제 공항을 이용했다. 가방 2개가 전부였는데. (역시 독신자는 짐도 가볍다) 이때가 9월이었다. 13년전 쯤 얘기다.

도착하여 공항을 나오는 순?고생은 시작되었다. 말은 안되지. 짐은 무겁고 크지. 인터넷으로 대충 예약해둔 유스호스텔까지는 어떻게 든지 찾아 가야지. 음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시절엔 인터넷이 지금처럼 없었다. 서점에서 산 캐나다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유스호스텔에 한국에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 두었었다.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기전 영어회화를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전화로 예약하는 정도는 할수 있었다. . ...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하여 보니 오래된 지역의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음 할수 없지. 돈은 절약해야 하니까.

호스텔주인은 일본인 아가씨였다. 음, 뱅쿠버는 일본일들이 정말 많은 곳이다. 영화 스파이더맨2편과 3편에서 주인공이 자취하는 방보다 더 후지고 침대는 정말이지 30년도 넘어 보이는 쿠션도 없어서 누우면 허리가 쭉 떨어지는 싸구려였다.

시차때문에 피곤했고 그냥잤다. 14시간은 잔것같다. 첫번째로 해외에 나와서 그런지 시차외에 공항에서 그리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호스텔까지 찾아오는 모든 과정등 모든것이 너무 격렬했지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바로 한 일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Stanley Park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 걸렸다.

이렇게 7주일을 보내자 뱅크버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양인(중국, 한구, 일본)이 많고 흑인구경하기가 어렵고 경치가 아름답고 공기가 무척 깨끗한 곳이었다.

8일째 되는 날은 UBC(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에 가 보았는데 대학자체가 하나의 도시와도 같았다. 이곳에 간 이유는 roommate를 구하기 위해서 였다. 현지 대학생들은 직장인이 아니니까 당연히 가난해서 대학생들이 사는 곳이 저렴한 곳이기 때문에 같이 살면서 방은 따로따로 쓰지만 주방과 화장실 전화 전기료등을 share해서 생활하는 roommate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당시도 뱅쿠버는 엄청 비싼 곳이 었다. 방하나에 900달러이상를 달라고 하는 곳이 부지기수였으며 낡은 곳이 이정도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호스텔에서 지역정보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전화하여 시간약속을 하고 찾아가서 살펴보았는데 엄청나게 비싼가격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음 방한개에 이정도라니....." 그래서 대학교엘 가면 싼 곳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정말 대학 게시판에 난 광고들은 신문에 난 것보다 쌌다. 난 이후로 이사를 해서 방을 구할 때는 꼭 현지 대학교주변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광고도 있었다.

"Ride offered from Vancouver to Quebec: I have a small car for four people. We will share gasoline, food, accommadation. I will leave on September xx. If you need it, call Stephane at XXX-XXXX"

"뱅쿠버에서 퀘벡까지 같이 갈사람 구함: 나는 4인용 작은 차가 있습니다. 기름값, 음식, 숙소는 같이 share합니다. 전 9월 xx일에 떠납니다. 제 연락처는 xxx-xxxx입니다."

 호스텔에 돌아온 이후에 이 광고가 계속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누구일까?",  "위험하진 않을까", "같이 가보면 좋지 않을까?", "가고 싶은데 혹시 같이 여행하다가 나쁜일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혹시...."

 

하루밤을 유스호스텔에서 고민한 끝에 전화를 하고 약속장소를 잡아 만나기로 했다. 캐나다에 이민비자를 받아 살러 온 나로서는 캐나다 전체를 둘러보고 정착할 곳을 결정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퀘벡은 캐나다 동부에 있기에 뱅쿠버에서 차로 여행을 한다면 중간의 캘거리, 사스카춘, 온테리오주등 대부분의 캐다다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하철역의 스타벅스커피숍에서 만났다. 스테판은 20대 후반의 남자였는데 프랑스 캐나다인으로 뱅쿠버에서 ESL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다가 이제 막 퀘벡주의 주도인 퀘벡시에 다른 일자리를 얻어 이사를 가야만 한단다. 어렸을 땐 불어가 모국어였지만 대학을 영어대학을 다닌 탓에 영어또한 거의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차로 혼자간다면 그 비용은 엄청나다. 서울에서 히말라야에 다다를 수 있는 거리다. 기름값뿐 아니라 호텔비용등 여러명이 share해서 간다면 큰 돈을 절약하게 된다. 현재 그를 포함해 4명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누가 가기로 예약되어 있는지를 묻자  현재로선 지원자가 아무도 없단다. 모든 자세한 사항(여행경로, 예상되는 소요비용, 여행도중의 관광계획 등등)에 관해 2시간 가량 대화후 이틀동안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우선 다음의 두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위험한 인물은 아닌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인가?" 우선 대화의 내용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보통 사람이라는 거였다. 흔히 차 잘못 탓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땅속에서 뼈로 발견되는 류의 이야기들은 영화의 소재일 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로 여자들과 미성년자들이 희생을 당한다. 때문에 성인인 나로서는 해당사항이 아닐테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 신분증상의 이름도 Stephane이로 표시되어 있었기에 위험 인물은 아닌 듯 했다. 물론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즉 이제 캐나다에 온지 8일째 였고 되도록이면 빨리 현지인과 동화되어 살아 나가야만 한다.

 

http://cafe.daum.net/mydearenglish

이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내가 이 당시 영어를 잘해서 전화로 연락하여 약속장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물론 전혀 영어가 안되는 사람보단 잘 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이민오기전 한국영어학원에서 원어민들과 대화위주의 수업을 받고 혼자서도 영어공부 많이 했지만 내가 뱅쿠버에 도착하자마자 느낀것은 내 영어 실력은 바닥이라는 분명하고도 엄숙한 사실이었다. 한국영어학원의 원어민 선생님들은 내 영어를 다 알아들었다. 하지만 여기 현지인들은 내 영어를 못알아 듣는다. 한국영어학원의 선생님들은 돈을 받고 천천히 말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을 들어 주시는 분들이지만 이곳 현지인들은 내 말이 불분명한 어눌한 발음이면 상점 직원이 아닌이상 더 이상 듣고 싶어 하려 하지도 않는다.물론 이들은 친절해서 길을 묻는 등 간단한 도움을 청할 때는 잘 도와주시만 그 이상은 어렵다. 바쁜세상에 누가 시간을 내서 떠듬거리는 영어를 상대해 주겠는가?  샌드백만 열심히 주먹질 하다가 링위에 올라 프로복서와 복싱대결을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까지 8일동안 영어로 더듬더듬 천천히 말을 했다. 빨리 말하면 상대편 현지인이 내 영어를 더 알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난 캐나다 오면 영어노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늘어난 영어사용시간 속에서 영어가 더 잘 될 것으로 상상했었다. 오판이었다. 영어노출환경 나아지긴 했다. 여기는 모든 사람이 영어쓴다. 하지만 길가는 사람 붙잡고 대화 할 이유가 없다. 영어 TV보지만 이건 한국에서도 많이 했다. 지난 8일간 영어를 쓰는 건 물건 살때 간단히 물어 보는 것과 길찾을 때 행인에게 물어보는 것,  돈 계산할 때가 전부였다. 공원에서 할머니와 1시간 이야기 한것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화를 즐길만큼 내 영어가 아직 모국어화가 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별로 즐기지는 못했다. 이 할머니도 정말 말씀하시면서 답답하셨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정말 캐나다 온지 8일 된 사람치고는 영어 잘한다라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huh.!  ", "Mmmm", "Wow!", "That's great!", " I see.", "that's interesting!" 식으로 응답하면 영어 잘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캐나다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때 이런 요령으로 대화 상대가 되어주지 않으면 금방 달아난다. 이것도 생존법 가운데 하나라면 하나다.

 

아믓튼 8일동안 느낀점은 캐나다에 와서도 영어노출환경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친구도 없고, 삶의 근거(집, 사회생활, 취미생활, 종교생활, 경제활동, 학교)가 아직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이다. 만일 스테판과 자동차로 캐나다 횡단 여행을 하며 퀘벡시까지 도착하려면 족히 20일 이상은 걸릴테니 하루 잠자는 시간 빼고 16시간을 실전 영어 연습시간으로 활용할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엄연히 여행비용을 share하는 고마운 여행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 캐나다 어디에 정착할지 결정조차 하질 않았다. 그래서 스테판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이렇게 캐나다 도착 10일 만에 캐나다 횡단 자동차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총 3명 나, 스테판, 헬렌이렇게 3명이 여행을 시작했다. 헬렌도 스테판의 광고를 UBC대학에서 보고 같이 가고 싶어 지원한 지원자였다. 윽! 여자! 앞으로 모텔방에서 같이 잠도 자며 budget여행을 해야 하는 데 여자가 끼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별문제 없었고 익숙해져 갔다. 나중에 나는 유럽여행을 8번도 더 했는데 가서 보니 유럽의 유스호스텔은 남녀 혼숙이다. 자다보면 하얀 다리가 나와 보이기도 하고 속옷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뭐 이런건 더이상 이야기 거리도 아니지만 그 당시 나는 참 고지식하고 유교적인 환경에 익숙한 순진한 남자였다. 참고로 유럽의 한국배낭여행족에게 인기가 있는 그 유명한 한인민박집들은 남녀 도미토리룸이 분리되어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유스호스텔도 모두 도미토리룸이 분리되어 있다.

 

헬렌은 30대의 캐나다인이었는데 부모님은 독일에서 이민 오셨단다. 캐나다 횡단 여행이 평소 꿈이었는데 현재 실직을 하여 시간이 남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기 전에 한번 캐나다를 횡단여행하려고 마음먹었단다.

여행을 하며 록키산맥에 위치한 캐나다 국립공원을 거의 모두 방문했고, 6개의 주와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들, 시골들, 삼림, 강과 호수, 초원을 둘러보며 퀘벡에 도착할 때까지 25일이 걸렸다. 내글은 관광의 감상을 싣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으로 모든 여행설명을 마친다.  

 

이 기간동안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다. 25일간의 이들과의 캐나다 횡단 여행은 굳이 평가하라면 내가 여지껏 한국에서 영어습득 혹은 공부를 해온 모든 것의 총합보다 더 큰 것이었다. 왜 그런지 알려 주겠다.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속에 내가 갇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이란 내가 만든 말이다. 보통의 영어노출환경과는 전혀 다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속에 있다. 이 환경속의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속에서 생활한다. 배고프거나 무엇이 필요할땐 영어를 사용하여 필요를 충족해야 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부모들의 일상 생활속의 자질구레한 생활 모습을 구경하면서 혹은 관찰하면서 이들이 말하는 대화를 들으며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의 특징은 벗어날 수 없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부모의 아이가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듯이 말이다. 내가 스테판, 헬렌과 25일간 캐나다 횡단 자동차 여행을 하는 동안 난 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의 다른 특징은 문제해결을 영어를 통해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는 혹은 몹시 불편해진다는 절박함 속에 있다. 여행중 무엇을 먹는 문제도 간단한게 아니다. 학원다닐때 수업이 끝나면 그냥 나혼자 사먹으면 된다. 하지만 여행중엔 동료가 있다. 이들과 모든걸 의논을 해야한다. 나만 사먹고 내 배가 부르니까 "계속 운전하자" 이럴 수가 없다. 그들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서도 나는 관심을 기울여야만 했다. 스테판이 운전을 오래하면 혹시 졸음 운전을 할수도 있다. 이땐 내가 뭔가 얘기를 해야만 한다. 유머든 뭐든 영어로 지껄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나서 내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에서 탈출할 수 없는 이 상황이야 말로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통의 영어노출환경은 어떠한가? 인위적이다. 원어민 선생님과 책을 가지고 만난다. 일대일 이라면 더 좋겠지만 10명의 학생에 원어민 선생님 한명이 상대해야 한다. 이런 환경은 없는 것보다는 낫다. 프로복서와 맞붙기전 샌드백이라도 치고 링위에 올라오는 것이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낫기 때문이다. 보통의 영어노출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 원어민 선생님과의 보통의 영어노출환경은 기껏해야 하루에 최장 4시간 정도일 것이다. 이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영어노출환경을 벗어난다. 다시 영어가 무의미한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캐나다 어학연수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루 4시간의 영어노출환경이 끝나면 영어가 필요없는 자신의 편한 세상으로 돌아온다(물론 개인의 노력에 따라 안그런 경우도 있다). 길가는 캐나다인과 대화할 일도 없고, 집에 돌아오면 한국드라마를 보거나 한국인 친구들과 놀수 있다. 영어가 서툰 사람에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주려는 캐나다인은 없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시간을 솓아줄 한국인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학연수중에는 현지인 roommate를 구하거나 적어도 현지인 홈스테이를 하질 않는다면 자질구레한 일이 그다지 많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진정한 영어노출환경보통의 영어노출환경은 큰차이가 있다. 즉 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탈출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감옥에 갇치어 지느냐 않느냐로 구별된다.

 

난 25일간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에 갇혀 벗어날 수 없었다. 때문에 이전 한국에서 영어를 위해 쏟아부운 총시간의 합보다 이 25일간의 기간이 내 영어에 더 큰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껏 샌드백만 열심히 치다가 드디어 링위에 올라 얻어터지며 싸우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수영을 배우기 위해 수영코치의 친절한 설명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물속에 뛰어 들어가 버둥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하여 한국에서의 영어공부가 전혀 무가치한 것이었다고 혹은 어학연수 하는 것이 무가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서의 영어공부가 없었다면 아예 난 이렇게 이 친구들과 여행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수영을 배우기 위해 수영코치 설명안듣고 물에 들어 가면 익사한다. 샌드백 치는 연습없이 링위에 올라가면 병원에 실려갈 확률이 크다. 그나마 수영코치 설명 잘 듣고 샌드백 치는 연습 많이 하다가 붙었기 때문에 이 정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영어교육이 잘못되었다느니 비싼 어학연수의 무용성을 주장하면 안된다. 내글에서 간혹 이런 표현을 쓰더라도 이것은 다른 더 좋은 방법에 비하여 효과가 덜하다는 의미로 쓰는 것일 뿐이다. 오해없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체험한 더 좋은 영어습득,학습방법에 대해서 소개할때 가끔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쓰기는 한다.

 

이 경험이후로 난 아파트나 집을 혼자서 쓰며 남 눈치 안보고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roommate로 공간을 share하며 살았다. 또한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방 5개 6개 짜리 큰 집이나 아파트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방값이 더 싸고 그만큼 더 많은 자질구레한 탈출할 수 없는 진정한 영어노출환경의 감옥에 갇히게 되다. 스트레스 많이 받을 수 있다. 조용하지 않고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었인가? roommate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비롯 조심할 점, 유의할 점, 찾는 방법, 따져야 할 점등은 다음 글에서 공개하겠다.  

 

난 캐나다에서 이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의 자동차 여행을 5번은 한 것 같다. 지금은 자동차 여행을 하지 않는다. 너무 질려버려서 돈을 준다고 해도 하기가 싫다. 차를 이용한 장거리여행은 정말 피곤하다.  

캐나다에서 혹은 미국에서 carpool(차로 같이 여행하는)에 관한 정보 얻는 법, 조심해야 할 점, 에피소드또한 다음 글에서 공개하겠다.   http://cafe.daum.net/mydear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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