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 최초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 ] *****************************



<“명작은 내 손에서 완성된다.”>

“다음은 가장 화제가 됐던 박수근 화백의 유화작품 ‘아이업은 소녀’입니다. 5호 크기의 이 작품 경매는 3억9천만원부터 2백만원씩 호가(呼價)하겠습니다”

이달 초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지하 1층 경매장. 미술품 수집가, 미술관 관계자, 화랑 주인, 미술전공 학생 150여명이 경매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의 시선은 모두 검은 원피스 차림의 미모의 여인에게 집중됐다. 그들의 눈동자는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朴蕙卿·35) 팀장의 당차고 유연한 말솜씨와 손짓에 따라 한 무리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4억1천4백만원 나왔습니다. 자, 4억1천6백만원 없으십니까?”. 시작부터 응찰자들의 열띤 경합. 다른 작품 같으면 벌써 새주인을 찾았을 시간인 2분을 지나 금세 4분이 넘어갔다.

“4억9천8백만원 전화응찰 확인해 주십시오. 자 이제 5억원입니다. 5억, 5억. 5억2백만 있으십니까? 5억2백만원 나왔습니다… 5억5백만원. 더 없으십니까? 자, 세번 호가하겠습니다. 5억5백만, 5억5백만, 5억5백만원. 182번 손님에게 낙찰됐습니다”

경매 시작 5분여 만에 ‘땅’하고 방망이 소리가 장내를 경쾌하게 울렸다.
국내 현대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던 박화백의 또다른 작품 ‘초가집’의 4억7천5백만원 기록을 한달 만에 3천만원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거액을 제시한 낙찰자가 대체 누군가요?”.
박팀장은 그러나 “전세계 경매장 어디서나 낙찰자 신원은 밝힐 수 없는 게 원칙”이라고만 했다.
이날 출품된 작품 69점 중에서 그녀는 48점을 중개했다. 이날 박씨의 70% 낙찰률은 경매사상 최고 기록이며 현금으로 환산하면 22억원대가 넘는다.


박팀장의 전공은 미술과 전혀 관계없는 사학.
단국대 재학 시절 학교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한 그녀는 졸업 후 광고회사 AE 생활 3년과 진로그룹 홍보실 근무 4년 뒤에 국내 최대 화랑인 ‘가나 아트갤러리’의 아트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불과 6년 전 일이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미술품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웠다. 늘 유명작가의 작품을 보며 메모하고 화집을 뒤지면서 매일 1~2시간씩 공부를 해 심미안을 길렀다.

아트디렉터는 경매사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정거장’이었던 셈이다. 화랑에서의 2년 동안 홍보쟁이 경험을 살려 무대를 넓히기 시작했다.

케이블TV LG홈쇼핑의 ‘아트 컬렉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해설자로 나섰다. 시장조사를 통한 기획서 작성, 깔끔한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였던 그녀에게 화랑의 새 거래처를 뚫고 주 1회 방송을 하는 1인2역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렸다. 99년 서울옥션이 창립 멤버 구성을 위해 ‘러브콜’을 했다.

회사 오너는 “방송에서 미술품 판매도 해봤으니 고객을 상대로 경매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박씨는 이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의 경매사로서의 변신은 화려했다. 국내 유일의 여성 옥셔니어(auctioneer)로 통산 60여회의 경매를 진행했고, 겸재 정선의 대작 ‘노송영지(老松靈芝)’를 지난해 사상 최고가인 7억원에 중개했다.

이 경매에서는 낙찰자를 밝히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인천 송암미술관이란 사실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술관이 일반인 공개를 목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것이다.

"피카소도 예술은 돈이라고 말했어요. 명작은 감동의 대상이면서 투자 대상이기도 합니다. 돈과 관련되는 직업이니 자연히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지요."

그녀는 작품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중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고 정확한 진행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장 좋은 시작 가격과 호가 폭의 선정을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서 그녀만의 ‘호가의 룰’이 있다고 귀띔했다.

박팀장은 “미술품 경매사는 작품 가치를 고객들에게 알리고 베팅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응찰 유도뿐만 아니라 위탁자들과 상담, 작품 수급과 전시기획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선정부터 낙찰까지 대개 한달 정도가 걸린다. 프랑스는 정부 공인 예술품경매인이 있지만 그 밖의 나라에서는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고 회사에서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선발 경매사를 교육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5~6명선. 그녀는 “연봉은 일반 화랑에서 일하는 직원보다는 높은 편”이라고만 밝혔다.

경매를 진행한다고 해서 특별한 인센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경매사가 되기 위해서는 승부사의 기질과 매너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깊이있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혹 낙찰받은 후 작품구입을 포기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충동이나 ‘중독’ 또는 경쟁 심리로 응찰을 한 뒤 마음이 달라지는 고객이 있지 않느냐는 일반의 궁금증을 전달해보았다.

박팀장은 “계약 위반시에는 회사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 “불미스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 경매 참여는 연회비 10만원을 내는 회원으로 제한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경매장은 고가 물품만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신선한 문화체험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니 가족끼리 자주 찾아달라”는 ‘홍보’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엔지니어와 결혼, 7년 만에 낳은 아들 정우가 아직 돌이 안 지났다는 그녀는 “아이가 자라 온가족이 손을 잡고 갤러리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5월의 초록이 눈부신 북한산 자락에서 만난 박혜경씨. 그녀에게서 나는 프로의 향기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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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배운 한 푸니 세상이 보여요. : 72세 할머니,3개 검정고시 연속합격 ] **************



【“배움이 없으면 눈을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요. 이제 조금 길이 보이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한글도 제대로 몰라 대통령선거조차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칠순 할머니가 1년 만에 검정고시를 연거푸 3차례 합격해 고졸 학력을 얻어 화제다.】

주인공은 지난달 5일 치러진 고졸 검정고시 전국 최고령 합격자인 안정숙(安正淑·72·서울 금천구 독산본동·사진) 할머니.

안 할머니는 지난해 5월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하는 중학입학자격 검정고시, 8월에는 고입 검정고시에 최고령으로 합격한 데 이어 이번에 고졸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이번 고입과 고졸 검정고시는 전국에서 3만4543명이 응시해 46.1%(1만5936명)만 합격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시험이었다.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해 항상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요령으로 살아온 게 가장 한스러워요. 대통령을 뽑을 때도 주위에서 “이 사람이 훌륭하다”고 하면 아무 생각없이 투표했어요.”

안 할머니는 ‘못 배운 죄’ 때문에 항상 눈치를 보며 남들 뒤에 숨었던 것이 지금도 안타깝다고 한다. 요즘도 길을 가다가 큰 건물을 보면 습관적으로 이름과 위치를 외워둔다. 버스노선표를 잘 읽지 못해 큰 건물을 익혀 두었다가 길을 묻곤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한글 맞춤법이나 수학 문제를 물어볼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요. 가정통신문에 글 하나 제대로 써주지 못하는 어미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병치레를 하면서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것이 안 할머니의 학력의 전부. 아버지의 별세, 6·25전쟁 등 격동의 세월에 묻혀 학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 군인이었던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1남2녀 뒷바라지 때문에 공부할 생각은 엄두도 못냈다.

그러던 안 할머니는 성인 대상 평생교육시설인 ‘양원주부학교’를 TV에서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용기를 내 이 학교에 등록한 뒤 95년부터 3년간 한글 읽기와 쓰기, 영어, 수학, 한문, 일본어 등 중고교 과정을 배웠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예습 복습을 거르지 않았다. 미국 여행을 다녀오느라 결석한 1주일을 빼고는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국어나 외국어는 물론 사회나 과학을 공부할 때도 낯선 말이 나오면 사전을 꼭 찾았어요. 스스로 찾아보며 연구하는 것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

모르는 것은 반드시 사전을 찾고 한번 배운 내용은 노트에 깨알같이 적고 큰소리로 읽어가며 외우는 것이 안 할머니의 공부 비결.

그는 “환경이 좋은데도 공부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힘들고 어려워도 꾸준히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할머니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지 않고 입학이 가능한 방송통신대에 진학해 문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배우기 위해 5개월간 컴퓨터도 배우기로 했다.

자동차부품 사업을 하는 장남 황해권(黃海權·49)씨 내외의 격려도 안 할머니에게는 큰 힘이 됐다.

손녀 황재희(黃載喜·17·고1)양은 “새벽에 식탁에서 스탠드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투정부리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며 “할머니 못지 않게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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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간여고,점원 .... 사시합격까지 ] ****************************



< 김미애씨 "저에게도 아픈 과거...방황하는 청소년 도울겁니다." >


만나기 전부터 가슴 설레는 사람이 있다. 이력서 한 장에 담기 어려운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지난 4월 2일 만난 김미애(34)씨가 그랬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일산까지 가는 버스는 달릴 만하면 멈춰서 나를 감질나게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유쾌했다.

미애씨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녀는 방직 공장에 다니며 야간여상을 졸업했다. 쇼핑센터에서도 일했고 초밥집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말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법조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애씨의 이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은 일은 알 수 없다는 그녀의 철학은 경험에서 체득한 것이다.

미애씨는 판·검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청소년 선도를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젊은 시절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서 미애씨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 기억 하나

자궁암 말기로 핏기 하나 없이 누워만 계셨던 어머니 기억이 나요. 중학교 2학년 때였죠. 어머니는 제주도 해녀 출신이거든요.

따개비다, 군소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잡숫고 싶다고 찾으셨죠. 전 어른 해녀용 고무 장화를 신고 바다로 나가곤 했어요.

어머니가 아프다니까 신(神)을 찾게 되더군요. 하소연할 데가 필요했어요. 어머니를 리어카에 싣고 교회로 나갔죠. 하나님 도와주세요.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 기억 둘

아버진 사업에 실패하신 뒤로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 ‘명문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포항여고에 입학했는데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죠. 아침마다 동네를 돌며 차비 빌리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1학년 5월쯤이었는데 반 아이들이 갑자기 저더러 교실 밖에 나가 있으래요.

‘불우이웃 돕기’였죠. 애들이 걷은 돈을 받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셨죠. 제가 그리웠던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고, 살가운 관심이었는데….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전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했어요.


◆ 기억 셋

1학년인 그때가 85년이었지요, 부산에서 공장에 다니던 친구들이 포항에 올라왔어요. 그애들을 무작정 따라나섰죠. 방직공장에 취직해 허드렛일을 했어요.
하루 8시간 꼬박 일했는데 피곤해서 쓰러질 정도였죠. 밤엔 여상에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갔죠.

돈을 좀 모아 15평짜리 초밥집도 냈어요. 주방장도 하고,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고 1인 3역을 했답니다.
손님들은 ‘나이 어린 아가씨가 고생한다’면서 기특하게 여겼고 단골도 제법 생겼어요.

그런데도 이게 아닌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 자꾸만 허기졌고 목이 말랐어요.


◆ 기억 넷

27살이던 96년에 대입 수능공부를 시작했죠. 이듬해 동아대 법대에 입학해 학교 고시실에 들어갔어요. 입실 시험에서 1등을 한 덕분에 학교에서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었죠.

그 후로 매일매일 감격하며 살았어요. 다른 생각없이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돈을 만져도 기쁜 적이 없었죠. 내 안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으니까요.

전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정해두고 앉았거든요. 어느날 창가에 햇살이 비치는데, 햇살이 나만 비추는 것 같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마냥 울었죠. 제 자리엔 항상 성경책이 함께 했구요.


◆ 기억 다섯

96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이네요, 사법시험에 매달린 시간이. 하루 열두시간 책상에 앉아 있었죠. 정말 즐거웠어요. 부모 잘 만나 줄창 “대학 가라”는 소리 들은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전 좋아하는 것 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죠.

2차 공부 땐 있는 돈 죄다 모아 서울서 학원에 다녔구요. 뭔가 할 때마다 미리 돈 계산을 하는 게 익숙해요. 누군가 알아서 도와주는 행운이 제겐 별로 없었거든요.

1차 시험 붙고 대학에서 매달 받은 보조금이 42만5000원이었어요. 동아대는 제게 꿈을 열어 준 곳이예요.



◆ 꿈 하나

꿈은 꾸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아이들 말예요. 얼마나 아까워요. 저처럼 힘들게 지낸 아이들을 돕는 게 제 꿈이예요.

딱딱한 말로 하면 청소년 선도. 그런데 누굴 도우려고 보니까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1년동안 한 학생에게 매달 조금씩 후원해 준 적이 있는데, 미리 약속 했어요.

절대 학생에게 제 이름을 밝히지 말 것. 가끔씩 집에 들러 먼 발치에서 학생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만 지켜봤는데, 어릴 때 생각 안났다면 거짓말이겠죠.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제 한 고비 넘겼으니 또다른 고비를 향해 올라가야죠.

그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했다. 그녀가 믿는 하나님은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했을 때, 수중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손을 뻗쳐 준 유일한 ‘친구’라고 했다.

인간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숙제를 그녀는 신(神)에게 맡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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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마비 이겨낸 서화가들 ] *********************************



‘누구보다 남다른 열정이’-

작품활동에 치명적인 손의 마비를 이겨낸 서화가들의 공통점은 삶에 대한 용기와 예술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남달랐다는 점이다.

인상파의 대표적인 작가 르누아르(1841~1919). 환희에 찬 그림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쥔 그였지만 말년에 심한 관절염으로 거동을 못했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자 아예 붓을 손에 매단 채 그림을 그린 이가 르누아르다.
이후 그는 하녀인 가브리엘을 비롯한 건강한 여성미를 캔버스에 많이 옮겼으며, 조각에도 새롭게 손을 대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과시했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1841~1954). 그 유명한 만년의 종이 오려붙이기 작업은 그가 전신마비 상태에서 취한 최상의 선택이었다.
짙은 색채와 화려한 형태의 색종이 작업들은 노화가의 예술혼을 완전 연소시키면서 빛을 발한 50년대 세계 미술의 섬광이었다.


동양에서는 청나라 중기의 가오펑한(高鳳翰·1683~1748)이 유명하다. 양저우에서 활동한 ‘양저우팔괴(揚州八怪)’의 한사람으로 시·서·화·각에 뛰어났으나 1737년(丁巳) 중풍으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자 왼손으로 성수(成遂)한 인물이다.

왼손그림이 더 자유분방했음은 물론 그림값도 훨씬 비쌌다. 호와 낙관도 ‘후상좌생’(後尙左生·훗날 다시금 왼손으로 살았다), ‘정사잔인’(丁巳殘人·정사년에 살아남은 사람), ‘병비’(病비·병들어 마비되다) 등으로 고쳐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뇌출혈에 의한 오른손 마비를 왼손 글씨로 극복한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1911~76)이 대표적이다.

전·예·행서에 두루 능통했던 검여는 68년 중풍을 맞고는 3년간 왼손 집필법을 익혀 전지 36폭짜리 불후의 명작 ‘관서악부(關西樂府)’를 일궜다.


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은 손바닥으로 붓을 움켜쥐는 악필(握筆)로 독자적 경지를 연 서예가이다. 수전증으로 오른손 악필을 개발했다가 그도 여의치 않자 왼손으로 옮기고도 붓을 놓는 날까지 글씨를 즐긴 이다.


오늘의 글을 읽고 실망을 했는가? 그러면 반문하겠다.
양 손과 팔이 멀쩡한 당신은 무엇을 이루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성공은 못했더라도 그대는 성공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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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학의 아버지 나폴레옹 힐 ] ******************************



** 성공학이란 것을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한 사람. 성공인의 공통분모와 노하우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인생 20년을 바친 사람.

강철왕 카네기는 ‘부(富)의 비밀’을 세상에 알릴 메신저로서 나폴레옹 힐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게 아무런 비용도 대줄 수는 없소. 그래도 하겠소?”
힐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나폴레옹 힐을 통해 그 성공철학은 활짝 꽃을 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공인들이 그 성공철학의 힘을 증명해왔다. **


변호사를 꿈꾸던 나폴레옹 힐은 조지타운 법대에 입학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 마련은 그의 몫이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생활을 했던 그는 <봅 테일러스 매거진>이라는 잡지사에서 성공인들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면서 학비를 충당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그 일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인터뷰에서 그의 운명은 거대한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다.

뜻밖에 첫 인터뷰를 수락해준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 강철왕 카네기였다.

25세의 나폴레옹 힐이 운 좋게도 73세 거인과의 인터뷰를 성사시킨 것이다. 첫 만남에서 무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에 몰입하는 동안 어느덧 창가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마음 속으로 마무리 멘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카네기가 말했다.

“이 인터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네. 어떤가, 함께 내 집에 가서 식사라도 하지 않겠나?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세.”

이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인터뷰라기보다는 대가의 철학 강론이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정신적인 측면의 철학을 얘기했다면, 카네기는 부를 만들어내고 축적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카네기는 누구라도, 이를테면 거리의 부랑아라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 인생에서 배우고 정립해온 성공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드디어 사흘째가 되는 저녁,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자네에게 사흘에 걸쳐 ‘새로운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네. 그럼 이제 자네에게 질문을 하겠네. 만일 내가 이 새로운 철학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작업을 자네에게 의뢰한다면 자네는 그것을 어떻게 하겠나?

물론 협력자들이나, 자네가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내가 소개장을 써주지. 우선 한 500명 정도가 될 걸세. 이 성공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데는 20년 정도의 조사가 필요할 것이네. 그런 일을 자네가 해볼 생각이 있는가? 있다, 없다, 한 가지로만 대답하게.”

집으로 돌아갈 여비가 충분한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잔돈을 세고 있던 나폴레옹 힐은 뜻밖의 제안에 멍해졌다.
한낮 지방잡지사의 무명기자에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같이 일해보자고 하다니….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망설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그리고 카네기가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이라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폴레옹 힐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카네기 씨, 꼭 저에게 시켜 주십시오. 그 일을 반드시 해낼 것을 약속 드립니다.”

그러자 카네기가 말했다.

“단, 내가 자네에게 주는 금전적인 원조는 한푼도 없네. 그래도 괜찮겠나?”

한푼도 받지 않고 세계 제일의 부자를 위해 20년 동안 일을 하라구? 순간 그는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네.”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카네기가 주머니에서 스톱워치를 꺼내며 말했다.

“29초네. 자네가 대답을 하는 데는 29초가 걸렸네. 만일 1분이 넘었다면 자네를 그저 앞길이 별로 안 보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제안을 철회했을 걸세. 이런 결단을 1분 안에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시켜도 시원치가 않네.”

사실 카네기는 나폴레옹 힐 이전에 260명의 사람에게 제안했었으며, 아무도 1분 안에 대답하지 못했다.


< 20년 동안의 무료 프로젝트와 가장 가치 있는 대가 >

나폴레옹 힐의 계획을 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 일에 젊음을 낭비한다며 만류했다.

그의 어머니만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20년이란 기간 동안, 카네기가 소개해 준 인물들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나폴레옹 힐은 이들의 성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성공철학을 완성해 나갔다.

그 무렵 카네기는 죽기 전, 자신이 모은 모든 돈이 올바른 일에 쓰이기를 바랐다. 교육단체·도서관·평화재단 등에 2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나, 그것은 아직도 자기 재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나머지 대부분의 재산을 나폴레옹 힐을 통해 환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돈을 기부했지만 아직도 충분치 않아. 이는 내 재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은, 내가 부를 축적한 방법, 그 노하우야.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이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남기고 싶다네.

그리고 자네라면 틀림없이 이 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믿네. 자네라면 내가 손에 넣었던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을 거두게 할 수도 있을 테고.”

카네기의 안목은 정확했다. 나폴레옹 힐은 카네기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약속한 20년이 지난 1928년 나폴레옹 힐은 드디어 열 여섯 개 파트로 이루어진 성공철학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 프로그램을 소개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Think & Grow Rich)>라는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권이 팔려나갔으며, 각계 각층에서 수많은 성공인들을 배출해냈다.


< 카네기로부터 전해진 여섯 가지 성공비결 >

자동차왕 헨리 포드, 백화점 사업의 선구자 존 워너메이커, 루즈벨트 대통령, 코닥의 창립자 이스트먼, CNN을 설립한 테드 터너, 노먼 필 박사, 리 아이아코카 등등이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에 눈을 뜨고 있다.

나폴레옹 힐 자신도 자신의 성공철학을 통해 크게 성공했다.

“나처럼 가난한 시골 출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 ‘사고(思考)’라는 대자연으로부터 특별하게 얻은 뇌력(腦力)을 인식하여, 그것을 활용하기만 하면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다니….

나야말로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운명의 여신의 넓은 품에 안기게 되어 최고의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뇌력의 힘’은 나폴레옹 힐에 의해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혹자는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의 근간이 된 것은 다음의 여섯 단계이다.
이 여섯 단계는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을 처음 만나 사흘 밤낮으로 이야기했던 부의 철학이고, 나폴레옹 힐이 20년간 체계화시킨 성공철학의 근간이 된 것이다.

첫째, 마음 속에 당신이 원하는 돈의 액수를 분명하게 정하라. 돈을 무조건 많이 벌겠다는 식의 목표설정은 무의미하다. 구체적으로 정하라.

둘째, 당신이 원하는 돈을 받은 대가로 당신은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 결정하라. 이 세상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보수는 아무 것도 없다.

셋째, 당신이 원하는 돈을 언제까지 얻고 싶은지 그 날짜를 정하라.

넷째, 당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에 옮겨라.

다섯째, 당신이 얻기 위한 구체적인 돈의 액수,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 날짜,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 이상의 네 가지 사항을 종이에 자세히 적어라.

여섯째, 종이에 적은 이 선언을 하루에 두 번,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자기 직전에 되도록 큰소리로 읽어라. 이때 당신은 이미 그 소망을 실현한 것처럼 생각하고 믿어라.

나폴레옹 힐은 이 여섯 단계의 교훈이 돈을 모으는 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소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제 나폴레옹 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을 맛보자.


* 성공은 명확한 꿈과 목표에서 시작된다

“꿈과 목표는 단순한 바람이어서는 안 된다. 불타는 듯한 열렬한 소망이어야 한다.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면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이 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기회가 당신 앞에 나타난다.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되고, 마법처럼 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당신 안에 있는 공포와 의심이 자신감으로 바뀐다.”

나폴레옹 힐은 꿈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으로부터 목표달성을 도와주는 손길이 생긴다고 했다.
그 자신도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매번 도움의 손길을 받았는데, 그는 그것을 ‘자신의 뒤에 있는 투명인간으로부터의 도움’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런 투명인간의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하반신 불구자인 로이드 코리엘 이야기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화이트 빌 근처에 있는 어느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전반에 심한 병을 앓아 평생을 하반신 불구로 살아야 했다. 그의 모습은, 길가에 깡통을 들고 앉아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다.

그를 가엾게 여긴 어느 사업가의 도움으로 그는 작은 가게 한구석에서 시계수리공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항상 자신감과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나폴레옹 힐의 책을 접했다. 그는 그 책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책에 쓰여져 있는 성공법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화이트 빌에서 가장 멋진 보석점을 갖겠다는 목표를 기록했고, 그 목표를 기억 속에 집어넣고 매일 여러 차례 그것을 복창했다.

결국 그의 가게는 화이트 빌에서 가장 멋진 보석점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그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훌륭한 가정과 귀여운 아이들을 갖게 되었다. 로이드는 명확하게 설정한 모든 목표를 달성했으며, 크게 성공했다.


<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은 인내력 >

“소망을 실현하여 금전적인 가치로 바꾸기 위해서는 인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때 인내력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의지력’이다. 의지력과 인내력이 결합될 때, 무서운 힘이 생겨난다. 의지력과 인내력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긴 사람들만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나폴레옹 힐은 인내력을 이야기할 때면 브로드웨이를 정복한 몇몇 인물을 예로 든다. 그중에서 패니 허스트는 단골 메뉴다.

그녀가 작가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것은 1915년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불타는 희망을 안고 저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수도 없이 출판사를 왕래했지만, 편집자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늘 발걸음이 무거웠다.

‘브로드웨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내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몰아낼 수 없을거야. 지쳐서 단념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가 될거야.’라고 스스로 격려했다.

그녀는 많은 실패와 거부와 좌절을 맛보았다. 심지어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그녀에게 무려 서른 여섯 번이나 거절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판사들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항상 승리에 대한 확신이 불타고 있었다.

드디어 출판업자들이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녀의 작품은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막대한 부와 명예가 쏟아져 들어왔다. 케이트 스미스는 노래를 가지고 패니 허스트와 똑같은 인내력 테스트를 받았다.

강렬한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마이크만 있으면 노래를 불렀다. 돈을 받지 못할 때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결국 브로드웨이는 그녀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녀는 엄청난 성공을 했다.

위대한 사람들도 성공하기까지는 온갖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온갖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발휘해온 초자연적이고 위대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폴레옹 힐은 헨리 포드와 에디슨의 삶을 곁에서 연구함으로써 그 힘의 원천을 찾아냈다. 그 두 사람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게 한 힘의 원천은 바로 ‘인내력’이었던 것이다.


< 상상한 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다. 최근 50년 동안 인간은 이전의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룩한 성과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냈다. 이러한 성과도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폴레옹 힐은, 부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그 아이디어는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상상력을 얘기할 때면 늘 한 사례를 든다. 작은 마을의 약사였던 팸버턴이 만든 마법의 액체에 대해서이다.

팸퍼턴은 강장제를 만들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1886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완성된 재료에 물을 타기만 하면 액체의 강장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수로 액체 대신 소다수를 넣어버렸다. 그런데 이 액체는 독특한 단맛을 냈다. 팸버턴은 그 액체를 약국에서 팔았지만, 별 소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약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이가 있었다. 시골의 작은 약국의 점원이었던 캔들러는 자신의 전 재산인 1750달러를 지불하고 이 약의 조제법과 한 주전자의 약을 사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주전자에 담긴 액체가 마법의 물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판로에 골몰하던 캔들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검은 액체를 약이 아닌 청량음료로 판매했다. 이 액체는 다름 아닌 오늘날 전 세계 최고의 히트 상품인 코카콜라이다.


< 잠재의식과 연결하라. >

“나의 성공철학은 모두, 잠재의식에 도달하여 감응하는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자극제이다. 그러나 한 번의 도전으로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잠재의식은 습관화될 때 비로소 생각한 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념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나폴레옹 힐에 의하면, 원하는 목표를 어떻게든 잠재의식 속에 심어두기만 하면 잠재의식이 알아서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해낼 수 있는 범위는 무한정하다. 때문에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란, 바로 잠재의식 속에 소망을 부지런히 입력시키는 일이다.


나폴레옹 힐은 잠재의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잠재의식은 당신의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잠재의식은 단 일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게으름 때문에 잠재의식에 소망을 입력시키지 않으면, 잠재의식에는 부정적인 정보가 계속 입력될 것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에는 그게 부정적인 정보가 되었든, 긍정적인 정보가 되었든 무차별적으로 입력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공포나 빈곤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좀더 건설적인 정보를 계속 입력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나폴레옹 힐에 의하면, 잠재의식을 창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상상력’이라 한다. 상상력으로 좋은 계획이라는 씨앗을 만들고 그것을 잠재의식이라는 밭에 뿌린 후 신념이라는 물을 주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 또한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성공학의 바이블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 힐은 성공철학을 정립하는 20년 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가 성공철학을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한 것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나폴레옹 힐에 의해 때로는 여덟 가지, 때로는 열 세 가지의 성공철학으로 정립되었다.

첫째, 확고한 목적의식과 불타는 강렬한 의욕을 갖는다.

둘째,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해나간다.

셋째, 주위 사람들의 부정적인 견해는 깨끗이 무시해버린다.

넷째, 나의 목표와 계획에 찬성하여 항상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을 친구로 사귄다.

이 네 가지의 성공철학은 다시 하나로 표현된다. 그것은 바로 ‘불가능이란 없다’이다.

한번은 나폴레옹 힐의 생일날, 그의 성공학 세미나를 들었던 제자들이 멋지고 두툼한 사전을 그에게 선물했다.
단상에서 사전을 받은 나폴레옹 힐은 펜을 꺼내고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이 멋진 선물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사전 속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힐은 ‘불가능’이라는 말을 찾아내서 펜으로 그 부분을 지워버렸다.

“자, 이제 이 사전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실려 있는 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이제까지 불가능이라 일컬어지던 것들이 실은 불가능하지 않았던 예들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전에도 ‘불가능’이란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바로 나폴레옹 힐의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 나폴레옹 힐의 '성공의 13 단계'>

1단계 : 명확한 목표를 세워라.
- 그리고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2단계 : 신념은 한계를 뛰어넘는다.
-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는 사람은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3단계 :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암시.
- 자기암시는 잠재의식 계발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다.

4단계 : 아는 것이 곧 힘이다.
- 명확한 목표를 향한 체계화된 지식이 있어야 한다.

5단계 : 상상력은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 부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6단계 : 실천적인 계획을 세워라.
- 당신의 계획이 완성된 순간, 성공은 이미 당신 곁에 있다.

7단계 : 신속하게 결단하라.
- 우유부단은 모든 사람이 극복해야 할 최대의 적이다.

8단계 : 인내를 습관으로 만들어라.
- 인내력과 의지력으로 어려움을 이길 때, 부가 축적된다.

9단계 :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성공을 앞당긴다.
- 두 사람의 마음이 조화되어 하나가 될 때,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10단계 : 성 충동을 에너지화하라.
- 성 충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환되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11단계 : 잠재의식을 활용하라.
- 잠재의식은 신념처럼 강한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2단계 : 누구에게나 초능력이 있다.
- 감정을 자극하면, 창조적인 상상력은 더욱 민감하게 아이디어를 수신하게 된다.

13단계 : 육감을 일깨워라.
- 육감의 명령대로 행동한다면, 행운의 여신은 성공의 문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나폴레옹 힐 명언록

<사람은 누구나 천부적인 세일즈맨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을 남에게 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어머니에게 울며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욕구불만을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젖을 먹게 된다. 이렇게 해서 당신은 그때부터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다.


( 남성이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성의 사랑이 필요하다. )

여성의 영향력 없이는 어떤 남성도 행복해질 수 없으며, 또 완전하게 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남성은, 훌륭한 성공을 쟁취하기 위한 이 힘을 자신의 손으로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 인생은 참고 기다리는 자의 것이다. )

사실 인생에서 인내만큼 어렵고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인내란 무조건 참고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참다운 인내는, 열정을 가지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 침묵할 때를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

현명한 사람은 많이 듣고 신중하게 이야기한다.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 항상 귀중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갖추어진다.
말하기에 적절한 때가 있고, 침묵해서 좋을 때가 있다. 말을 해서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때, 현명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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