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정진구 대표이사 ] *********************
< 커피 향내에 묻어나는 인생철학, 더불어 사는 삶 >
스타벅스 사상 최단시간 흑자 달성과 모범적인 점포 운영으로 미국 본사에서 대상(president award)을 수상했던 정진구 사장.
그의 인생은 체인스토어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븐일레븐'에서 '배스킨라빈스', 다시 '파파이스'와 '스타벅스'로 이어지는 시간들은 그가 몸담았던 기업들의 기록을 깨는 과정이기도 했다.
에스프레소처럼 깊고 짙은 향내 속에 묻어나는 이 노신사의 인생 철학은 '기업 리더'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새벽 6시 20분, 경기도 분당에 있는 집을 나선 한 노신사는 스타벅스에 들러 8온스짜리 드립 커피 한 잔을 산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종업원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매장을 둘러보기도 하는 그 노신사는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 하면 떠오르는 '스타벅스'를 한국에 들여온 주인공이다.
(주)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정진구 사장(56)은 항상 그 시간이면 서울 어딘가의 스타벅스 매장을 둘러본다.
“우리 아들, 딸들 얼굴을 봐야 하루가 시작되죠. 여의도처럼 매장이 두 개 있는 곳엔 꼭 두 곳 다 들러야 해요. 서운해하거든요. 최고경영자가 매장을 찾는다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부담이 될텐데…. 우리 파트너들 참 착하죠?”
공부 때문에 자녀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정 사장에게 매장 직원들은 아들, 딸이고 사업 파트너다.
손님이 많아 매장이 바쁘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며 커피 만드는 일을 돕기도 하는 품새가 꽤나 익숙해 보인다.
< 도미 유학생, 세븐일레븐의 명물이 되다. >
“스타벅스는 사장도 돈 내고 커피 사먹어야 돼요”라며 소박하게 웃는 그가 체인 사업에 발을 디딘 것은 1974년 미국 유학 시절이다.
그 무렵 한국은 보릿고개로 서민들이 먹고살기도 힘들었는데,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왜 미국은 잘 먹고 잘 살까?'라는 의문으로 꽉 차 있었다.
농사꾼이 꿈이었던 그가 미국행을 결심한 것은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잘 사는지를 보고 와서 식량난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제게 한국의 식량난을 해결한다는 건 사명감과도 같았어요."
원대한 꿈과 사명감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정작 그를 기다린 것은 오일 쇼크로 인한 불경기였다.
공부는 물론, 취직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막한 상황에서 신문 한쪽 귀퉁이에 실린 건설회사의 '공정관리 직원' 채용 공고는 그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일 단위 생산성 계산 직원 채용에서 그는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 건설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현지인들과는 달리 계산기도 없이 치른 수학 시험에서 만점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입사한 회사는 몇 년 후 부도를 맞았고, 그는 세븐일레븐 점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무덤(grave night shift)이라고까지 불리는 밤 시간대(밤 11시∼아침 7시)에 일을 하면서 그는 편의점 사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의 구멍가게 문화에 익숙했던 그에게 미국의 편의점 문화는 충격이었다.
편의점 유통구조가 궁금해졌고, 정식으로 세븐일레븐에 입사를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운'이 따라 줘 진급도 빨랐고, 점포 운영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런 그에게 세븐일레븐에서 메릴랜드주의 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5000평 규모의 점포를 운영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주택가나 상가, 비즈니스 빌딩가에만 들어섰던 세븐일레븐이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이 대형 직영점에서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무선통신 라디오로 밤샘 방송을 했다.
"지금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버튼을 눌렀다. 50초 후에 오면 가장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30분 전에 핫도그를 그릴에 넣었는데 지금 오면 딱 먹기 좋게 익었다”
등의 방송 멘트는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18개의 바퀴가 달린 트럭을 모는 운전수들은 이 방송을 듣고 속속 허허벌판에 마련된 편의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외로움과 싸우며 밤새 트럭을 모는 운전수에게 다정다감한 서비스를 하기 위해 여직원을 고용하고 그들과 함께 뜬눈으로 매장을 지켰다.
그의 열성 때문이었을까. 메릴랜드주의 세븐일레븐 매장은 그가 운영한 지 6개월만에 한 달 평균 2만5000잔 이상의 커피를 팔아치웠다.
덩치만 크고 실속은 없었던 이 점포는, 미국 전체 세븐일레븐은 물론 커피를 파는 모든 매장 가운데 가장 많은 커피를 파는 기록을 세웠다. 커피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그는 슈퍼바이저로서 점포의 효율적 경영에 대해 고민하고, 본사에 무수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세븐일레븐에서 만 9년을 근무하면서 그가 만들어낸 점포 운영 매뉴얼만도 강도 예방법(robber prevention program)을 포함해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븐일레븐은 회사 운영 매뉴얼 강화를 위해 매년 7000여 개 점포의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회사 운영 아이디어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이 중 우수 아이디어를 뽑아 본사 회장 부부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며 휴양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만 9년을 세븐일레븐에 근무했던 그가 그 여행에 동반한 횟수는 8번. 세븐일레븐의 '명물'로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전파하는 데 효과적인 '보여주기 마케팅'
1986년, 그는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3년간 체류할 계획으로 갔던 미국 땅에서 9년이나 늦게 귀향한 것이다.
그는 하드와 아이스케키가 빙과류의 전부였던 한국에 아이스크림을 전파할 계획이었다. '배스킨라빈스'가 한국 진출을 시작하면서 그를 찾았고, 그해 8월에 명동 1호점을 오픈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어른도 아이스크림을 길거리에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음식은 꼭 앉아서 먹어야 한다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에겐 힘겨운 싸움 상대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것.
“직원들에게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길거리를 활보하게 했어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소비자들에게 아이스크림도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다고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이러한 그의 보여주기 마케팅은 3년 동안 지속되었고, 1988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러한 직접 보여주기 마케팅은 그가 새로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 꼭 거치는 과정이다. 스타벅스에서도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은 당연하다.
“길거리에 다니시면서 제 손에 스타벅스 컵이 없는 사진을 찍어 오세요. 누구든 원하는 시간, 원하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겠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손엔 어김없이 8온스짜리 스타벅스 컵이 들려있다.
“저처럼 나이든 사람도 들고 다니면서 먹고 마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못할 게 뭐 있겠어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대중화될 즈음, AFC 파파이스 본사에서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시아 태평양 전체 시장에 '파파이스' 매장 여는 것을 주관해달라는 것이었다.
1994년, 그는 AFC 파파이스 미국 본사의 아시아 본부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타벅스라는 커피 브랜드를 만나고 나서 그는 고액 연봉과 세계적인 기업의 임원이라는 탄탄한 자리를 과감하게 떨쳤다.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던 1998년, 그는 애틀랜타 상공에 떠있는 비행기 안에서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라는 책을 읽었다.
슐츠의 경영이념과 인생철학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얼마 후, 한국에 들른 그는 스타벅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한국에서 스타벅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를 진두지휘할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불안감을 감수하며 한국 사람들한테는 낯설기만한 에스프레소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쉰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 더불어 사는 삶, 나눔의 미학이 만들어낸 향기 >
한국의 커피 역사는 100년을 넘어선다고 한다. 정 사장이 스타벅스를 한국에 들여오던 당시, 한국에는 꽤나 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있었지만 가격이나 맛에서 고객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고급 커피라고 해봐야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등이었고 그마저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객에게 다양한 종류의 고급 커피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스타벅스의 출현은 커피 마니아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1999년 7월 문을 연 스타벅스 이대점은 6개월 동안 교육장으로만 이용되었다. 장사 이전에 그가 가장 중요하게 고집하는 건 '교육'이다.
“사업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투자가 교육이에요. 그때 6개월 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한 파트너들은 현재 매장의 점장들이죠. 커피를 만들거나 점포를 운영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점장을 선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품성'입니다.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들을 뽑아놔야 매장에서 일하는 파트너들이나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편하죠.”
정 사장을 비롯해 스타벅스 직원들은 아침 8시 30분이면 트레이닝실로 모여든다. 그날 당번이 만든 커피를 마시고, 그의 설명과 콘셉트를 듣고, 맛을 평가한다.
새로운 메뉴 개발과 맛좋은 커피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른 날이 없다. 신입사원들도 시간당 급여를 올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4주 교육 프로그램 과정을 마치게 한다.
그의 경영이념은 한결같이 '더불어 살자'다. '파트너'라고 호칭하는 직원들, 파트타이머들까지 이익 배당과 스톡옵션을 챙겨주고, 회사의 이익 중 일정 부분을 떼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동병원에서 주관하는 불우아동 치료연구 개발비를 모금하는 모임에 정기적인 지원을 계획중이기도 하고, 회사 차원으로 보육원을 정해 두고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 사장이 자랑스러워하는 건 파트너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어려운 이웃들을 돌볼 때이다.
2001년 초, 그를 감동시켰던 사건(?)이 있었다. 미국 본사에서 스타벅스 사상 최단시간 흑자 달성과 모범적인 점포 운영으로 대상(president award)을 수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감동시켰던 것은 수상 자체가 아니었다. 상금 600만원을 파트너들에게 맡겼는데, 그 돈이 고아원의 컴퓨터실과 도서관 설립에 전액 기부된 사실이었다.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이러니 제가 우리 파트너들을 안 믿을 수가 있어요? 제가 할 일은 우리 파트너들을 행복하게 하는 거예요. 그들을 행복하게 하면 매장을 찾는 고객들도 행복해질 수 있거든요. 오너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그는 4000만원을 들여 연세대학원에 파트너들의 의견 수렴작업을 의뢰했다. 회사 자체 내에서 조사를 하면 진솔한 의견을 들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설레기까지 한다고.
<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 만드는 게 목표 >
'더불어 함께 하기.' 미국의 세븐일레븐에서 10년을 근무하면서, 그리고 배스킨라빈스와 파파이스, 스타벅스를 운영하면서 그가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기업이념이다.
정 사장은 가맹본부가 주체가 되어버린 우리 나라 프랜차이즈 사업 구조를 안타까워한다. 본부와 점주는 공동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하는 성공 파트너들이다.
미국에서는 운영 아이디어들이 가맹점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디어들을 본부에서 축적해 성공 비즈니스의 틀을 만든다.
“무슨 사업이든 성공하기 위한 원칙은 ‘고객 만족’입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1차 고객은 가맹점주죠. 본부가 가맹점을 보살피면 가맹점은 자연스럽게 제2의 고객을 보살피게 되거든요.”
스타벅스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는 정진구 사장. 그는 금년 말까지를 테스트 마켓 기간, 향후 3년을 제2의 도약기로 정하고 적극적인 점포 개발을 해나갈 계획이다.
그 첫 걸음으로 지난 5월부터 부산에 4개점, 부평과 광주광역시, 일산 화정 등 지방 시장 개척에 나섰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8개월간을 고생했지만 그는 지금도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오르고 바삐 뛰어 다닌다.
“제 목표는 스타벅스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지 만 5년이 되는 2004년까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되는 겁니다. 고객에게 세계 최고 품질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의지와 자부심만 있으면 못할 게 없어요.”
약간의 설탕을 넣은 드립 커피를 하루에도 5잔 이상 마신다는 그에게선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깊은 인생의 맛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