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식투자 수익률 4,650%… 전업투자자 이준수씨 ] **********************



'데이트레이더(Day Trader)’!! - 종목별로 하룻동안에 변동하는 주가차익을 좇아 수익률 극대화를 노리는 증시의 단타 매매자를 일컫는다.

주식 전업 투자자 이준수(李準秀ㆍ필명 새강자ㆍ사진)씨. 최근 대우증권 실전투자대회에서 500만원의 종잣돈으로 3개월 만에 2억3,000여만원의 벌며 4,65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그 역시 데이트레이더에 가까운 인물이다.

조직과 정보, 장세를 움직일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의 뒷받침도 없었다. 오직 타고난 감각과 근성, 노력과 집중력이 누구나 꿈꾸는 증시의 새로운 '대박 신화'로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눈이 서늘한 이 34세의 젊은 전업 투자자는 바로 그 '대박'을 꿈꾸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대박'의 욕망이야말로 투자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스타 탄생 그에게 4,650%라는 수익률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은 아니다. 2000년부터 그야말로 생사를 걸고 동대문 인근 단칸방의 PC모니터 앞에서 씨름해왔다.

스스로 '이제는 더 이상 깨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뒤, 지난해 가을부터 열린 동양ㆍ한화ㆍSK증권의 수익률 대회를 사실상 모두 석권했고, 그 저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이번 신화를 일구어낸 것이다.

스타 탄생이었다. 경이적인 수익률을 거둔 '투자왕'의 강연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강연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나락에 빠졌던 자신의 실패 사례를 들면서 주체할 수 없이 복받친 감정 때문에 흘러내린 굵은 눈물이었다.

무모한 도전 집안이 기울어 경북 봉화에서 초등학교만 마친 뒤, 곧바로 어머니와 단 둘이 상경해 동대문 인근 가방공장과 수족관, 슈퍼마켓을 전전하며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장사를 배웠다. 상인들이 돈을 모아서 이른바 '밭떼기'에 나서 수확기에 요술처럼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봤다.

이후 대구의 청과시장으로 '귀향'해 '밭떼기' 전문 브로커로 2년 여를 보낸 끝에 난생 처음으로 목돈 2억원을 모았다.

시장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씩 주식을 했다. 그저 매일 보유종목 주가를 신문에서 확인해보는 수준의 투자자였다. 한 3,000만원 정도 손실을 봤다. 아까웠다.

그런데 외환 위기가 터졌고, 주가가 끝없이 추락했다. '지금 사두면 돈이 되겠다'는 판단이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

무턱대고 가진 돈 1억원을 들고 증권사 지점을 찾아가 모 증권주 1억원 어치를 사달라고 했다.

그러자 창구 직원은 “증권 투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을 분산 보유하고 뜨는 종목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단타에 주력할 테니 운용을 맡겨보라고 했다.

첫날 2%, 둘쨋날 4%의 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보름 뒤에는 20%의 손실이 발생했고, 한 달 후에는 손실이 40%로 늘었다. 투자원금이 6,000만원 밖에 남지않았다.

원금을 빨리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1억원을 더 넣었으나 그마저도 까먹었다.

마침내 주가지수선물거래에 발을 담궜다. 한 달도 안돼 원금은 1,000만원대로 더욱 졸아들었다.

나락에서의 나날들 이씨는 “이 때부터 눈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과 친지들, 심지어는 사채까지 끌어모아 옵션에 손을 댔다.
모두 10억원 가까이 쏟아부었으나 결국 계좌에는 달랑 83만원만 남게 됐다.

자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수 억원의 돈을 맡긴 매형이 급전 5,000만원이 필요하니 계좌에서 빼달라고 했다. “내일 장이 열리면 빼주겠다”고 말한 뒤, 다음날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쳤다.

친지들은 그가 벌어놓은 돈을 빼돌렸다고 오해했다.

이후 이씨는 재기를 꿈꾸며 처음 장사를 배웠던 동대문 청과시장에서 1년간 막노동을 하며 다시 종잣돈 2,000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이번에도 그를 버렸다.

늦은 밤, '돈을 빼돌린 게 아니고, 다 잃어서 도망쳤다. 죄송하다'는 유서를 써놓고 술기운을 빌어 홍릉 근처 대로에서 달리는 차를 향해 뛰어 들었다.

친지들이 보상금이라도 챙길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고, 자동차 마저 뺑소니를 쳤다.

이제 다시 원점에서 스스로 부목을 대고 단칸방에 누워 한 달 여를 앓고 있는 동안 느닷없는 편안함이 깃들었다. “죽느니 툴툴 털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허허로운 심정이 들었다.

그 때부터 500개가 넘는 종목 파일을 만들고, 거래량과 재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평가 종목 가운데 거래량이 늘며 상승세가 시작되는 종목, 영업계약 등 재료가 떠오를 종목들을 찾고 거래했다. 마침 데이트레이딩이 증시의 유행처럼 번지는 상황이었다.

일이 술술 풀려갔다. 작년까지 그간에 빚진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그때부터 전반적으로 잃는 날보다 버는 날이 많은 양상이 됐다”며 “이제야 손익계산서는 7년 여 전 1억원을 쥐고 증권사를 찾았던 시점으로 돌아온 셈”이라고 말했다.

꿈.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통 '돈과의 씨름'에 바치는 사내의 꿈에 대해 이씨는 “언젠가는 제주도에 별장 하나 짓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며 탈출을 시사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아니, 증시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그저 아내와 11월에 세상에 나올 아이와 함께 굴곡없이 사는 작은 소망을 키워나갈 것”이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 흐름 순응, 철저한 손절매가 비결 >

* 80일 동안 주식투자 수익률 4천6백50% !!

대우증권이 지난 9일까지 12주 동안 연 'KML 실전투자대회'에서 이준수(34)씨가 기록한 성적표다. 이 기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11.8%)과 비교할 때 李씨의 수익률은 엄청난 것이다.

그는 5백만원의 예탁금으로 주식을 사기 시작해 대회가 끝나는 날 무려 2억3천여만원을 손에 쥐었다. 대우증권은 "역대 국내 실전투자대회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이라고 밝혔다.

1997년부터 전업 투자가로 나선 李씨는 "개인적인 느낌이나 취향보다는 시장 흐름에 가장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종목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며 "특히 거래량이 느는 종목에 투자하는 교과서적 매매기법을 쓴 것이 고수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李씨는 대회 초창기 반도체 장비업체인 신성이엔지와 최근 LCD로 사업분야를 넓힌 금호전기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렸다.

이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사망 이후 현대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급등했던 현대엘리베이터와 한국타이어 등에서 수익률을 높인 뒤 대주주들의 지분 경쟁이 벌어지면서 거래량이 급증했던 하나로통신과 이 회사를 인수하려했던 LG그룹의 지주회사 LG를 집중 공략했다.

李씨가 수익률을 높일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손절매. 그는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등은 예상했던 수익률이 나오지 않아 손해를 감수하면서 과감하게 처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회가 끝날 무렵 수익률이 4천9백%에 달했으나 욕심을 더 내는 바람에 이틀 만에 수익률이 4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李씨는 상금으로 받은 2천만원을 수재의연금으로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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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소설가 귀여니 ] **********************************



귀여니 '10대들이 바라는 것 잘 알죠'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이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와 그 후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성공하면서 충무로에서 인기 있는 인터넷소설의 영화화에 속도가 붙었다.

앞으로 개봉을 목표로 '내사랑 싸가지',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가 한창 촬영 중이거나 후반 작업에 들어간 상태고, '내 남자친구에게'는 내년에 촬영을 시작할 계획 아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내년에 찍을 이효리 주연의 '삼수생의 사랑 이야기'도 역시 인기 인터넷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인터넷 소설 열풍이라고 부를 만한 이 현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있다.

올해 18살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귀여니(본명 이윤세).

그가 쓴 인터넷 소설 4편 가운데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내 남자친구에게' 등 3편의 영화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 카페가 무려 4000개를 넘는다. 다음 카페에 공식적으로 마련된 '귀사모'(귀여니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만 80만명이 넘는 슈퍼스타다.

불규칙적이지만 영화 판권, 소설 인세 등으로 한달에 1억원 이상이 들어온다. 2년여 동안 20억 가량을 벌었다. 톱 연예인보다 몇 곱절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를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고2 때 여름 방학을 맞아 여가 시간에 뭘할까 고민하다 '유머나라'라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 삼아 올렸는데 조회수가 100에서 1000으로 다시 1만 단위로 점차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에 점차 고무됐다.

그 소설이 바로 킹카 지은성과 평범녀 한예원의 10대 사랑을 그린 '그 놈은 멋있었다'다.

보통 A4용지 1장 분량을 한편이라고 부르는데 하루에 3~4편 정도를 올렸고, 그해 겨울까지 130편을 띄웠다.
100편으로 완결했는데 팬들의 성화에 밀려 '번외편'으로 30편을 더 올렸다. 이를 보고 영화사에서 연락이 와 처음으로 영화 계약을 하게 됐다.

'귀여니'라는 필명은 남동생 여자친구의 아이디에서 따왔다. 언젠가 심심하던 터에 우연히 남동생의 인터넷 메일 아이디로 들어가 보다 여자친구의 아이디를 발견했다.

“마침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실명을 사용하기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부르기 쉽고 느낌이 좋아 이 아이디를 필명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기 비결은

귀여니는 자신의 인터넷 소설이 인기가 있는 이유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남자 캐릭터 때문에 여자 팬들이 매혹된단다. 실생활에서는 보기 힘든, 성격 좋고 외모도 완벽한 남자에게 팬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 놈은 멋있었다'의 지은성, '늑대의 유혹'의 정태성 등 순정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에 반한다.

인터넷 소설은 10대들이 주소비자층인데 그들의 탈출구를 제공한 것도 크게 주효했다.

공부하는 내용이 아니라 놀고 연애하는 내용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노래방, 오락실,PC방에서 노는 10대들의 일상에 팬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모티콘을 비롯해 10대들의 말을 그대로 쓰고 거친 욕도 여과없이 쓰는 게 또 매력이다.

완전한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대화체로 치고 받는 식의 글에 더욱 팬들은 환호했다. 무거운 문법이 아닌 쉽고 흥미 있는 대화에 끌린다.

중1 때부터 연애를 해 6명의 남자친구를 사귄 개인적 경험도 큰 영향을 미쳤다. 10대의 사랑이야기에 귀여니의 경험이 녹아있다. “사랑할 때의 설레는 감정이 사랑 이야기를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

귀여니는 인터넷 소설을 영화사들이 영화화하는 이유에 대해 “스토리가 튀니까 상업적이어서다”고 분석했다.

'그 놈은 멋있었다'에서 여자 주인공 한예원이 학교 담장을 뛰어넘다가 여자 손도 잡기를 싫어하는 킹카 지은성의 입술을 덮친다거나, 지은성의 학교에 찾아간 한예원이 남학생들이 모두 학교 철조망을 향해 걸어오는데 정작 철조망에 손가락이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에피소드가 일반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상큼한 내용이다.

인터넷 소설은 인터넷에서 이미 검증을 거쳤다는 점에서 영화 제작자에겐 대단히 매력적이다.

조회수와 답글의 열광적인 반응 만큼이나 재미가 없는 경우에는 네티즌들이 냉정하게 외면한다. 위험 부담이 그만큼 적다는 점에서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 붐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귀여니 프로필

●본명: 이윤세

●혈액형: AB형

●키 : 163㎝

●출신학교: 경기도 용인의 수지 토월초등학교-수지중학교-충북 제천여고

●사는 곳: 경기도 용인시

●인터넷 소설 작품: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내 남자친구에게’

●소설 판매량: ‘그 놈은 멋있었다’‘늑대의 유혹’‘도레미파솔라시도’ 등 3권이 출간돼 총 90만부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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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수서 법학교수 - 인생유전 ]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7년간 복역하다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백태웅(白泰雄·41)씨가 지난 2일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법학과 조교수로 임용돼 강의를 시작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시 '대자보(大字報) 문화'를 착근시킨 운동권의 이론가였던 그는 시인 박노해씨를 의식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24일(한국시간)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사무실 1층에서 기자와 만난 백교수는 “북미지역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아시아 인권법'에 대해 강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내년 미국 인디애나주 노틀담대 로스쿨에서 '아시아 지역 인권기구 전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백교수는 지난해 하버드대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아시아지역의 인권문제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의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에서 아시아지역 담당국장으로 일하며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직 미국에서 캐나다로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아 그의 사무실에는 텅 빈 책꽂이와 개인용 책상, 전화기만 놓여 있어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사무실 분위기와는 달리 백교수는 강의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 처음으로 개설된 백교수의 '아시아 인권법' 강의에는 당초 70여명이 수강신청을 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처음으로 개설된 과목이어서 20명 남짓 수강신청을 하면 많이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내실있는 강의를 위해 수강생을 40명으로 제한했지요”

백교수는 내년 1월초부터 시작되는 2학기에는 역시 이 대학에서 처음으로 개설되는 '한국법' 강의도 맡을 예정이다.

“한때 한국법을 어기고 감옥생활을 했던 사람이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법 강의를 하게 된 셈이지요. 이 강의에서는 한국법의 제정배경과 법체계에 대해 가르칠 계획입니다”


앞으로 총선 출마 예상자(부산진갑)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과 관련,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면 지금쯤 한국으로 돌아가 '표밭갈이'에 열중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흘린 얘기'일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백교수는 또 '사노맹의 사상적 동지'였던 박노해 시인과 자주 연락을 취하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교수는 “현재 하버드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 박시인의 '노동의 새벽' 등과 같은 시집을 번역 중”이라며 “늦어도 내년초에는 박시인의 영문판 시집이 출간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사노맹 비서실장 출신으로 백교수와 함께 검거돼 3년간 복역하다 풀려난 부인 전경희씨(41)는 지난해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지난 7월말에는 첫 아이를 출산했다.

백교수는 “빅토르 위고가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고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억압된 현실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한국사회가 보다 진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운동가에서 교수로 변신한 그의 발걸음은 이제 노동해방을 넘어 인간해방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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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개 언어 터득…'언어의 천재' 도리언 프린스 ] ************************



<'17번째 언어 한국어' 도전하는 주한EU대표부 대사>

16개 언어를 터득하고 17번째로 한국어에 도전하고 있는 외국인이 있다. 바벨탑 다시 쌓기에 나서 17층을 얹기 시작한 이 사람은 도리언 프린스(Prince·49)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


영국 웨일스 출신인 프린스 대사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숫자는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고향 말인 웨일스어(語)와 모국어인 영어부터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중국어, 터키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라틴어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순간 변환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어, 지난해 9월 한국에 부임한 후 배우기 시작한 한국어까지 포함하면 그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19개에 달한다.

프린스 대사의 외국어 구사능력은 인사말이나 간단한 회화 정도가 아니다. 고유의 속담이나 은어(隱語)를 곁들이고 은유적 표현을 덧붙이는가 하면 해당 외국어 시어(詩語)의 함축된 의미까지 속속들이 이해한다.

왜 그렇게 많은 외국어를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웨일스의 격언 하나를 소개했다. “언어가 없는 국가는 영혼이 없는 국가다.”

수많은 문화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진정한 속내를 이해하고 싶어 외국어를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벨탑을 더 높이 쌓아 그 위에서 더 멀리 더 넓게 세상을 바라다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자신의 경우는 다국어를 하게 된 데 좀 독특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직물·화학·비철금속 관련 기업에서 일하다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발을 들인 것이 1981년. 23년째 15개 회원국을 가진 EU에서 일하면서 11개의 공식 언어를 접하다 보니 귀가 트이고 말문이 열리는 데 도움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빨리 터득할 수 있는 비법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다만 한 가지 황금률은 있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할 때, 그것도 배우는 단계에서 실수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니까요.”

실수에 대해 절대 긴장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충고였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프린스 대사는 똑똑한 사람일수록 실수를 두려워한다고 지적, 체면을 차리려다 보면 외국어 공부는 마냥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수학(修學)한 그가 한 번은 소르본느에서 불어로 강연을 하다가 망언(妄言)에 가까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전문성을 일컬으면서 영어 ‘professional’에 대응되는 ‘professionnelle’라는 단어를 썼는데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자국의 여왕을 ‘직업여성’, 즉 매춘부라고 부른 꼴이 됐기 때문이다. ‘불어의 달인’도 실수를 한 것이다.

2년 전 중국을 여행하던 중 겪은 실수담. 작은 마을 기차역에 내려 한 키 작은 할머니에게 중국어로 가까운 절에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노인네가 대답은 않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중국어의 4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전혀 엉뚱한 뜻이 되면서 그의 말은 ‘개그’가 되고 말았던 것.

프린스 대사는 핀란드, 일본, 인도 등 극히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곤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을 겪지 않는다.

“외국어 하나를 익히면 그 언어를 쓰는 지구촌 사람들 모두와 사귄 기분이 든다”고 그는 말한다.

중국어를 공부해 13억명을 더 이해하게 됐고, 스페인어를 익혀 3억명, 아랍어로 2억명, 러시아어로 1억6000만명 등 지구촌 60억 인구 거의 모두를 친구 삼아가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고 자랑한다.

“글쎄, 내 나름의 방법이 있기는 한데….”
비법은 없다고 했던 그가 한마디 토를 단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배우고자 하는 외국어의 녹음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를 잠잘 때까지 틀어놓는다고 한다.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딴 일을 해도 소리는 계속 들리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억양이나 말투가 익혀진다”는 것이 프린스 대사의 지론.

“한국말이요? 날마다 공부하고 있어요. 매일 들어요.”

한국어의 어순이나 문법 구조가 터키어와 대단히 비슷하다면서, 한국어는 논리적인 언어이고 모음이 많아 노래하기 좋은 말이기 때문에 금방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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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리지 않는 학습만화 고집하다 '대박' ] ***************************



2000년 11월 제1권 '올림푸스의 신들'이 나온 이래 현재까지 400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 작품 덕분에 유치원생·초등학생들은 그리스 신(神)들의 계보를 줄줄 꿰고 다닌다.
이 작품의 산실이 부산 영도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부산토박이 홍은영 (洪恩英·38)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2월 제15권 출간을 앞두고 있는 홍씨는 '대박'의 비결을 “컬러·구도 등을 영상과 이미지에 민감한 요즘 아이들 눈높이에 철저히 맞췄다”며 “우리 사회의 ‘신화 열풍’ 영향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태어난 홍씨는 1984년 고신대 기독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 못해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로 나섰다.

그는 “그냥 만화가 좋았다”면서 “어릴 때부터 아톰·하록선장 같은 만화 주인공을 베껴 그리면 친구들이 달라고 조르곤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1986년 만화계에 순정모험 만화 ‘은세계 대지’로 정식으로 입문했지만 ‘배고픈’ 무명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는 “출판사에서 ‘일본풍을 베껴달라’ ‘좀더 자극적으로 그려달라’는 등 요구가 많았지만 제 아이들에게 맘놓고 보여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잘 팔리지 않는 학습만화에 매진했다.

1997년 홍씨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주목했다. 세기말 분위기 속에 ‘신화’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마음이 끌렸다.

작품 구상에 들어갔을 때는 변변한 참고 서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국내에 출간된 아동용 동화책부터 성인용 교양 서적까지 10여권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홍씨는 “당시에 마침 '신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롯한 신화 서적들이 쏟아져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작품과 캐릭터 구상이 어느 정도 다듬어졌을 때 마침 한 출판사로부터 신화 만화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 복잡한 신화 각색은 출판사측에서 맡았다.

그에게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딸이 있지만 늘 문하생들이 먼저다. 홍씨는 “문하생들과 늘 전쟁 치르듯 새벽 3~4시까지 작업하다 보니 아이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큰 셈”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만화가로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만화가들이 자신의 캐릭터들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 적이 없다”며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도 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올바로 알리고 싶다”며 캐릭터 사업 진출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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