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컨설팅 그룹 회장 강석진 대표는
GE를 국내에 토착화시킨 일등공신으로서, 외국 기업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CEO이다.
한국 기업에 투명성 제고 등 선진기업의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데 기여한 선두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GE에서 CEO로 22년간 재직한 경우는 잭 웰치 회장과 그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장수근무 경력을 자랑한다. 1981년 매출액 260억 원이던 중소기업을 20년 만인 2002년에 매출 4조원, 1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다. 2002년 퇴직 후, 현재는 중소기업과 벤처 CEO를 지원하는 CEO컨설팅 회장직을 맡고 있다. GE 재직시절에도 1년에 20일은 스케치 여행을 다녔다는 그는 취미 수준을 넘어선 프로 서양화가로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서울종합과학대학원, 서강대학원 경영대학원 등에서 강의도 하는 쓰리잡스 CEO이다.


 

● Part 1 : 성공한 직장인과 개인적으로도 풍요로운 삶,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후배들이 우리 국토에 한정하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주역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지 않습니까. 바로 한국의 미래는 청년세대의 원대한 꿈에 달려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와 잭 웰치의 여러 공통점을 뽑아 비교하더군요. 우선 GE에서 20년간 근무한 장수 CEO라는 점, 입사와 퇴직 시기가 비슷한 점 등등 말이죠. 하긴 그도 시골학교를 겨우 면한 매사추세츠대학교 출신이고 나 역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우리 고향에서 한 발짝 벗어나보지 못한 시골 출신이지요. 그런 내가 일반인은 비행기를 타기도 어려웠던 70년대 초반부터 5대양 6대 주를 누비며 지구가 좁다고 돌아다니고, KS표(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의미)가 떨치고 있는 전문 경영인들 사이에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모심고 보리밭에서 일하던 시절, 취업이 잘된다고 약학과를 덜렁 선택했다가 도저히 적응이 안 되어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꾼 대학 시절, 서투른 영어로 공항에 내려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던 신입사원 시절 등의 추억을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난 삶을 행복하게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개인적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살아온 분에 넘치는 행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Part 2 :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


어떤 일이든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은 흘러가면 다시 올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매 순간 정성을 다하십시오. MOT(Moment of truth : 진실의 순간)란 말처럼요. 투우사가 일거에 소의 급소를 공격해야 승부에서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작살을 꽂으려 미루면 소에게 주도권을 뺏겨 쫓기게 되듯이 순간순간에 충실하지 않으면 인생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지요.
지금 이곳이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매 순간 열정을 쏟아 부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지금 맡은 일을 잘하면 신뢰를 얻게 되고, 그러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대학 때 나는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입주과외를 했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됐는지 아십니까. 약속을 잘 지키고,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 학생의 부모에게 강한 인상을 줘 취업으로까지 연결됐습니다. 덕분에 졸업하기가 무섭게 입사지원서 낼 필요도 없이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지요.
또 다른 입주과외 가정에서는 당시 한국 최대 무역회사 사장이었던 학부모와 그곳을 방문하는 기업의 임원들을 자연스레 접하며 경영의 현장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요. 이와 같은 경험이 무역과 경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입니다.

목표를 높게 세운 청년일수록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 현재의 과정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저 멀리 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소한 일도 잘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십시오. 현재 맡은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의미 있는 일을 맡으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 것은 잘못 세워진 가정입니다.
도대체 인생에서 의미 없는 것과 의미 있는 것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장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서 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딛고 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맞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는 의미 없는 과정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십시오. 그렇게 순간을 충실하게 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큰 과업을 맡게 되고, 큰 과업을 성취해낼 힘이 생긴답니다. 자신과 일에 대한 자신감은 크고 위대한 일을 맡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일을 100퍼센트 해냈을 때 저절로 솟아나는 것입니다.


 

   ● Part 3 :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길러라


우리나라 사람이 취약한 분야가 팀워크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이익추구에서 벗어나 윈윈전략을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예스맨보다는 뛰어나고 창조적이며 자신의 주장이 확실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GE가 최고기업을 유지하고 조직원이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비결도 바로 그와 같은 격의 없는 토론과 장벽 없는 분위기 때문이지요.
나는 잭 웰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경영 회의에서 별도의 회장 석을 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아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임직원에게 강조한 것은 잭 웰치 회장의 주장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확실히 갖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십시오. 조직 문화에서 가장 필요하고 힘든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문제는 단번에 바꾸려고 하다가 오히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설득하는 인내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령 내가 한국을 장기적 동반자로 하는 3단계 GE 사업구축 전략을 한국 정부와 GE 본사 양측에 설득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아십니까. 난색을 표하는 양측을 이해시키고 파트너 관계가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1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 결과 잭 웰치 전 회장의 재직시절, 전 세계 GE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화 회의에서 “한국을 글로벌화 전략 모델로 채택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GE의 한국진출은 선진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세계화를 목표로 현지 국가와 동반자 정신으로 진출하자는 전략이 먹힌 것이지요.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사고방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어서랍니다.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호공존, 공동의식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업무성과뿐 아니라 가치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게 최근 세계적 인재선발의 기준이랍니다. 앞으로 국내 기업에도 이와 같은 기준이 확산 될 것입니다. 결국 가치관이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팀 전체의 협동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점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혼자만의 실적을 쌓으려는 독불장군 형 인재보다는 팀의 협력으로 성과를 낳으려는 협동 형 인재가 높이 평가 받는 기업문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한 주장을 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요.


 

 ● Part 4 :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
정말 살면 살수록 인생은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세요. 어떤 일이든 맡은 일을 좋아하고 즐기며, 모든 열정을 쏟으십시오.

내 어렸을 때 꿈은 시인, 화가, 과학자였습니다. 정작 경영자라는 꿈은 사회에 나와서 결정된 것이랍니다. 경영자로서 서양화가라는 꿈을 이룬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지요. GE 재직 시절에도 아침엔 회사로,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엔 화실로 두 번 출근하며 화가로서의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내 나름의 취미 생활을 가지니 그것이 오히려 경영에 +a로 작용하더군요.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입니다. 혹시 하고 싶은 두 가지의 일이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고 해서 한 가지는 못하겠거니 하고 지레 포기하지 마십시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같이 할 수 있고,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니까요.
내 경우 낮엔 집중적으로 경영에 몰두하고, 밤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업무 에너지가 충전되더군요. 오히려 반대되는 일이 보완되는 점이 많다고나 할까요.
깊이 파보면 예술과 경영은 서로 공통점이 많답니다. 모든 사물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즉 창의력이 첫 번째 공통점이고, 두 번째는 미술이나 경영모두 집중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치열한 프로 정신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재와 지식경영을 하는 현대의 성공 학 경영인들은 모두 훌륭한 종합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 두세 개를 동시에 하며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 Part 5 : 한 우물을 파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후배들에게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한 우물을 파라’는 것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쪽으로 주저 없이 옮겨야겠지요.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한 업체에서 길게 근무하십시오. 이는 아무리 시대 트렌트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철칙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혹시 취업한 곳이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어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 옮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냐, 아니냐 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회사는 성과를 인정하게 되어 있고, 연봉과 보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답니다. 몸값에 따라 일을 하지 말고, 내 역량에 따라 몸값이 따라올 것을 믿고 일하십시오. 내 이야기 하나 더 할까요. 역시 GE에 다닐 때 이야기 입니다. 세계 최대 헤드헌터사가 GE의 두 배 연봉을 준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갈등이 일더군요. 결국 사인까지 했는데 회사 측으로부터 “아무리 두 배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다. GE가 믿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1주일간 고민하다 결국 주저앉았습니다. 대기업 취업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경영자로 크고 싶다면 오히려 알짜 중소기업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인생 선비로서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여러 분야를 단기간에 겪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역 분야 베테랑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취직한 직장에서 외국 바이어 만나고 수출 주문, 원자재 수입 등의 모든 업무를 서너 명의 인원이 모두 맡아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업무는 벅찼지만 단기간에 많은 일을 내 책임하에 진행하면서 경영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지요. 만일 내가 대기업에서 일했다면 도저히 이 같은 경험을 해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 세대의 선택에 따라 향후 몇 세기 동안 한국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부디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갖고, 눈을 크게 뜨고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 힘차게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며 행복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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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한인회 신우승 회장님은..

1944년에 태어나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명문 리즈대학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재영과학기술자협회KSEAUK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영국 정부와 유럽 최고 과학연구소 등에서 20여 년간 연구에 몰두했다.

1988년 국제 엔지니어링 컨설팅 주식회사를 설립, 경영자문을 하면서 로열빅토리아 호텔, 밴팅크 하우스 등을 영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재영교민 상공인협의회 부의장, 재영한인회장으로 일하면서 영국 내 한인교포들의 지위 향상과 유대 강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영국 내 한인유학생과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와의 정보교류에 앞장서는 등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 Part 1 : 자신을 차별화하라.


한국 뉴스를 통해 고국의 젊은이들이 안정성을 좇아 고시와 의대로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국가적 낭비고,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상 당연히 조만간 그 한계가 오리라고 봅니다.

 

이공계가 국내에선 찬밥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영국에선 전문분야를 떠나 논리적 마인드를 가졌다는 점에서 전방위 진출이 가능하지요.

 

나는 한국도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인기직종에 몰리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래야겠죠. 현재의 인기직종이 10년 후에도 인기가 있으리라는 걸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판에 박은 국화빵식 사고로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없습니다. 무리와 차별되어야지 같은 사고를 해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영국 속담에 ‘Horses for courses(코스에 따라 말 종류도 선택을 달리 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주용과 사냥용 말이 따로 있듯 사람도 각자 자기의 특기 분야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무엇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최고가 되면 됩니다. 능력과 적성에 안 맞는데 우격다짐으로 주위의 강요에 따리 진로를 선택하면, 설사 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최고에 오르기는 힘듭니다.
내 영국 친구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런던대학교 스킬랜드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들은 인쇄공이 되길 원했지요.

 

대학교수 체면에 아들이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인쇄공을 하겠다니 아마도 한국에선 통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적성에 안 맞는데 대학에 들어가봤자 공부 따라가기도, 그렇다고 즐기기도 힘들 것이라고 항변을 하더랍니다.

그래도 인쇄공 생활은 10년 동안 열정 바쳐서 일하면 십장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요. 결국 그 아들은 인쇄공이 됐고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겠지만 행복은 이처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매혹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필수겠지요.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소개할까요. 역시 내가 아는 교수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 교수는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자신이 그 과목에 매혹된 나머지 아들에게도 전공을 강요했지요. 아들은 화학을 싫어했지만 억지로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답니다.

그러더니 대학졸업 만찬 자리에서 “이제 아버지 소원 다 들어줬으니 다른 학과 전공하겠다.”고 폭탄 선언한 후, 언론광고 학을 전공했답니다.

나는 영국에 유학 온 1세대로서 당연히 고생이 많았습니다. 일단 외모에서 그들과 다르다 보니 늘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현미경 속의 실험대상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띄었지요.

하지만 그와 같은 일에 걱정을 하고 인종차별에 불평할 시간에 연구를 하나 더 하자는 생각으로 학업에 매달렸지요. 만일 내가 화학에 매혹되지 않았던들 그런 뒷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소신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십시오. 매혹적 선택은 신생의 고비고비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줍니다.

반면에 남들이 모두 추구하는 가치에만 매달리면 스스로가 먼저 지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을 사는데 모두가 꼭 KS마크가 찍힌 여정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이 매혹되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 Part 2 : 여행을 많이 하라.

 

나는 독립심과 견문을 넓히기 위해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많이 할 것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외취업 등 한국인이 더 많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배낭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세상 경험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자신만의 성공전략도 수립됩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유학도 다다익선이라고 봅니다.

어떤 분은 외화유출과 일부 유학생들의 탈선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문제고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역생활을 하면 적어도 하나는 반드시 배운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독립심이 길러짐은 물론이고요.


지구촌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젊어서부터 세계 문화를 접하면 견문이 넓어지고,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모의 덕만 보는 삶을 영국식 표현으로 샴페인식 라이프라고 하는데 당당히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나 눈을 크게 뜨고 보십시오.

국내의 취업난을 탓하지만 말고 해외취업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십시오. 국내에서 20-30대 청년 이민으로 인한 고급인력 유출을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전 세계 각국에 퍼져 조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 면에서 조국과 선진기술 정보를 연결하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의 화상華商만 보더라도 그 역할이 얼마나 큰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학 실력과 전문가적 소양을 길러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해보십시오.

그것이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의 진로를 열어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 Part 3 : 뿌리의식을 가져라


뿌리의식이 앞의 글로벌 청년이 되라는 것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이 바로 뿌리의식이랍니다.

 

요즘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국적은 단지 패션fashion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면서요.

하지만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젊을 때는 모리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면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살아온 과정을 지우개로 지우고, 어디서 자기가 비롯됐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삶이지요.

미국에 있는 흑인들을 보십시오. 미국에 정착한 지 400-500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자기 뿌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재영한인들에게 한국 문화와 얼을 심어주기 위해 한국학교 교장을 하고, 남들은 주말에 골프 치러 갈 때 휴가 기간에까지 한국학교에 정열을 바치며 애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세계화 시대인 만큼 어디에서든 둥지를 틀고, 또 해외진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고 살면서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필요하다는 게 내가 30년 이국생활을 하며 느낀 결론이랍니다. 조국에 살아 오히려 못 느끼겠지만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것 못지 않게 우리 교유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 Part 4 : 실패는 과학적으로 분석하라


나는 과학자입니다. 새삼 왜 강조하냐고요? 삶의 프로세스도 일종의 실험과 같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앞의 이야기가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지금 하는 이야기는 성공의 보편적 조건이라 할 수 있지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어려서부터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저절로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고, 또 반대로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즉 실패의 요인은 무엇인지를 분석해내야 의미를 갖지요.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그 부분을 고치기만 하면 되니까요.

 

가령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다 길에 바위가 가로막고 있으면 힘들다고 포기한 채 내려옵니다. 실패 경험만 남긴 채 다시는 시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돌아가서 달리 오를 길은 없나 궁리하지요. 그로선 실패 경험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을 또 하나의 경우의 수를 익힌 셈이니까요. 후회하기보다는 과거의 선택을 바탕으로 늘 최선의 결과를 모색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에디슨의 이야기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나폴레온 힐이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에디슨 선생님, 전구를 발명하려고 수천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전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수천 가지 이유를 잇달아 발견한 것이지요.”라고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성공경험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수천 번의 실패를 통해 깨달은 귀중한 성공비결일지라도, 시간과 단계에 따라 적용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건데 많은 사람이 과거의 성공경험에 매달려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결정을 하길 꺼려 문제가 발생합니다.

산을 오를 때의 이야기로 비유해볼까요. 산을 오르는 전략수립은 평지, 낮은 뒷산, 높은 고산 등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높은 히말라야를 오르는데 동네 뒷산에 오른 방법만 고집하면 어떻겠습니까.

과거 경험의 덫에 갇히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를 끊임없이 리노베이션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와 관점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의사결정자가 되십시오.


좋은 게 좋다고 스스로를 두루뭉술하게 판단하지 말고 칼날같이 예리하게 자신의 실패와 성공비결을 갈고 닦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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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선정 최고 영향력있는 여성 순위에서 3위에 오른 '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 독서 열풍 일으킨 주역이다.

 

윈프리는 흑인 빈민가 출신.

 

14세에 임신을 하고 20대에 마약을 하며 방황을 하면서 자칫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지만 고난을 극복하는 흑인여성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성공한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자신이 책 덕분에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던 만큼 자신의 토크쇼와 잡지 등을 통해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책의 전도사로 나섰다.





책은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역사속에서 굵은 획을 남긴 유명인들은 이같은 책의 위력을 일찌감치 활용한 사람들이다.


유럽을 평정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말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나폴레옹이 야심만만한 전쟁광이 아닌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대문호 괴테와 음악가 베토벤을 매료시켰을 정도로 빼어난 학식과 교양, 예술적 감각 때문이었다.

 

그는 1789년 감행한 이집트 원정에는 실패했지만 원정에 동행한 학술조사단과 함께 이집트 상형문자의 열쇠가 담긴 로제타석을 발굴하고 세계 시민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친 나폴레옹 법전을 남기는 등 인류문화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가 52년 평생동안 읽은 책은 8000여권. 이동도서관의 원조로서 전쟁 터까지 책을 챙겼던 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는 현대 미국 대통령의 공통점은 모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책과 가까이 한 어머니들의 열성 덕에 책을 통해 미국을 이끌어갈 역량을 일찍이 키울 수 있었다.

 

특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다독으로 습득한 속독 습관으로 다른 대통령 들과 달리 요약본 없이 두툼한 보고서를 몽땅 읽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21세기형 영웅으로 떠오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바쁜 일과 중에서도 매일 밤 한 시간씩, 주말에는 두 세시간씩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출장 때마다 책을 꼭 챙긴다.

 

게이츠 회장은 "책은 쓸모도 있지만 애착도 느끼게 해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97년 게이츠도서관 재단을 설립했고 당시 연방정부외에 단일 기부자로는 최고 액을 기부했다.



국내에서도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과 안철수 안철수 바이러스연 구소 대표,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도 소문난 다독가로 꼽힌다.

성공한 경영인들이 고전이나 문학 등 인문학 전공자가 많았다는 사실도 독서로 쌓는 인문학적 교양과 창조력이 경영의 핵심역량임을 보여준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한 칼리 피오리나도 인문학적 역량을 경영에 활용하는 모범 사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튼이나 발명왕 토 머스 에디슨 등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을 받았지만 꾸준한 독서가 없었으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책읽기였다"고 술회했다.

 

처칠 수상은 철학 경제 정치학 등 고전독서를 통해 훗날 격조높은 문장 과 연설문을 남겼고 '세계의 위기' '제2차 세계대전'등을 저술해 정치인 으로는 극히 드물게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서를 통해 만나는 무한한 자유의 세계는 창의력과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의 본산인 헐리우드에도 열렬한 독서광들이 많다.

'타이타닉'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나 '다이하드'나 '클리프행어 '등을 연출한 레니 할린 감독 등 최고의 흥행감독 등 영상문화를 주도하 고 있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을 뿐 아니라 현역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독서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이뿐 아니라 '벤허'의 배우 찰턴 헤스턴은 모든 출연작의 원작을 섭렵해 인물을 파악하고 나서야 연기에 나섰고 촬영장에서도 책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트루라이즈'로 유명한 여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는 책벌레로도 모자라 직접 서너권의 동화책을 출간했을 정도다.

아무리 말을 해도 지나치지 않는 독서에 대한 강조...

 

그렇지만 정작 독서의 중요성을 참실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성공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있는데 세미나 참석과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독서는 인생에 대한 조명도 될 수 있고, 계획도 될 수 있다. 그러한 독서를 게을리 또는 하지 않고서는 무언가 이루려는 계획이나 꿈 또한 힘든 몽상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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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칼국수가 세계로 나갑니다”


‘시도하지 않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1967년 ‘6일전쟁'의 영웅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의 명언이지만 (주)한미프랜 유명상 대표이사의 철학이기도 하다.
 
(주)한미프랜하면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명동칼국수’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미프랜은 ‘명동칼국수’ 상표권을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본점명. 올해로 가맹점은 100개의 체인을 확보했고 자체 물류 시스템도 갖춘 내실 있는 업체다.

 
유 대표가 과거 동창회에 나가서 명함을 교환할 때면 “그냥 칼국수 장사한다”고 소개하면 넘어갔다. 그런데 이젠 동기동창에게 입소문이 완전히 퍼졌다.
 
친구들이 정년을 앞두고 창업을 생각할 나이인 때라서 더욱 그렇다. 최근 부쩍 친구들로부터 “나도 명동칼국수집 한 번 해보고 싶은데…”라는 상담이 늘었다.


 
 


 
창업 상담 갔다가 본부장 전격 발탁

유명상 대표가 한미프랜의 CEO를 맡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원래 유대표는 충남방적 무역부 직원을 거쳐 대일화학공업, 태아산업에서 기획 경리일에 잔뼈 굵은 관리 통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주판을 손에 잡고 살았는데 묘하게도 상업고를 졸업하고 대학도 상대를 나왔어요. 물론 직장도 마찬가지고요”

그가 1996년 한미프랜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이채롭다. ‘칼국수 집이나 내보자’하는 생각에 찾아갔던 명동칼국수 본점에서 상담 중 그의 능력을 꿰뚫어 본 회사 측이 바로 본부장으로 전격 채용했다.
 
때마침 한미프랜은 오랜 기간 끝에 ‘명동칼국수’의 상표 등록 허가를 특허청으로부터 받아낸 시점이었다.

유 대표는 곧바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했다. 전국에 100곳 넘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던 미등록 명동칼국수 간판은 내용증명을 보내 정리했다.
그 와중에 몇몇 업소는 가맹점으로 끌어들였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가짜 명동칼국수집을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진짜 명동칼국수의 명성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개발하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죠. 명동칼국수의 원조 본점은 서울 종로구 종로서적 뒤편이었어요.
1972년부터 대통령은 무수히 바뀌었지만 명동칼국수는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미프랜의 자랑입니다”라고 유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또 품질 경영을 내세웠다.

“명동칼국수는 34년 동안 한결같이 김치 한 품목으로 승부를 벌여왔어요. 많은 업종에서 가격파괴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노하우는 품질에 있어요.”

칼국수는 60년대 배고픈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칼국수 한 끼는 배고픈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서글품과 같다. 사리와 공기밥은 무료다.
 
남는 게 없다는 이유로 일부 칼국수 집은 공기밥 추가시 돈을 받았지만 명동칼국수 만큼은 공기밥 추가 제공이 무료라는 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또 밥이 고정적인 메뉴라면 면은 새참, 간식, 외식거리의 별미 메뉴다. 다른 음식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각각 몰리는 시간대가 한정되어 있지만 칼국수는 끼니를 넘겨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회전율이 높다.
 
또 다른 명동칼국수의 장점 중 하나가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한다는 점이다. 냉면처럼 계절을 타지도 않는다.
가맹점 문의로 찾아오는 예비 점주와 상담을 하다보면 직접 칼국수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담도 부드러워지고 성사율도 높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상담 손님과 직접 칼국수를 먹으며 상담하길 좋아한다.

“점심과 저녁 사이 동안 6그릇을 먹을 때도 있었죠. 다행히 상담은 모두 잘 끝났어요. 칼국수를 워낙에 좋아하니까 가능한일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하루에 한 끼는 칼국수로 해결한다. 명동칼국수 창업은 상권만 잘 확보하면 워낙 브랜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그다지 손해 볼 이유가 없다.

“광우병도 조류독감도, 돼지콜레라도 피해갈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불황에도 잘 되는 아이템이구요”

가맹점 창업 후 폐업률은 2~3%안팎이다. 폐업률이 0%는 아니지만 다른 업종과 비교해서 매우 안정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 대표에게 한 가지 고민꺼리가 생겼다. 칼국수 집은 남들처럼 고생은 똑같이 하지만 칼국수만 팔아서 얼마나 남겠느냐는 상담 손님의 걱정이 그것이다.


간판 바꿔 저녁 매출 상승

원래 명동칼국수의 메뉴에는 보쌈과 샤브샤브가 있다. ‘원할머니보쌈’ ‘놀부보쌈’보다 먼저 생겼다.
 
맛도 좋다. 그런데 워낙 칼국수에 치중되어 있던 상황. 칼국수 외에 저녁 술 손님을 끌어들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그는 과감하게 간판 명을 ‘명동칼국수 보쌈 샤브샤브’로 바꾸는 시도를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 과거에 점심 매출과 저녁 매출이 60대 40이었다면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전체 매출 중 점심 매출이 40%로 줄고 저녁 매출이 60%로 증가했다.

명동칼국수는 부자 동네에서도 성공하는 아이템이다. 서울 강남의 명동칼국수 도곡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곡점은 타워팰리스가 옆에 위치한 부유촌으로 유명하다.
 
명동칼국수 도곡점주는 30평으로 시작해 7년 만에 10억을 벌고 인근 100평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민의 식단으로만 인식된 칼국수가 부유촌에서 먹힌 것이다. 부자들이 소박한 음식을 찾는 면도 없지 않지만
 
높은 품질에서 승부를 봤다는 것이 도곡점의 성공 포인트이다.

작년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산 김치에서 회충 알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온 후 그 김치를 사용한 업체 중 명동칼국수가 언론에 거론됐다.
 
유 대표가 다급히 확인해본 결과 문제의 진원지는 명동칼국수와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곳이었다. 대구의 명동식품에서 운영하는 ‘명동명칼국수’로 밝혀졌다.

명동칼국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슷한 업체명이지만 식약청에서 잘못 발표하여 명동칼국수로 오해를 받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이에 유 대표는 언론에 반박 기사를 내면서 즉각 대응하여 불을 껐다. 그리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명동칼국수는 국내산 김치를 사용하고 품질이 뛰어남’을 역으로 강조했다.

그는 회사가 높은 성장률을 보이자 해외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먼저 중국에 3개 점포를 오픈했다.
 
한국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천진, 베이징, 연변엔 이미 한국 손님이 80% 나머지 20%는 중국손님이 찾아오고 있다.
 
곧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에도 진출한다. 미국 동부 쪽에 사는 교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식단으로 기대가 높다.

이와 동시에 일본에서도 신주쿠에 오픈을 희망하는 사람과 계약을 진행 중이다. 물가 높은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본다면 역시 해볼 만한 장사인 셈이다.

유대표의 성공 창업에 대한 신념은 남다른 면이 있다. 오죽하면 유대표의 외아들(28)도 명동칼국수 부평점의 가맹점주다. 아버지는 프랜차이즈 본사 CEO, 아들은 가맹점주인 셈이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아들에게 선뜻 가맹점 운영을 허락한 것이다.

명동칼국수를 창업하는데 30평 기준 약 1억5천~2억원이 소요된다. 물론 입지 선정에 있어서는 본사 측에서 철저하게 검증에 나선다.
 
유 대표는 “가맹점주가 열심히만 뛰어 준다면 투자 대비 월 4부 이자는 나온다”고 장담했다.

한미프랜에 대한 유 대표의 비전은 지금 보다 훨씬 높다. 성공한 CEO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란다.

“20% 쯤 왔다고 봅니다. 전국에 가맹점 400개, 해외에 100개가 목표입니다”

 
 

* 약력

72년 광신 상업고 졸
72년 건국대 상대 경영학과
76년 R.O.T.C 제 14기 소위 임관
86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78년 충남방적 무역부
96년 (주)한미프랜 입사
2004년 (주)한미프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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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ntor 윤병철
193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법관이 되려고 부산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뜻하던 바와는 달리 졸업과 동시에 농업은행에 입사하여 전문금융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지난 40년간 금융계에 몸담아온 국내 금융계의 원로 겸 산 증인으로서, 한국토자금융 대표이사 6년, 하나은행장 및 회장 10년, 우리금융 그룹회장 4년 등 무려 20여 년간을 최고 경영자로 일했다.

그가 존경 받는 금융인으로 꼽히는 것은 정도경영, 윤리경영 등의 원칙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 후원회장을 8년간 맡고, 작품에도 출연하는 등 문화예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외에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CEO로 잘 알려져 있다.


 

  ● Part 1 :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 !

 

많은 사람들이 CEO가 되길 원하지만 그 중 아주 일부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등산을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군. 에베레스트같이 높은 산을 오르더라도 첫걸음은 항상 낮은 곳에서부터 내디뎌야 하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네. 평범한 은행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처음부터 CEO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니라네. 우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은행원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러다 보니 은행장이라는 자리가 주어진 것이지. 즉, 한 걸음 한 걸음 쉼 없이 가다 보니 어느새 최고봉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네.

젊은 시절 범하기 쉬운 실수가 조급함이지. 성공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초조해할 필요는 없네. 단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마치 등산가가 산을 오르듯 한 발 한 발 디디며 현재의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성공이라는 최종목표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행로라네.

나는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큰일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한 개인의 소박한 꿈 정도는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이고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달려있지. 분명한 것은 하늘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에겐 결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이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켜나가게. 그럴 리 없다고 믿지만 혹시라도 운명에 기대고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쉽사리 포기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도 말했지 않은가. “운명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사람의 손바닥 크기만도 못하다.”고. ‘운명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바람 없는 날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하나가 자신의 손바닥에 정확히 떨어질 확률 정도’라고 말이야. 행여 성공이 엘리베이터를 타듯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버리게나. 성공은 1층부터 계단을 하나씩 차근차근 오르듯 단계를 밟아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말일세.


 

 ● Part 2 : 성공의 목표와 의미를 생각하라 !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작 정상에 올라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네. 이는 선후가 뒤바뀐 것일세. 물론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이르는 것도 값진 일이지. 하지만 등산하는 동안 산과 들에 핀 꽃을 한번 볼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올라갔다면 그렇게 의미있는 일이라고는 말하기 힘드네. 정상을 향해 매진하되 전후좌우를 살펴가며 산행 자체를 즐겨야 시야와 생각을 더욱 넓힐 수 있지 않겠나. 그것이 바로 성공의 목표이자 의미이니 말이야. 인생의 목표가 성공인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10억원 만들기 바람이 분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물론 근검절약해서 10억원을 모으는 것은 좋은 생각이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10억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생활이 너무 피폐해지거나, 편법을 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공을 해도 보람은 없고 허망함만 남을 것이네. 하지만 왜 성공하고 싶은지, 성공한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해놓은 사람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열정적으로 일에 파고들게 되지.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편법이나 반칙을 쓰는 일은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게 마련이지.


 

 

 ● Part 3 :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라 !

 

난 금융업에 오래 종사해서 그런지 특히 정직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네.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재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정직을 더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특히나 돈을 다루는 금융업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난 어려서부터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직에 집착하는 편이라서 자그마한 립서비스나 사소한 거짓말도 아주 싫어한다네.

내가 어렸을 적 이야기 하나 소개할까. 난 거제도 촌놈 출신이네. 어느 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한 유명인사가 방문했네. 그 당시로선 보기 힘든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색 승용차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땟국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 유명인사에게 매달렸지. 차에서 내린 신사는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자상하게 쓰다듬고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땐 편지로 연락하라고 다정한 말을 남긴 후 훌쩍 떠났지. 그 유명인사의 말을 ‘진심’으로 믿은 나는 연필심을 꾹꾹 눌러가며 내가 만난 최초의 유명인사인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는 목이 빠지도록 답장을 기다렸지 뭔가. 그런데 답장은 오지 않았네. 그때 어찌나 낙담을 했던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쓰려온다네.

그때의 뼈아픈(?) 추억 때문에 난 사소한 메일일지라도 답신을 꼭 해준다네. 자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이라고 말할 수 있네. 작은 약속조차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정직함과 신뢰. 그것이 바로 인재등용과 발탁의 제1 요소이네. 정직한 사람은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늘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조직에 꼭 필요한 일원이 될 수 있다네. 하지만 능력은 뛰어난데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조직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네. 내가 조직원에 대한 평가의 제1 요소를 정직과 신뢰에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20대 때부터 정직과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게. 그래야 후에 스스로 만족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CEO가 되지 않겠나.


 

● Part 4 : 자신에게 엄격하라 !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 않는 내 도전의 동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곰곰이 되짚어보면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선택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아역 연기자 출신인 내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새 출발, 연극영화가 아닌 일반학과에 진학하기로 한 것도 모험이었지요.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 들어간 대학임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것도 무모하다면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반대하셨지만 우회로를 통해 오히려 연극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의미 없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잘 나가던 연예계 스타생활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뮤지컬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난 것도 그렇지요. 달랑 3,000달러만 들고 떠난 미국 유학은 정말 겁 없는 선택이었지요. 만일 현실에 안주하느라, 남의 눈치를 보니라, 주위의 모든 여건이 충족되기를 기다리느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선택을 미루고 주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오늘날의 송승환 브랜드는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 선택은 당시로선 지그재그 우회 행로로 보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다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일 그 같은 도전이 없었다면 무엇을 선택했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사는 아쉬운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Part 5 : 애사심보다 애직심을 가지라 !

 

다음으로 내가 해줄 말은 애사심보다 애직심愛織心을 가지라는 것일세. 즉, 회사보다는 자기의 일을 사랑하라는 말일세. 과거의 산업사회에선 잔말 없이, 다른 생각 안 하고 열심히 일만 하는 기계적 인간이 조직에 필요한 유형이었네.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작동이 멈추고 불량품이 생산되니까 말일세.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이나 다름없었지.

하지만 정보화 시대가 열린 오늘날은 달라졌네. 그 점을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네. 21세기 사회는 인간이 기계에 복종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는 사회라네. 말하자면 기존의 것과 다른 생각, 창의적 발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지. 지식산업사회에서 얻은 지식은 회사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네. 그러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게.

난 신입사원 교육을 할 때에도 결코 회사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지 말라고 얘기한다네. 회사를 그만둘 때 회사에서 “당신 같은 인재가 없으면 우리 조직이 쓰러진다.”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릴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키울 것을 당부하지. 그러기 위해서는 왕성한 탐구욕이 있어야 할 것이네. 늘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애쓰게나. 새로운 지식 없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요 일간지를 통독하고, 한 달에 세 권 정도의 경영학 원서 등을 읽고 있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이론을 찾아나서는 탐구심만이 자신을 최고로 이끌 수 있는 비결이라네.

젊은이가 싱싱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가슴한가운데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지. 뜨거운 열정이 때론 시행착오에 빠뜨리기도 하겠지만, 실수와 실패는 인생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교사라네. 뜨거운 열정과 함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발 한발 전진해간다면, 행복하고 풍요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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