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성공해 재산 400배’ 늘려




배중호(53) 국순당 사장은 대표적인 주식 부자다. 

회사 전체 주식(현재 주가 1만7000원 선)의 40.59%(724만8000주)를 갖고 있으며, 이는 1200억원이 넘는다.




덕분에 그가 보유한 ‘시가총액’의 변동폭도 크다.

그래서 국순당 주가가 갑자기 치솟으면 2000억원대 부자가 됐다가, 어느 날 주가가 내리꽂히면, 예의 반 토막도

안 되는 900억원대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경험을 이미 수차례 했던 인물이다.




만일 내 재산이 한순간에 1000억원이 날아가면서 반쪽이 된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을 한다.

“ 기본적으로 (개인 시가총액 변동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보유 주식들)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주식은 그가 팔고 싶다고 해서 팔 수 있는 게 아니고, 단지 기업 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요건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대치동 오면서 ‘호된 신고식’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백세주 같은 술 사업으로 승부를

거는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사실상 지금 살고 있는 집 하나로 만족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다름 아닌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라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집 아닌가? 이 집에 살게 된 경위가 궁금했다.




“원래 수원에 살았습니다.  공장이 그쪽에 있어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는데, 한 16년 전 아이들 교육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해서 이 동네로 왔을 뿐입니다.”




돈을 벌려면 부자를 따라 하라고 했던가.  당시 교육 여건을 중시하는 부자들이 하는 방식대로 그는 우연히

대치동 쪽으로 몸을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배 사장은 당시 대치동으로 전입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강남 집값은 만만치 않았다는 게 그의 회고다.




“수원 우만동에서 꽤 큰 아파트(45평)에 살고 있었지만 막상 집을 팔고 와 보니 대치동 32평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 돈밖에 안 되더군요”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게 그가 서울 강남사람이 된 연유다.




그 이후에도 그는 계속 강남에 살았다.  서초동 대림아크로빌을 거쳐 결국 타워팰리스로 왔다.




생활 편의시설이 뛰어나 만족한다는 그는 기실 집으로 하는 부동산 재테크 면에서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타워팰리스 3차 분양가는 19억원인데 비해 요즘 거래가는 30억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큰 부자지만 성격은 무척 치밀하다.  그의 성격을 읽게 해주는 한 단면을 보자.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불쑥 자신의 녹음기를 갖고 왔다.  자신이 한 말이 과연 제대로 나왔는가를 나중에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한 것이리라. 그는 작은 일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전형적 사업가인 그는 개인들이 하는 주식이나 부동산 재테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배 사장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후배들에게 아끼지 않는다.




일을 잘해서 그 일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 개인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첫째 노하우라고 자주 강조한다.




이게 돈을 버는 지름길이란 얘기다.




“어떤 일을 해도 그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그 일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로 인정받으면 스카우트 제의가 있음은 물론이고, 나아가 장기적으로 그 일과 관련된 개인 사업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란 설명을 잊지 않는다.




실제 그는 이 같은 일을 통해 재산을 크게 늘렸다. 그는 1980년 배한산업(현재의 국순당)에 들어왔다.




그 당시 국순당은 보잘것없는 회사였다. 또 92년 국순당 사장이 되었지만 당시 그의 재산은 회사 주식,

개인 재산을 다 합쳐 3억원도 채 안 되었다는 게 배 사장의 회고다.







2만원으로 짠돌이 한 달 생활




하지만 그는 최고의 전통주를 만들면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일에 승부를 걸었다.

스스로 하는 일(전통주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에 큰 부가가치를 부여했다.

그래서 나온 히트작이 바로 92년에 내놓은 백세주다.




그리고 그는 아예 이 백세주의 장래를 걸고 국순당 사장에 올라섰다. 당시 이 회사 매출은 20억 원대에 불과했다.


하나 배 사장의 혼이 담긴 백세주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서 회사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나중에 1000억원대 위로 올라섰고 회사 공개와 함께 내부 유보금도 1200억원대로 올라섰다.




물론 그 자신도 알짜 코스닥 부자로 떠올랐다. 현재 기준으로만 따지면 그는 14년 만에 재산을 400배로

불린 셈이다.




‘저축 예찬론’도 그가 부자가 된 노하우다. 그런데 그와 같은 큰 부자가 갑자기 웬 저축?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먼저 그의 신혼 초기로 시곗바늘을 돌려 보자.




“배한산업에 들어오기 전, 70년대에 한 무역회사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신혼이었는데 회사 월급이

8만원이었습니다.  이 중 6만원으로 미리 적금을 부었고, 나머지 2만원으로 두 내외가 한 달 생활을 했습니다.”




그 2만원은 지금으로 치면 한 20만원 정도인데 “요즘 사람들도 20만원으로 둘이서 한 달 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당시 그가 철저히 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게다. 당시 월 6만원씩 낸 정기적금은 만기

때까지 다 붓고 나서야 찾았다.




그런데 저축 예찬론과 관련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선 저축, 후 소비’다. 돈이든 시간이든 뭐든 먼저

‘저축’을 하고, 나머지를 쓰라는 것이다.




소비하고 남은 것은 당연히 또 저축한다. 헤프게 쓰는 것은 지금도 용납이 안 된다.




이는 배 사장이나 부인(석영호씨)이나 똑같다. 지금도 부인은 집안 살림을 하면서 미리 한 달치 문화비·

학비·식비 같은 항목과 예산을 정해 사용한다.




만일 한 달치 문화비를 사용하고 남을 경우, 남은 돈을 식비 등으로 전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남은 것은 몽땅 다 저축한다. 부자가 된 지금도 이는 철저하다.




배 사장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이나 재테크나 공부를 할 때도 미리 시간을

정해 빼라는(저축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리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는 2시간 동안 필요한 영어공부를 한다는 식으로 ‘시간을 빼고

(시간을 미리 저축을 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같은 ‘선 저축’을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이익이 남으면 3분의 1은 회사 내부에

유보하고, 3분의 1은 직원들에게 주고, 3분의 1은 주주들에게 주는 정책을 고수했다.




또한 그는 회사의 현금 보유액(약 1200억원)과 매출액(약 1200억원)을 비슷하게 갖고 가야 한다는 독특한

경영론도 갖고 있다.




먼저 ‘저축’을 해서 튼튼하게 회사 몸집을 키운 다음 외부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경영을 통해 이익이

남으면 다시 회사 내부 유보라는 ‘저축’을 통해 회사를 살찌우는 전략을 계속 실천 중이다.




그는 부자가 되려면 원칙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마케팅을 하든, 재테크를 하든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순당은 덤핑 세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제값을 내고 산 사람만 바보가 되고, 이는 결국

제품 불신, 판매 하락, 주가 하락, 나아가 ‘배 사장 시가 총액’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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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개



이시형 소장은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서울 고려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정신병리학적으로 접근한 칼럼과 대중을 위한 정신건강서를 꾸준히 발간, 대중적 인기도가 높다. <나만의 개성으로 살아라> 등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그는 역경에 부딪쳤을 때도 그저 헤쳐나갈 뿐 걱정을 안 하는 낙천적 성격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팽팽 돌다가 꼬르륵 죽고 싶다는 본인의 표현대로 그의 인생 스케줄에 은퇴라는 단어는 없다. 고희의 나이에 강원도 홍천에 한국 최고의 웰빙건강촌 ‘자연 의학 캠프’ 건립이라는 뉴 프로젝트에 착수, 열정을 쏟고 있다.




 


 ● Part 1 : 배짱을 가지라!

 

먼저 배짱을 가지십시오. 내가 말하는 배짱은 ‘내 배 째슈’ 식의 막무가내 철면피나 무조건적인 우김은 절대 아닙니다. 진정한 배짱이란 눈 앞의 명분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실리를 떳떳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여러 번 국운이 기울어지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정학적 위치상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그런 선택을 하다니 현명한 선택은 아니지요.

논리싸움에 실리는 명분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를 당당하게 택하려면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명분 쪽엔 대중들이 몰리게 마련이고, 실리를 택하려면 혼자서 다수를 설득해야 하니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병자호란 때의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기억하시나요. 남한산성에서 전쟁 대책회의를 열던 중 분노를 참지 못한 척화파 김상헌이 항복문서를 찢자 “나라에는 이를 찢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찢은 것을 주워 모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고 결언하게 말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난 우리 사회에 최명길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삶에서도 그와 같은 선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항복문서를 찢으며 서로 박수치고 칭찬하다 나중에 강대국 청나라의 침공을 받자, 아무도 책임 못 지고 혼비백산한 우리 역사를 보십시오. 그보다는 오히려 여러 가지 판세, 상황을 고려해 자존심을 죽이고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 진정한 배짱이 아닐까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선수가 뛰면서 자꾸 관중을 의식하고, 환호에 돌아보고, 여기저기에 손 흔들면서 뛰면 게임이 부실해지지 않겠습니까.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의 오해 또는 지지에 대해 신경을 끄고 여러분의 선택에 오롯이 집중해보십시오. 외향적이면 외향적인 대로, 내향적이면 내향적인 대로. 자신의 개성대로 사십시오.

20대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 믿는 것에 겁 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 배짱을 부리기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걸릴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젊은이들에겐 말그대로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남의 눈 의식하지 말고 배짱 있게 자신의 선택에 승부수를 던져보십시오.



 

 

 ● Part 2 : 스스로 행운의 주문을 걸어라


 

자신감을 불러들이는 행운의 주문을 하나 일러드리겠습니다. 이건 내가 일찍부터 써온 비결인데 아주 효과만점입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참 멋진 사람이야. 오늘도 아주 운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네. 멋진 원고가 써질 거야.” 하며 어깨도 스스로 두드려줍니다. 그러면 정말로 기분도 좋아지고 글도 잘 써집니다. 이렇게 본인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긍정적 자기최면이라고 하는데, 정신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줄곧 내가 엄청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난 천재다, 천재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평생 아이큐 검사를 받은 적도 없으니 수치로 측정된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어느 날부터 천재로 생각하면서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큐 검사를 안 받은 것은 내 특기가 창의력인데 그것이 수치로 측정될 수 있겠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남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감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학창시절 때는 모두들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우리 집은 그 가운데서도 더 어려운 측에 속했습니다. 열세 명의 식구가 방 세 개에서 와글와글 살아야 했으니까요. 당연히 중,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때 나는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세 시간을 걸어 가정교사 일을 하러 갔다 올 때도 있었고, 몇 푼 안되는 돈을 받으려고 수십 차례 피를 팔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야간에 미군 부대에서 보초를 서는데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순찰 중인 미군 헌병에게 얼마나 채찍을 맞았던지 아픈 것을 떠나 서러워서 밤새 울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웃 형이 일러주더군요. “미국의 예일대학교에 가게. 그 대학을 나오면 그 흑인 병사에게 복수가 되는 것이야.” 라고 말입니다. 서울대학교도 모르는 촌놈이 그때부터 예일대학교 학생이 되어있는 모습을 매일 그렸습니다. 그게 씨앗이 되었던지 나중에 예일대학교에 갈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두 곳에 지원했는데 예일대학교에서 면접통고가 와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을 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잠재능력은 뛰어납니다. 내게 천재망상이 없었다면 감히 예일대학교에 지원할 엄두가 낫겠습니까.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재능과 능력은 집중되고 뜻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20대는 단지 인생의 출발선에 불과합니다. 남과 비교해 뒤처져 있는 어려운 처지도,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성격도 여러분들이 목표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우울할 것도, 비감스러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자학과 우울함에 빠지는 것은 현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낭떠러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긍정적인 셀프이미지만큼 사람의 생활을 밝고 활기있게 변화시켜주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내가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8년 개띠라고 사람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이 젊고 활력있게 느껴지고, 또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니 남도 나를 젊게 보고, 그런 식으로 선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 Part 3 :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라

 

여러분들은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그저 방에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등 아무런 도구 없이 스스로 침잠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측컨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이라면 거의 그럴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와 교류하고 인정받고 확인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대부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독을 적극적으로 즐겼습니다. 고독감과 고독력은 엄연히 다릅니다. 고독감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체 못하는 마이너스의 감정입니다. 남과 같이 어울리고는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는 일종의 ‘왕따’를 당하는 수동적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고독력은 고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플러스의 감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보십시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십시오. 기획, 구상, 결단 등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을 여럿이 떠들면서 할 수는 없습니다. 고독력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그러므로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은 혼자여야 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런 깨달음의 시간을 자주 만드십시오. 고독을 즐기는 힘은 성공으로 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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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개



이시형 소장은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서울 고려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정신병리학적으로 접근한 칼럼과 대중을 위한 정신건강서를 꾸준히 발간, 대중적 인기도가 높다. <나만의 개성으로 살아라> 등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그는 역경에 부딪쳤을 때도 그저 헤쳐나갈 뿐 걱정을 안 하는 낙천적 성격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팽팽 돌다가 꼬르륵 죽고 싶다는 본인의 표현대로 그의 인생 스케줄에 은퇴라는 단어는 없다. 고희의 나이에 강원도 홍천에 한국 최고의 웰빙건강촌 ‘자연 의학 캠프’ 건립이라는 뉴 프로젝트에 착수, 열정을 쏟고 있다.




 


 ● Part 1 : 배짱을 가지라!

 

먼저 배짱을 가지십시오. 내가 말하는 배짱은 ‘내 배 째슈’ 식의 막무가내 철면피나 무조건적인 우김은 절대 아닙니다. 진정한 배짱이란 눈 앞의 명분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실리를 떳떳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여러 번 국운이 기울어지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정학적 위치상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그런 선택을 하다니 현명한 선택은 아니지요.

논리싸움에 실리는 명분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를 당당하게 택하려면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명분 쪽엔 대중들이 몰리게 마련이고, 실리를 택하려면 혼자서 다수를 설득해야 하니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병자호란 때의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기억하시나요. 남한산성에서 전쟁 대책회의를 열던 중 분노를 참지 못한 척화파 김상헌이 항복문서를 찢자 “나라에는 이를 찢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찢은 것을 주워 모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고 결언하게 말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난 우리 사회에 최명길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삶에서도 그와 같은 선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항복문서를 찢으며 서로 박수치고 칭찬하다 나중에 강대국 청나라의 침공을 받자, 아무도 책임 못 지고 혼비백산한 우리 역사를 보십시오. 그보다는 오히려 여러 가지 판세, 상황을 고려해 자존심을 죽이고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 진정한 배짱이 아닐까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선수가 뛰면서 자꾸 관중을 의식하고, 환호에 돌아보고, 여기저기에 손 흔들면서 뛰면 게임이 부실해지지 않겠습니까.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의 오해 또는 지지에 대해 신경을 끄고 여러분의 선택에 오롯이 집중해보십시오. 외향적이면 외향적인 대로, 내향적이면 내향적인 대로. 자신의 개성대로 사십시오.

20대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 믿는 것에 겁 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 배짱을 부리기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걸릴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젊은이들에겐 말그대로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남의 눈 의식하지 말고 배짱 있게 자신의 선택에 승부수를 던져보십시오.



 

 

 ● Part 2 : 스스로 행운의 주문을 걸어라


 

자신감을 불러들이는 행운의 주문을 하나 일러드리겠습니다. 이건 내가 일찍부터 써온 비결인데 아주 효과만점입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참 멋진 사람이야. 오늘도 아주 운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네. 멋진 원고가 써질 거야.” 하며 어깨도 스스로 두드려줍니다. 그러면 정말로 기분도 좋아지고 글도 잘 써집니다. 이렇게 본인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긍정적 자기최면이라고 하는데, 정신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줄곧 내가 엄청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난 천재다, 천재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평생 아이큐 검사를 받은 적도 없으니 수치로 측정된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어느 날부터 천재로 생각하면서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큐 검사를 안 받은 것은 내 특기가 창의력인데 그것이 수치로 측정될 수 있겠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남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감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학창시절 때는 모두들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우리 집은 그 가운데서도 더 어려운 측에 속했습니다. 열세 명의 식구가 방 세 개에서 와글와글 살아야 했으니까요. 당연히 중,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때 나는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세 시간을 걸어 가정교사 일을 하러 갔다 올 때도 있었고, 몇 푼 안되는 돈을 받으려고 수십 차례 피를 팔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야간에 미군 부대에서 보초를 서는데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순찰 중인 미군 헌병에게 얼마나 채찍을 맞았던지 아픈 것을 떠나 서러워서 밤새 울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웃 형이 일러주더군요. “미국의 예일대학교에 가게. 그 대학을 나오면 그 흑인 병사에게 복수가 되는 것이야.” 라고 말입니다. 서울대학교도 모르는 촌놈이 그때부터 예일대학교 학생이 되어있는 모습을 매일 그렸습니다. 그게 씨앗이 되었던지 나중에 예일대학교에 갈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두 곳에 지원했는데 예일대학교에서 면접통고가 와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을 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잠재능력은 뛰어납니다. 내게 천재망상이 없었다면 감히 예일대학교에 지원할 엄두가 낫겠습니까.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재능과 능력은 집중되고 뜻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20대는 단지 인생의 출발선에 불과합니다. 남과 비교해 뒤처져 있는 어려운 처지도,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성격도 여러분들이 목표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우울할 것도, 비감스러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자학과 우울함에 빠지는 것은 현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낭떠러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긍정적인 셀프이미지만큼 사람의 생활을 밝고 활기있게 변화시켜주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내가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8년 개띠라고 사람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이 젊고 활력있게 느껴지고, 또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니 남도 나를 젊게 보고, 그런 식으로 선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 Part 3 :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라

 

여러분들은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그저 방에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등 아무런 도구 없이 스스로 침잠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측컨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이라면 거의 그럴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와 교류하고 인정받고 확인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대부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독을 적극적으로 즐겼습니다. 고독감과 고독력은 엄연히 다릅니다. 고독감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체 못하는 마이너스의 감정입니다. 남과 같이 어울리고는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는 일종의 ‘왕따’를 당하는 수동적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고독력은 고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플러스의 감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보십시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십시오. 기획, 구상, 결단 등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을 여럿이 떠들면서 할 수는 없습니다. 고독력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그러므로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은 혼자여야 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런 깨달음의 시간을 자주 만드십시오. 고독을 즐기는 힘은 성공으로 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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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영원히 불가능으로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완벽에의 충동>(정진홍 지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마일은 1,760야드로, 약 1,609미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세기 전만 해도 이 1,600미터를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볼 때 400미터 트랙 네 바퀴를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죽음에 도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너무도 완벽함을 지녀서 마치 “신이 인간의 한계로 설정해 놓은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통념으로는 1,600미터를 4분 안에 달리면 결국 인간의 폐와 심장이 파열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이 가해지면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파열되며, 근육과 인대, 힘줄이 끊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1,600미터를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장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꾸며 정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1마일 4분벽’을 깬 로저 배니스터는 영국의 아마추어 육상 선수이자 옥스퍼드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의대생이었습니다.

 

그는 의대생답게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최대의 고통과 최고의 라스트 스퍼트(Last Spurt: 결승점을 향한 최후의 역주)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100야드 단거리 경주나 마라톤과 달리 1마일 경주를 위해서는 스피드와 스태미너가 최대한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저 배니스터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육상 1,500미터 종목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예상을 깨고 기대에 못 미친 4위에 그쳤습니다.

 

만약 그가 이 경기에서 우승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1마일 4분벽’을 깨는 도전에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헬싱키 올림픽에서의 패배를 맛본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은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2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5월 6일, 25세의 로저 배니스터는 1마일 경주에 참여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뛰었습니다.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려면 트랙을 네 번 60초 안에 돌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돌다가 심장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마침내 네 바퀴 완주를 해냈고, 그의 기록은 3분 59초 4였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마의 4분벽을 돌파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놀라운 일들이 그 다음부터 줄줄이 뒤를 이었습니다.

로저 배니스터가 4분벽을 깨자 잇달아 다른 선수들도 4분벽을 돌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저 배니스터의 역사적 기록이 있은 지 한 달 만에 무려 10명의 선수들이 4분벽을 돌파했고, 1년 후에는 37명이,

그 후 2년 만에 무려 300명으로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1954년부터 인류가 갑자기 빨라지기라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마의 4분벽을 차례로 정복한 것은 생각의 장벽을 허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한계는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심리적 장벽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현재 1,600미터 기록은 모로코의 ‘히참 엘 구에로’라는 선수가 세운 3분 43초 13이라고 합니다.

 

반세기 전 인간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치부되었던 1,600미터 4분의 벽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업계 1위의 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장벽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생각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하려면 생각을 깨야 합니다.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은 과감히 깨어 버리고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합니다.

 

결국 진정한 리더는 생각하는 사람이며, 생각하는 리더가 전체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02년 6월,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4강에 오르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신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신화는 없습니다. 오직 도전과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도전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환경이나 능력이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장벽’을 깨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제도는 동종업계의 어느 회사보다 사업자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업계 1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도전의 출발점에 서는 순간,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십시오.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 항상 도전의 출발점에 서서, 마음의 장벽들을 허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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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은 결국 대인관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맺느냐란 말과 같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면 흔히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대화를 이끌어가는 기술도 중요하다.

아래 전문가들이 분석한 대화의 미덕을 꼼꼼히 읽어보고 스스로의 대화술을 점검, 수정해보도록 하자. 


 

- 오프라 윈프리 -

 

 

 

1. 오프라 윈프리는 성공한 사람이 드러내기 쉬운 거만함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계부 밑에서 사생아로 자랐으며 할렘가의 비참한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미혼모가 되었던 사실, 그리고

그때 낳은 아이를 겁에 질려 내다버린 범죄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어온 아픔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아무리 가혹한 시련 가운데 서 있는 사람에게도 “나도 당신이 겪는 고통을 알고 있다”는 태도로

말한다.


 

2. 오프라 윈프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 있음을 제시하며 긍정적인

대화로 이끈다.   배울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3. 오프라 윈프리는 작은 일도 생략하거나 넘겨짚지 않고 진지한 반응을 보인다.

 

재미있는 일을 발을 동동 구르며 웃고 슬픈 일을 얘기하는 사람과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한다.


 

4.  오프라 윈프리는 진솔한 자세로 말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체중 때문에 방송국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눈물겨운 다이어트로 체중을 줄인 후 방송에 복귀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가감 없이 폭로했다.

그녀에 관한 화젯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고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녀가 과거를 고백할 때 진솔한 자세로 말했기

때문이다.

표정과 태도와 말의 내용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어둠을 떨쳐내는 용기로 가득 차 있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한 것이다.


 

이처럼 오프라 윈프리의 말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자세로 말하면 타인의 공감을 얻기가 쉽다는 것.

 

둘째는 긍정적으로 말하라는 것. “나쁘다”보다는 “좋지 않다”, “틀렸다”보다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로 “안 된다”보다는 “노력해 보겠다”로, 말하면 호감을 준다.

 

셋째로는 감정 표현을 자제해 무표정하게 말하면 진정한 메시지를 전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사랑스럽고 따뜻한 표정은 드러낼수록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진솔하게 말하라는 것. 말할 때의 태도와 표정 말의 내용이 분리되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말하라. 그러면 바위 같은 고집쟁이도 설득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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