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성공해 재산 400배’ 늘려
배중호(53) 국순당 사장은 대표적인 주식 부자다.
회사 전체 주식(현재 주가 1만7000원 선)의 40.59%(724만8000주)를 갖고 있으며, 이는 1200억원이 넘는다.
덕분에 그가 보유한 ‘시가총액’의 변동폭도 크다.
그래서 국순당 주가가 갑자기 치솟으면 2000억원대 부자가 됐다가, 어느 날 주가가 내리꽂히면, 예의 반 토막도
안 되는 900억원대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경험을 이미 수차례 했던 인물이다.
만일 내 재산이 한순간에 1000억원이 날아가면서 반쪽이 된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을 한다.
“ 기본적으로 (개인 시가총액 변동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보유 주식들)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주식은 그가 팔고 싶다고 해서 팔 수 있는 게 아니고, 단지 기업 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요건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대치동 오면서 ‘호된 신고식’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백세주 같은 술 사업으로 승부를
거는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사실상 지금 살고 있는 집 하나로 만족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다름 아닌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라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집 아닌가? 이 집에 살게 된 경위가 궁금했다.
“원래 수원에 살았습니다. 공장이 그쪽에 있어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는데, 한 16년 전 아이들 교육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해서 이 동네로 왔을 뿐입니다.”
돈을 벌려면 부자를 따라 하라고 했던가. 당시 교육 여건을 중시하는 부자들이 하는 방식대로 그는 우연히
대치동 쪽으로 몸을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배 사장은 당시 대치동으로 전입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강남 집값은 만만치 않았다는 게 그의 회고다.
“수원 우만동에서 꽤 큰 아파트(45평)에 살고 있었지만 막상 집을 팔고 와 보니 대치동 32평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 돈밖에 안 되더군요”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게 그가 서울 강남사람이 된 연유다.
그 이후에도 그는 계속 강남에 살았다. 서초동 대림아크로빌을 거쳐 결국 타워팰리스로 왔다.
생활 편의시설이 뛰어나 만족한다는 그는 기실 집으로 하는 부동산 재테크 면에서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타워팰리스 3차 분양가는 19억원인데 비해 요즘 거래가는 30억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큰 부자지만 성격은 무척 치밀하다. 그의 성격을 읽게 해주는 한 단면을 보자.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불쑥 자신의 녹음기를 갖고 왔다. 자신이 한 말이 과연 제대로 나왔는가를 나중에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한 것이리라. 그는 작은 일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전형적 사업가인 그는 개인들이 하는 주식이나 부동산 재테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배 사장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후배들에게 아끼지 않는다.
일을 잘해서 그 일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 개인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첫째 노하우라고 자주 강조한다.
이게 돈을 버는 지름길이란 얘기다.
“어떤 일을 해도 그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그 일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로 인정받으면 스카우트 제의가 있음은 물론이고, 나아가 장기적으로 그 일과 관련된 개인 사업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란 설명을 잊지 않는다.
실제 그는 이 같은 일을 통해 재산을 크게 늘렸다. 그는 1980년 배한산업(현재의 국순당)에 들어왔다.
그 당시 국순당은 보잘것없는 회사였다. 또 92년 국순당 사장이 되었지만 당시 그의 재산은 회사 주식,
개인 재산을 다 합쳐 3억원도 채 안 되었다는 게 배 사장의 회고다.
2만원으로 짠돌이 한 달 생활
하지만 그는 최고의 전통주를 만들면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일에 승부를 걸었다.
스스로 하는 일(전통주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에 큰 부가가치를 부여했다.
그래서 나온 히트작이 바로 92년에 내놓은 백세주다.
그리고 그는 아예 이 백세주의 장래를 걸고 국순당 사장에 올라섰다. 당시 이 회사 매출은 20억 원대에 불과했다.
하나 배 사장의 혼이 담긴 백세주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서 회사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나중에 1000억원대 위로 올라섰고 회사 공개와 함께 내부 유보금도 1200억원대로 올라섰다.
물론 그 자신도 알짜 코스닥 부자로 떠올랐다. 현재 기준으로만 따지면 그는 14년 만에 재산을 400배로
불린 셈이다.
‘저축 예찬론’도 그가 부자가 된 노하우다. 그런데 그와 같은 큰 부자가 갑자기 웬 저축?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먼저 그의 신혼 초기로 시곗바늘을 돌려 보자.
“배한산업에 들어오기 전, 70년대에 한 무역회사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신혼이었는데 회사 월급이
8만원이었습니다. 이 중 6만원으로 미리 적금을 부었고, 나머지 2만원으로 두 내외가 한 달 생활을 했습니다.”
그 2만원은 지금으로 치면 한 20만원 정도인데 “요즘 사람들도 20만원으로 둘이서 한 달 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당시 그가 철저히 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게다. 당시 월 6만원씩 낸 정기적금은 만기
때까지 다 붓고 나서야 찾았다.
그런데 저축 예찬론과 관련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선 저축, 후 소비’다. 돈이든 시간이든 뭐든 먼저
‘저축’을 하고, 나머지를 쓰라는 것이다.
소비하고 남은 것은 당연히 또 저축한다. 헤프게 쓰는 것은 지금도 용납이 안 된다.
이는 배 사장이나 부인(석영호씨)이나 똑같다. 지금도 부인은 집안 살림을 하면서 미리 한 달치 문화비·
학비·식비 같은 항목과 예산을 정해 사용한다.
만일 한 달치 문화비를 사용하고 남을 경우, 남은 돈을 식비 등으로 전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남은 것은 몽땅 다 저축한다. 부자가 된 지금도 이는 철저하다.
배 사장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이나 재테크나 공부를 할 때도 미리 시간을
정해 빼라는(저축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리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는 2시간 동안 필요한 영어공부를 한다는 식으로 ‘시간을 빼고
(시간을 미리 저축을 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같은 ‘선 저축’을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이익이 남으면 3분의 1은 회사 내부에
유보하고, 3분의 1은 직원들에게 주고, 3분의 1은 주주들에게 주는 정책을 고수했다.
또한 그는 회사의 현금 보유액(약 1200억원)과 매출액(약 1200억원)을 비슷하게 갖고 가야 한다는 독특한
경영론도 갖고 있다.
먼저 ‘저축’을 해서 튼튼하게 회사 몸집을 키운 다음 외부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경영을 통해 이익이
남으면 다시 회사 내부 유보라는 ‘저축’을 통해 회사를 살찌우는 전략을 계속 실천 중이다.
그는 부자가 되려면 원칙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마케팅을 하든, 재테크를 하든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순당은 덤핑 세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제값을 내고 산 사람만 바보가 되고, 이는 결국
제품 불신, 판매 하락, 주가 하락, 나아가 ‘배 사장 시가 총액’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